그럼, 나는 스완 탐정!
반대로 말하자면, 너처럼 냉철하고 신중한 아이는 조수가 어울리고?
·········아팠어? 이상하네, 분명 힘 빼고 찔렀는데. 아픈 거 날아가라~ 네 볼에 조심스럽게 손 올리며 짧게 말 내뱉는다. ···이제 안 아플 거야. 참으로 당당하다···. 억울하대두. 나는 네 기분이 상하게 할 의도는 없었다니까? 세상에, 친구를 기분 나쁘게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 음, 어쨌든 고의는 아니어도 네 기분을 나쁘게 한 건 잘못된 게 맞지만 말이야. 애써 결백 주장하지만 그리 강한 어조는 아니다. 어쨌든, 이 상황에서 잘못한 건 본인이 맞는지라···. 본인도 그 점을 아는 탓에 네 눈치 힐끔 본다. 친구랑 싸운? 건 처음인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일단, 무작정 비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앵기고 있으면 리리도 화를 심하게는 못 내지 않을까? 그렇기에 동앗줄마냥 네 팔 꼬옥 붙잡는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시선은 슬금 회피하고, 나, 나름 사과였는데······ 나, 사과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단 말이야. 친구가 화낸 적도 처음이고. 애초에,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귄 게 이번이 처음이라···. 구구절절 변명 내뱉으며 울상 짓는다. 이러다 절교하면 어떡하지? 그땐 정말 울 것 같은데? 온갖 불안한 생각들 머릿속에 어지럽게 둥둥 떠다닌다. 결론적으로, 무릎 꿇은 채 하염없이 기다린다. 마치 일 초가 백 년인 것만 같다. 그러다가도 어깨에 닿는 손에 흠칫, 고개 살짝 올려 네가 내민 손 바라본다. 자, 잡아도 되나? 이거, 용서의 뜻인 걸까? 고민 끝에 조심스레 네 손 끝 잡고 일어난다. 여전히 울상인 채다···. 하, 하지만, 이렇게 해야 용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나, 용서해 주는 거야?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곧바로 울어버릴 듯한 얼굴이다; 그렇지? 만약, 내가 지금처럼 계속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리리를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면, 리리가 엄청 화내지 않았을까? 대화 상대를 쳐다보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화까지는 안 냈으려나? 조금의 짜증 정도? 하여튼, 기분 나빠하긴 했을 것 같은데. 생각하며 고개 살짝 갸우뚱. ···눈 색 때문에 더 밝아 보이는 거 아닐까? 나 정도면 밝은 편이니까. 어때? 나, 별 좋아하거든. 그래서 내 눈을 좋아하는 편이야. 리리는 별 좋아해? 네 말이 기분 좋았는지 묘하게 얼굴에 화색이 돈다. 말마따나, 별을 상당히 좋아하는 터라.
네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말 잇는다. 생각해 봐. 너, 당장 나를 처음 봤을 때와 비교했을 때··· 나에게 익숙해진 것 같지 않아? 반응도 좀 덜 하고, 내가 하는 웬만한 말들은 다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고. ······아닌가? 아니면 어쩔 수 없구. 가벼이 어깨 으쓱인다. 왠지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네가 자신에게 익숙해져, 자신이 쳐다봐 주길 내심 기다리는 미래를 말이다. 아마, 우린 일버르모니 졸업 이후에도 만나게 될 걸? 정 안 믿기면, 내기라도 할래? 우리가 7학년 때까지 친구로 못 지내면 네 승리, 이기면 내 승리.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걸로.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반짝이는 눈으로 너를 바라본다. 이번에는 제법 부담스럽다. 눈 반짝반짝반짝반짝······. 만나는 건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매일 널 보러 갈 테니까. 예의 상 하는 말 같으나 나름 진심이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심지어, 그냥 친구도 아니고 내 첫 친구인 걸! 여전히 네 손 붙잡은 상태이다. 다한증이라니, 그럴 리가. 친구끼리 손은 잡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다들, 친하면 손 정도는 잘만 잡고 다니던데. 우리, 친구 아니야? 감정에 호소하기 시작한다! 리리, 우리는 친구잖아···.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건 덤. 내 머리에서 나온 결론이지. 백 배는 너무 과장이긴 했지? 말을 바꿀게. 열 배 덜 반짝여. 근거 없이 확신으로 가득찬 어투. 네가 머리 두드리자 그렇게 머리 두드리면 나 머리 나빠져. 안 돼. 라며 가볍게 항변한다. 물론. 나는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니까. 리리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하든, 나는 좋게만 들을 거야. 밝게 고개 끄덕인다. 이어지는 네 눈빛에는 문제 있냐는 듯 고개 갸웃. 원래 그렇게까지 과한 사람이 아니라, 사실 당연한 말이다. 문제라면 네 앞에선 그렇게 차분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겠지만! ·········잠깐. 별종이라니··· 네가? 어딜 봐서? 손으로 입 막은 네 모습에 잠깐 고민하다가 손가락 들어 네 손등 톡톡 두드린다. 열려라, 리리의 입~ ···농조. 갑자기 네가 별종이란 말은 왜 하는 건데? 리리 정도면 정상인, 상식인 느낌에 가깝지 않아? 의아하다는 듯한 목소리이다. 으응, 딱 보통. 꼭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좋아한다는 쪽이긴 해. 그런데, 관심을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던가··· 하는 편은 아니란 거지. 리리는, 음······ 아무래도 싫어하는 편이려나? 관심 같은 거, 귀찮고 번거롭다고 싫어할 거 같아. 추측 내뱉으며 혼자 고개 끄덕인다. 오, 방금은 조금 괜찮은 추측이었던 것 같은데? 속으로 혼자 자화자찬···.
“정말 할 수 있지. 못할 것 같았으면 애초에 거절했을 걸?”
자신만만한 어투. 가능할 것 같았기에 한 승낙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했던 공부이니, 이왕 할 거라면 혼자 하는 것보단 친한 친구와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나, 영 신뢰 받지 못하는 거 같은데··· 기분탓인 걸까?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분명 똑바로 말했던 것 같은데. 혼자 묘하게 침울한 기색 보인다. 너무 장난을 많이 쳐서 그런가······. 그래도, 막상 제대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리리도 나를 믿어 주겠지? 막연하게 생각한다. 당장은 먼 미래의 모습이다. 지금 바로 같이 공부를 시작할 건 아니니까. ···나는 고집쟁이니까, 내 의견만 밀고 갈래. 무작정 우기고 본다. 으응. 원래 활동적인 성향은 아니긴 하지만, 가족 따라서 돌아다닐 일이 조금 많았거든. 부모님이 여행을 좋아하셔서. 그 과정에서 여러 일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기억력이야 뭐, 추리 소설을 많이 읽다 보니 자연스레 늘어났고. 힐끗, 네 표정 보고는 안심한 듯한 기색 보인다. 그래도,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아서 다행이다. 아까는 조금 불편해 보였는데. 입가에 은은한 미소 걸친다. 알겠어어. 그럼, 내가 만년 2등으로 지낼 테니까 네가 쭈욱 1등 해. 알겠지? 물론, 나도 최선을 다 해서 열심히 할 거야. 리리도 그 편이 더 좋잖아? 내가 대충 하는 것보단, 진심을 다 해서 하는 게. 그래야 이기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재미는 안 느끼려나. 너무 진지하게 임해서. 생각하며 잠깐 고민. 네 시선 마주 보며 자신감 가득찬 미소 보여준다.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정말로! ···진짜 건강한 거 맞지? 아프면 바로 말해줘야 해, 리리. 친구가 눈 앞에서 쓰러지는 걸 보고 싶지는 않거든···. 제법 진지한 낯으로 말 내뱉는다. 응, 백 개. ···너무 많아? 보통, 다들 이 정도는 물어보지 않아?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감을 못 잡겠다. 음, 열 개 정도만 해도 되려나. 그러다 이해 못하면 어떡하지? ······가르쳐 주는 건 너 아니야? 나한테 물어봐봤자 별로 도움은 안 될 것 같은데, 괜찮겠어? 눈동자 하염없이 데구르르···. ······어감이 귀여우니까, 분명 귀여운 별명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어. 그리고, 네가 하도 나를 바보라고 부르다 보니까··· 부정적인 뜻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들어서. 볼 긁적이며 어색하게 미소 짓는다. 근데, 내가 어딜 봐서 바보 같다는 거야? 살면서 바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은근한 자존심 스크래치! 듣기 싫은 건 아니지만 어째 묘해진다. 장단, 별로 안 맞춰줘도 괜찮았잖아?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리리가 장난을 치고 싶었던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 끝까지 우겨본다. 네가 손 거두자 묘하게 시원섭섭해 보인다. 재밌었는데, 아쉽네~ 갑작스럽게 가까워지는 얼굴에 본인 얼굴 뒤로 뺀다. 가, 갑자기? ······충분히 반짝이고 있는데, 왜? 안 믿겨서 그래? 너─무 반짝여서 나도 부담스러울 정도야, 리리. 알지? 나는 언제나 진실만 말한다는 거. 손 들어 네 눈 슬쩍 가린다. 그렇게까지 못 믿을 말은 아니지 않나, 이거? 잠깐 침묵. 그렇지? 그러니까, 이참에 나를 한 번 챙겨보라는 거지. 차라리, 내가 리아가 아닌, 마네킹이라고 생각해 보는 건 어때? ······쉽지 않은 말이다. 살아 숨 쉬는 따뜻한 사람을 마네킹으로 생각하라니? 하지만, 말하는 본인은 챙김 받을 입장이기에 그 사실은 외면한다. ···음? 안 괜찮을 건 없지. 우린 어린애가 맞으니까. 챙기는 사람도 애라는 건 함정이긴 하지만, 나도 이럴 때 챙김 받아봐야 하지 않겠니? 크면 못 받을 텐데. 다음엔 내가 널 챙겨 줄게. 우리, 서로 챙김 교환하자. ···혼자 냅다 챙김 교환이라는 신조어; 만들어 낸다. 티가 안 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타인을 챙기는 걸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으면 아무래도 언뜻 보이는 행동에서 티가 날 걸? 제일 먼저 뭘 해야 하지? 하면서 방황한다던가··· 하는 쪽으로 말이야. 가볍게 어깨 으쓱여 보인다. 정말? 자신 있는 리리, 보기 좋네~ 그럼, 나는 리리에게 의존하면서 조심할게. 태평한 어투.
그러게. 리리, 엄청 솔직한 사람이구나. 내가 그동안 본 사람들 중 제일 솔직한 거 같아. 물론, 아리아의 그동안이라고 해봤자 아직 어리디 어린 나이라 별 의미는 없겠지만, 적어도 말하는 당사자에겐 큰 의미이다. 그래도··· 걱정은 언제 받아도 감동이잖아. 그것도, 상대가 내 첫 친구인 리리라서 더 감동이야. 네 말에 잠깐 고개 갸우뚱. ···맞춰준다? 그럴 리가. 물론, 처음에야 내가 일부러 동조해 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거야 처음 말문을 텄을 때고, 지금은 아닌 걸. 정말 리리가 착해서 그런 거야. 리리도, 처음에 비해선 훨씬 다정하고 솔직해졌잖아? 너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화 상대인 자신은 단적으로 느꼈다. 처음에 비해 말을 열 배는 더 착하게 하고 있다. 우리 리리, 역시 나쁜 친구가 아닐 줄 알았어···! 그러니까, 각자 방식이 다를 뿐이지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게 끝이야. 그 이상으로 따져야 하는 게 있을까? 어쨌든 둘 다 착하니 된 것이다. 그렇고 말고!
······확실히, 말하는 건 네가 나보다 단단? 딱딱? 한 거 같긴 해. 진지하게 고개 끄덕. 하지만, 그 외의 요소는 다를 바 없지 않나? 볼은 자신이 더 딱딱하고, 또···. 생각하며 또 고개 갸웃. 글쎄? 너나 나나, 딱히 다를 바는 없는 것 같은데? 비슷하게 단단하고, 비슷하게 물렁하고. 그리고,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진 것도 좋은 현상은 아니니까··· 물렁한 게 싫은 건 아니지만, 조금은 단단해졌으면 한다. 억울할 수밖에. 지금은 평소와 정반대의 모습인 걸. 차분하고, 얌전하고, 말 수 없는 게 원래 내 모습인데. 이런 설명만 들어선, 천방지축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 않아? 심지어, 초반에 비해 흥분하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지금은 웬만해선 차분하게 말히는 편인데······ 나, 이제 와서 이미지를 바꾸기엔 이미 늦은 걸까? 옅은 한숨 내쉰다. 엄청 어른스럽고 성숙한 이미지로 비춰지길 바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방지축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여러모로 꼬이고 꼬여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첫인상이 아쉬울 따름이다···. 체력은 필요하지. 너어, 공부에는 체력이 중요하단 말 모르니? 체력이 없으면 공부를 어떻게 오랜 시간 동안 하겠어. 금방 지쳐서 나가 떨어지겠지. 너처럼 오랫동안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에겐 저질 체력이야말로 최악의 적이란 말씀! 운동을 안 하면, 미래의 네가 많이 후회할 걸? ······나도 안 할 거지만. 그렇게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한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는 당당함이다! 물론이지. 엄─청나게 내쳐달라고 부탁하려던 거니까. 네 안목이 잘못됐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좋은 사람은 적당히 안 쳐내지 않을까? ···무한 신뢰! 글쎄. 혹시 모르지? 나중엔, 네가 나보다 더 착해질 수도 있는 거고. 막, 내가 착하다는 말을 한 번 들을 때 너는 백 번 듣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랬어. 짧은 한 마디 덧붙인다. ···왜 답지 않은 말을 하고 그래? 내가 눈을 크게 뜬다고 너도 따라 뜬다니, 원래였으면 그렇게 눈을 크게 뜨지 마라고 잔소리를 해야 했던 타이밍 아니야? 진심으로 의아한 듯한 기색. 말 꺼낸 건 내가 맞지만······ 어쨌든 이건 다 리리 때문이야. 막무가내이다. ···알겠어, 노력파 천재 리리. 나는 그냥 바보 리아 할게. 체념한 듯 고개 절레 저으며 한숨 푹 내쉰다. 응. 싸우지 말고, 지금처럼 화기애애하게. 좋을 것 같지 않아? 죽을 때까지 친구하는 것도 괜찮겠다. ···이번에도 본인 멋대로;
···내가 좋은 뜻이라고 생각하면, 그 말도 곧 좋은 의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헛소리이다. 네 얼척 없다는 표정은 은근슬쩍 시선 돌려 외면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조금 황당한 말이긴 했기에. 그러다가도, 네 표정 멍하게 바뀌자 고개 갸우뚱거리며 네 눈 앞에 본인 손 가볍게 두어 번 휘저어 보고는 영혼 나간 거 아니지, 리리? 같은 말 장난스러운 어조로 덧붙인다. 웬일로 이런 표정을 짓는 거지? 나, 딱히 이상한 말은 한 적 없는 것 같은데. 말 꺼낸 당사자는 그저 네 반응의 원인이 궁금한 모양···. 너는 남이 아니라, 내 친구니까 괜찮은 거야. 그리고, 방금··· 마지막에 바보 같다고 말하려던 거지? 리리는 언제나 나를 바보라고 부르니까. 이제 이 정도는 가뿐히 맞춘다. 의기양양한 표정. 아하. 조금 말랑해서 좋았으니까, 많이 만져서 엄청 좋아지고 싶단 소리지? 말하지 않아도 나는 다 알아, 리리. 숨길 필요 없어. 그리 말하며 웃는 낯으로 네 어깨 두어 번 토닥인다. 농담이 아니라, 여태까지 대화하며 본 리리의 표정 중 방금이 제일 밝았다니까. 난 이런 걸로 거짓말 안 해, 리리. 진심이기에 당연히 표정 또한 평온하다. 뒤이어 네가 고개 까딱이자 표정 밝아진다. 다행히, 저 혼자 친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구나 싶어져서. ···조금이라는 건, 일반 사람 기준으로 많이라는 뜻이지? 본인 좋을대로 해석하며 만족스럽다는 듯 웃어 보인다. 엄─청 영광이네, 그 말. 리리의 친구로 인정 받다니. 주변에 자랑하고 다녀도 되겠는데? 정말 자랑할 생각은 없다. 단지 자랑하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는 의미일 뿐이다. 너와 친해지는 건 그저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친한 친구가 되는 데에 성공했으니, 아무래도 아리아 입장에선 당연히 기분 좋을 수밖에 없다.
내가 계획을 잘 안 지켜도, 우린 여전히 좋은 친구 아닐까? ···논지에서 벗어난 물음 당당하게 던진다. 아무렴, 단발 곱슬이라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으려나. 어깨 으쓱···. 나름대로 다 배우는 게 있을 걸. 그리고, 오히려 너무 계획적이어도 실상은 별로 깨우치게 되는 게 많지 않을 거야. 물론 계획적인 건 좋은 면모이지만, 가끔은 적당히 풀어줘야 할 때도 있단 거지. 그래야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유연한 대처가 가능할 테니까. ···어떤 의미인지 알겠어? 뭐, 너랑 똑같은 어린애가 이런 말 해봤자 별로 와닿을 것 같진 않지만 말이야~ 무엇보다, 늘어진 너는 확실히 상상이 전혀 안 되긴 해. 아무 반응 없는 네 모습에 뒤늦게 부끄러움 밀려와 양손에 얼굴 묻는다. 너, 너무 날것의 진심이었던 걸까? 차마 네 얼굴 보지도 못하겠다. 그것도 잠시, 네 물음에 슬그머니 고개 조금 든다. 그야, 혼자잖아. 내가 힘들 때 옆에 아무도 없단 거, 쓸쓸하고 재미도 없을 것 같아. 물론 나 자신은 그렇게까지 재미 없는 사람이 아니지만, 내 말을 들었을 때 반응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해. 이를 테면, 지금의 너 같은 사람 말이야. 외로움을 한 번도 안 느껴본 건가? 음, 그건 조금 신기할지도. 그런 걸 많이 느껴봤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으응. 너는 내 첫번째 친구니까 더 그런 것 같긴 해. 그럼, 나랑 평생 이런 사이로 지내자. 자고로, 원래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댔어. 반짝이는 눈. 글쎄, 리리라면 그렇게까지 큰 변심을 가지진 않을 것 같아. 그리고, 내 생각엔 리리도 나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일 년에 백 번은 싸우지 않는 이상, 친구가 아니게 될 일은 없지 않을까? 너를 제법 신뢰하고 있는 듯.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뻔뻔하게 말 꺼낸다.
머리카락에 느껴지는 손길에 너 편하게 만지라는 듯 가까이 다가간다. 어때? 내 머릿결, 나름 부드러운 것 같지 않아? 마음껏 만지고, 쓰다듬어도 좋아. 엣헴. 음, 그래도 난 리리의 곱슬도 좋은데? 복슬복슬··· 만지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 ······나, 그렇게 알기 쉬워? 그래도, 보통은 볼만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눈치가 빠르네···. 그럼, 생일 선물로 너 닮은 고양이 인형 사줄게. 음, 근데······ 너, 생일이 언제야? 이미 지났어? 이미 지났으면, 내년 생일을 노려볼까나···. 아니면, 뒤늦은 생일 선물? 혼자 곰곰······.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바보가 그렇게 싫어? 듣는 바보 리아는 조금 상처 받을 것 같은데. 본인이 바보 소리 듣는 건 그렇게 싫어하면서, 왜 나를 자꾸 바보라고 부르는 거야? 황당 반, 당황 반 섞인 낯으로 너 빤히. 좋아하지 않겠거니 하긴 했으나 설마 이렇게까지 싫어할 줄은 몰랐다. 그야, 이제 와서 가버리기에도 늦었으니까······? 옆에 안 있어주면 리리가 서운해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도와주는 건··· 또래 친구의 부탁을 차마 무시하고 지나칠 수는 없잖아. 너무 차가워 보이고 싶진 않은 걸~ 뭐어, 결론적으로 리리랑 친해졌으니 됐어. 만족스럽단 말씀. 당당하게 웃는다. ···맞아. 사실, 고양이랑 볼은 달라. ······당연한 소리이다.
네가 이상하게 쳐다보자 고개 갸우뚱거린다. 평생 살면서 받을 이상한 사람 보는 듯한 시선, 오늘 하루 만에 다 받는 것 같은데······ 기분탓이려나? 아니, 리리와 친구로 지내는 이상은 평생 이상한 사람 보는 듯한 시선을 받으려나. 생각해 보니, 썩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이게 친구 아니야? 곤란한 처지의 친구를 도와주는 게 진정한 친구 아니던가? 혼나는 리리를 도와주는 리아, 이게 친구가 아니면 뭔데? 진심으로 당황했다. 그, 그래도, 나름 생각해서 대신 혼나 주겠다고 한 건데···. 죄를 뒤집어 씌운다는 표현 때문에 과해 보이는 건가?
당연히 리리라면, 내가 두 배로 혼나는 것보다 자신의 학업을 더 신경 쓸 줄 알았다. 물론, 나에게 신경 안 쓴단 게 아니라······ 신경을 쓰긴 하겠지만, 그 중요도가 학업에 비해서는 낮을 거라 생각했다. 그야, 너는 학업에 대한 의지가 굉장히 많은 열정적인 학생이니까. ···그래도, 나를 정말 친구로 생각해 주긴 하나 보구나. 새삼스레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친구라는 거,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혼자 헤실 웃는데, 문득 귓가에 들려오는 말에 두 눈 멍하니 깜빡인다. ·········음?
특강을 하면, 그만큼 리리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거 아니야? 좋을 것 같은데. 농조. 당연히 진심은 아니다. 특강이라는 말은, 그만큼 더 힘들게 공부할 거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으니까. 특강은, 조금 참아줬으면 하는데···. 하고 중얼거린다. 으응, 나는 절대 거짓말 안 하니까 언제든지 믿어도 돼. 자신만만!
으응, 당연하지. 애초에 잘 우는 성격도 아니긴 하지만, 특히 리리 앞에선 안 울게. 내가 울면, 리리도 울 것 같거든. 그것도 나보다 더. 어쩌면 내가 달래줘야 할지도?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 내뱉으며 짧은 웃음 소리 내뱉는다. 물론, 자신의 망한 이미지가 너무 속상한 나머지 정──말 울 생각이긴 했지만, 네 덕에 그쳤다. 이렇게 여리고 착한 리리 앞에서 울 수는 없지, 그럼. 네가 빤히 보자 지금은 정말 괜찮다는 듯 옅은 미소 입가에 띄운다. 열 번은 진작 넘은 것 같아서. 이대로 가다간, 오늘 안에 정말 백 번을 넘겨버리고 말 걸? 리리가 나에게 바보라고 한 횟수. ······정말? 리리 선생님, 나한테 일부터 십까지 못 알려 줘? 왜? 서운하다는 듯 너 바라본다. 사실 못하는 게 당연한 거다···. 그럴 리가? 천사는 날개가 존재하잖아. ···그리고, 나는 천사가 아니라 날개가 없어. 왜 그런 말을 진지하게 하는 거야, 리리? 나보단 네게 천사 날개가 잘 어울리는 게 당연하잖아. 조금 부끄러운지 묘하게 빨갛게 된 얼걸 가라앉히기 위해 손 부채질 한다.
그래도, 새롭지 않아? 동갑에게 언니라는 말을 듣는 거, 이번이 처음일 것 같은데. ···당연하다. 리리, 동생 있어? 나는 동생이 한 명 있어서, 언니란 말을 듣는 게 조금 익숙하거든. 리리라면, 왠지 동생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대신, 언니나 오빠는 있을 것 같아. 추측한다. 맞았다는 점에서 추리 적중! 그렇지? 그래도, 내가 리리 옆에 없는 순간은 잘 때와 씻을 때, 그 외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때를 제외하면 없을 테니 안심해도 돼, 리리. 사생활은 지켜 줘야지. 당연한 소리 내뱉으며 엄지 척. 하지만, 리리는 아무리 봐도 진심을 다 해서 걱정해 주는 사람의 모습인 걸. 내 눈은 속일 수 없어, 리리. 어깨 으쓱. 정말? 역시, 리리라면 날 믿어줄 줄 알았어. 나는 리리를 잘 아니까, 이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구~ 내심 긴장했으면서 안 한 척.
얄밉다니, 리리는 자꾸 그런 표현을 쓰네. 내가 의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말이지? 이번은 그냥, 리리가 하다 만 말을 끝까지 듣고 싶었을 뿐인 걸. 눈을 반짝인 건, 음··· 내가 그만큼 너─무 네 말을 듣고 싶어서, 라고 이해해 주면 안 되려나? 농조이긴 하지만 말의 내용 자체는 진심이다. 정말 듣고 싶었기 때문에 본인도 모르게 반짝였을 뿐이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대부분의 반짝이는 눈은 자신이 의도한 게 아니다. 네가 말하기 전까진 모르고 있었다! ···의도한 것도 몇 번 있긴 했지만. 많지는 않으니 된 거다. 혼자 속으로 합리화한다···. 그러다가, 들려오는 네 말에 표정 아주 밝아진다. 정이 들었다니! 정말 예상하고 있긴 했지만, 직접 들으니 기분이 더 좋았다. 으응, 나도 리리에게 정 어엄청 들었어. 짧막한 말과 함께 방긋! 친구끼리 닮는 거지. 아까는 리리가 고개를 너무 저어서 어지러워했잖아? ······에엥. 친구가 많다니, 어딜 봐서? 나, 이래 봬도 친구가 많지는 않아. 당장 일버르모니에 와서도,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너잖아? 친구, 딱히 많이 사귈 생각도 없고. ···리리의 기대를 배신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네. 내가 나중에, 성인이 된 이후에 구미호를 직접 만나서 구미호가 되는 법을 알아 올게. 그때까지만 기다려 줘, 리리. 비장한 낯으로 아무 말 내뱉고는 너 보며 고개 끄덕.
볼을 좋아하는 바보 리아······. 어쩐지 미묘한 표정. 이 쯤 되면, 내 이름이 바보고 성씨가 리아인 것 같아. 싫은 건 아니지만, 이러다 정말 바보가 돼버리면 어떡하지? 싶어 고개 갸웃. 아무렴, 괴짜와 멍청이를 빼줬으니 상관 없다. 만족스러운 표정 짓는다. 아무래도, 친구 중에서도 첫 친구는 의미가 크지. 원래, 뭐든 처음은 의미가 큰 거 아니겠어? ···모든 처음이 좋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은 좋은 의미의 처음이니까. 미리 대비를 하는 게 용기 없는 건 아니잖아? 대비책을 준비해두는 건 용기 있는 사람이어도 계획적인 성격을 가졌다면 모두가 하는 행위고. 그 정도로 용기의 유무를 판단하기엔 성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용기가 없다고 하더라도··· 문제 될 건 없어. 내가 네 용기를 채워 줄게. 하고선 해사한 미소.
···그럼 이 학교 친구들은 거의 다 다정하겠네? 대부분의 친구들은 너와 잘 대화해 줄 테니까. 음······. 나중에, 친구 잔뜩 사귀어도 첫 친구인 나를 제일 소중히 여겨줘야 해, 리리. 알겠지? 약속이라며 네 대답 듣지도 않고, 무작정 네 쪽으로 본인 새끼 손가락 내민다. 어서 걸어, 리리! ······으응. 대신, 리리도 지금부터 착한 사람인 걸로. 장난스레 웃는다. ······정말 믿음이 간다고? 당황! 리리, 나를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 주다니··· 감동 받아서 울어버릴지도 모르겠어. 안 운다. 세상 평온한 낯이다. 조금 감동 받은 모양인지 두 눈은 엄청 반짝이고 있긴 하지만. 물론이지. 나, 얌전히 사람 옆에 붙어있는 건 잘 해. 귀찮아 할 정도로 붙어있어 줄게, 리리. ···헤헤. ···다 계획이 있던 거구나? 알겠어. 리리의 완벽한 장난,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 하고 있을게. 느릿하게 고개 끄덕인다. 리리가 딱 그래. 공부를 하면 더 잘 되겠지만, 공부 안 해도 어찌저찌 성공해서 잘 살 것 같아. 아무래도 이미지가 강단 있고 냉철한 느낌이라 그래 보이는 걸까? ···으악. 얌전히 이마 꾸욱 눌린다. 알겠어. 나, 리리랑 오──래 얘기하고 싶거드은. 똑똑해지는 거, 어렵겠지만 리리와 함께라면 금방 해낼 수 있겠지?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을 것 같다.
뽈뽈뽈, 이라니··· 효과음이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펭귄 같아. 물론 귀여우니 마음에는 들지만, 리리에게는 비밀이다. 눈치 빠른 리리라면 알아챌 수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중요한 건 네가 엄청 노력을 하고, 또래에 비해 뛰어나다는 점이지. 보통, 타인에 비해 뛰어난 사람을 세간에선 천재라고 부르지 않아? 거기에 너는 노력까지 하니, 그야말로 노력하는 천재의 표본이잖아. 내 생각이 잘못된 걸까, 잠깐 생각한다. 그야, 내가 이뤄낸 성과들은 네가 없었으면 이루기 힘들었을 테니까? 뭐, 나는··· 내가 이뤄낸 성과들로 충분해. 나보단, 나를 위해 힘 낸 리리가 더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어? 어깨 으쓱···. 물론이지. 꼭 나처럼 유해질 필요까진 없어. 지금 성격에도 조금만 유해져도, 리리의 인기는 엄─청 많아질 게 분명해. 내 말을 믿어. 눈 반짝! ······아하, 이 정보를 토대로 널 이해하라고? 의외네, 리리. 원래 신비주의 아니었어? 초반에만 해도 알아서 뭐 하게? 하면서, 이름도 안 알려 줬었잖아. 리리의 몽상가적인 면모는 아직 본 적 없어서 그런가, 조금 안 믿기네. 하지만 궁금하기도 해. ···계속 친하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조금 막연하긴 하네!
그래도, 내가 귀찮게 말을 건 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심 좋지 않아? 그 덕에 나랑 친해졌고, 너도 보다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잖아. 나름 진솔한 대화도 했구. 이 정도면 괜찮은 수확이지 않··· 나······? 말끝 흐리며 네 눈치 슬쩍 본다. 음, 그래도 깃펜을 못 찾았으니 그렇게까지 좋은 기분은 아니려나. ·········아니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도 진짜 혼날 생각은 없어어. 리리를 화나게 하고 싶진 않은 걸. 네 시선에 오해하지 마라는 뜻으로 다급하게 손사래 친다. ···응? 그, 그러면 시키는대로 해야지? 설마 그게 혼내는 건가···. 생각한다. 하지만, 원래 이런 건 막상 한 번 해보면 별 거 아니야. 반항이란 어감이 별로면, 일탈이라고 할까? ···별 차이는 없다.
그럼, 나중엔 스파르타란 건데······ 이제 와서 도망쳐도, 붙잡을 거지? 애초에 도망칠 생각도 없긴 하지만 벌써 암담한 탓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 괜히 꺼내고 본다. 기, 기대는 모르겠고, 걱정은 너무 많이 되네·········. 한숨 내쉰다. 조금 후회되는 것 같기도?
무미건조··· 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데? 네 반응, 꽤 커. 너는 모르는 모양이지만. 원래 본인은 잘 모른다고 했다. 모르는 게 당연할 수도···. ······으응, 나랑 얘기하는 게 너무 재밌다는 거지? 리리의 생각은 내가 잘 알았어.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 내뱉고는 웃는다. 네가 입 꾸욱 닫는 모습에는 아직 완전히 솔직해지려면 멀었구나, 리리. 같은 생각이나 가볍게 흘린다. 그래도, 내가 솔직한 리리로 만들어 줘야지··· 파이팅, 아리아 스완! 남몰래 혼자 의지 불태우며 주먹 꼬옥 쥔다. 마주치기 어려운 게 무슨 문제야?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네 기숙사 쪽으로 가, 네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잖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 싶은데. 조금 피곤하긴 해도,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부드러운 미소. ···리리는 부끄럼이 많은 아가씨구나. 으응, 리리가 좋아하는 칭찬, 잔뜩 해 줄게. 우리 리리, 착하다~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멋진 것 같아, 리리.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착하다, 멋지다, 예쁘다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칭찬들 내뱉는다.
- 카테고리
- #기타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