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

그렇다고, 네게 탐정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안 그래?

커뮤 by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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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선에 의아하다는 듯 고개 갸우뚱거리다가, 느릿하게 손 뻗어 네 볼 꾸욱 누른다. 이렇게 하면 날 그만 쳐다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넣고 싶게 생겼잖아~ 너도, 넣어달라는 의미에서 일부러 입을 내밀고 있던 거 아니었어? 네가 고개 돌리자 본인이 잘못했다며, 사과와 함께 네 팔에 냅다 앵긴(···)다. ···으응? 네 날카로운 반응에 당황 섞인 낯으로 눈동자 가만 굴리다가, 본인이 한 말을 다시 되짚어 본다. 글쎄, 딱히 놀리려는 의도로 한 말은 없는데··· 말투가 문제였던 건가? 네 말에 대답 없이 한참을 끙끙대며 고민만 하던 아리아, 이내 미안함과 억울함이 반씩 섞인 듯한 묘한 표정으로 네게 길지 않은 말 한 마디 건넨다. 아니이······ 놀리려는 의도는 없었어. 정말로. 리리를 화나게 만들 생각은 더욱 없었구. ···무, 무릎이라도 꿇을까? 미안해? 너무 미안한 나머지, 냅다 무릎부터 꿇고 본다. 이렇게 했는데도 안 봐주면 어떡하지? 나의 첫 친구, 이대로 절교인 걸까? 친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그건 안 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네 말 기다린다. 당분간은 적당히 장난쳐야지, 하고 생각하는 건 덤이다. 아리아 치곤 나름 큰 결심이다···. 그러다가도, 누그러진 듯한 네 표정에 남몰래 안도의 한숨 내쉰다. 이대로 엄─청 화내버리면 어떡하나 싶어 조금 걱정하던 중이었는데, 다행히 리리는 아주 쿨한 친구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원래 상대가 말할 땐 그 상대를 쳐다보는 게 예의라는 말이 있잖아? 나는 그게 조금 심한 거지. 그래도, 내가 이렇게 계속 봐주는 쪽이 리리에게도 낫지 않아? 아예 안 쳐다보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렇게까지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해. ···비록 상대는 부담스러워하겠지만. 이라는 말 덧붙인다.

그럼, 앞으로 내게 익숙해지면 괜찮으려나? 어쩌면, 나중에는 내가 반짝이는 눈으로 널 빤히 보는 걸 네가 기다리게 될지도 몰라. 같은 말 당당하게 내뱉는다. 그러고 보면, 방금의 말은 리리가 처음으로 나한테 밝힌 자신의 진심··· 아닌가? 이건 긍정적인 신호다. 리리도 나를 어느 정도 친구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진심을 고하는 거 아니겠나. 별 거 아니긴 해도 어쨌든 진심은 진심이니까! 그 사실이 기뻐 냅다 네 손 꼬옥 잡는다. 그러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너 빤히 본다. 별 차이가 없다니, 그럴 리가. 아까보다 백 배는 덜 반짝이는 것 같지 않아? 농담으로 부러 백 배라고 과장한다. 다만, 과장한 걸 감안해도 덜 반짝이지 않냐는 말 자체는 진심이다. 이 정도면 최선을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응, 그럼 칭찬이라고 들을게. 나는 칭찬을 엄청 좋아하거든. 여상히 웃는 낯. 하지만, 난 내가 과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중얼거린다. 이번 말에는 조금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야, 가족들은 전부 내가 얼마나 눈을 반짝이든 보기 좋다고만 해줬었는 걸. 한참을 과하다···. 라는 말만 중얼거리다가, 안 받는 것보단 많이 받는 게 나으니까. 싫어하는 편은 아니야. ···하지만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고 하면, 네가 믿어 줄까? 헤실헤실 웃는 낯으로 묻는다.

“그래? 그럼, 나도 그 노력이란 거, 한 번 해 볼래. 물론, 혼자 하면 금방 포기할 것 같으니까 우리 리리와 함께.”

함께, 라는 말에 유독 악센트를 넣어 강조한다. 의외로 제법 의지박약인 터라,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 하는 건 무리일 듯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리라면, 무엇을 같이 하든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하며 혼자 고개 끄덕.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천재와는 결이 다른 것 같아. 뭐라고 해야 하지, 내가 남들에 비해 아는 게 많은 이유는 몸소 겪어본 게 많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똑똑해 보일 뿐이지, 순수 지식으로만 따지면 리리보단 천 배 더 부족할 거야. ···천 배는 너무 갔나? 백 배 정도라고 말을 바꿀게. 나긋한 어투로 자기 주장 펼친다. 이어지는 네 헛기침에 두 눈 크게 뜨더니,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같은 걱정 섞인 말 건넨다. 그럴까? 대신, 리리가 나를 좀 많이 가르쳐 줘야 할 텐데, 괜찮겠어? 나, 모르는 거 있으면 바─로 물어볼 거니까. 하루에 질문 백 개는 듣게 될 수도? 널 고생 시킬 거란 말을 당당하게도 한다. 바보라는 말은 약간, 애교나 귀여운 별명 느낌 아니야? 아니면, 말하는 사람이 리리라서 짜증이 안 나는 걸까? 리리는 나쁜 의도로 나에게 바보라고 하는 게 아닐 거 아니야. 그렇지? 덧붙여 짧은 물음 꺼낸다. ······정말 종이 뒤집는 제스처를 해주는구나. 리리도 사실 나처럼 장난이 너무나도 쳐보고 싶었던 거지? 제법 장난스러운 어조. 으응, 리리의 눈이. 나 만큼은 아니라 해도, 충분히 반짝이고 있는 걸. 나는 다 알아, 리리. 네 눈 속에 보이는 빛을, 난 볼 수 있어. 말이 안 되는 소리 같으면서도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은 묘하게 신뢰가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네가 본인 쳐다보자 방긋 웃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연습이 싫으면, 차라리 체험이라고 생각해 보는 건 어때? 이럴 때 해보는 게 아니면, 아예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남을 도울 일이 없을지도 모르잖아. 희귀한 경험이니 좋게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본인을 챙겨달라는 말이 어쩌다 사람 챙기기 체험으로까지 변질된 건지······. 학교는 또 다른 사회생활의 장이라는 말이 있잖아. 나중에 네가 성인이 돼서 일을 하게 된다면, 분명 사람을 챙겨야 하는 일이 한 번 정도는 챙길 텐데··· 그때,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몰라서 허둥지둥하면 큰일이지 않겠니? 장황하게 말 내뱉는다. 어쩌다 내가 이런 것까지 설명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 머리 한 구석에 떠다니지만 애써 무시한다. 지금은 우리 리리에게 설명을 해 주는 게 우선이니까. 처음에 했던 대화 주제와는 상당히 달라진 것도 생각해 보면 웃길 따름이다. ······그래? 그러엄, 둘 다 넘어져서 다치는 일은 없게 하자. 그럼, 안 넘어졌으니 그에 따른 안도와 기쁨을 나눌 수 있겠지? 우리 리리는, 긍정적인 감정들을 나누고 싶어하는 모양이니까. 언제든지, 네가 원한다면 아리아는 그 어떠한 감정이든 나눌 수 있다. 네 말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틀린 말은 없으니까, 아무렴. ···그런 말을 리리가 하는 건 솔직히 말해 조금 의외이긴 하지만.

·········무슨 일이지? 리리, 보통은 내가 이렇게 말하면 끝까지 걱정한 적 없다고 주장하는 편이지 않던가? 웬일로 인정을······ 조금 감동 받은 것 같아, 방금. 기쁘다는 듯 부드러이 미소 짓는다. 적어도 내 눈에는 착해 보이니 된 거 아닐까? 나와는 한 번도 안 싸우고, 지금까지 잘만 길게 대화하고 있잖아. 내 눈에는 리리 정도면 당연히 착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랑 리리가 심성으로 다를 게 뭐야? 나는, 우리 둘 다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 자신은 네가 학교에 오기 전까지 어떤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하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 자신이 봐온 네 모습은 그렇게까지 나쁜 아이는 아니기에 싸운 거에도 나름 사정이 있겠거니 싶을 뿐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게 이런 건가···. 생각한다. 그야, 지금 본인은 얼굴도 모르는 네 친구들보단 네 편을 들고 있으니까. ···잘못은 아니니 된 거지~ 라며 한창 생각히다가, 네가 자신의 이마를 짧게 누르자 그동안 하던 생각에 일시적인 마침표를 찍는다.

물렁해 보일 이유가 뭐가 있담? 생긴 것도··· 어차피, 남들 눈엔 똑같이 작은 어린 아이일 텐데?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리리는 얼마나 단단한 사람이라고······. 단단하지 않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물렁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나 정도면 적당히 나잇대에 맞지 않나? 내가 어딜 봐서 천방지축 어린이라는 거야? 아니, 애초에 어린이는 대부분 천방지축이잖아? 리리가 또래 친구들에 비해 성숙한 건 맞지만, 나는 조금 억울한데···. 웅얼거린다. 본래 아리아도 천방지축과는 거리가 먼 편이지만, 네 앞에서 보여준 모습만 봤을 땐 천방지축이란 말을 부정하기 힘들 듯해 한숨 내쉰다. 처음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단 사실에 들떠 자신도 모르게 너무 방방 뛰며 활발해졌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이미지를 고치기에도 이미 늦었다······. 그래? 그럼 너, 나중엔 힘도 체력도 나보다 강해지려고? 당장은 어려울 것 같은데? 적어도, 네가 계속 앉아서 공부만 하는 이상은. ···운동이라도 조금 해보는 건 어때? 이어지는 말에 가볍게 어깨 으쓱인다. 뭐어, 정 내가 호구 당할까 봐 걱정된다면, 리리가 내 옆에 붙어서 나를 도와주는 건 어떨까? 어쩌면, 이것도 그 챙김의 연장선일 수도 있겠네. ···나중엔 클 거니까 괜찮아. 나중엔 착하단 말을 많이 듣게 되지 않으려나. 너도, 나도. 네가 눈 동그랗게 뜨자 당황한 듯한 표정 짓는다. ···말한 건 너면서, 왜 너도 놀란 표정인 건데? 리리도 날 경계하기 싫어서, 스스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은 건가? 같은 말 내뱉는다. 뒤이어 네가 손에 얼굴 묻자 우, 우는 건 아니지? 하며 걱정스레 물어보고는, 하, 하지만 이게 다 리리 때문이야. 갑자기 날 경계해서, 내 입술이 나오게 했잖아. ···바보 리아는 뭐야? 그냥 바보도 아니구. 그럼 넌 지금부터 천재 리리인 걸로 하자. 본인 멋대서 호칭 정해버린다. 네가 손 들었다 내리자 고개 갸우뚱거리며 네 손 빤히. ···뭘 하려던 거지? 고민하던 것도 잠시, 네가 고개 끄덕이자 순식간에 얼굴이 밝아진다. 정말? 우리, 앞으로도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지내기다?

단번에 입술 집어 넣는다. 오리 같은데 왜 못생긴 거지? 오리는 귀엽게 생기지 않았어? 그럼, 나도 귀엽다는 소리 아니야? 같은 말도 안 되는 주장 뻔뻔하게 무작정 얘기하고 본다. 내가 리리의 볼에 집착한다고 해서, 리리도 나의 무언가에 집착해야 할 이유는 없는 거잖아. 약간, 그런 걸까? 당한 만큼 갚아준다? ······으음? 하지만, 리리는 어차피 그렇게 세게 때리는 것도 아니잖아. 많이 때릴 것 같지도 않고. 그럼 얼마든지 맞아도 상관 없는 거 아닐까 싶은데. 의아하다는 듯한 목소리. 네가 옷자락 잡았다 놓자 의아함 담긴 눈 빠르게 깜빡인다. 무슨 의미지? 왜 잡은 거지? ···내 볼을 너무 만지고 싶어서 그런 건가?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리리는 내 볼을 만지고 싶단 거지? 그게 사심이든, 네 볼을 많이 만진 나에 대한 복수심이든. ······아닌가? ···솔직하단 말이 그렇게까지 만족스러울 정도의 칭찬이야? 나, 리리가 이렇게 좋은 표정 짓는 건 여태껏 대화하면서 정말 처음 보는 것 같아. 얼떨떨해 보이는 낯. ···그거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 리리는, 우리가 얼마나 친하다고 생각해? 나는··· 그래도, 이 정도면 꽤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게 친하다고 생각해버렸네. 부담스러웠으려나···. 잠깐 생각한다. 으응, 처음 사귄 친구. 네가 내 일버르모니 첫 친구인 거야. 아리아의 첫 친구. 어때? 최고의 타이틀이지? 네 물음에 가벼이 고개 끄덕인다. 그 정도야 각오하고 있던 거구······ 혹시 모르잖아? 내가 굉장히 계획을 잘 지키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리리의 삶, 나도 같이 살아보고 싶어. 나를 제2의 리리라고 불러줘도 좋아.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 내뱉으며 웃는다. 그동안 계속 계획을 지키는 삶만 살았으니, 허탈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해. 하지만, 처음이라 그런 거지··· 여러 번 이런 식으로 흐트러지다 보면 너도 나중에 가선 그냥 적응하게 되지 않을까? 네 물음에 느릿하게 옆으로 고개 기울인다. 뭘 믿냐, 니···. 나는 나 자신을 믿어. 그 어떤 일이 닥쳐도, 결과는 항상 좋을 거라는 믿음. 그리고, 그냥 자유로운 게 좋잖아. 너무 억압과 통제로 이루어진 삶은 답답할 것 같아. ···혹시 몰라서 말하는 거지만, 네 삶이 답답하단 얘긴 아니야. 나는 너와 같은 삶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친구는··· 그냥, 혼자는 외롭잖아. 나도 친구를 많이 만들고 싶지는 않아. 나중에 멀어질 바엔, 차라리 아무도 안 사귀는 게 나아. 그래도, 너와는 아마도 평생 친구 사이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확신이 생기더라. 그러니까, 네가 나의 첫번째 친구인 거야. ···이럼 조금 이해가 되려나? 진심을 고백하는 건 언제나 부끄러운 일 같다. 어색하게 미소 짓고는, ···으응, 알겠어. 엄─청 고마워 할게, 리리. 방긋.

물론, 나는 언제나 잘 지내. 하지만, 앞으로 걱정할 네 모습을 생각하며 더 잘 지낼 테니 걱정 마, 리리. 네 시선이 본인 머리카락으로 향하자 만져 볼래? 히고 물어본다. 그런가? ···확실히, 너보단 나은 것 같기도 해. 그래도, 나도 엄연한 곱슬이란 말씀. 네 말에 고민하는 기색 보인다. 말랑한 거라면 뭐든 좋아하지. 인형 같은 것도 좋아해. 인형도 말랑하잖아. 리리는 인형 같은 거, 좋아해? 내가 나중에, 네 생일에 인형 선물해 줄까? 널 닮은 고양이 인형으로? 이어지는 네 말에 잠시 침묵. ···근데 리리, 그거 알아? 원래, 바보는 같은 바보를 알아보는 법이래. 그럼, 내가 바보란 걸 알아본 리리도 똑같은 바보라는 소리 아닐까? 논리라곤 하나도 없지만 기세 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다. 얼핏 들으면 정말 그런가? 싶기도. 원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너도 나랑 계속 지내다 보면, 타인의 입장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내가 도와 줄게, 리리. 네 어깨 두어 번 가벼이 토닥이며 너를 향해 웃어 보인다. ·········리리, 재미 없어~ 이럴 땐 ‘맞아, 고양이와 볼은 같은 거야.’라고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라고 징징거린다. 뭐, 내가 리리의 이런 면모를 못 깨닫고 친구가 되자고 한 건 아니니 크게 상관은 없지만 말이야. 네 눈빛에 문제 없다는 듯 어깨 으쓱인다.

······그러니까 우리가 천생연분, 친구를 해야만 하는 이유인 거야. 네 부족한 면모를 내가 채워 주고, 반대로 나의 부족한 면모는 내가 채워 주고. 이런 게 이상적인 친구 관계잖아? 실패하면, 실패하는대로 재밌는 추억이 쌓이고 마는 거지. 그리고, 리리는 여차하면 나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도 된다니까? 전부 내가 억지로 끌고 온 거라고 하면, 리리는 나보다 안 혼나지 않을까? 나야 뭐, 혼나는 거에 크게 의의를 두는 편이 아니고 교수님들께 안 좋은 의미로 요주의 인물이 되는 것도 상관 없지만 리리는 아니잖아. 내 욕심 때문에 친구의 학업에 지장을 주고 싶진 않아. 답지 않게 꽤 진지한 기색으로 차분히 말 잇는다. 애초에, 한 쪽이 없을 거란 가정은 왜 하는 거고? 안 없으면 되는 문제 아니야? 어차피, 우리끼리 친하게 지내다 보면 서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깨닫게 될 거얼. 문제는 없을 거야, 리리. 나만 믿어. 제법 자신만만한 어투.

······이런 걸로 안 울어. 내 새학기 이미지가 완전히 망했구나 싶어서 조금 울고 싶은 심정이긴 했지만, 어쨌든 참았으니 된 거 아닐까···. 힘 빠진 목소리. 단순함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모양이다. 네 모습 보고는, 걱정하지 마라는 의미에서 허공에 손 가볍게 휘적인다. 리리, 이러다 바보가 말버릇이 되겠어. 얼핏 세어봐도 백 번은 넘게 들은 것 같은데, 나. 이러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돼버리면 어떡해? 그럼, 리리가 나 책임져 줄 거야? 농담 같지만 놀랍게도 진담이다.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도 바보라는 말을 들은 나머지, 정말 바보가 되면 어쩌지? 그래? 내 눈엔, 리리의 등 뒤에 달린 날개가 보이는데? 농조.

정신 연령도 나이라고 칠 수 있지 않을까, 리리 언니? ···생각보다, 언니라고 부르는 게 재밌다! 물론이지. 극과 극인 사람들은, 싸우면서 정 들어서 오래 친하게 지낸대. 뭐라구 해야 할까, 같이 대화하면 짜증나지만 그래도 옆에 없으면 허전한 친구? 그렇게 된다던데? 본인도 들은 정보인지라 정확하진 않은 건지 의문형으로 말 마친다. 진짜 나쁜 사람이었으면 걱정도 안 해줬을 텐데··· 이것도, 리리가 착하다는 증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 너 마주 보다가 활짝 웃는다. 으응. 이왕이면 믿어주는 쪽이 더 기분 좋잖아.

“정말? 그럼, 앞으로 계─속 리리라고 부른다? 나중에 가서 부르지 마라고 해도 계속 부를 테니까, 리리도 그렇게 알고 있어 주길 바라.”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하는 생각을 문득 했다. 나름 회심의 애칭이었던 터라 애칭을 지은 본인도 만족스러웠고. 정은······ 뭐? 나, 리리가 직접 말해주는 게 듣고 싶은데, 말해주면 안 될까? 오랜만에 눈 반짝이며 너를 빤히 바라본다. 사실, 뒤에 올 말을 대충 예상했으나 본인에게 직접 듣지 않는 이상은 전부 추측에서 끝나는 것이고, 솔직하지 못한 너를 조금이라도 더 솔직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뭐, 당사자가 말하기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리리처럼 계획을 빡빡하게 세워가며 살지 않는단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서······. 고갤 너무 격하게 저었더니 조금 어지럽네. 관자놀이에 손 올린다. 참···. 아, 알겠어. 마음껏 자랑할게. 마음껏. 나만 믿어. 저도 모르게 고개 끄덕인다. 리리, 내가 자랑해 줬으면 하나 보구나···. ······아무리 봐도 안 믿는 것 같은데? 중얼거리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빈말이어도 일단 믿는다고 해준 게 어디겠나. 당연한 거 아니야? 애초에, 구미호가 실존하는 생물이긴 해? 뭐어, 이런 마법 세계에서 구미호가 존재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 같지만··· 나는 아니야. 정말로. 단호하게 부정한다. 머쓱해하는 듯한 네 모습에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 보인다. 다, 다음부턴 이런 농담은 안 해야겠다···.

볼을 좋아하는 일반인과 괴짜, 바보와 멍청이, 얼마나 큰 차이인데? 괴짜와 멍청이가 더 안 좋은 단어잖아. 이 정도면 많──이 다른 거 아니야? 엄청 많─이. 부러 많이, 를 강조하기 위해 길게 늘이며 말한다. 네가 빤히 보자 눈동자 데굴··· 굴리며 네 시선 피하더니, ······응? 잠깐의 공백. 왜냐고 물어도, 내가 이 학교 와서 사귄 첫 친구니까···? 그리고, 오래 본 사이는 아니지만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눴잖아.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소중하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리리도 이렇게 바보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아이였구나, 생각했다. 그런 말은 섭섭하지. 리리에게도 나 만큼의 용기가 있을 걸? 아직 본인이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후후······. ···열정적인 박수 고마워. 앞선 짧은 정적은 부디 무시해 주길.

···너랑 얘기해 주는 게 다정한 거야? 리리, 다정함의 기준이 너무 낮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말대로라면, 못해도 세상의 절반은 다정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은데. 본인도 이내 고개 갸웃거린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착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대도······. 옅은 한숨 내쉰다. 칭찬이니 당연히 기분은 좋지만 조금 어색하다. 이게 아까 착하단 말을 듣는 네 기분이었을까? 나는 그냥 남이 아니라, 네 친한 친구니까 믿어도 돼. 당당하다! ······아, 알겠어어. 나도 무서운 리리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옆에 가만히 붙어 있을게. 그럼, 우리 리리도 내게 화를 내는 일은 없겠지? 결연해 보이는 표정으로 고개 끄덕인다. 친구가 화내는 건 보고 싶지 않다. 심지어, 리리가 화내는 건 무서울 것 같아서 더! ······왜 말을 하다 말아? 다섯 개 알려주기로 했으면서. 이건 반칙 아니야, 리리? 급하게 생각해낸 것 같다는 사실을 얼핏 눈치챘으나, 일단 아무 말 없이 모르는 척 해주기로 한다. 자신도 장난 여러 번 쳐 본 사람으로써, 이러한 사실을 꼬집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야, 공부는 재미 없으니까? 당연한 말이다. 원래,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다 잘 되던데··· 우리 리리도 나중에 큰 인물이 되겠다. 나중에, 유명인이 돼도 나 잊으면 안 된다? 같은 말이나 내뱉는다. ···그건 맞는 말이지. 지식을 얻는 데에는 공부만한 게 없으니까. 싫어도 해야 하는 게 공부 아니겠어? 어깨 으쓱이며 고개 가볍게 끄덕인다.

당연히 진심이지. 내가 생각해도, 탐정은 내 천직 같긴 해. 그럼, 내가 홈즈 할 테니까 너는 왓슨 해, 리리. 알겠지? 장난스러운 어조. 노력하는 천재인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널 뛰어 넘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만약, 내가 널 뛰어 넘는 날이 온다면, 내 모든 지식은 너의 공으로 돌릴게. 너는 내 공부 스승님이니까.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도 네 덕이고. 엄지 척! 나중엔 너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될 걸? 뭐,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너를 좋아한단 말이야. 따뜻하게 대해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그리고, 네가 날 도와주면 되지. 내가 널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렇지 않아? 덧붙이며 웃는 낯으로 너 빤히.

······리리 앞에선 안 울고 싶어. 부끄럽잖아, 친구 앞에서 우는 거. 양볼에 손 올리며 부끄러워하는 시늉 보인다. 꺄아~ ···나는 새 친구를 사귄 덕에 설레어서 그런 거라 쳐도, 리리는 왜 조용한 성격인데도 지금은 말이 많은 거야? 고개 갸우뚱. 글쎄, 그건 지금부터 고민해 봐야지. 그냥, 같이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화되지 않을까? 감화··· 라는 표현이 맞나? 고개 갸웃. 바보 같다; 혼나고 말지. 리리에게 혼나는 건 재밌을 것 같아. 그리고, 원래 이맘때의 어린이는 모두 반항 한 번 쯤은 해봐야 하는 거래. 근거 없는 말이다.

“···항상 앉아서 공부만 하는 친구 같아.”

진지하게 말한다. 초심자라고 휴식 시간도 더 주고······ 리리 선생님, 생각보다 더 착하고 관대한 선생님이었구나. 놀랍다는 듯한 표정과 어투. 공부는 좋아하지 않지만, 너와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기대되는 거 같기도 하다. 리리라면, 내가 공부를 잘 못해도 친절하게 알려주겠지? ···리리, 어쩌면 교수가 천직일지도? 같은 생각이나 한다.

그래? 그럼, 일 분 정도 지났으려나? 농조. 으응, 너 정도면 재밌는 거지. 특히, 네 반응이. 그래도, 너도 재밌지 않아? 나랑 얘기하는 거, 시간 가는 줄도 모를 것 같은데. ···아닌가? 수상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글쎄, 재미 없어도 같이 얘기했을 것 같아. 재미를 떠나서, 리리를 놓치기엔 아쉬웠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이건 진담이다. 칭찬이란 어감이 별로면, 그냥 좋은 말이라고 할까? 그게 그거인 거 같긴 하지만 말이야. 가볍게 어깨 으쓱인다. 아무렴, 칭찬이든 좋은 말이든 네가 좋아해 주기만 하면 상관은 없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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