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과 손가락

[숑넨] 스팸과 손가락 0

zero by 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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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 아…….

재빨리 약지 손가락 끝을 입에 물어 빨아내지만, 이미 늦었다. 비릿한 피 맛이 혓바닥 위로 퍼져나간다. 침에 젖어 축축해진 손가락을 빼내보니 투명한 타액 아래에서 새빨간 피가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좆됐다는 뜻이다. 아, 씨이. 존나 진짜. 멀쩡한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던 성찬이 주방에서 거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우선 후시딘. 대일밴드에. 붕대…… 장갑. 라텍스 장갑이 어딜 갔지? 한 달 전만 해도 이런 상처는 별것도 아니었을 텐데. 이제는 발톱이 곪는 것보다 손에 난 생채기가 더 치명적인 세상이 됐다. 먹을 걸 구하러 나갔다가 좀비의 피가 손가락의 상처로 들어가기라도 했다간 말 그대로 좆돼버리고 말 테니까.

2014년 7월 4일.

세상은 좀비로 가득 차버렸다.

정확한 명칭은 프사이 바이러스. 감염된 인물은 감염된 순간 심박수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신체 말단 부위가 굳거나 썩기 시작한다. 다만 뇌, 혹은 척추가 완전히 파괴되거나 심장이 훼손된 상태만 아니면 말단이 썩고 장기에 훼손이 일어나도 비이상할 정도로 안정적인 생존 반응을 보이는데, 감염자는 강력한 정신 착란을 앓는 상태에서 높은 폭력성을 보여…… 주변의 사람들을 물어뜯거나 말 그대로 씹어 삼키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좀비가 된다는 말이다. 몸이 점점 썩어가고 주변인을 닥치는 대로 씹어 삼키는 좀비가.

그 좀비 바이러스가 한국에 퍼진 날이 성찬이 100일 휴가를 나온 날이었다. 사실 정확한 명칭은 신병외로위박이지만, 행보관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100일을 버틴 신병에게 주는 위로 휴가니, 결국 100일 휴가지. 아무튼 그 100일 휴가에 사격왕 포상 휴가까지 받아 예정보다 하루 더 빨리 나온 제 자신에 대한 뿌듯함과 동시에 치가 떨리는 혹한기 훈련의 트라우마를 안고 민간 사회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그날.

군대에 있느라 잘 몰랐는데 사실 해외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했단다. 도시 하나를 폐쇄한 국가도 나오고, 비행기가 멈추고, 끔찍한 전염병을 막으려 다들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좀비 바이러스가 한국에, 그것도 인천공항에 나타나 빠르게 서울까지 파고든 것이다. 그러니까 그걸, 100일 휴가를 나와 본가 집에 도착한 순간에 알았다. 물론 성찬의 본가는 서울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랑하는 아들이 귀한 휴가를 얻은 날 성찬의 부모님은 제주도에서 결혼기념일 여행 중이셨다. 전화를 하는 동안 엄마는 울었고, 아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나오지 마. 집에만 있어. 집에, 집에 먹을 거 많아. 일단 그거 먹고. 엄마 아빠 갈 때까지 아무 데도 가면 안 돼. 알겠지? 네. 알겠어요, 거긴 진짜 괜찮은 거 맞죠? 대피소에서 조심하셔야 해요. 무슨 일 나면 바로 전화하시고요. 네. 서울에서 경기, 경기에서 강원과 충청. 충청에서 순식간에 전라와 경상. 인터넷 검색과 뉴스 정보로 좀비 바이러스에 대해 파악을 마쳤을 때엔 이미 전국으로 좀비가 넘치는 상태였다. 유일한 좀비 청정국은 섬뿐이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제주도 같은 곳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었고. 그래서 불행이었다. 성찬은 혼자서 좀비가 가득 들어찬 세상을 살아가야 했다.

100일 휴가를 나온 그날부터, 졸지에 탈영병이 된 상태로.

스팸과 손가락

영창이고 나발이고 일단은 생존이 중요하다. 나 있고 나라 있지, 나라 있고 나 있는 게…… 군대에서는 반대로 배우긴 했지만. 몰라. 아무튼 이런 사태는 인정을 해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해서 한 탈영이 아니지 않은가. 땨지자면 나는 좀비에게…… 납치된 거랑 비슷한 거다. 갇혔으니까. 안 그래? 중얼중얼. 길고 긴 혼잣말 끝에 마침내 찾아낸 라텍스 장갑으로 붕대에 칭칭 감겨진 손가락을 욱여넣고 난 성찬이 다시 주방 찬장 앞으로 향한다. 까다만 스팸 뚜껑을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마저 뜯어낸 다음 망설임 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는, 한 숟가락 가득 퍼낸 스팸 덩어리를 입으로 밀어넣고 씹는다. 돼지 잡내를 없애기 위해 첨가된 화학 조미료의 짠맛이 혀를 뒤덮는 게 느껴지지만, 멈추지 않고 씹었다.

전기와 물이 없는 상황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그렇게 많은지 성찬은 미처 몰랐다. 라면은 부숴서 먹기라도 했지, 냉동실 안에서 조리되기만을 기다리던 찌개용 목살과 보리굴비와 오징어는 더운 여름날씨에 썩어버린지 오래다. 생쌀은 도저히 씹어 삼킬 수가 없었고, 냉장실 야채칸에 고이 들어있던 양파와 미나리도 상황은 비슷했다. 토마토 같은 게 들어있으면 씹어먹기라도 했을 텐데.

그나마 다행인 건, 인맥 넓은 성찬의 부모님이 명절마다 참치와 스팸을 한가득 받아와 찬장 두 개를 꽉 채우고도 남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성찬은 현재 약 한달 반 째 스팸과 참치로 연명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살다살다 스팸이 끔찍이도 싫어지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고, 성찬은 생각했다.

저는 스팸 별로…….

그렇게 말하는 동아리 후배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기까지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걔는 어떻게 지낼까. …… 살아는 있을까? 전기가 끊기면서 통신도 끊겼다. 상황을 파악했을 때에는 친구들은 커녕 부모님에게도 더이상 연락을 취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나마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한테 전화를 해본 게 다행이지. 그게 마지막 통화였으니까. 성찬은 지금까지는 일부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않으려 애를 썼다. 다들 잘 도망쳤겠지. 당연히 다 도망쳤겠지. 아니면 나처럼 집에 안전하게 있거나. 그럴 거야, 그러겠지. 엄마 아빠도 대피소에 계시니까 안전하고. 어쨌든 바이러스니까…… 나라에서 백신 같은 걸 준비하면 금방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믿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됐다.

하지만 벌써 한 달이다. 한 달이나 홀로 버텼다. 끝도 없어 보이던 스팸과 참치캔도 점점 떨어져가고, 무엇보다 입이 물려서 괴로웠다. 성찬은 나가고 싶었다. 사람이 만나고 싶었고, 함께 실컷 불평을 하며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었다.

예를 들자면 그 동아리 후배와 함께.

아니, 내가 왜 자꾸 걔 생각을 하지? 이상하네.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성찬이 스팸을 씹는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아마 스팸을 먹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너 짠 게 좋다며.

감자칩은 많이 먹어요.

근데 스팸은 왜 싫어?

…….

저가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가만히 앉아서 눈만 굴리던 후배는 이내 조심스레, 무슨 아주 중대한 비밀을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식감이 이상해요.

…….

…….

그리고…….

스팸은 사람이랑 비슷한 맛이래요. 라고 말했던가. 힘겹게 움직이던 성찬의 턱이 아예 멈췄다. 그와 동시에, 창밖에서 귀가 째지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이이이이이이잉.

아아.

신체 건강한 남성들에게 알립니다.

저희는 시민을 좀비에게서 구하고 식량을 공평히 나누기 위해 설립된 자경 단체입니다. 저희와 함께 좀비와 싸우실 분. 사람들을 위해 나서실 분. 식량을 구하러 나가실 분을 구합니다.

위이이이이잉. 끼에에엑. 위이이이잉. 쿠어억. 큰 소리에 몰려든 듯한 좀비 소리가 비명처럼 크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뒤섞인다.

아아. 건장한 남성들은 저희와…… 야, 씨발 정리 좀.

사이렌 소리가 멈춘 뒤에야 성찬은 알아챘다. 좀비의 비명 사이로 둔탁하게 울리는 소리들을. 수박이 깨지는 소리.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 그리고 작은 웃음소리. 라텍스 장갑에 칭칭 휘감겨진 손이 홀린 듯이 베란다 창을 얼었다. 한 달 동안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는 창이었다.

다함께 좀비를 척살합시다!

트럭 위에 서서 소리치는 남자는 매끄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피에 젖은 방망이를 든 채로.

성찬은 곧장 운동화를 구겨 신고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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