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성 연고緣故

안 결

창고 by 니네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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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결이 청소년기를 보냈던 순백보육원은 시내에서 도보로 2시간이 걸리는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다. 개원할 때의 명칭은 순백고아원이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 인식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순백보육원이 된 곳이었다. 다만 현관의 간판은 교체하지 않아서 그대로 순백고아원이라는 명칭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아이들의 미래를 기르는 희망의 농원이라는 퀘퀘한 문구가 빛바래 있었다.

순백보육원 아래 등록된 원생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며 그중에서도 밀착 돌봄을 필요로 하는 유·아동은 한 명도 없었다. 만 나이로 최연소가 14살, 최연장자는 18살이었다. 보육원치고는 특이하다면 특이했는데, 실상 그 이유는 단순했다. 순백보육원은 일반적인 보육원이 아니라 자금세탁을 목적으로 한 폭력 조직 유착 시설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직에서 기부금을 수령한 뒤 유령법인을 통해 생활용품·식재료 등을 고가에 구매한 명세를 창출해 대금을 반납하는 방식이었는데, 그 상세한 수법은 안 결에게 그다지 중요한 정보가 아닌 데다 이해도 하지 못하여 당시에도 금세 휘발되어 버렸다.

동 조직원을 형님으로 부르는 조직 문화의 일환처럼, 그곳에서 원장은 아빠, 부원장은 엄마로 불렸다. 여타 보육교사는 없었다. 그렇기에 원장이나 부원장이나 허울뿐인 직함으로 실질적인 직급과는 무관했다. 그 둘 역시 조직에 소속된 남자였는데, 보육원의 관리는 좌천과 마찬가지인 한직이었던지라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 탓인지 찾아오는 조직원들과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잦았다.

원생들은 그런 상황에 원체 무던해져 있었다. 조직원들이 차액 확인을 하거나 서류를 기다리며 대기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다가가 제법 노닥거리기도 했는데, 그중에서도 자주 방문하던 김안토니오라는 조직원은 나이도 젊고 종종 과자나 아이스크림, 담배 따위를 사 왔던지라 인기가 좋았다. 다만 낯설게도 이름으로 세례명을 쓰는지라 보통 안톤 형, 아니면 그냥 김 삼촌이라 불렸다. 안 결은 어느 쪽이든 입에 붙지 않아 삼촌으로만 불렀다.

안 결과 유성우가 연이 닿은 계기도 바로 그 삼촌과 연관이 있었다. 유성우는 조직 일과 무관하게 삼촌과 친분이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는데, 학교에 제출해야 할 봉사활동 시간이 모자란다는 말에 순백보육원을 연결해 줬던 것이다. 유성우가 보육원에 방문한 당일, 서류만 떼어가도 상관없다고 몇 번을 말했으나 이 고등학생이 괜한 양심을 내세우며 굳이 청소라도 하고 가겠다고 나선 탓에 아빠는 제법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원생들은 아빠의 분노 임계점을 잘 알고 있었고, 괜히 외부인이 불씨를 지피는 일은 원치 않았다. 그 때문에 가위바위보에서 진 안 결이 대표로 원장실로 들어서 요령껏 비위를 맞추며 유성우를 데리고 나오게 되었다. 당시까지 그것은 그다지 의미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보내며 무슨 대화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첫인상도 흐릿했고, 며칠이 지나고서는 그 얼굴도 잊었다.

물론 거기서 연이 끊겼다면, 안 결은 유성우라는 인간 자체를 기억 못 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요일, 삼촌이 뜬금없이 데려간 교회에서 안 결은 다시 유성우를 만났다. 청년부로 올라가는 삼촌에게 짧게 인사하고 안 결과 함께 중고등부로 내려온 유성우는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제 성경을 펼쳐 같이 보자고 내밀며 안 결을 옆자리에 당겨 앉게 했다.

“너 귀여워서, 내가 안톤 형한테 소개해 달라고 졸랐어. 이름이 결이라며? 안 결?”

유성우가 천연덕스레 말을 붙여오는 와중 찬송가가 시작되었고, 학생들은 일어나 다 같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안 결은 어딘지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더듬더듬 그 노래를 따라 했다. 신나는 음률이었으나 전혀 분위기를 담을 수 없었다. 가사를 몰라서 그런가 싶었는지, 펼쳐진 성경에서 찬송가의 악보를 짚어주는 손길이 상냥했다.

“이거, 여기.”

“……읽을 줄 몰라.”

이게 안 결이 이날 유성우에게 처음으로 뱉은 문장이었다. 어쩐지 귀가 홧홧하게 달아올라 안결은 긴 앞머리가 눈을 가리도록 잡아 내렸다. 유성우는 잠시간 대답이 없다가, 큭,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다만 그것은 비웃음이 아니었다. 넓지 않은 지하 부실을 쿵쿵 울리는 찬송 사이에 목소리가 묻힐 것을 걱정했는지, 유성우는 성경을 탁 덮어버리고서 귓가에 대고 가까이 속삭였다.

“그러면 형이 알려줄까?”

의자 아래로 손이 닿았다. 안 결은 그다지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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