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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란루+뱀쥐

수면속 by 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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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윤은 꾸벅, 고개를 박았다 일으켰다. 잠이 번쩍 깼다. 주변은 어둡고 몸을 감싼 천이 부드럽다. 굳이 장소를 추측할 필요가 있나. 천에 배인 살내음이 익숙했다. 바다와 숲을 스쳐온 바람같은, 서로 다른 푸름이 얽혀있는 비릿한 향. 기지개를 쭉 펴내곤 묵의 소맷깃에서 기어나왔다. 움직임을 눈치챈 묵이 알아서 손을 뻗어와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윤은 손바닥 위로 올라탔다. 간지러운지 움찔거린 손이 금새 윤은 쥐어 소맷깃에서 꺼냈다. 어두운 천속에서 나오자 빛이 찔러와 눈을 찔끔 감았다. 윤의 등장덕분인지, 잠에서 깨기 직전부터 시끄럽던 밖이 잠시 소란을 멈췄다.

“…쥐?”

“쥐네요.”

“쥐잖아.”

눈을 뜬 자윤의 시야에 차례대로 카넬과 란시, 루페가 잡혔다. 검고, 파랗고, 빨갛네. 아니, 후자의 것들은 시각적인 것보단 촉각적인 것이 더 빨랐다. 얼음과 불.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으나 성질에 가깝다다. 이상한 애들이네~.. 덜 가신 잠이 생각을 늘어지게 만들어 자윤은 생각을 따라 묵의 손가락에 늘어졌다. 묵이 일어나라는듯 자윤을 꾹꾹 눌러왔다.

“파트너 어디갔냐잖아요. 네? 제 파트너씨.”   

“아직 자기소개도 안끝났어~..?”

맡겨놨더니 일처리가 영 별로네~... 귀찮다는 하품을 찍 뱉은 자윤이 꾸물꾸물 몸을 일으켰다. 해도 정오고, 잠도 실컷 자뒀으니 이제 일 좀 해야겠지~.. 자윤은 가벼운 발놀림으로 묵의 손바닥에서 팔목으로, 어깨로 훌쩍 뛰었다. 어깨 너머로 사라진 쥐가 몸을 일으켰을 때는, 묵의 어깨정도에 오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낯선 셋이 신기한듯 그를 살펴보는 사이 자윤은 묵의 등에 머리를 갖다박았다.

“일 안할거야~? 응~..? 벌써 배고프다고 나~..”

“여태 자고 일어났으면서 이제 배까지 고프시다?”

묵이 어처구니 없다는듯 자윤의 이마를 밀었다. 이놈의 쥐는 하여간 자기 먹고 자는거밖에 모르지. 주위에 도통 관심이 없었다. 방금까지 무슨 이야기가 오간건지 알기나 하는지. 잠탱이씨.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거든요.

”첫 공조라 쉽게 가자고 쳐도 말이에요, 견습을 부르는건 예의가 아니지 않겠어요?“

”견습..~?“

”이쪽, 사서라고 한다했죠? 정식 사서도 아니고 견습이라고 하는데요?”

자윤의 시선이 그제야 느릿느릿 낯선 셋을 다시 담았다. 사서. 세계라는 책을 관리하는 자들. 모든 현상과 흐름을 문장으로 읽어내며 저마다의 펜으로 써내는 자들. 이랬나~…도통 와닿지 않는 관념적인 존재들이다. 고로 견습과 정식의 차이를 이쪽이 구분할 수 있을리가. 차이를 모른다면 구분하는 것에 의미가 있나~.. 대강 넘어가려는 자윤의 낌새를 눈치챘는지 묵의 눈웃음이 짙어졌다. 고생은 우리가 하겠지요? 어…~그런가?

“그쪽들도 베테랑은 아닌 것 같은걸요? 각자 연차 적은거 알면서.”

물빠진 하늘같은 색. 묵과 비슷한 웃음을 띈 란시가 나긋히 말했다. 성질은 반대인데 성깔이 비슷한가봐. 짧은 감상을 남긴 자윤이 손을 쥐었다 펴냈다. 눈앞으로 마주하고있음에도 시각적인 것보다 차갑다,라는 감각이 더 생생했다. 닿은 것도 아닌데 말이지~.. 

“이쪽은 적어도 견습은 아니라서요. 궁색도 손발 맞춰가면서 해야하지 않겠어요?”

“면허증 가지고 생색을 내시겠다?”

“란시…”

보다못한 카넬이 그만하라는듯 란시의 망토를 잡아 당겼다. 면허증이라니. 물론 이쪽이나 저쪽이나 따지자면 직업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만. 그러나 상대도 틀린말을 하고있진 않았다. 짬이 안되면 숙여야지. 아, 짬이라니. 그새 루페의 말투가 옮았다. 경험, 이 경우엔 연차가 적절하겠지. 금새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카넬에 결국 자윤이 묵을 당겼다.

”동족혐오?“

”그을쎄요. 저 얼음덩어리가 뱀일리는 없을테고?“

”비슷한건 성질머리인가~..“

”뭐라고 하셨나요?”

“난 저 붉은머리가 상극같아~..”

자윤은 여태 말이 없는 이를 눈짓했다. 보기만 해도 뜨거운 색. 보는 것보다 느껴지는 열기가 더 거세다. 지금은 묘하게 다른 곳에 신경이 쏠려있으나 올곧이 이쪽을 향하다면.. 자윤의 시야가 머리카락으로 가려졌다. 제 머리카락으로 시야를 덮었다 내린 뱀이 눈동자를 휘었다. 낮게 쉭쉭댔다. 전 저 검은쪽이 맛있어보여요. 입맛을 다시는지 입술 사이로 혓바닥이 낼름댔다. 자윤은 다시 묵의 등짝에 머리를 갖다박았다.

소강상태에 접어는 카넬과 란시는 지나칠 정도로 조용한 루페를 향했다. 평소와 같은 뚱한 얼굴이었으나 읽혀지는 것은 평소와 달랐다. 머리아프다는듯 카넬이 눈을 감았다 떠냈다.

“불안해…”

“불안하다 못해 불길하지. 저 인간이 조용할것만큼 불길한 때가 없잖아?”

들리지도 않는다는듯 붉은 눈동자가 허공에 멎어있다. 읽고 있다고 해야겠지. 이 주변을 둘러싼 이야기를. 고요한 낯에 문장들이 일렁이고 타올라야할 화력은 이야기를 흡수하느라 바쁘다. 저 불덩이는 이야기를 가리지 않았으나 지금은 마치 태울거리를 찾았다는 기세다. 

“낌새가 안좋아.”

“그러게, 생각보다 간단하진 않으려나봐.”

이걸 건드릴까 말까 즐거운 고민을 하려는 란시를 다시 잡아말리며 카넬이 안도의 한숨을 소리없이 내쉬었다. 다행이라면 란시는 평소와 같다는 점이겠지. 아직까진 말이다.

”이제 일좀 할까, 친구들..~“

손끝을 튕겨 시선을 집중시킨 자윤이 제 품을 뒤적이다 아, 깨달은 얼굴로 묵의 품을 뒤적여 종이뭉치를 꺼냈다. 낡은 종잇장이 먼지를 한움큼 뱉으며 펼쳐졌다.

“콜록, 아이고..~ 그럼..~ 제 1회 환생서천 공조수사 사건 보고 하겠습니다~..“

사각, 사각- 

[사건번호 #자2축3인3묘5]

[위는 담낭골 추레읍에서 단기간에 연이어 시체가 나온 사건이다. 3주간 비슷한 모습을 한 시체가 8구. 장소는 인적이 드문 곳이며 특정되지 않았다. 조사 필요. 시간은 새벽 2~3시경. 해당 사건에 어둑시니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며, 사건 조사 중 특수성이 보여 위 두 관할에 공조수사를 의뢰한다. 수신 -환생도서관, 서천뭐시기지역]

“사건 조사 중 특수성?”

“저희 쪽에 의뢰할 땐 보통 그런 식이에요. 저희쪽에선 개연성이 움직였다고 해요.”

“개연성이요.”

묵의 물음에 카넬이 답하고 카넬의 답에 다시 물음이 넘어왔다. 예상했다는듯 짧게 카넬이 머릿속을 정리했다.

”세계를 서술하는 도중 문단과 문단이 겹치거나, 앞뒤가 맞지않거나, 인과가 어긋나는 부분들이요. 관념적인 부분이라 이해하기 어려우실 테지만…“

”구린 일이 일어났다는거군요?“

”뭐…그렇죠.“

“일단 시신들부터 보러갈까~..”

루페는 낱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개연성이 제멋대로 덮어버리고 비틀어버린 이야기가 제 것을 보아달라는듯 장을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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