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g
습한 냄새. 자윤은 코 끝을 움찔거렸다. 겨울이 아닌 곳에서 맡는 시체의 향은 여전히도 낯설었다. 얼어붙은건 냄새가 덜한데. 감상을 짧게 끊어내고 관짝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정우봉, 남성, 72세. 술에 취해 달밤에 거닐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 뭐에 놀라 자빠진 건지 논두렁에 처박혀있었다네~..”
달랑 두줄. 그것으로 남자의 사인은 끝이었다. 너무 부실한거아냐~..? 애초에 저희 관할이 아니니까요. 저승차사쪽 일이 넘어온거라 영~? 묵이 혓바닥을 낼름댔다. 불쾌감의 표시였다. 괜히 쭈볏 오른 소름을 털어낸 자윤은 결국 제 발로 뛰어야한다는 사실에 한숨만 작게 뱉었다.
다른 셋은 여타부타 말이 없었다. 자윤의 시선은 그들의 눈을 향했다. 시체에 박힌 색색의 눈동자들은 죽은 몸뚱이가 아니라 두터운 책이라도 읽듯 저마다의 속도로 움직였다.
“저런 것도 보이는걸까~..”
“그렇다면야 피곤하고 편리한 생이겠네요.”
문장으로 이루어진 삶. 생의 행위들을 납작한 종잇장 위의 문자열들로 읽어내는 삶이란. 자윤은 겪지못할 것을 구태여 상상하지 않았다. 여튼 우린 꿀 빨수 있겠군. 묵의 등짝에 풀썩 몸을 기대며 늘어졌다. 머리에 쓰던 수면안대까지 콧잔등까지 내린 후였다.
“오래걸리려나요.”
“글쎄~.. 이번 건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사인이 심장마비야. 한두명이라면 뭐 그런가싶지. 그런데 8명 전부 심장마비로 죽은건 말이 안되지 않겠어~..? 그런 어둑시니는 들어본 적이 없어.”
“예부터 난감한 문제였죠. 그 건은. 신체적 문제인지 사건적 문제인지 분간이 어려워서 말이에요.”
“어둑시니가 되다 말았거나 어둑시니 이상의 존재일 수 있단 말이지~…...아니면 이 마을에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던가...”
조사할게 많다는 소리다. 아~… 일하기 싫어~… 어~…튈까~…. 자윤의 마음 속 소리를 들은건지 안대가 가려준 어둠이 쑥 올라갔다. 눈을 찡긋인 자윤의 시야에 독서를 끝낸 사서 셋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어깨에 묵직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귀 옆에서 낮은 쇳소리가 울렸다.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도망갈 낌새를 노리는 쥐를 압박한 뱀이 슬 웃는 얼굴을 떼어냈다. 쭈볏 굳은 어깨를 제 쪽으로 끌어당기며 혀를 낼름댔다.
“공조할 거리 좀 나왔나요?”
“그건 그쪽이 제시해야죠. 무슨 두줄짜리 정보 들고와놓고선~?”
“아오, 시끄러워.”
빠악! 묵의 도발에 방긋 웃으며 맞다구 친 란시의 머리통이 시원스레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박치기로 란시를 조용히 시킨 루페가 대수롭냐는듯 입바람으로 제 머리카락을 불어냈다.
“문장 작작 늘려. 안그래도 읽을거리 많은데.”
두 짐승의 시선은 루페의 어깨 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제 이마을 가린 카넬을 향했다. 살인사건이라도 목격한 얼굴이 추억을 상기해냈는지 제 이마를 박박 비볐다. 아~…저런 식? 아무래도 입 다물게 만드는데는 펜보다 머리가 빠른 편이죠.
“내용이 지워졌어.”
“내용?”
설명보단 보여주는게 빠르다는듯, 루페가 손을 휘저었다. 그를 닮은 적색의 깃펜이 루페의 손에 들렸다. 묵과 윤은 잉크병이 열리는듯한 소리를 들었다.
사각사각-
[축시. 정우봉은 술에 취해 밤길을 걸었다. 하나있는 빛도 초승으로 깍인 밤. 밤눈 어두운 정우봉의 발길은 늘어지고 갈길은 멀었다.]
붉은 글씨가 허공에 쓰여졌다. 보이지 않는 잉크로 글을 써내듯, 붉은 깃펜이 바쁘게 움직였다.
[정우봉의 눈에 띈 것은 정자다. 술기운이 올라온 정신으로도 저것에 다가가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있다. 어릴적부터 어른들에게 줄기차게 들어온 이야기가 아니던가. 저 정자에서 귀신을 본 자가 한둘이 아니라고. 삿된 것에 홀리지 않게 가까이 하지 말라고. 허나 정우봉이 그것을 인지한 순간, 그의 발길은 달을 벗어나 정자로 향했다.]
“정자라...”
[정우봉은 끼익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오래된 나무결이 부딪히는 소리. 무언가에 발이 걸려 밑을 내려다보는 순간,]
촤악-
액체가 엎어지는 소리와 함께 문장의 뒤는 잉크로 범벅되어 알아볼 수가 없었다. 지워졌다는게 이런 뜻인가. 묵은 턱을 문질렀다. 자윤은 잉크를 손가락으로 콕 찔러봤다. 뭍어나오는건 없었다.
“신기하네...”
“이후는 사망이라 더 나오는게 없어. 건질 거리도 없이 뭔가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뒤졌다는 소리지.”
“그것도 신기하네~...”
“그렇다면 다른 시신들을 확인해봐야겠네요.”
정우봉은 가장 최근에 사망한 자였다. 그나마 건질거리가 많을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뭐 헛발질이군. 손을 털어낸 자윤이 다시 사망자들의 인적사항이 적힌 서류를 펼쳐들었다.
“그럼~… 되돌아가볼까나~...”
일곱번째 사망자부터.
[달 없는 밤은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데 그 정자만큼은 또렷했다. 발길이 끌린다. 오래된 나무결이 부딪히는 소음, 어깨로 둔탁한 것이 부딪혀 뒤를 돌았다. 그것은 한눈에 들어오지않을 만큼 거대한...]
여섯번째 사망자.
[귀신이 들린걸까, 몸이 제멋대로 정자로 향했다. 가까이 하지 말랬는데. 끼익, 끼익. 귀를 거슬리는 소리.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밤 속, 구멍이다. 밤보다 더 어두운 구멍이 있다. 눈이 마주쳤나? 아니. 그것은 눈이...]
“점점 형체가 잡혀가네~..”
낱장이 넘어간다. 붉은 펜대가 불길한 소음을 내며 움직였다. 루페의 손안에 있으면서도 주체는 손이 아닌 펜같았다. 마치 끌려가는듯한 모양새였다. 자윤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떼어졌다.
다섯번째 사망자.
[관. 관이다. 거대한 관. 구멍이 뚫려있었다.]
“관?”
“구멍뚫린 관이라…아, 뭔가 떠오를거같기도.”
네번째 사망자.
[왜 관뚜껑에 못을 박아놨을까. 마치 안에 있는 것이 나오지 못하도록...]
세번째.
[나는 이 관의 주인을 안다. 이것은 분명 ####...]
둘.
[아니야. 아니야. 그럴리가 없다. ####? ####… 그건 분명히 죽었어. 우리는 널 분명히...]
하나.
[######?#####! ## # #### ##!!!! ########!!!]
끼긱!!!
펜끝이 거칠게 긁히는 소음. 손을 벗어난 붉은 깃펜이 루페를 향해 날아갔다. 주인의 품에 돌아가는 것 치곤 공격적이다. 묵이 손을 뻗었다. 파앙! 깃펜은 묵이 펼친 우산을 꿰뚫고서야 루페의 코앞에서 멈췄다. 짐승들은 냄새를 맡았고 책들은 감정을 읽어냈다.
악의. 명백한 악의가 펜 끝에 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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