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ja

이기의 罪

라야 사망로그

[ !! ] 사망에 대한 묘사, 동물 주검 표현, 교ㅅㅏㄹ 언급

먼지가 뒤덮인 공장의 구석에선 사부작…. 사부작…. 작은 인기척 소리가 났다. 밝은 은발의 털을 가진 쥐새X같은 그 존재는 구석에서 숨을 죽이며 제 보호자를 기다릴 뿐이었다.

이름도 없이 ‘RA-40612-8’ 따위의 알파벳으로 불리었다. 야, 너, 어이. 따위로 인형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홀로 사는 한 남성이다.

그는 덥수룩한 수염을 오래간만에 잘랐다.

결함인지 뭔지, 아니면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라도 친 건지. 공장에서 납품하는 인형중 하나가 구석에서 자아를 가진 채로 덜덜 떠는 걸 발견했으니까. 처음엔 무서웠고, 그다음은 신기했고, 더 나아가 자신의 걸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획은 순탄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 알을 깨고 나온 생명과도 다름없는 것에게 대강 다 해져 퀴퀴묵은 셔츠를 대강 둘러주고 머리칼을 쓰다듬어주고, 자투리 시간이나 퇴근 후에 자처해서 경비를 서며 작은 반려동물용 캔을 사서 먹이고 단어를 익히도록 했다.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알에이 다시 사공육일이 다시 팔이 처음 이야기한 말은 ‘고마워요.’였다.

어리숙하기 짝이 없는 발음으로 이야기하며 웃자, 물안개 같은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아이 같은 웃음이라고 생각했다.

잿빛으로 가득한 세상의 때 묻은 이야기들에 이 아일 담그고 싶지 않아 자그마치 20년을 넘게 창고에서 길렀다.

남자는 돌아가지 못했다. 그 인형의 곁으로. 담배의 매캐한 연기가 그의 폐를 갉아먹고, 흐르는 세월의 그를 부식시켰다.

깜빡거리던 기억에 결국 그는 인형을 잊었다.

공장 일을 관두고도 음료니 도시락이니 사준다며 정 하나 없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후배들을 생각한다며 흥청망청 돈을 써대며 인형을 볼 구실을 만들었는데 잊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후로 발길이 뚝 끊겨도, 죽은 동물의 주검과 몇 날 며칠을 보내게 되어도…. 인형은 조용히 숨죽이며 아무리 굶어도 자신은 죽지 않음을 깨달으며 그늘 깊이 숨어들었다.

공장에서만 그렇게 총 육십사 년을 보냈다. 그 후엔 거두어진 이의 집에서 십 년 하고도 6년을. 길거리 생활 이 년을. 그리고…. 감옥도시로 발을 디뎠다.

죄인들이 오는 곳이라고 했다.

자신의 죄는 기만이고, 가식이라고 여겼다.

그래도 그러지 않은 척. 그렇지 않아도 그런 척.

남을 위한답시고 꺼낸 말들은 모두 자신의 불안을 낮추기 위한 발버둥이다. 모든 순간에서, 진심이 아니었다 말할 순 없다만….

너보단 저를 위했다는 거 하나만은 장담하지.

이 인형은 이기적이다.

그래서 죄인이라는 말에 별다른 반감도, 반항심도 들지 않았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죄인들이 지내는 곳 치고는 북적하고, 사람 내음 나는 것이 살만했으니까.

그러나 오래가지 않는 평화가 그가 죄인임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행복하지 말아야 할 이라는 걸 되뇌도록 해준다.

문제의 원인에 파고들어, 진실로 다가가 이 거대한 카르텔을 무너뜨려 보려고도 마음을 먹어보았으나.

무력함이 몰려왔다.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 건지. 얼마나 더 절망하고 좌절해야 하는 건지.

하여 비겁한 도피를 일삼는다. 거부할 수 없도록 속살였다. ——나를 죽여달라고.

.

.

.

그리고 그 끝을 보았노라.

기나긴 생의 끝맺어지는 순간이었다.

졸리는 멱을 따라 조여든 생명줄이 토옥, 맥없이 끈긴다.

미약하게 버둥거리던 몸이 얼마나 실리지 않던 힘을 다 풀어내고는 고요함을 이끌어왔다.

바짝 팽팽해진 채 경련하던 토끼 귀마저 맥 없이 늘어지자면….

사무치도록 스산한 고요가 자리한다.

저 좋자고, 두렵다고, 힘들다고…. 모진 말만 가득 내놓고서 이기적으로 저와 온기를 나누던 이의 몸에 제 몸만 얽어놓고, 그렇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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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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