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요. 전 어쩌면 좋죠.
이게 사랑인 걸까요?
함께 들어주세요!
피솔빈
皮率彬
Pi Solbin
167cm 50kg
010401-4XXXXXX
INFP
안녕하세요.
늘 마주치는 그 사람. 알이 없는 까만 안경에 편한 트레이닝 복을 입고 어딜 가는 건지, 종종 마주친다. 가볍게 돌아오는 목례. 여전히 어색하다. 그건 그거고. 사는 집 전세 기간이 앞으로 1년 밖에 안 남았는데…. 학교 졸업까지는 2년은 더 남았으니까, 집주인한테 연장을 해 달라고 할까. 전세금 더 올려 받으시면 어떡하지. 다음 주에는 공과금도 내야 하고…. 고민이 머릿속을 덮는다. 당장 다음 주 중간 고사 걱정이나 하자. 에휴. 고민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니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먼저 내릴게요, 같은 의미로 눈인사를 한다. 이웃과 하는 인사가 하루 루틴이 된 것처럼…. 가끔 안 보이면 아쉽다. 그나저나 알바라도 알아 볼까. 으… 지긋지긋 해.
누나, 나 용돈 좀
또?
몇 달 만에 받은 동생의 정 없는 문자에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은행 어플을 켰다. 음… 이번 달엔 많이 못 주는데. 20만원을 송금한다. 답장도 없네. 하여튼 피수빈. 3살 터울 남동생 고등학교 뒷바라지 하나 하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다시 생각하기도 싫었다. 나이 좀 먹었다고 학교에서 친구 사귀기도 쉽지 않고…. 그래. 친구 사귀려고 대학 온 거 아니잖아. 열심히 하자. 야금야금 대학 생활을 위해 모아뒀던 돈이 바닥을 보인다. 이번 학기 장학금…. 받을 수 있으려나.
어… 안녕하세요?
고된 학교 생활을 하다보면 ‘당이 떨어진다’는 걸 가끔 체감하는데, 당 충전을 위해 들린 편의점 앞에서 그 남자를 또 만났다. 피던 전자 담배를 주머니에 슬그머니 숨긴다. ‘집에 가?’ 라고 묻는 말에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다줄게. 가자. 왜 이렇게 늦게 와? 하고 묻는 말엔 아무런 대답도 못 했다. 그야… 과제가 많으니까요. 속으로 삼켰다. 근데 뭐 그런 거 관심이나 있겠어. 직장인 같아 보이는데…. 옆에 서서 걸음을 따라간다. 걸음이 꽤 빠르시네. 아닌가. 키가 커서 보폭이 큰 걸까? 속도를 따라 잡자니 영 힘들어서 걸음을 늦췄는데… 여전히 나란히 걷고 있다. 맞춰주신 걸까? 별 거 아닌 배려에 마음이 울렁인다. 정신 차려 피솔빈. 별 거 아닌 거에 의미 부여하면 안 돼…. 그냥 배려해준 거야. 남자와 마주쳐 사지 못 한 초콜릿을 떠올린다. 이게 다 당 떨어져서 그래.
자, 국교! 하면 화이팅~ 하는 거야!
국교!
화이팅을 딱히 외치진 않고 잔만 들어 올렸다. 아직 종강도 아니고 고작 중간고사 하나 끝났는데 모여서 친목을 다지는 행위가 굳이 필요한 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대가 얼굴 좀 비춰 달란 말을 거절을 못 해서…. 근데 나 술 잘 못 하는데.
눈을 꿈뻑인다. 어라. 누구지. 수빈이야? 집 주소 알려준 적 없는데….
수빈이는 누구야? 남자친구?
아니요… 저 남자친구 없어요. 동생….
응? 들리는 목소리에 눈을 퍼뜩 뜬다. 우리 집도 아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니… 또 그 남자다. 어. 앞집…. 멍청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응, 그래 앞집. 여기 너네 집 아니고 우리 집. 하는 얼굴로 그냥 웃고 있다. 도어락을 계속 치고 들어오려고 하길래 어떤 취객이 이렇게 밤 늦게 꼬장을 부리나 했더니 나였댄다. 아. 이럴 수가…. 최악이야.
딱히 피해 다니진 않았고, 그냥 평소보다 좀 이른 시간에 나오고 늦게 귀가했다. 왜냐면 부끄러우니까. 그런 실수를 하고… 죄송하단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괜찮다고 꿀물 하나 챙겨주고 고작 몇걸음 앞에 있는 우리 집으로 배웅까지 해줬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주치진 않을까 걱정까지 했다. 집 재계약은 무슨… 다른 전세집이라도 알아봐야 할까…. 고민하는데 옆에서 말을 건다.
오늘은 인사 안 해?
어? 엇… 아, 안녕하세요?
늘 보던 트레이닝 복 차림이 아니다. 멀끔하게 빼입고, 얼굴을 가리던 안경을 치우니 시원시원하게 자리 잡은 이목구비에… 아차, 염치도 없이… 빤히 보던 시선을 거두고 주먹을 꽉 쥐었다. 피솔빈. 호의를 애정으로 착각하면 안 돼. 그런 생각을 했다. 못 알아 보는 기색이 우스운 지 남자는 작게 웃고 품에서 명함을 꺼내 건넨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얼굴 마주하며 인사는 했어도 이름은 처음 본다. 명함에 콕 박힌 이름 석 자를 손 끝으로 쓸어본다. 견지원. 좋은 이름…. 아차, 저는 피솔빈이에요. 응, 알아. 네? 어떻게요…? 취한 날 솔빈이 더 먹을 수 있어~ 피솔빈 아직 안 죽었어~ 하고 뛰쳐 나가려는 거 곱게 눕힌 게 누구라고 생각해?
…아, 역시. 계속 피해 다녔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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