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물

더는

소설 TYPE / 오마카세 / 뮤지컬 더 픽션

골방 by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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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연재가 중단되었다. 편집장의 일방적인 통보와 권위적인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걱정이 앞섰다. 그레이도 머잖아 이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아니, 이미 연락이 갔을지도 모른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당장 그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와이트는 신문이란 신문을 모두 사들여 《그림자 없는 남자》에 대한 호평을 가능하면 많이, 단 한 줄의 언급이라도 모아서 철했다. 이거면 증명될 거라고 나아갈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작업실에 도착했을 무렵, 그레이가 앉아있어야 할 자리에 햇살만 내리쬐고 있었다. 창문도 활짝 열려있다. 이러면 종이가 날린다고 싫어하시면서 왜. 와이트는 플롯 구조도와 버린 문장들, 등장인물 프로필이 어지럽게 늘어진 책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스케치 위에 휘갈겨 쓴 문장이 와이트의 눈앞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Oct 4. rejection 10월 4일 연재 중단

그 옆에는 이 나간 재떨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와이트는 그 위에서 말라비틀어진 담배꽁초를 집어 들었다. 버려둔 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분명 담배를 진작 끊었다고 했었다. 지나가듯 한 말이었지만, 첫 원고를 앞에 두고 기대에 차 있던 얼굴과 함께 한 말을 어찌 잊겠나?

와이트는 양손으로 책상을 짚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다. 연재 중단은 몰라도, 그레이 헌트가 좌절하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와이트는 재떨이를 신경질적으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등 뒤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방의 주인이었다.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보통 이 시간쯤 시장에 다녀오는 그였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겨우 다잡았던 마음이 조금 더 무너져내렸다.

“왔어?”

“산책 다녀오셨어요?”

“어, 잠깐.”

그레이는 관성적으로 미소를 보였으나, 낯빛이 어지러웠다. 평소라면 책상을 급하게 정리하며 “잔소리하기 전에 치워야겠네.” 하고 너스레를 떨었을 텐데, 먼저 욕실로 향했다. 손 씻는 소리가 들린다. 와이트는 일부러 그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심증이 확실해졌다.

“작가님, 담배 피우세요?”

그레이는 눈을 굴리며 재떨이를 찾았다. 내가 원고로 잘 덮어두었는데. 쓰레기통에 처박힌 걸 보니, 둘러댈 방법은 이미 없는 듯했다.

“다들 보니까 쉽게 못 끊더라고. 입이 심심해서 한 대…….”

“괜찮으세요?”

“어, 그럼.”

그레이는 일부러 더 민망한 체하며 책상을 정리했다. 그는 끝끝내 와이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누구도 깰 수 없는 정적이 흘렀다.

그의 어깨가 한없이 작아진 기분이 들었다. 나의 우상이자, 은인인 그레이 헌트가 아무것도 아닌 평론가의 말 몇 마디에, 편집장 지시 한 번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이지. 불쾌함을 너머 처참하기까지 했다.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깟 놈들의 평가가 대체 뭐라고! 《그림자 없는 남자》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건, 바로 나뿐인데.

“와이트, 있잖아.”

“네, 작가님.”

와이트는 간신히 분을 삭이고 표정을 지웠다. 그러나 그레이는 그가 흘린 찰나의 감정조차도 자신에게 향하는 실망으로 여겼다. 웃음기 하나 없이 자조했다.

“역시 내가 틀렸던 걸까?”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작가님.”

역시, 역시. 하필 그 단어가 비수처럼 꽂힌다. 마치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군다. 실패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처럼 말한다. 대체 어떻게 해야 당신을 되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당신이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당신의 글에 내가 살았던 것처럼, 나는 어떻게 해야 당신을 살릴 수 있지.

그레이는 그제야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건데. 적어도 네 앞에선, 내가……. 그래도 날 알아봐 준 유일한 사람이 너잖아, 와이트.”

“곧 세상이 알아봐 줄 거예요.”

“난 너로도 충분해, 와이트.”

그건 아마 그레이의 자기암시였을 거라고, 와이트는 생각했다.

만약 와이트가 그레이 헌트 한 사람만을 위했다면 이 말을 위시하여 그레이를 설득하려 했을 것이다. 이미 많은 독자가 인정하고 있고, 당신이 말했듯 ‘내가’ 인정하니까 너무 깊이 상심하지 말라고. 그러나 그의 목적은 그레이 헌트의 소설 《그림자 없는 남자》가 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더욱 여기서 끝낼 수 없었다. 와이트는 그레이의 손을 세게 쥐었다.

“아직 판단하기엔 일러요. 연재도 안 끝났잖아요. 원래 작품은 완결 이후가 더 중요하댔어요. 결말을 알게 되면 다들―”

“아니, 와이트.”

그레이는 와이트의 손을 놓으며 말허리를 잘랐다.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그는 항상 경청했고 수용했다. 적어도 소중한 독자이자 편집자, 와이트 히스만에게는 그랬다. 와이트는 빈손을 바라보았다. 그레이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책상을 짚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종이가 바스락거린다. 차라리 으스러지면 좋겠다. 그레이는 생각했다.

“좀, 버거워. 난 내가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 잠깐을 넘기면, 그러니까…… 이 정도 비난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와이트는 고개를 들어 그레이의 얼굴을 보았다. 도저히 어쩌지 못하도록 일그러진, 상상에서도 본 적 없이 처음 마주하는 표정이었다.

“근데 글이란 게 참 웃겨. 분명 그들은 내 글을 보고 있는데,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글이 아니라 내가 틀렸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당신의 그 쓰레기 같은 사상으로 세상을 어지럽히지 말라고…….”

“다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소리에 휘둘리실 필요 없어요.”

“내가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그게…….”

와이트는 순간 그레이의 눈에서 불꽃처럼 튀는 서글픔을 읽었다. 아마 자신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글 쓰는 자들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목도한 것 같았다. 말문이 막혔다.

그레이는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감정을 지웠다.

“걱정은 고마워.”

“죄송해요.”

그레이는 애써 웃으며 원고를 박스에 담았다. 정말 버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마음 같아서는 모두 불사르고 싶었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레이는 쓰라린 한숨을 꾹꾹 눌러 삼켰다. 그는 와이트를 등진 채로 말했다. 얼굴을 마주 보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좀 쉬어야겠어.”

조금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만한 각오가 필요했다. 그를 찾아왔던 편집자들은 모두 그렇게 떠나갔다. ‘신문사 사정으로 연재가 중단된 거예요. 저는 포기 안 할 거예요.’, ‘다시 찾아뵐게요.’, ‘꼭 돌아오셔야 해요.’ 모두 하나 같이 입에 발린 말, 의무에 떠밀린 인사. 아무리 와이트라 해도, 지지부진한 연재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싶겠는가. 글에 인생을 건 사람은 나뿐인데.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이럴 때일수록 혼자 계시면 안 좋아요. 제가 옆에 있을게요.”

와이트는 그에게 다가서며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레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괜찮아. 정말로.”

“하지만,”

“와이트, 너까지 날…….”

그레이는 안경 너머 걱정으로 빛나는 와이트의 눈을 마주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와이트. 늘 고마워.”

그레이는 비척비척 걸음을 옮겨 방으로 들어갔다. 와이트는 굳게 닫힌 문 앞에 서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내가 뭘 해야 하나. 나는 뭘 할 수 있나. 찰나의 섬광처럼 방법이 떠올랐다. 머리가 차갑게 식어간다. 와이트는 빠른 걸음으로 작업실을 빠져나가면서 문장을 주문처럼 외었다.

맨해튼 가로등 불이 꺼지는 시각은 오전 여섯 시 십칠 분, 맨해튼 가로등 불이 꺼지는 시각은 오전 여섯 시 십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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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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