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물

생명력

조각글 TYPE / 오마카세 / 뮤지컬 더 픽션

골방 by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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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알았던 결말이기에, 어차피 내가 만드는 결말이라서. 신변을 정리하는 일에 더 오랜 시간을 쏟았다. 마음을 정리하는 일에도.

처음에는 이사하는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결국에는 이곳을 떠나는 일이니까. 이사는 누구나 가게 되지 않는가? 게다가 작가는 매 순간 자기가 만든 이야기와 이별한다. 그래서 아주 막연히, 나만은 마음을 떠나보내는 일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만 특히 소회가 남다른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각오한 게 단지 ‘떠나는 일’에 불과했다면 예상에 들어맞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엄밀히 말해 ‘내 작업실’이 아니었다. 소설이 흥행한 후에야 새롭게 마련한 장소였으니까. 그런데 이곳에서의 기억이, 십수 년을 보낸 작업실에서의 기억보다 많았다. 정확한 날짜를 떠올릴 수는 없어도 손 닿는 곳마다 그날의 대화, 햇빛, 바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주 조그만 흔적에도 언제나, 너의 목소리가 있었다. 글 몇 줄 끄적이는 걸로 대단한 일을 한다고 착각했던, 아무것도 아닌 나를 작가라 불러주는 목소리.

결국 몇 발짝 채 옮기지 못하고 힘이 빠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죽음은, 남겨진 사람의 고통이라고만 생각했다. 당사자는 무엇도 느낄 수 없으니, 죽는 자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죽음이란 서술조차 불가능한 찰나지만, 거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삶이구나. 삶의 종결이 곧 죽음이구나.

나는 지금 죽고 싶지 않은 거구나. 평생에 처음으로,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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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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