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고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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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어요? ……. 시선이 맞은 지 제법 되었다. 그가 물기로 흐릿한 시야를 애써 다잡아가며 뱉은 마디란 그런 종류였다. 소란스러운 고깃집 사이를 침묵만이 갈랐다. 내가 아무 대답도 않자, 그는 버릇처럼 뱉은 말을 어물어물 되짚었다. 그러고서 소스라치듯이 정신을 차렸다. 나직한 탄성, 테이블 모서리에 구둣발 채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취기
도서관의 구석진 곳에 멈춰서 숨을 골랐다. 오늘 도대체 몇 번이나 일이 꼬이고 마는지, 한숨을 푹푹 내쉰 나머지 내일 치 숨마저 끌어다 써야 할 지경이었다. 한 달 전에 저장했던 파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오늘에서야 드러났고, 그 파일을 제대로 수정한 뒤 저장하려는 순간, 멀쩡하고 성능 좋았던 컴퓨터가 블루스크린을 띄우며 퇴근을 요청했다. 조금만 더 일해
내가 죽었다니 퍽이나 유감입니다. 기실 유감이랄 것도 없지만, 저 자신에게 조의를 표하지 않으면 또 누가 해주겠습니까? 아무도 없으니 혼자서라도 이딴 종이 쪼가리를 끄적거리고 있을 수밖에는 없는 거예요. 이걸 보는 당신이라도 내게 조의를 표해줄까, 글쎄요, 적어도 죽은 뒤의 저는 아무도 믿지 않을 심산입니다. 뭐, 영 심심하면 백합화라도 하나 꺾어 내 죽은
유달리 잠을 설쳐 피곤했던 밤을 보낸 뒤엔 항상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알람시계가 제멋대로 떨어져 침묵시위를 하고, 끼워두었던 책갈피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양말을 신으려 들여다보면 죄 짝짝이뿐이었으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토스터가 열과 성을 다해 식빵을 태워먹었다. 쌉싸래한 탄 맛을 불평 없이 넘기다, 손목시계마저 제 역할을 못하고 삐걱인다는 것을 뒤
너의 인류애에 경외를 표한다. 사라진 별자리의 기억,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흙을 밟았던 기억, 서로 얼굴 맞대고 웃으며 온갖 것에 이름을 붙였던 기억……. 찬찬히 되짚다 마주치는 공백이 늘어났음을 깨닫는다. 추억이 있던 자리에 희부연 안개만 남았다. 기억을 카페 서고에 일일이 남겨두었지만 펴볼 용기가 나질 않는다. 이것이 정녕 제가 겪었던 기억인지조
사위가 시커맸다. 불안에 절인 오열 때문에 호흡은커녕 감각을 곤두세우기도 버거웠다. 늘상 사랑해왔던 물살 소리가 끊임없이 달래듯 귓전을 때려도, 치를 떨게 만들던 기계의 백색 신음이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도 자신이 진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지그시 눌렀다. 이곳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이제 이 세상, 아니 이 은하에 남은 단 하나뿐인 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