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혹은 피노키오,

혹은 멸종 직전의 물고기 같은 것

海燈 by 고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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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가 시커맸다. 불안에 절인 오열 때문에 호흡은커녕 감각을 곤두세우기도 버거웠다. 늘상 사랑해왔던 물살 소리가 끊임없이 달래듯 귓전을 때려도, 치를 떨게 만들던 기계의 백색 신음이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도 자신이 진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지그시 눌렀다. 이곳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이제 이 세상, 아니 이 은하에 남은 단 하나뿐인 생명이었다. 인간의 기계문명이 이곳까지 침투해 샅샅이 뒤지고 관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좀처럼 가라앉을 줄을 모르던 격정을 느리고 커다란 맥박이 위로했다.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고래의 뱃속이었다.

끝끝내 도망쳐 찾아온 곳이었다. 이 고래도 은하에 홀로 남겨진 존재라는 사실이 못내 위안이었다. 내가 네 안에 들어가도 되겠니, 묻자 고래는 그저 가만 입을 벌렸다. 동굴보다도 어두웠지만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에 적응하다못해 외려 편안하다 여기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었다. 눈앞의 공허에 반짝이는 웃음소리나 더 이상 쏘아올려지지 않는 말들을 허깨비처럼 띄워 놓고 붙잡으려 용쓰곤 했다. 때로는 헛짓거리임을 알면서도 그랬고 또 때로는 무언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 열병에서 헤어나고자 그랬고 어떤 때는 자신이 만든 과거의 편린을 부정하며 돌아누웠다.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오래전, 그러니까 하늘 궁창의 물이 쏟아졌다던 날, 필시 그 자리에 아주 조금 남았던 일부가 내내 얕게 고여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제 정수리를 뚫고 수로를 개척해 남은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눈가가 붓고 트고 갈라지고 고름이 앉고 또 쉼없이 다시금 터져 피와 한데 뒤섞이어 구분할 수 없어진 이 지경을 설명하지 못한다. 언젠가는 지독한 가뭄이 찾아오겠지 싶어 그대로 두었고, 자신은 끝내 옳았다. 설령 그것이 전혀 바라지 않았던 형태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서성이던 긴장은 간만에 도착한 급행열차에 오랜 기다림을 싣고 떠났다. 연거푸 피워댄 피로를 찌꺼기처럼 떨구어 놓고 떠났다. 자신은 마치 낡은 빗자루를 쥔 채 엉망진창이 된 역내를 허망히 둘러보는 역장이 된 것만 같았다. 꺼져 가는 난롯불마냥 점멸하는 의식과 함께, 물밀듯 몰려오는 일련의 감각들을 무력하게 응시만 하고 앉았다. 뒤로 물리거나 아주 없애 버리지 않고 그대로 짓눌리듯 받아들였다. 이곳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고래와 자신과 어딘가에서 굽어볼 신 외에는 아무도 자신의 행방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한 잠만 쉬어내고, 그러고 나서 스스로의 처분을 결정지을 것이다. 눈을 감을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잠에 빠져드는 것은 금방이었다. 눈물은 어느새 눅진히 내려앉은 피로가 쫓아낸 듯,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

소리가 들렸다.

기계 소리였다.

한 번에 굴러가지 않는 감각들을 억지로 재촉해 깨웠다. 맞물리지 않은 톱니바퀴를 제자리에 끼워 넣는 일처럼 쉽지 않은 절차였지만, 혈향을 한가득 들이마시고서는 그마저도 순식간에 해치워버리고 말았다. 부러 빛을 밝히지 않아 볼 수 없었던 고래의 뱃속이 보였다. 인위적인 빛이 깔끔히 두 쪽으로 갈라진 살들 사이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과 함께 붉은 피가, 상처입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생생히 흘러넘쳤다. 그러니까, 그래. 은하에 단 한 개체밖에 남지 않은 자신을 잡기 위해, 은하에 단 한 개체밖에 남지 않은 생명의 배를 기어이 가르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느리고 커다란 맥박은 아무리 귀를 열어젖혀도 찾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이 상태서 더 도망칠 심산이 아니었다. 깨어나면 곧장 제 몸을 내던질 생각이었다. 그러나 저치들은 단 한 잠을 쉬어내는 것조차 기다려줄 줄을 몰랐다. 고작 인류의 비약을 위해, 무엇보다도 자신의 몸이, 자신의 뇌가 그들에게 필요했다. 고래보다도 더. 우스웠다. 갑작스레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신을 이루고 있던 무형의 실들이 영문 모를 웃음에 부식되고 절단되고 타들어가듯이 투욱툭 끊어짐을 느꼈다. 돌이키지 못하게 된 것은 오래전이었으니, 자신은 꽤 오래 버틴 셈이었다. 어쩌면 멍청하게도 이제서야 실감했을는지 모른다. 한계점을 넘어 고칠 수 없도록 망가지는 자신을 가만 내버려두었다. 어차피 곧 죽을 터인데, 고장이 좀 난들 어떠하겠나 싶었다.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기다리던 가뭄이 이미 찾아와 머무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생체 인식 중입니다……. 결과: 일치

9.8-8263 생포 완료. 기지로 복귀합니다.

인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살피는 센서를 노려보았다. 무심히 듣기에는 좋을지언정 생경한, 기계적인, 그리고 죽어 있는 목소리가 텅텅 울렸다. 동족들을 모두 이런 식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제멋대로 몸이 들리고, 어린 왕자의 장미를 보살피는 체하듯 투명한 유리 덮개 같은 것이 자신을 가둔다. 이 다음엔 마취 가스가 스며들겠지. 핏줄과 고름 따위가 터지든 말든, 눈을 감았다. 짐작대로 곧 따가운 감각마저 소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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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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