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을 재봉하는 법
고요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어요?
…….
시선이 맞은 지 제법 되었다. 그가 물기로 흐릿한 시야를 애써 다잡아가며 뱉은 마디란 그런 종류였다. 소란스러운 고깃집 사이를 침묵만이 갈랐다. 내가 아무 대답도 않자, 그는 버릇처럼 뱉은 말을 어물어물 되짚었다. 그러고서 소스라치듯이 정신을 차렸다. 나직한 탄성, 테이블 모서리에 구둣발 채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취기로 발갰던 볼이 거의 타들어갔다. 그가 상체를 애써 구기며, 들어올린 맥주잔으로 얼굴을 가렸다. 맥주잔을 든 손마저 붉다. 그의 머리카락만큼이나.
아, 작업이 아니라, 미안해요. 정말 그렇게 들릴 수밖에 없게 말했네. 미안해요.
주사가 있으신가 봐요.
조금요. 죄송합니다. 조금 많이.
누군가 합석을 부탁한 것이 오랜만인 탓에 착각했노라, 그는 순순히 고했다.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눈물까지 주륵 흘렸을까. 소매로 닦아내는 모양새 퍽 익숙해 보였다.
가만 지켜보기만 하자니 수치심을 감상에 적셔 그리움 따위로 승화할 판이었다. 술내 나는 이별 노래들 같은. 그런 주사였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나를 그리워했구나. 그래 나는 문득 심술이 동해 입을 열었다. 더 침묵했다간 그의 이별상담까지 듣게 될 듯했으므로, 장난은 그만두고.
나를 누구랑 착각했길래.
그게, 아…….
알은체해도 괜찮아. 그런 뜻으로 허락을 담아 가볍게 뱉었다. 선글라스와 모자와, 꾸며낸 목소리, 아주 새로운 분위기로도 완벽히 속일 수는 없었다. 그도 알고, 나도 물론, 알았다. 첫눈에 나를 알아보았으나 그는 욕심보다 배려를 택했다. 그럴 줄은 알았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물어본답시고 겨우 뱉은 것이 이 빤하면서도 재미없는 대사라니. 그래서 그가 다시 탄성과 함께 눈물을 흘릴 때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있는 반응이었다. 이 장난이 그에게는 가혹했을 테니.
그는 웃음소리를 듣고 더 서럽게, 그러나 소리 죽여 울었다. 내 울림이 허상이 아님을 확신하기 위해, 한 점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러고는 그 울상 그대로 사이다를 주문해, 도리어 내 쪽에서 소리 죽여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동안 취향 바뀌었으면 어쩌려구?
그대로인걸. 호출벨 옆을 두드리는 버릇이나, 테이블 다리에 앞코 대는 버릇, 같은…….
위스키 배운 거 알면 깜짝 놀라겠다.
……진짜?
진짜. 2차로 마시러 가자.
응, 좋아……. 아니, 생각해보니까 안될 것 같아.
왜?
나 여기서 더 마셨다가 필름 끊기면 어떡해.
내가 재워주면 되지.
안 돼……. 제대로 기억하고 싶어. 오늘을.
아하.
그러니까, 음, 이건…… 수선이야?
하하, 글쎄. 천천히 확인해봐! 시간은 많지 않겠어?
그러면 좋겠다.
사이다가 담긴 잔을 들어 건배했다. 재회를 축하하며.
손 풀 겸 묵히던 글 꺼내옴(그러나 풀리지 않음)
재회를 한다면 이런 식이지 않을까...
근데 재회를... 왜 하는 걸까?
으뜸은 망사랑인데......
아래는 그냥 넣기 애매해서 뺀 문구(별거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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