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오

미카가미 하카리 | 검사심사회의 사자使者가 '천재 검사'를 만나기 하루 전

Veritas et Aequitas by 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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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검사 1&2 미츠루기 셀렉션>의 발매를 축하하며 작성한 짧은 단문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공식 한국어번역과 함께 정식발매된 제 본진겜을 잘 부탁드립니다…….

※ 역전검사 2-1과 2-2 사이를 기반으로 하나 역전검사 시리즈의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다만 게임을 플레이하고 다시 읽으시면 보이는 복선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 미카가미가 미츠루기에 대한 의문을 독백하는 글입니다. 미츠루기는 글에서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집무실로 배달된 신문의 1면 헤드라인은 ‘천재 검사 미츠루기 레이지, 그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애석하게도 미카가미 하카리는 아직 그 질문에 명쾌히 답할 수 없었기에 다 읽은 신문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무엇 하나 새로울 게 없이 이미 모두 아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질문만은 뇌리에 남아 계속 심기가 불편했다.

비록 미츠루기 레이지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으나 지난 몇 주간 아침마다 본 얼굴이 그의 것이었기에 이제는 한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는 검사심의회의 기밀 문서 맨 앞 장에 있는 미츠루기의 얼굴을 볼 때마다 한없는 의구심이 들었다. 언론은 그가 하루아침에 정의의 편에 선 검사인 것처럼 떠벌려댔지만, 미카가미는 그 남자의 과거가 그리 쉽게 요약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카르마 고우의 뒤를 이은 검사 아닌가. 데뷔 이후 한동안 세운 무패 기록들로 검찰청의 천재 검사라 불리게 된 그가 아니었던가. 그러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자,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이야기 또한 읽었다. …이는 분명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그에 대한 평가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에게는 소중한 것이 없어 보였다. 앞으로 나아가도록 등을 밀어주는 누군가가, 어쩌면 신념을 버리면서까지도 지켜야만 하는 무언가가 없기에 저리 승승장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럼 재판관 미카가미 하카리에게는 그런 사람의 마음이 있느냐고 누군가가 물었다면 그는 확실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으리라. 다만 중요한 것은, 존재 여부가 불확실한 그 온정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장애물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미츠루기 검사는 자꾸만 여신의 눈 밖에 나려고 하는 길 잃은 양이었다. 여신의 눈을 가리고는 진실을 위한 한 걸음이라며 모두를 속일 수도 있는 위험인물이었다. 이는 검사심의회의 비공식적인 의견이었지만 회원 모두의 공통된 견해였고, 미카가미 본인의 의견과도 일치했다. 심의회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날뛰는 미츠루기 검사에게 한 번쯤 고삐를 걸고 당겨줄 누군가를 절실하게 찾았고, 회장은 그 역할에 미카가미가 적격이라고 했다. 그리고 미카가미는 자신이 검사심사회의 의견을 사견 없이 전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미츠루기 레이지가 정말 검사배지를 달고 다닐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역시 그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관찰해야 했다. 감히 법의 여신을 농간하며 재판에서 내려지는 최종 판결의 신성함을 해하더니 이제는 현장에서까지 같은 수사를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그의 속내를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패까지도 드러내야만 했다. 미카가미는 게임을 시작하기 전 제 손에 들린 카드들을 내려보았다. 패에는 갓 테미스 학원을 졸업한 검사와 검사심사회의 회장이 있었지만, 소매에 숨겨둔 카드들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도, 쉽사리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마침, 상부에서부터 검사배지를 앗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옳은 길로 인도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으니 잘된 일이었다. 이 임무를 수행하면서는 재판관으로서의 자신을 잠시 내려놓고, 검사심사회의 사자로서만 그를 대하면 된다. 숨긴 카드들을 굳이 드러내며 그를 떠볼 이유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법의 신께서는 미츠루기 레이지에게 검사로서 자질을 보여보라 명령하셨다. 미카가미는 법의 저울이 되기로 맹세한 이상 신이 만족하여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전까지는 이 임무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심의실의 정중앙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올려다보았다. 추상열일秋霜烈日을 뜻한다는 검사 배지 모양의 창문으로 빛 하나 들지 않아 여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어둑한 새벽이다. 언젠가는 이곳에서 판결을 내려야만 할 순간이 올 텐데, 이 법정에는 어째서인지 재판관만이 홀로 서 있다. 법정의 선 누군가가 끝까지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혹은 설령 법정에 선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는 폐정을 위해 어떻게든 판결을 내려야 했다. 미카가미의 표정이 짧은 찰나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내일이다. 내일 미츠루기 레이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그가 어떤 이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재판관은 불안인지 기대인지 모를 것으로 살짝 고양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심의실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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