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빠진 인간의 무게 上

동아리 글쓰기에 미완으로 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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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난 말이야, 달을 보고 싶어.”

보름달이 유독 크게 뜬 날이었다. 맥이 드물게 정원에 나와서 책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린 날이기도 했다. 어린 도련님보다 더 신나서 뛰쳐나온 진은 뭐에 홀리기라도 했는지 한참을 풀밭에 가만히 앉아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차갑게 쏟아지는 달빛이 얼굴에 흑백의 경계선을 그렸다. 진이 목에 맨 노란 스카프가 바람에 휘날렸다.

맥이 읽던 책을 내려놓고 말했다.

“지금 보고 있잖아.”

“맞아. 그런데 그 말이 아니야. 나는 낮에도 보고 싶어.”

“낮? 그건 무리야. 달은 밤에만 뜨는 거야, 진.”

“왜?”

진이 밤하늘에서 눈을 떼고 맥을 바라보았다.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묻는 그 눈은 주변의 빛을 반사하여 순진무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맥이 나무 테이블 위로 엎드렸다. 동그란 안경과 뻗은 팔 사이에 눌린 흰 뺨이 막 녹기 시작한 치즈처럼 톡 튀어나왔다.

“달은 사실 빛나는 게 아니거든. 태양 빛을 반사할 뿐이야.”

“그렇지만 지금은 태양이 없는데?”

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그러자 맥은 짧게 한숨을 쉬더니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 본격적으로 설명할 자세를 잡았다. 기껏해야 열 살 남짓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자기보다 몸이 훌쩍 큰 이에게 잘난 듯이 가르치는 모양새였지만, 선생 노릇을 하는 아이도 학생이 된 보호자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태양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어. 다만 밤이 되면 우리가 있는 위치에서 태양이 보이지 않을 뿐이야. 달은 계속 태양 빛을 반사하고는 있지만 태양이 너무 밝아서 낮 동안 보이지 않다가, 태양이 없는 밤이 되면 그때가 되어서야 우리 눈에 보일 뿐이야.”

“와, 정말? 맥은 모르는 게 없구나. 정말 똑똑해.”

“별것도 아닌데…….”

진이 웃으며 말했다. 맥은 약간의 창피함과 다소의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두 뺨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황급히 책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내용을 읽는 척 의미 없이 좌우로 눈을 몇 번 굴리다가 슬쩍 책 너머로 시선을 올렸다. 어느새 진은 다시 새까만 하늘에 박힌 노란 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낮에도 달을 보고 싶어.”

“그러니까 안된다니까.”

“응, 이제 알아. 맥이 알려줬잖아. 그래도 말이야, 언젠가 내가 더는 밤을 걷지 못하게 되어도, 그래도 달을 볼 수 있다면…….”

마지막 말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말이라기보단 혼잣말에 가까웠다. 맥은 진이 이어서 말하길 기다렸지만, 진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커다란 달을 올려다보며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있을 뿐이었다. 맥은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갑작스러운 기능 정지’인 것일까? 간혹 뉴스에 나오곤 하는 이들처럼 진도 아무런 이유도, 예고도 없이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일까?

“저기, 진…….”

망설이던 맥이 의자에서 풀썩 뛰어내렸을 때였다. 튕기듯 벌떡 일어선 진이 달빛을 등지고 맥을 바라보았다. 역광이었지만, 방금까지 우주의 조각을 담고 있던 눈은 여전히 밤하늘을 품고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맥이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빛이었다. 치맛자락에는 여기저기 흙이 묻어 있고 머리카락은 바람에 마구 헝클어져 있었지만, 맥의 눈에 그런 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달빛을 닮은 미소였다.

“그렇게 되면 매키가 찾아주지 않을래? 낮에도 달을 보는 방법을.”

2

“……그래서 딥스카이에는 성운, 성단, 은하가 존재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성단은 별들의 집단이고, 성운은 성간물질입니다. 기체와 고체 미립자로 되어 있죠. 은하는 별과 성운과 성단이 모여 있는 집단으로……”

서른 명 남짓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강의실 안은 한 사람의 목소리만 빼고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풀벌레 우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저 멀리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드로이드에게 투표권을! 휴머노이드에게 투표권을!”

연단에 선 맥클레인 와이즈먼 교수가 창밖을 힐끔 내다보았다. 어른 키만 한 교문 담장 너머로 노란 어깨띠를 두른 무리가 얼핏 보였다. 최근 대학가를 타깃으로 연일 시위를 벌이며 급부상한 시민 단체였다. 제법 소란스러웠지만 벌써 몇 번이나 보는 광경이었기에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감하게 시선을 되돌린 맥클레인 교수가 허공에 손짓했다. 연단 옆에 띄워진 홀로그램 우주가 크게 확대되었다.

“이것이 방출 성운 중 하나인 고양이눈 성운입니다. 이 성운의 독특한 점은 죽어가는 별인데도 천 오백 년마다 가스가 새로 방출되었단 것이죠……한때는 이 비밀을 풀면 별이 죽어가는 마지막 단계를 알 수 있을 거라고……그러나 삼십 년 전 독일의 아이젠하워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맥의 연구실은 학교에서 가장 낡은 건물에서도 가장 비좁은 복도 끝에 있었다. 맥의 지도 학생들조차 오고 싶지 않아 하는 곳이건만, 오늘은 간만에 손님이 찾아왔다. 맥은 방금 막 ‘쉽게 알아보는 천문학’ 강의를 끝내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문 앞에 꼿꼿이 서 있는 그림자를 보자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던 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가 뛰다시피 걸음을 재촉하며 외쳤다.

“진!”

“안녕, 맥.”

빙글 몸을 반 바퀴 돌려 맥을 마주한 진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세월이 흘러도 진의 모습은 언제나 맥이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손에 낀 하얀 장갑은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나머지 것들, 이를테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조금도 타지 않은 흰 피부라든지, 늘 같은 길이인 검은 머리카락이라든지, 목에 맨 노란 스카프라든지 하는 것들은 변함이 없었다.

“지금 강의 끝난 거야? 고생했어. 자, 여기 너희 집 보안 키.”

“진도. 진이 우리 집에 ‘출장’ 오는 게 오늘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네. 알았으면 기다리게 하지 않았을 텐데.”

“아냐, 난 오히려 좋았어.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산책했거든. 알잖아, 내가 바깥에 나온 지 오래되었다는 거.”

“참, 그랬지. 그나저나, 지니 씨가 다녀간 우리 집은 좀 깨끗해졌어?” 어깨를 으쓱한 맥이 화제를 돌렸다. 소년 시절로 돌아간 듯 장난기 어린 목소리였다.

“음, 1층부터 2층까지 청소는 모두 끝냈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빨래도 전부 널었고, 맥주밖에 없는 냉장고에 먹을 것도 채웠고. 남은 건 와이즈먼 교수님이 집에 가서 푹 쉬는 것뿐이네.”

“역시 진이야. 과연 와이즈먼 저택에서 이십오 년을 버틴 고용인다워.”

“별말씀을요. 오늘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진은 과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진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맥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발작적으로 터진 웃음이 가라앉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맥이 호흡을 정돈하는 동안 손목의 모니터를 힐끔 본 진이 말했다. 조금 전까지 웃음이 터져 있었다고는 생각도 못 할 만큼 정돈된 기색이었다.

“맥, 난 이제 가봐야 해. 배터리 잔량이 아슬아슬해. 설마 매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다 닳아 버리는 건 아니겠지?” 진이 농담조로 말했다.

“벌써? ……그래, 조심히 가. 다음에 보자.”

“응, 다음에 또 봐.”

진은 처음 인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맥을 지나쳐 걸어 나갔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일정한 속도였다. 맥은 부지런히 걷는 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지금은 고작해야 오후 네 시였다. 진은 오전 일곱 시에 활동을 시작한다. 아무리 오늘 출장 서비스 때문에 평소보다 많이 움직였다지만, 벌써 잔량이 바닥을 드러낼 리가 없었다.

진의 노란 스카프가 점이 되더니 이윽고 맥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맥은 진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몸을 돌려 연구실로 들어갔다.

진의 배터리 수명이 전에 없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진과 처음 만난 것은 맥이 여섯 살쯤 되었을 때였다. 그날은 맥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와이즈먼 저택에서 일하던 유모의 장례식이었다. 맥은 작은 체구에 꼭 맞게 지어진 검은 정장을 입고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나중에 듣기로 유모는 사고 상황에서 어린 맥을 감싸고 죽었다고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맥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었다. 실은, 너무 어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기억할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인지 맥은 유모의 장례식 날 이전에 일어난 일은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맥의 기억은 온통 잘 다려진 검은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거대한 유모의 사진으로 몰려드는 틈바구니를 벗어나 어머니와 함께 2층에 오르는 그 순간부터 또렷해졌다. 마치 그때부터 맥의 세계가 시작된 것만 같았다.

그날, 맥을 데리고 2층으로 온 어머니는 맥에게 이렇게 말했다.

“맥, 네 방을 열어 봐. 엄마 아빠가 주는 선물이란다.”

그리고 맥이 문을 열자, 그곳엔 진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곳에 있던 것은 ‘제니스’였다. 그것이 머지않아 진으로 불릴 이의 공식적인 이름이었다.

“안녕, 맥클레인.”

제니스가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맥은 겁먹은 얼굴로 와이즈먼 부인의 치마 뒤로 몸을 숨겼다. 맥은 제니스를 알고 있었다. 본 적이 있었다. 제니스는 페어웰 애비뉴 모퉁이에 있는 큰 백화점에서 파는 가정용 안드로이드였다. 와이즈먼 가족은 맥이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거나 크리스마스나 생일 같은 기념일이 되면 백화점으로 나들이를 가곤 했다. 가끔 그들은 정문 출입구가 아니라 맥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가게와 가까운 뒤쪽의 출입구로 들어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맥은 매대에 줄줄이 진열된 똑같은 생김새의 ‘제니스’를 지나쳐야만 했다. 얼굴도, 머리 모양도, 옷차림도, 심지어 자세조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이들이 한군데에 모여 있는 풍경은 어린 맥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그러나 동시에 자꾸만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맥은 안드로이드 매장 쪽을 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면서도 반대편 가게의 유리에 반사된 ‘제니스’를 힐끔힐끔 보고야 말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맥은 무작정 제니스를 피해 어머니 뒤에 숨어 있으면서도 이따금 제니스를 향해 시선을 두었다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다시 애꿎은 바닥이며 벽지만 흘낏댔다.

제니스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무릎을 짚고 몸을 구부려 눈높이를 낮추었다.

“안녕, 맥클레인.”

제니스가 다시 한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제니스가 몸을 낮춘 덕에 맥은 제니스의 얼굴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제니스가 웃으면 얼굴 피부에 주름이 졌다. 눈이 반달 모양으로 접히면서 눈가에도 주름이 생겼다. 망설임 끝에 내민 손을 잡으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약간 땀이 배어 나온 것도 느껴졌다. 맥이 눈을 크게 떴다. 제니스도 유모와 똑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맥의 곁에 있던 그 유모와 다를 바 없었다.

“안녕, 진.” 맥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 나는 제니스야.” 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정정했다.

“알아. 그렇지만 나는 널 진이라고 부를 거야.”

“왜?”

“왜냐하면,” 맥이 우물우물 말했다. “제니스는……모두 제니스잖아. 그렇지만 너는 내 제니스니까…….”

수줍음을 떨치지 못했지만 제법 완고한 말투였다. 진은 동그란 눈을 몇 차례 깜빡이다가, 이가 드러나도록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진이야. 잘 부탁해, 맥.”

 

4

몸통이 두꺼운 나무마다 푸른 잎이 빽빽하게 매달려 있었다. 두꺼운 이파리가 저들끼리 무리 지어 바람에 흔들리는 꼴이 마치 생명이 꿈틀대는 것만 같았다. 맥은 광장을 가로질러 정문으로 향했다. 고고한 가로수가 끝도 없이 펼쳐진 정원을 지나 커다란 조각상 몇 개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대리석으로 장식된 정문이 나왔다. 정문 앞은 노란 띠를 두른 시민 단체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몇몇은 자기네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고, 몇몇은 순진해 보이는 대학생을 붙잡아 수상한 명부에 서명하라고 시키고 있었다. 휴머노이드니 사이보그니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맥은 부러 인상을 쓰고 그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진이 페어웰 애비뉴의 백화점 1층 안드로이드 매장으로 돌아간 것은 벌써 5년 전의 일이었다. 어느 날 가정용 안드로이드 ‘제니스’ E031 모델을 회수해 가겠다는 메일이 오더니, 정말로 바로 다음 주에 매장에서 사람이 왔다.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안드로이드였을지도 모르지만, 맥으로선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는 일이었다. 눈앞에서 진을 내어주는 상황에 놓여도 맥은 일절 불평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안드로이드는 소장 구매가 아니라 대여 개념으로 판매되는 상품인 데다가, 제조사 방침상 만들어진 지 20년이 되면 무조건 회수하는 것이지만 와이즈먼 가에 대한 의리를 지켜 25년이 될 때까지 기다려준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진을 다시 데려가는 이유는 하나였다. 진이 제조된 지 25년이나 된, 안드로이드 시장에서는 골동품이나 마찬가지인 모델이기 때문이었다. 진은 가정용 구세대 라인치고는 오래 버틴 편이었다. 대개 만들어진 지 20년이 되면 배터리 효율이 현저히 떨어지는데, 진은 거기서 5년이나 더 충전 없이 내장된 예비 배터리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매장으로 돌아간 후 진의 연비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지금은 하룻밤 내내 충전해야 겨우 다음날 낮 동안 활동할 수 있는 지경이었다. 매장으로 돌아간 이상 진의 미래는 하나뿐이었다. 밤새 배터리를 충전하며 하루씩 겨우 연명하다가 다른 모델의 예비 부품으로 쓰이며 끝나는 것.

그러나 맥은 진의 생이 그렇게 끝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맥에게는 사명이 있었다. 맥은 십육 년 전에 약속한 대로 더 이상 밤을 걷지 못하게 된 진에게 달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사명이 있었다.

끼익. 쿵. 여덟 살 맥의 짧은 인생에서 들어본 적도 없는 굉음이 들리고 순간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잠시 후 천천히 눈을 뜬 맥의 앞에 펼쳐진 것은 예상했던 것과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방금까지 맥을 잡아먹을 듯 달려오던 하얀 자동차는 앞 범퍼가 찌그러진 채 맥에게서 이 미터 정도 멀어져 있었고, 진은 하얀 자동차에서 조금 떨어진 바닥에 누워 있었다. 진의 주위로 나사와 금속판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맥의 피와 내장 대신 진의 기계 부품이 마구잡이로 흩뿌려져 있었다.

문득 손바닥 아래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새끼손톱만 한 작은 나사가 파고들어 있었다.

“진!”

맥은 정신없이 진을 향했다. 다리가 풀려서 기어가야만 했다. 맥은 손가락이 몇 개 떨어져 나간 진의 손에 나사를 쥐여주었다. 그렇게 하면 자동으로 다시 진이 조립되기라도 할 것처럼 굴었다.

진은 맥의 노력에 보답하듯 상체를 꿈틀거리며 다가왔다. 떨어지기 직전의 팔을 뻗어 맥의 뺨을 쓰다듬었다. 인조 피부가 벗겨지고 열선이 뜯겨나간 금속체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진.”

맥이 울먹였다. 툭 치면 떨어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진이 얼굴에 남은 피부를 끌어 올려 맥을 안심시키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진의 눈은 맥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아, 맥, 저기 봐.”

맥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는 그 눈은, 맥이 이제껏 본 적 없는 압도적인 빛을 담고 있었다. 맥은 진의 시선을 따라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아주 커다란 달이 빛나고 있었다. 눈이 멀 만큼 샛노란 빛이었다.

진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달이 참 예뻐. 그렇지 않니?”

진.

너는 여전히 달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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