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E / 하루우츠

Ailesdor by 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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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우츠. 우츠기->하츠토리에의 사랑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 신에게서 단죄의 식물을 하사받은 지고 생명체 호스트 이소이 하루키 If 시공

1.

 

나보다 먼저 창조된 것이란 천사 이외 없었으니

나는 영원토록 남아있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희망을 버릴지어다.

<신곡> 지옥편 일부

 


 

굳이 그런 비유를 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밤의 폐건물 입구는 어딘가 뱀의 아가리와 꼭 닮은 것처럼 느껴졌다. 문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송곳니가 되고, 유리문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긴 복도가 목구멍이 된다. 따라, 우츠기가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는 것은 이소이 하루키로 하여금 몇 없는 그의 귀한 것이 뱀에게 삼켜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드물게 흰 주교복을 입으면 더욱 그러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양이 뱀에게 제 목을 들이미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우츠기 노리유키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 연구소에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이소이 하루키가 가장 잘 알고 있음에도.

그 모든 착각은 에노모토 노아의 가감 없는 표현을 빌리자면 광인이나 할 발상이었고, 이소이 하루키의 감상을 인용하자면 감히 대주교를 상대로 하는 생각치고는 퍽 불순하며 불경한 것이었다. 따라, 그것이 소리가 되어서 누군가의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도 형체를 갖춘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형체를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 빠져들 만한 가치가 없다는 말과 같지는 않아 소년은 제 아버지와 다름없으며 곧 그를 이끌어주는, 신의 사랑이니 세포니 하는 비현실적인 단어의 나열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그 사람을 생각하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하루키가 잘 모르는 어떤 남자를 비행기 사고로 위장해 죽여버렸다던 우츠기는, 신의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어떻게 묻어도 사라지지 않을 법한 일을 막힘없이 해나가던 그 남자는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무르다는 말이 절대로 어울리지 않았음에도, 그는 하루키의 상상 속에서는 뱀의 아가리에 들이밀어진 양이 되며, 사자의 울음소리에 몸을 낮추는 사슴이 되고, 늑대에 쫓겨 제가 가는 방향도 모르고 미친 듯이 달려나가는 토끼와 다를 바가 없었다. 따라, 우츠기 노리유키가 그 폐건물의 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복도로 걸어가는 광경은 이소이 하루키로 하여금 목이 바싹 마르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를테면,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바다 건너 중국의 철학자가 말하는 것과 같이 우물 속으로 떨어지려고 하는 아이를 건져 올리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마음이어서, 그는 그 시커먼 복도를 바라보며 늘 우츠기를 저 안에서 건져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 복도는 뱀이니까. 지옥의 뱀이 그러하듯이, 신뢰가 없음에도 신뢰를 가장하는 우츠기 노리유키를 언젠가 삼키고 찢어발길 송곳니를 가진 뱀이니까.

 

그는 어쩌면, 동경이니 사랑이니 하는 단어를 붙일 정도로 소년이 아끼는 단 하나의 것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 감정이야말로, 소년이 잠들지 못해 서늘한 복도에 앉아 안쪽을 향해서 눈을 번득이고만 있게 만드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소년은 그에게 주어지지 않은 감정까지 가지기를 원했던 것이고, 그 주교는 그에게 그것을 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우츠기 노리유키는 소년에게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굳이 말하자면, 소년을 연민했다. 그것은 소년이 가지는 감정의 종류와는 색도, 무게도 전부 다른 것뿐이라, 감히 옆에 가져다 두는 것이 소년에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색에 무딘 자라고 하더라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그런 채도의 차이로 선명하게 빛나는 것. 하루키라고 하여 몰랐을 리가 없다.

그가 소년에게 주고자 했던 것은 그의 어린 날에 가장 길고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던 음울한 박탈감과 같은 종류의 감정이 침범할 수 없는 유년기였다. 그리고, 우츠기는 그가 그것을 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핏줄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며, 핏줄만이 가지는 특권일 것이고, 그 무엇보다 하자로 가득 찬 인간이 해낼 수 없는 일임이 자명하기에.

그렇기에 우츠기 노리유키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는 소년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연민했고, 그의 아버지를 미워하며 증오하다가도 온전히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비참해지는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런 유년기를 다시 목격할 수 없었을 뿐이다.

이소이 하루키가 그것을 몰랐을까? 글쎄, 이소이 하루키는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는 소년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밤도 소년은 그의 친애하는 주교가 가로질렀을 뿐인 복도에 앉아 가만히, 그가 사라진 방향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 눈이 사랑하는 이를 삼킨 뱀을 태워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하루키가 무자비하게 사랑을 쏟고 있는 대상이 그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그 새카만 폐건물이라는 뱀에 언젠가 삼켜질 양이 그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닥에 닿은 피부를 통해 올라오는 한기에 온몸이 시려도, 그는 가만히 그만의 아버지요, 인도자요, 애정이라 부를만한 것을 부여해준 사람을 삼켜버린 뱀의 아가리에서 사랑을 갈구하며 기다리는 것이었다. 차라리, 이 뱀에게 같이 삼켜지는 것이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만한 근거가 될지 오래도록 고민하며.

그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어김없이 아침은 밝아오고, 저 멀리서 여명이 무엇보다도 그를 우울하게 침잠하게 만드는 유려한 연분홍빛으로 물들 때쯤이면, 우츠기 노리유키는 복도에 가만히 앉아 그를 기다렸노라고 무언으로 시위하는 소년을 향해서 바닥이 차니 일어나라는 종류의 말은 어떻게든 뱉어내고는 했다. 그러면 그것은 곧 보상이 되는 것이다. 차가운 바닥에서 아무것도 없이 그저 무언가를 싫어하며 보내기만 한 몇 시간에 대한 보상이.

 

그러면 그 말에서 소년은 우츠기 노리유키에게서 연민이 아니라 아주 얕고도, 그 어떤 이를 향해도 이상하지 않을 친애의 감정을 찾아 작은 행복의 단맛이 혀끝에서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러고서는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기울이고, 우츠기가 친애하는 작은 소년이 그러할법한 목소리로 물어보는 것이다.

아직도 저 건물에 볼일이 남으신 건가요?

그러하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안다.

저는 그래도 당신이 저 건물에 가시는 것이 싫어요.

 

우츠기는 웃었다.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날도 하루키는 그가 원하는 대답 대신 완곡하고도 단호한 거절을 손에 쥐었으며, 기다린 보람도 없이 본동으로 향하는 통로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감정이 들게 만드는 그 남자는 단지, 그 시커멓고도 차가운 복도에 하루키가 앉아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쫓아내려는 목적만으로 지하실에서 올라온 것이기에.

 

그 짙은 밤(夜)을 닮은 곱슬머리가 다시 뱀의 아가리 같은 건물의 입구로 사라지는 것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이소이 하루키는 그가 너무도 자주 읽어 이젠 암송할 수도 있는 신곡의 어느 구절을 떠올린다. 저 뱀의 주둥아리와도 같은 건물이, 그의 사랑하는 이가 향해야 하는 지옥의 문과 같이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츠기 노리유키로 하여금 천사와 더불어 불멸할 그 문을 지나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되짚어 볼 때, 아, 그 문은 결국 그에게는 불멸의 지옥이 아니라 사랑으로 통하는 길이 되는 것이니.

마찬가지로 이소이 하루키로 하여금 지옥의 문 앞에서 서성거리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두 음절의 그 단어였으니, 결국 고성소(古聖所) 아래 놓인 것의 이름은 지옥이 아니라 사랑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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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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