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
연예인AU
대기실은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서늘한 공기가 맴돌았다. 커다란 도구가방이나 의상을 개미처럼 짊어진 스타일리스트들이 분주하게 대기실을 오락가락 지나다니는 사이, 메이크업을 받는 메이블만이 영상을 멈춰둔 것처럼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무대가 코앞이니 바쁜 건 어쩔 수 없고, 딱히 도와줄 생각은 없었지만 만약 좋은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대도 ‘가만히 있으세요!!!’ 하며 모든 사들이 다급하게 말릴 것이 뻔했다. 아니, 이 어수선한 대기실 안에서 한 사람만은 골라 뺄 수 있겠다. 메이블의 옆에 서서 거울에 빨려들어갈 듯이 고개를 내밀고는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는 이 남자 말이다.
“우리 이렇게 바쁜 일상 속 둘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남자- 밀런을 메이블이 거울 너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밀런은 스프레이로 반쯤 고정한 앞머리를 0.1mm 단위로 밀거나 당기며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정말 손이 닿기는 한건가? 싶을 정도로 섬세한 움직임이었기에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것은 꼴값밖에 안되었다.
“누가 보면 당신이 가수인 줄 알겠어요?”
짧게 헛숨을 내뱉은 메이블이 말했다. 그러자 밀런이 슬금 눈을 굴려 거울 속에 비친 메이블과 눈을 마주쳤다. 밀런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대로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내가 당장 솔로로 서도 될 만큼의 외모긴 하지.”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는데.”
두 사람의 만담같은 대화는 이미 익숙한 풍경인지라 가뜩이나 바쁜 스탭들은 웃는 시늉 하나 안하고 두 사람 주위를 맴돌며 자리를 정리했다. 한쪽으로 땋아내린 머리카락을 다시 한 번 고쳐매는 것으로 드디어 스타일리스트들로부터 해방된 메이블이 조심스럽게 목을 꺾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밀런은 몸을 돌려 벽에 몸을 기댄 채 메이블을 곧장 바라보았다. 일부러 단추 하나 풀어둔 셔츠의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뻐기듯 입을 연다.
“그치만 들어봐. 오늘의 나는 너의 가장 빛나는 장신구가 되어야 한다고. 내가 잘생기면 잘생길수록 네가 더 돋보이기 마련이라니까.”
“당신이 없어도 이미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칠 정도로 예쁘거든요.”
“이걸 몰라주네.”
그야말로 자강두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로 자기 자신의 미모를 자랑하는 그들을 보며 결국 몇 명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저렇게 뻔뻔해야 무대에도 설 수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드는 시점이었다.
밀런은 오늘 자신의 목선이 얼마나 아름답게 빠졌는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다가, 어이가 쪽 빠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메이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고개가 닿을 듯이 아슬아슬하게 허리를 숙이는데, 키와 체격이 제법 큰 탓에 메이블의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질 지경이었다.
“네 허리를 감싸 받치고 이렇게 가까이 고개를 내밀면 딱 좋게 클립각이 잡힐 걸.”
“흐음.”
옅은 숨결이 메이블의 입술 위로 닿은 듯했다. 아주 짧은 침묵이 스쳤으나 메이블은 곧 입술을 비죽거린다. 밀런이 다가올 때부터 팔짱을 낀 채 ‘어디 뭐 하나 보자’라는 태도로 지켜보고 있던 메이블은 손을 내밀어 밀런의 코끝을 꾸욱 눌렀다.
“안무가 이렇게까지 가깝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연습 제대로 안 했나봐? 잘라버릴까?”
코가 눌리자 잘생긴 코가 무너진다며 엄살을 피우며 물러났던 밀런이 낄낄거린다.
“사장님이 나 좋아해서 안돼.”
“나 참.”
다시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잡담하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막내 스탭이 약 10초간 멈췄던 숨을 파핫 내쉬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메이블과 밀런을 번갈아 보았다. 마치 보면 안될 것을 본 사람처럼. 그리고는 슬금슬금 게걸음을 걸어 자신의 사수에게로 다가가 몸을 숨겼다. 그러자 사수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바빠죽겠는데 뭐야?”
“바, 방금 두분… 키, 키스하는 줄 알고… 두 분 진짜 사귀는 거 아니죠?”
열애설은 아이돌에게 가장 치명적인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하곤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걱정이다. 행여나 당사자들에게 들릴까, 쇳소리가 날 정도로 숨죽인 막내가 소곤거리자 사수는 맥빠진 얼굴로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연예계에서 일한다는 놈이… 뉴스 좀 보고 살아라.”
“예?”
“저 사람… 밀런 씨는 원래 모두에게 그렇게 하고 다녀. 전부터 어그로 끌기로는 탑이었을 걸. 여기저기 인맥도 넓고.”
“헐…”
“메이블씨랑 저러고 노는 영상만 이미 100개는 넘었겠네.”
이제 가서 일해! 그렇게 호통을 들은 막내는 울상을 지으며 물러났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켜 검색을 시작했다. 밀런의 개방적인 행동거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좋게도 나쁘게도 유명했다. 자신의 아이돌에게 찝쩍거리지 말라는 악플은 이미 수만개를 넘어설 듯했고, 한편으로는 백댄서인 밀런과 합을 맞춰 과감한 무대를 선보인 장면들이나 연예인들과 격없이 노는 브이로그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추천 영상으로 뜨고 있었다.
막내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밀런과 눈이 마주쳤다. 다시 한 번 숨이 턱, 막힌 막내는 메두사라도 본 듯 꼼짝없이 얼었다. 밀런은 그런 막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흘끗 웃음을 흘리고는 언제 보았냐는 듯 고개를 돌려 자리를 떴다.
“…죽는 줄….”
막내는 마지막으로 ‘밀런 관심법’이라는 키워드를 검색창에 쳐 넣다가 사수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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