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즐겨요, 체류자들! 메리 크리스마스!

자관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버섯숲 by 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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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류자들의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뉴인치 가장 번화가 마트는 인간들 차지라 못가요. 하지만 이주자들 상대 마트는 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잔뜩 장을 보고, 가족들이랑 휴일을 즐겨야 하는 날이죠. 이주자 상대로 하는 마트는 365일 24시간동안 엽니다. 이주자 중에는 크리스마스에 낯설어하는 이들도 있고, 또 크리스마스를 반기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문화 다양성이 인간의 문화 다양성보다 훨씬 다채롭습니다. 그거야, 수많은 우주에서 모인 떨거지들인걸요.


여기 체류자들도 딱히 다르지 않습니다. 마이나데스, 쉬거, 8번째 실험체, 큰 정신의 아이. 말도 안되는 조합입니다.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라는 휴일은 똑같이 찾아왔습니다. 크리스마스란 그런 것이죠. 아기 예수가 가장 낮은 곳을 위해 찾아왔듯이, 이들에게도 축복과 휴식은 찾아옵니다.


“술은 사지마. 여기 마이나데스가 있잖아. 아, 그런데… 하… 이 케찹을 사야 하냐 저 케찹을 사야하냐…”

“값이 저렴한 걸로.”

“그런 건 내가 취급 안하지. J, 네가 좀 골라봐라.”

“저는 이 브랜드가 좀 더 취향이에요.”

“나도 고를래!”


시끌벅적한 가족입니다. 비록 한 명은 아들에게 버림받고, 한 쪽은 가문에서 제명 위기고, 한 쪽은 아빠들이 죽었고, 한 쪽은 자신의 창조자를 죽였을지라도, 이들은 일단은 가족입니다. 떨거지들, 모지리들, 위험분자들 전부 모였네. 그리고 첫 번째 크리스마스가 오네.


마트에서는 끊임없이 캐롤이 흘러나옵니다. 캐롤을 들을 때 마다 기묘한 기분이 들었었지요. 지금은 어떨까요. 아니, 아예 캐롤이 처음인 이도 있군요. 뭐든지 우리에게는 기묘한 처음입니다. 어쩌면 낡은 처음일지도, 아니면 아예 순수히 처음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하여튼간에 우리로서 맞는 처음의 축일이기에.


[뉴인치에 폭설이 내릴 예정입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예정인데요…]


마트에서 틀어놓은 뉴스 채널에서 눈 소식이 들려옵니다.


“H, 눈이 온다는데? 흠… 역시 내가 눈사람을 크게 만들고 칠면조를 다 먹어버리는 게 좋겠다. 너는 푸딩이나 먹어.”

“안돼! 나도 먹을거야!”

“J, 안됐지만 닥터 블랙은 칠면조따위 취급하지 않… 누가 세일하는 칠면조 카트에 넣어놨냐!!!”

“B이 넣으래서 내가 넣었어.”

“이럴 수가. 역시 이 아저씨를 마트에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시끌벅적하고 행복해보이네요. 행복하고 또 바보같습니다. 원래 행복한 이들은 생각을 많이 안하기 때문에 바보가 되지만요. 동치어일까요. 그런 논의도 여기서는 별로 필요없어보이네요.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보다도 얇기에, 이들은 감히 지금의 행복을 이야기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행복을 입 밖에 내지 못할지라도 즐길 수는 있잖아요. 축일인데. 아기 예수의 탄생, 가장 낮은 이들의 서커스에도 축복이 찾아오는 날이니까요.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데코레이션은 H가 하기로 했습니다. A이 굽고요, B을 J가 가두기로 했어요. 정말 기대되지 않나요. 적어도 미국식 버터크림이 끼어들 자리는 없군요. 그래서 초콜렛 펜을 잔뜩 샀습니다. 어느새 카트가 가득 찼네요. 그리고 빈 와인병을 하나 주워넣습니다. 이게 아마도 디오니소스의 축복이 되겠죠. B만이 술에 꼴아버리겠지만, 하여튼간에.


B의 낡은 차에 짐을 다 싣고 모두가 안전벨트를 맵니다. A도요. 그리고 넷은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집으로 향합니다. 폭설을 실은 먹구름이 잔뜩 다가오지만, 그 말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드물고 좋은 날이기에, 울지 말아요, 눈사람들. 곧 녹아버릴지라도… 


그러니까 행복을 즐겨요, 체류자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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