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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르나

For. E by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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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넓은 영웅의 일과는 하루를 두 배로 늘려도 끝이 없을 지경이었다.

일어나서는 자신의 연인이자 이제는 배우자가 된 에메트셀크와의 아침 인사를 나누고, 우호부족들을 만나러 에오르제아를 한 바퀴 돈다. 실프, 아말쟈, 사하긴, 이크살, 1세계로 넘어가 드워프와 픽시, 다시 돌아와 아르카소다라족까지 만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던전 행이다. 겸사겸사 길 잃은 어린양과도 같은 신입 모험가도 돕고, 대대적인 마물 처치 파티를 구인하는 글이 붙어있는 걸 보면 참여하기도 했다.

엘피스로 넘어가 지도를 열어 보물을 찾는 것도 일과 중 하나였다. 나쁘기로 소문난 영웅의 처참한 행운 덕분에 자잘한 재료들이나 얻는 셈이었지만. 적어도 길은 얻을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 외에도 제작을 하거나, 재료를 채집하거나, 집사를 보거나 하는 자잘한 업무들을 모두 끝마치고 나면 어느새 외출한 에메트셀크가 돌아올 시간. 그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만큼 르나는 그런 제 연인을 반기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일을 하느라 꽉 매어 놓았던 머리를 느슨하게 풀어 다시 묶었다. 옷은 좀 더 깔끔하고 편안한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일의 능률을 올리려 빠른 템포의 음악을 틀어놓았던 오케스트리온을 조정했다. 집사들까지 모두 돌려보내고 나서ㅡ이건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제 집사를 종종 못마땅하게 보니.ㅡ르나는 가만히 턱을 괴고 문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까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까지.

소형 집은 꽤 작은데 르나는 거기에 꾸역꾸역 복층 작업까지 해 놓은 바람에 에메트셀크가 들어가 있기에는 조금은 꽉 찬 감이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르나는 어떻게든 그런 그를 들여놓았다. 2미터가 넘거나 하진 않아서 집에 있으면 구겨져 있을 에메트셀크는 아니었지만, 키가 작은 편에 속하는 르나에게는 그런 에메트셀크마저 커 보였다.

“네가 작은거야.”라고 말하는 제 연인이 못내 짗궃었지만 이제는 익숙했다. 자신만 놀리고 자신만 귀여워하고 예뻐한다. 그것만으로도 그 장난을 기꺼이 넘길 이유는 충분했다. 날 사랑하니까. 그러니 장난스레 굴어주는 것이다.

에메트셀크는 장난을 잘 치는 성격도 아니고, 사랑스럽다는 말을 속삭일 정도로 천성이 다정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는 언제나 달콤한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고, 제 코를 가볍게 잡고 흔들며 장난스럽거나 짗궃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마주 웃거나 입을 맞출 무렵이면 그날은 아무리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금새 눈 녹듯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곤 했다.

하루 일과를 모두 마쳤을 때의 두 사람이 밤의 커튼을 치는 시간은 제각기 달랐다. 보통 가장 마지막까지 깨어 있다 눈을 감는 건 르나, 아침에 일어나 일과를 먼저 시작하는 것은 에메트셀크지만, 이따금 르나가 밤중에 일을 할 때는 르나가 아침의 커튼을 걷고 에메트셀크를 깨웠다. “여보, 일어나.” 흔들흔들, 몇 번 깨우며 속삭이다 보면 그 또한 일어난다. 가끔 더 자고 싶다고도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르나는 조용히 그의 품으로 들어가 에메트셀크를 꼭 끌어안기 마련이었다.

아침의 에메트셀크는 평소의 모습보다 조금은 더 풀어진 것 같아서, 르나는 남몰래 그런 에메트셀크의 모습을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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