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일 수밖에 없는
“후회 안 한다며?”
“누가 한대요?”
나를 뭐로 보고. 그렇게 투덜거리듯 바라보는 메이블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밀런은 ‘뺨이 퉁퉁 부었네’따위의 문장을 놀림조로 읊어대며 키득거렸다. 저 얄미운 콧대를 콱 깨물어버리면 조용해지려나. 메이블이 그가 자랑으로 여기는 높은 콧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목을 울리던 밀런이 말한다.
“아깝네.”
“뭐가요? 후회 안 한다는 거?”
좋아, 진짜로 물어버리자. 결심한 메이블이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며 입을 벌리자, 평소 같았으면 키스라도 하자는 거냐며 싱글거렸을 밀런은 고새 위협을 느꼈는지 자라처럼 목을 쑥 움츠리며 몸을 뒤로 기울였다. 거리가 가까웠으니 마음만 먹으면 밀런이 피하든 말든 그를 쫓아가 구멍을 내주는 것쯤은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메이블은 그렇게 하는 대신 뻗었던 몸을 제자리로 되돌리며 묻는다.
“설마… 그런 취향이에요?”
자신한테 고백한 사람이 후회하는 꼴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가늘게 눈을 좁힌 메이블이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모를 수가 없었다. 잠시 피신해있던 밀런이 오뚝이처럼 몸을 일으키더니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기를 잔뜩 매달았다.
“그럴 리가. 이번엔 사람 잡는 설마가 아니라서 다행이지?”
긍정했다면 한 대 얻어맞는 걸로 끝나는 걸 다행이라 여겼어야 했을 텐데.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밀런은 얼른 답을 토해내라는 듯 쿡 찌르는 메이블의 손을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아야, 아야. 엄살만 잔뜩 부리는가 싶더니 불시에 손을 내밀어 메이블의 손을 감싸 쥐었다.
부드럽게 휘감는 손에는 잡은 것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지긋하게 누르는 힘이 있었지만 아프지는 않을 테다. 그럼에도 억지로 벌린다면 굳이 가둬두지는 않을 것이다. 머무름을 스스로의 선택이자 권리로 남긴다.
“한 삼십 년쯤 연애하자 하려 했지. 누구 하나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지겹도록.”
밀런의 눈이 초승달처럼 얇게 휘었다. 호선을 그리는 입 틈새로 날 선 이가 언뜻 비쳤다. 흉흉하게 빛나는 눈동자로 메이블을 응시하며 쥐고 있던 메이블의 손을 끌어와 그 손등에 입술을 붙인다. 쪽, 소리가 나도록 입술을 맞부딪히는 모양새가 짓궂을 만큼 장난스러웠다.
고백을 거절하며 사과를 건넸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건만, 사랑이라는 문자가 들어간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이 남자가 과연 무슨 속셈을 지녔는지.
“그렇게 하면 후회 같은 것도 안 남지 않을까.”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웃겨. 삼십 년은 무슨. 한 삼 년이면 질리겠죠. 당신이 말이야. 아니, 그것도 길다. 삼 개월?”
삼십년이라는 세월은 시간이 멈추었던 때에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몰라도 남들과 다를바 없어진 그들에게는 하나의 삶이고 세월이었다. 밀런이 진심으로 그 모든 시간을 바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인가? 그럴리 없다. 만약 정말로 연애를 시작한대도,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믿는 그답게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헤어짐을 입에 담을 것이다. 메이블이 말한 대로. 먼저 질리는 쪽은 누가 봐도 밀런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농담이다. 농담일 수밖에 없게 하는 쪽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럼 삼개월은 할 수 있나 보지. 누가 하는 말씀인데 아무렴.”
다정하게도 말한 밀런이 메이블의 손등에 한 번 더 입술을 붙였다. 거스러미가 일었는지 까슬거리는 감촉이 손등에 닿는다. 차라리 이대로 입을 막아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사랑은 죄 잘 꾸며진 거짓투성이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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