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2차

[금룡송백] 逸失 : 일실

[逸失 : 일실]

 


“후우…….”

거친 숨을 뱉어내는 사이로 누군가가 언뜻 스쳤다. 그 순간 잔뜩 모아져있던 집중력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금룡은 벌써 몇 개째 해먹었는지 모를 목검을 내려뜨렸다. 잔뜩 예민해진 시선은 방금 전 지나간 인영을 뒤쫓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움직이곤 하는 것은, 아마도 그날 이후부터 였을 것이다. 지워지지 않을 패배의 낙인을 새기게 된-, 종화지회의 날.

그에게 처음으로 패배를 안겨준 대상인 화산의 작은 용을 매일같이 곱씹으며 날카롭게 칼을 벼려가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할 일이었는데, 이따금 다른 것이 불쑥불쑥 눈에 들어설 때가 있곤 했다. 꼭 지금처럼.

걷는 등 뒤로 길게 늘어진 끈이 시선을 끄는 탓일까? 사냥감의 꼬리를 뒤쫓는 시선처럼 그렇게 쫓아가게 되는 것이다. 어느샌가 금룡은 목검을 내려둔 채 그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렇게 다다른 시선 가운데에 항시 받듯하게 선 이가 자리 잡고서야 금룡은 무의식에서 자신을 찾을 수가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것을 깨달은 눈이 한차례 찌푸려졌다. 뒤늦게라도 다시 돌아가도 될 것을, 의식한 이후엔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여 그러질 못했다. 누가 보아줄 이도 없건만 항상 몸가짐 하나만큼은 흠잡을 데 없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이송백을 눈에 담고서야만 후회가 찾아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단정함조차 금룡은 아니꼽다고 여겼다. 자신보다 앞서서 패배와 망신을 겪고, 종남의 이름을 실추시켜 사문에서 입지가 고립되기 시작했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담담하기만 한 그 모습은 정말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으니까. 어느 누구보다도 말간 낯을 하고선, 그는 모두가 옳다 믿는 것을 부정하며 제 갈 길을 고집하곤 했다. 그러니 미움을 사는 것임을 모르진 않을 텐데도. 꿋꿋하게.

문제는 금룡은 그런 사제를 수용해야 하는 이라는 것이었다.

문파란 수백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그런 곳에서의 대제자란 좋고 싫음을 떠나 모두를 수용해야만 하는 위치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금룡에게 있어서 이송백은-, 단순히 ‘맞지 않는 이’라고 적어내릴 수 있는 사제가 아니었다.

금룡은 사문이 길을 정하면 그 길이 옳다고 증명해야 하는 이였는데, 참으로 모나게도-, 이송백은 그 길이 틀렸다고 온몸으로 반증하는 이였다. 그가 실제로 그렇게 외친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의 검을 꿋꿋하게 펼치는 그의 고집스러움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틀린 표현은 아니리라. 모두의 입장에서도 이송백은 분란의 존재였고, 불편함의 상징이었다. 금룡에게는 더더욱.

그런데 어쨌거나 자신은 그의 사형이었고, 그는 자신의 사제였으니, 금룡은 이송백을 싫어도 수용을 해야만 했다. 정말로 원시천존이 제게 내린 시련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그의 머릿속 한켠에는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아졌다. 어쩌면 화산의 당돌하고도 오만하던 그 아이보다도 더.

금룡은 그의 사제가 보이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는, 문가에 어깨를 기대섰다. 어디 얼마나 제 길이 옳기에 저러나 보자, 하는 비뚤어진 심보였다. 이는 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마음마저 하해와 같다면 어찌 사람일 수 있으랴. 금룡은 제게 그런 너른 마음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한결같은 고집스러운 검의 산물답게도 검로는 아까부터 하나의 선만을 그리고 있었다. 검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기본적인 내려치기였다.

금룡은 그 지겨운 반복을 복잡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저 쉽고 간결한 내려치기에 빈틈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곤 눈을 더욱 찌푸렸다. 아까 내려두고 온 목검 대신 손안에 감겨드는 애병을 느낀 금룡은 일순간 치미는 충동을 억눌러야만 했다.

울컥하니 충동이 인 것에 조금 늦게 불쾌함이 차고 올라왔다. 저 별것 아닌-, 아니어야 할-, 검을 보며 어그러뜨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저 검이 무어라고. 이송백이 무어라고.

금룡은 제 비뚤어진 심보를 깨달으며 하-, 기가 찬 숨을 흘렸다. 이송백이 휘두르는 검을 더 보고 있다간 정말로 이성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금룡은 기대어 서있던 문가에서 돌아섰다.

그런데 서 있던 곳에서 두 걸음이나 벗어났을까?

“사형?”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르던 송백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 소리는 저를 부르기 위함이라기엔 너무도 작았기에, 금룡은 마치 지나는 길이었던 것처럼 듣지 못한 척 흘려버렸다. 돌아봐서 할 말도 없거니와, 그와 사이좋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상상만으로도 불편하기만 한 탓이었다.

등 뒤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금룡은 그가 제게 할 말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갑작스럽게 피로가 느껴져 금룡은 피곤한 눈꺼풀을 감았다. 감은 눈 사이로도 그가 휘둘렀던 검의 궤적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검을 그려내던 진지한 얼굴 또한. 불안한 그늘 한 점 없던 그 표정도.

금룡은 다시 눈을 뜨고선 정원을 꾸며놓은 소나무를 바라보았다. 소복이 쌓인 눈 사이로도 푸른 잎을 빛내며 굳건하게 서있는 것이 유달리 눈에 밟혔다.

어딜 가나 이러니, 역시나 이송백은 불쾌하고-, 싫은 사제였다.

 

*

 

진금룡은 자신이 너그러운 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대사형으로서 사제들에게 부러 인자하게 대해주긴 했으나, 그것이 선을 넘는 호의가 되는 일이 전무한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종화지회 이후론 날이 설대로 서, 내도록 유지하던 가면을 덧쓰는 것조차도 마음에 부치다는 것을 은연중에는 깨닫고 있었다.

문제는 이송백의 앞에선 유달리도 더더욱 날이 선다는 것이다. 비단 그의 사제가 튀어나온 모서리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더 고민해보자면-, 평소 저를 따르던 사제들 중 하나였을 뿐인 그가 그날을 기점으로 제 울타리 안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리라. 본디 너그러움이란 제 울타리 안의 것들에게만 내려주는 강자의 여유가 아니던가. 그런 이유로 울타리 밖으로 벗어난 사제에게는 태도를 정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가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자각이 든 것은 최근의 일이다. 처음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랬기에 깨달았을 때, 진금룡은 처음엔 어이를 상실했으며, 그다음으론 화가 났다.

생각해 보면 이송백은 그의 선 밖을 벗어난 두 번째 인간이었다. 첫 번째의 영광은 그와 절반의 피가 동일한 동생이 가져갔으니까.

그래도 그의 동생은 아주 어릴 적에 제게 패배하고 또 패배한 것에 기인한 치기 어린 마음으로 제 울타리 밖을 벗어났던 것이라고 쳐도-, 이송백은 도대체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왜 이 나이에 굳이 보장되어 있는 확실한 길을 두고도, 모진 시선까지 견뎌가면서 과거의 길을 고집하는지. 치기 어릴 나이도 지났고, 세상을 알만큼 알 나이가 아닌가. 제자를 받을 수도 있는 나이에 후퇴를 선택해버린 사제의 걸음을 보며 진금룡은 눈살을 찌푸렸다.

알 수 없는 놈.

심지어 과묵하다시피 말주변도 없는 사제라 더더욱 그랬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인지. 금룡은 가끔 저 담담한 면상을 보고 있노라면 후려쳐서라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캐묻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 정도로 요즘의 이송백은 눈에 거슬렸다.

 

*

한무리의 사제들이 쭈볏거리며 제게 몰려왔다. 수련이 끝난 직후이니 아마 저마다의 성취를 논하고자 하는 것일 터였다.

“사형.”

사제의 조심스런 부름에도 금룡은 잠시 대답을 미루곤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두리번거렸다.

“저-, 사형?”

재차 부르는 음성에야 정신이 들었다. 또였다. 이번에도 의식 없이 긴꼬리를 눈으로 찾던 것이. 그 습관과도 같아진 행위를 깨달은 순간, 머리가 지끈 울려와 금룡은 미간을 잠시 짚으며 눈을 감았다.

나름대로 방금 전의 행동에 변명을 주워삼켜보자면-, 당장 2년 전만 하더라도 이송백 또한 이 무리 어딘가에 있었던 탓이다. 이송백과는 편하게는 아니어도 종종 서로의 무학을 논하곤 했고, 아주 가끔은 서로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다른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장로님의 눈에 들 정도의 기재라곤 해도 금룡의 눈엔 고만고만한 사제들 중 하나였을 뿐인데-. 어느 순간부턴 울타리 밖 저 멀리서 홀로 고민하고, 홀로 수련하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아니면 무언가를 찾아낸 것처럼-. 그렇게 부유하고 있었다.

“사형, 죄송하지만 검을 보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청하는 질문에 금룡은 잠시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사제를 내려다보았다.

“그, 바쁘시면……, 종사형에게 가겠습니다.”

“그럴 것 없다. 봐주마.”

그러자 감사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제는 검을 잡고 자세를 취했다. 검을 휘두르는 사제를 보던 금룡은 이것이 당연한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검으로 반원을 그리며 한 바퀴 돌아 빠르게 허수를 여러 번 덧그리는 동작 사이로, 저 멀리 이송백이 검을 크게 한번 긋는 것이 보였다. 화려하게 몇 번이나 내려앉는 날과 달리 이송백이 휘두르는 검은 무척이나 투박했다. 그런데-, 어째서 저 단순하고 투박한 검이 더욱 시선을 앗아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금룡은 숨을 잠시 삼켰다. 순간이나마 호흡이 틀어졌다. 고작 화려함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송백의 간결한 검 때문에.

우스운 것은 깨닫고서도 시선을 떼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금룡은 뼈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었다.

“사형, 어떻습니까? 아직 가르침을 받은 만큼의 허초를 다 그리지는 못하지만, 저번주에 비하면 조금 더 나아졌습니다. 뒤를 도는 부분이 조금 더 빨라지면 나아질까요? ”

상념을 깬 것은 사제의 질문이었다. 금룡은 그제야 사제를 돌아볼 수 있었다. 세차게 휘두른 검 때문인지 약간 상기된 얼굴의 사제를 보며 금룡은 알 수 없게도 화가 났다. 이송백이 휘두르는 검에도 미치지 못한 검을 들고 온 것이 기가 막혔다.

“평가조차도 못하겠구나. 삼백 번은 더 휘둘러서 무엇이 부족한지 스스로 생각해봐라.”

쌀쌀맞은 대답에 사제는 충격받은 얼굴로 입을 벌렸다.

“……예.”

우울한 얼굴로 답을 하는 사제의 옆으로 검을 보아달라 청하려던 다른 사제들이 입을 딱 다물었다. 방금 전의 검은 자신들이 보기에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대사형의 눈에는 평가조차 못할 검이라니. 그런 눈앞에서 제 검들을 펼쳐보았자 쓴소리를 연타로만 맞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수련시간이 끝났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 쉬겠다고 돌아가긴 무리가 있었다. 사제들은 쉬는 것은 텄구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연무장을 향해 터덜터덜 돌아갔다.

금룡은 그것을 못마땅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허튼 짓일지언정 이송백은 열과 성을 다해 저리 검을 휘두르고 있는데-. 한순간의 시선을 사로잡아버릴만큼 완벽에 가까운 검로를 떠올린 금룡은 이를 사리물었다. 누가 무어라 한 것도 없는데 괜스레 자존심이 깎여져 나갔다.

이송백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저를 흠집 내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

 

*

 

쌓이고 쌓여왔던 것이 툭 터진 것은 하필이면 저나 이송백에게 있어서 중요한 기점일 때였다.

종화지회 이후로 썩어가는 고름처럼 망가져 가는 것이 보이던 사마승 장로가 기어이 일을 치려는 모양인지 이송백을 달고 가는 것을 우연찮게도 목격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어떻게 그 순간을 목격할 수가 있었는지. 좋지 않은 쪽으로 변해버린 장로를 혹시 몰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송백을 자꾸만 쫓게 되던 자신의 불쾌한 습관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만 들을 생각이었지만, 결국 금룡은 장로가 선을 넘는 구간에서 망설임 없이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2년이 넘도록 무시당하고 비웃음을 사는 그 긴 시간 동안에도 한 번을 흔들린 적 없었던 이송백이, 처음으로 절망과 혼란에 뒤덮인 눈을 보인 것이 너무도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양심을 자극이라도 하듯이.

진금룡은 이송백이 무너지는 것을 원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선택한 길을 이송백이 다시 인정하는 과정이었지, 이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바란 적은 없었다.

사마승 장로가 이송백에게 강요한 일은 종남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한 것뿐만 아니라, 제가 걸어갈 길에 흙탕물을 뿌려놓은 꼴이었다. 해서-, 금룡은 무려 장로라는 어른을 상대로 그토록이나 맹렬하게 퍼부었다.

장로가 발을 떼는 것을 다 확인하고서도 금룡은 분이 가시질 않았다. 그대로 화를 삭이며 뒤돌아 갔어도 됐을 텐데. 기어이 이송백은 제 눈길을 한 번 더 잡아끌었다.

“사형…….”

그리 중얼거린 얼굴이 비 맞은 개보다도 처량맞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는 이 일로 종남이라는 이름에 크게 실망했을 터였다. 자신도 이토록 분노가 치미는데-, 2년여간의 일까지 떠올리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사실 그랬어도 자신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을 텐데, 금룡은 그것이 자신의 이름에 흠집이 나는 것과 똑같다고 여겼다. 완전히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 자리 잡은 제 동생처럼-, 어쩌면 이송백도 울타리 밖으로 완전히 벗어나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속이 답답하니 분노가 꺼지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송백은 자신이 품어야 할 사제였으므로.

“장로님을 비난할 생각은 하지 마라.”

고개를 드는 이송백을 보며 금룡이 장로를 대신해 변명을 했다.

“사람의 여유는 곳간에서 나오는 법이고, 무인의 여유는 무학에서 나오는 법이다. 평생 믿어 왔던 문파가 흔들리는데 제정신을 유지할 이가 얼마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하는데, 문득 아주 오랜만에 그에게 날이 서지 않은 채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지금에 와선 기억도 잘 나지 않는 한때처럼. 어쩌면 일방적으로 이리 가르치는 것처럼 말하는 꼴이 삼대 제자 시절 같기도 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빤히 쳐다봐오는 눈이 꼭 그런 기분이 들게 했다. 금룡은 그것이 어딘지 심경을 복잡하게 만들었기에 그를 더 마주 보고 있기가 싫었다.

장로님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답을 듣자마자 금룡은 그걸로 됐다며 몸을 틀었다. 그에게 더 이상 할 말 따윈 없었다. 그랬는데-.

“사, 사형.”

또다시 그가 저를 붙잡았다.

“절 도와주신…….”

“착각하지 마라.”

그가 하려던 말이 정확히 끝을 맺기 전에 금룡은 그것을 차갑게 끊어버렸다. 속내가 뜨끔하니 아까보다도 더욱 불쾌한 감정이 치고 올라온 탓이다. 금룡은 이 감정의 이유를 구구절절 이송백에게 쏘아붙이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 실망인지 뭔지 모를 감정의 빛이 스치는 것이 보였다.

금룡은 주먹을 꽉 쥐었다. 또 저 비루먹은 개 표정. 어디까지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들 셈인가. 금룡은 차라리 이송백이 제 앞에서 웃는 것이 덜 불쾌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 탓에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는데, 그러고나니 잠깐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금룡은 그에게 말을 망설이는 것이 또 한 번 자존심이 상했다. 저놈이 뭐라고 자꾸만 이러는지. 금룡은 머뭇거림을 멈추고 기어이 속에 품었던 생각을 뱉어냈다.

“나는 네놈이 싫다.”

이송백의 얼굴이 잠시간 얼어붙듯 굳었다. 생각지 못한 수치를 입은 것 같기도 했고,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묘하게 방금 전보다도 더 처량맞아 보였다.

그런 이송백을 보며 금룡이 차갑게 말했다.

“하나, 네가 싫다 해도 너는 나의 사제고 나는 너의 대사형이다. 사제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은 나의 당연한 의무다. 좋고 싫음을 떠나 네가 위기에 처한다면 나는 응당 너를 보호할 것이다. 그게 종남의 장문인이 될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니까.”

그래. 이송백 그는 자신의 사제였다. 그가 싫다 할지라도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쌓였던 말을 퍼붓듯이 쏟아낸 금룡은 더는 이송백을 쳐다보지 않고 몸을 틀었다. 냉정함을 넘어서서 고집스러울 정도였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인정하기는 싫었다. 이미 이송백을 상대로는 충분히 자존심이 상했다.

 

*

 

가끔은 그때 뱉었던 말이 종종 생각날 때가 있었다. 후회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진금룡은 한평생 한입으로 두말을 해본 적이 없었고, 후회를 할 바에야 잊고 더 나아가는 길을 택하는 편이었으니.

그럼 왜 이토록 생각나곤 하는 걸까.

금룡은 가만히 생각에 잠겨보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답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 순간, 시야 한구석으로 나풀거리는 긴 꼬리 같은 끈이 스쳤다. 고개를 드니 저 멀리 이송백이 정연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금룡은 습관처럼 그를 쫓는 시선을 깨달았지만 과거와 달리 더는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폐관이 끝난 후에 찾아온 작은 변화였다.

‘나오셨군요.’

떠올리려는 것 대신에 폐관하고 나온 후 그에게서 처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괜찮냐던가, 어떠냐던가. 그런 질문 따윈 없었다. 그저 당연한 것을 기다렸다는 듯한 말에 금룡은 어처구니가 없어 그간의 관계를 잊은 채 허, 하고 웃었더랬다.

금룡은 손안에 감겨드는 애병을 쥐고선 방금 전 이송백이 사라진 곳을 향해 걸었다. 곧 당연스럽게도 시야 한가운데에 새하얀 무복을 입은 그의 등이 자리했다. 언제나 반듯하게 곧추세운 허리와-, 당당하게 편 가슴은 종남의 무인으로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자세였다. 예전에도 지금에도.

검을 들고 자세를 취한 그를 빤히 보던 금룡은 문득 그를 부르고 싶어졌다.

“이송백.”

그러자 검에 집중하고 있던 시선이 깜짝 놀란 듯 금룡을 향했다.

“사형?”

“오랜만에 대련이나 하겠느냐.”

“예?”

아까보다 더욱 커진 눈의 반문이 돌아왔다. 종화지회 이후로는 그와 자신 사이엔 한 번도 대련이 오간 적이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할 반응이었지만, 금룡은 원래라면 아무렇지 않았어야 할 대화에 이런 호들갑스러운 반응이 돌아오는 것이 짜증이 났다.

“싫다면 됐다.”

“아, 아닙니다.”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송백이 다급하게 다시 대답을 했다.

“그리해주신다면……, 감사할 일이죠.”

멋쩍은 듯한 웃음과 함께 들린 선선한 답은 조금은-, 의외였다. 그렇게 하겠다는 답은 예상했지만 당황하거나, 사형의 부탁이기에 거절하지 못할 종류의 대답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금룡은 어쩐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조금 늦게 답이 나갔다.

 

*

 

퍼억-!

쾌속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한참은 느린 검이 강하게 치고 나갔다. 금룡은 송백이 막는 곳마다 강하게, 더 강하게 꿰뚫듯이 빈틈을 노리며 내리쳤다. 몰아붙이는 검에 송백의 얼굴에 힘겨움이 차올랐다.

벌써 한시진이 넘어가는 대련이었다.

뚫릴 것 같다가도 다시 팽팽하게 맞서오는 검에 금룡도 사실 지칠대로 지쳤다.

쾅! 쾅! 같은 자리를 내려치다, 돌연 검로를 틀어 비어있는 옆을 파고들어 보기도 했고, 그렇게 빈 옆구리를 막기 위해 앞이 뚫리면 장력을 날렸다. 하지만 장력 또한 이송백의 손에 막히고 제 앞에 틈이 생기면, 그런 틈을 타 반대로 송백의 공격이 날아오기도 했다.

그런 과정이 벌써 수십합째였다. 지긋지긋할만도 하련만, 금룡은 이토록이나 자신의 검에 어울리는 상대를 만나본 적이 없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하압-!”

대련 초보다 더욱 불이 붙어만 갔다. 다행인지 그것은 이송백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상기된 얼굴로 부딪쳐오는 것이 저와 똑같았으니.

금룡은 아까보다도 더욱 강한 힘을 담아 검을 쳐올렸다.

“읏!”

아까부터 힘이 빠져가던 송백은 순간 몰아치는 힘에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앞을 허물어뜨렸다. 금룡은 텅 비어버린 명치를 향해 검 끝을 찔러들어갔다. 검 끝이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틈만 남긴 채 멈췄다.

“…….”

“…….”

자신의 검의 위치를 똑똑히 본 순간-, 대련의 승리를 직감하기에 앞서 목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눈을 내려보니 송백의 목검의 날이 목에 아주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공격으로 전환하여 옆면이 비어버린 순간을 놓치지 않은 공격이 먹힌 것이다.

금룡은 숨을 잠시 멈추었다.

“……비겼군.”

인정하는 것이 못마땅했으나,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제 공격이 먹혔음을 깨달은 송백이 그제야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그 또한 숨을 멈추었던 모양이다.

“잘, 배웠습니다.”

그러며 포권례를 취하는 것을 가만히 보던 금룡이 납검을 하며 저 또한 포권례를 취했다.

“잘 배웠다.”

잠시 놀란 눈을 두어 차례 깜박이던 이송백이 환하게 웃으며, 예. 하고 대답했다. 알 수 없게도-, 그 순간 눈이 찌푸려졌다. 눈이라도 부신 것처럼.

 

*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금룡은 잠시 멈추어 섰다. 눈 내린 정원 한구석에 심어져있는 소나무가 눈에 띈 탓이었다. 눈이 조금 쌓여있는 소나무는 젖어있긴 했지만, 하얀 눈 사이로 푸른 잎을 생기있게 빛내고 있었다.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금룡은 아주 잠시 소나무를 감상했다.

“설중송백이라…….”

입 밖으로 내던 그가 문득 표정을 굳혔다. 송백. 그의 이름자와 같다는 것을 떠올린 탓이었다. 그리고 정원 한구석에 한결같이 자리하고 있는 소나무를 보며 불현듯이 한 가지 사실 또한 깨닫고 말았다.

잠시 멍하니 소나무를 보던 금룡이 하-, 기가 막힌 한숨을 흘리며 어이없는 듯, 허탈한 듯-, 웃음소리를 짧게 흘렸다.

이송백은 단 한 번도 그가 있던 곳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아마도 그때 이송백에게 구구절절 변명하듯 했던 말은, 실은 제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었던 듯싶다.

 

……혹여라도 이송백을 놓칠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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