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이설/검존이설] 他生之緣(타생지연) - 7. 사고무친
구화산으로 트립한 유이설
* 371화의 서술에서 드러난 설정들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371화의 대사를 직접 인용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렇게 표시)
* 급전개 주의, 개연성X, 무협알못
* 전개 상 이번 회차에는 모브 인물의 비중이 꽤 있습니다.
* 3월 5일 저녁 과소평가편 후반에 서술 추가/수정이 있었으니 이 이전에 본 분들은 다시 한번 보면 좋아요 (별 지장x)
* 사고무친(四顧無親): 사방을 둘러봐도 친척이 없다는 뜻. 어디에도 의지할 자가 없이 혼자인 상태.
“갑자기 점은 무슨 점이야? 내가 도산데!”
“싫으면 먼저 화산으로 돌아가.”
“…….”
유이설은 청명이 투덜거리는 것은 적당히 무시한 채 아이를 따라 나섰다. 떠들썩 했던 저자를 벗어나보니 조금 외진 곳에 다소 허름하게 지어진 천막이 있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여러명 드나들고, 두 사람의 차례가 왔다.
“딱 봐도 허접한데.”
청명은 계속 못마땅한 눈치면서도 성큼 성큼 들어가는 유이설을 따라 몸을 굽혀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작은 천막 안에 홀로 앉아있는 점술가는 제 몸보다 품이 큰 피풍의로 얼굴을 포함한 온 몸을 가린 채였다. 그러나 살짝 드러난 손가락은 그녀가 그다지 나이를 먹지 않은 소녀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점술인이 엉성한 티가 잔뜩 나는 어조로 말했다.
“두 분의 궁합이 궁금하여 오셨-”
“아뇨.”
“아 여기 돌팔이 같다고 했잖아, 내가!”
키가 여섯 자는 족히 되어보이는 무인의 격한 반응에 점술사가 순간 놀라 몸을 움츠렸다. 참다 못한 유이설이 뒷꿈치로 청명의 발을 콱 밟았다. 청명이 급히 발을 뺐다.
“혼나.”
“악!”
두 사람이 서로 가까이 선 채로 벌인 발재간에 허리에 찬 두 검이 서로 덜그럭거리며 부딪혔다. 그제서야 검을 발견한 점술사가 또다시 놀란 듯 흠칫하더니 곁에 있는 청명과 유이설을 데려왔던 아이에게 눈짓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찾아온 침묵 속에서 영문을 모르는 채 서있는 두 사람에게 점술가가 다시 질문했다.
“혹시 종남에서 오신-”
“화산.”
“대체 어디가!”
화산의 도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외출하여 생긴 참사였다. 이번 말엔 유이설도 내상을 입었는지 말을 끊고 윽박지른 청명을 굳이 혼내지 않았다.
졸지에 말 두 마디로 자신이 형편없는 점술사라는 걸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지만 점술사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그녀는 뜬금 없이 부산스러운 움직임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의 입구를 꽁꽁 싸맸다. 가만 보니 다리를 절고 있었다.
점술가가 뒤를 돌아 피풍의를 젖혀 청명과 유이설에게 제 얼굴을 보였다. 약간 앳되고 수척한 얼굴에 이제야 아물기 시작한 상처가 곳곳에 번져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시문령(施紋逞)은 사뭇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는 무인들에게 작게 속삭였다.
“협의지문 화산의 도사님들, 저의 행동이 갑작스러우나 부디 저를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천막의 바깥을 살피더니, 다시 천막 안의 자리에 앉아 앞 뒤 사정을 설명했다.
요약하면, 자신은 어느 마을에 의탁하고 살고있던 사고무친(四顧無親)의 낭인이었는데, 흑도인들이 그 마을을 약탈하고 자신을 잡아간 후 여러 지역에서 점을 치게 하여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원래 점후(占候: 하늘을 보고 길흉을 점침) 등에 관한 지식이 있던 그녀는 그들에게 잠시동안 꽤 괜찮은 돈벌이었으나 본래 점술사도 아니었던 자의 어설픈 재주이며, 시간이 지나 그녀의 능력이 쓸모가 다하면 언제 팔려갈지 모르는 처지라고도 덧붙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시동 아이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복식이 깨끗하며 칼을 찬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곳으로 데려와 달라고요. 서안이라면 종남의 문도들이 많을거라 여겼기에 도사님들의 소속을 오해했습니다.”
시문령이 사죄하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어조는 담담했고 그 말 또한 간결명료했으나, 연신 몸을 떨며 바깥을 살피는 것이 매우 불안정해보였다. 그녀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 난생 처음 본 자들에게 있는 힘껏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유이설이 멱리를 헤쳐 얼굴을 보이며 이야기했다.
“고개 숙이지 마.”
“염치 불구하나,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시문령은 유이설의 말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말에 힘입어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부디 저를 먼 곳으로 도망치게 도와주십시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이들에게서 잠시나마 벗어나기만 하게 해주신다면...”
간곡한 부탁이었으나 청명은 영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그건 좀 곤란한데.”
유이설은 그 말에도 그를 쏘아보지도, 그의 발을 밟지도 않았다. 그저 그에게 고개도 돌리지도 않은 채 나지막이 말할 뿐이었다.
“...외면할거야?”
“아니? 왜?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고?”
“?”
유이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회라니? 무슨 기회를 말하는 거지?
“그러니까 내 말은, 도망가게만 하는 건 곤란하다고. 그 놈들이 쫓아갈 거 뻔하니까. 배후 놈들까지 깨부숴 달라고 하는 거면 모를까.”
“...?”
“요즘 사파새끼들이 씨가 말라서 이제 아무 산에 들어가서 산적들이라도 이 잡듯이 뒤져야 하나 싶었는데, 이게 얼마만의 협행인지 모르겠네. 흐흐흐.”
유이설은 의외의 반응에 눈을 끔뻑였다. 그러고 보니, 100여년 전에는 사파가 유이설이 살던 시대만큼 강성하지는 못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았다. 화산이 강성하던 그 시절에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위상에 사파들이 성장할 수 없었고, 있던 사파들도 숨을 죽이고 살아야 한다고 했었지.
그와 덩달아 생각나던 사질의 말들도 있었다.
- 내가 살다 살다 사파 놈이 요주의 인물 소리를 듣는 걸 다 보고. 어휴.
- 이야, 살다 보니 사파 놈이 강자 소리를 듣는 날도 오네. 이래서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
듣고보니 진짜로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의 말이었던 것이다. 그냥 지나갔던 사질의 언행에서 전생의 궤적을 발견할 때면 유이설도 새삼 소름이 돋았다.
한편 시문령의 표정은 본능적인 불안과 공포로 물들어있었다. 그 얼굴에서 안도와 기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유이설이 의아함을 느낀 찰나, 두 사람은 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에 대응하여 검에 손을 올렸다.
천막을 뚫은 도(刀)들과 함께 무장한 자들이 희롱과 욕설을 지껄이며 시문령의 천막 안에 들이닥쳤다. 시문령이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거 시간 초과요. 우리 바쁜 점쟁이 너무 둘이서만 쓰시는거 아니요.”
“아무리 둘 간의 궁합이 잘 안 풀렸다 해도 애먼 우리 술사를 이리 길게 잡아두면 곤란하지.”
“궁합 안 봤다고!”
성을 내는 청명을 앞질러 유이설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유이설이 제 검을 검집에 넣는 동시에 사내들의 도들이 두세동강이 난 채 바닥에 흩어져 떨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이야기속에나 나오는 협객 같았다. 라고 시문령과 아이는 그리 기억했다.
“하여간 종남새끼들 빠져가지고. 아무리 변두리여도 그렇지 액면부터 흑도같은 새끼들이 서안에서 설치고 다녀도 모르네.”
“잘못했습니다. 악!”
청명의 주먹이 흑도인의 머리와 거세게 충돌했다.
“제대로 듣기나 하고 대답해. 너한테 한 말이 아니잖아, 새끼야. 우리 피해서 숨 죽이고 다녀야 하는 새끼가 이래 당당하고 자의식이 비대해서 어쩌려 그래?”
“예. 시정하겠습니다.”
“뭐 상관없지. 어차피 오늘 뒤질 텐데.”
“...오해십니다. 저희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옵고, 그저 돈이나 벌려고 이곳 저곳을 떠도는... 히이이이이익!”
“거짓말. 죽어야 고쳐.”
길거리에서 살짝 벗어난 땅바닥에 서너 명 정도 되는 흑도인들이 꿇어 앉아 있었다. 몇몇 행인들이 이를 보았으나, 그 사람들을 지키며 서있는 두 무인들의 기세에 못본 척 하고 지나가기 바빴다.
제압당한 사내들 중 한 명이 두꺼운 눈두덩이를 뒤룩이며 시문령과 시동 아이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두 아이는 움찔하며 유이설 뒤에 숨었다. 겁에 질린 시동 아이는 시문령의 피풍의 속에 들어가다시피 했고, 시문령은 뒤에서 유이설의 멱리 자락을 그러쥐었다.
움켜진 작은 손으로부터 두려움에 겨운 떨림이 느껴졌다. 유이설은 서늘한 검날을 빼들고 사내들에게 칼을 겨눴다. 제 목숨이 아까운 사내는 이내 시선을 땅에 떨궜다.
청명이 나란히 꿇어앉은 사내들 앞에 검등을 어깨에 올린 채 건들거리는 자세로 쪼그려 앉았다.
“어디보자, 내가 이래뵈어도 도사거든? 너희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번 맞춰보마. 너희, 사람 납치해서 팔거나 돈벌이로 부렸지.”
“…….”
“안 불면 한 명씩 혓바닥 잘린다. 순서는 내 맘대로.”
사내들의 눈들에 투명한 눈물이 맺혔다.
“그저 갈 곳 없는 이들 몇 명을 거둬서... 아아악! 예, 팔았습니다. 시문령이처럼 재주가 있으면 우리가 거두어서 돈벌이로 부려먹었습니다.”
청명이 들어올린 주먹을 내리고 다시 물었다.
“마을도 습격했지? 돈도 뺏고? 간 큰 녀석들.”
“그저 우리를 무조건 경계 하길래 설득을 하는 과정에서... 으, 으어어! 본보기로 한 채만, 한채만 털었습니다. 서안에선 안 그랬습니다. 여기서는 정말 장사만 했습니다... 나쁜 짓을 하긴 했지만, 장사꾼들에 더욱 가까운...”
“안 한게 아니라 못 한 거겠지! 꼴에 토벌당하긴 싫으니까 약탈은 아주 외진 마을에서만 안 들키게 교묘하게 했겠지! 장사같은 소리 하고 있네. 종남산이 가까운 서안에서는 갑자기 점쟁이 장사꾼으로 변신해서 바가지 복채로 노잣돈, 용돈 벌고 쏙 빠져나가고!”
아무리 사파가 약해지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강대해져 무인들이 척사(斥私)에 굶주린 시대라고 하더라도, 강호에 약자에 대한 억압과 범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되려 사파가 힘을 기르지 못하는 시기일수록 이렇게 적발되기 어렵게 작은 규모들로 물을 흐리고 다니는 녀석들은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했다.
마침 이렇게 눈에 띄지 않고 쫌쫌다리 자잘하게 몰려다니는 것들 때문에 관도 정파도 골치가 슬슬 저려오던 참이었다. 이런 속사정 때문인지, 사내들을 바라보는 청명의 눈이 더욱 빛났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잘 걸렸다. 이 깜... 끔찍한 새끼들아.’
사내들은 몸을 떨었다. 청명의 어조에서 가장 많이 느껴지는 감정이 분노와 개탄이긴 하지만, 거기서 중간중간 우러나오는 ‘반가움‘이라는 이질적인 감정 또한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청명이 이따금 자신들을 바라보며 쿡쿡 웃을 때면 등골이 서늘했다.
“그래서, 니들 어디서 온 놈들이야. 뺏은 돈은 어디다가 꿍쳐놨어, 안 불어?”
“…….”
유이설은 잠시 넋을 놓고 능숙하게 사내들을 심문하는 청명을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뒤를 돌아보며 사고라고 부를 것만 같을 정도로 그녀의 사질과 겹쳐보이는 광경이었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유이설은 자신에게 찰싹 달라붙은 시문령과 시동에게 눈을 돌렸다. 유이설에겐 일상 같은 일이었으나 이들에겐 다소 두려울만한 상황이라는 것을 미처 간과했다.
유이설은 두 사람을 진정시켜보려 했다. 보통 이런 것은 주로 백천이나 윤종이 먼저 나서서 하는 일이었기에 익숙하지는 않았다.
“이제 안심해.”
“고맙습니다. 덕분에...”
유이설은 사내들의 주의가 완전히 청명에게로만 간 것을 확인하고는 시문령과 아이에게로 돌아서서 담담하게 둘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이가 안심한 건지 문령의 피풍의에서 나왔다.
“문령 누나, 그럼 이제 돌아갈거야?”
“글쎄. 이렇게 된 거 영 노인께 인사를 드리러 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아니. 사등현 말고. 다시 미래로 돌아갈 거야?”
“…….“”
미래라는 말을 들은 유이설의 눈이 시문령과 딱 마주쳤다. 시문령이 멋쩍게 덧붙였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래라는 말은... 어, 그게... 말하자면 복잡합니다.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니 헤아려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시문령은 방금의 말을 대충 얼버무리려 했으나, 유이설은 그녀와 아이의 말을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시문령은 확실히 평범한 양민들과 달랐다. 행색은 매우 고달파 보이지만, 정돈 된 말투와 예법을 배운 듯한 몸가짐이 유이설의 눈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단정했다. 게다가 점후에 관한 지식과 재능이 있었다는 것 또한 보통의 낭인들답지 않고 비범했다.
언행만 보면 마치 잘 교육받은 규중처자(閨中處子)라 해도 자연스러운 시문령이 갑자기 이렇게 떠도는 사고무친의 처지가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유이설은 어떤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그 미래라는 게...”
“호남으로 가야 해.”
유이설이 시문령에게 말을 걸려 하던 그때, 흑도인 셋을 묻고 돌아온 청명이 상황을 설명하며 다가왔다. 어디서 줏어온 건지 모를 검은 천을 온몸에 칭칭 두른 채였다. 잘 보니 시문령의 천막에 쓰인 검고 두꺼운 천을 검으로 잘라 망토처럼 대충 두른 것이었다. 아이들이 온통 시꺼먼 청명을 보고 순간 흠칫거렸다.
“호남?”
“...사실 이 새끼들이 네 명이었는데 한 놈이 지네들 대가리한테 토꼈단다. 목적지가 호남이고. 거점도 대가리도 어엿한 사파새끼들 만난게 얼마만인지. 유이설 너는 애들 데리고 먼저 화산으로 가있어.”
유이설이 금방이라도 뒤 돌아 도주자를 쫓아 가려는 청명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나도 화산에 갔다가 따라갈게.”
간만에 헤집어놓을 사파 세력이 생겨 은근히 신난 청명의 얼굴에 바로 쌍심지가 켜졌다.
“뭐? 그건 안돼.”
“…….”
“이이이익...”
“…….”
“아오, 알겠으니까 그렇게 보지 말라고! 진짜 미치겠네.”
청명은 머리를 쥐뜯다가 천막에 쓰인 천을 북북 찢더니 또다시 급조한 망토를 만들어 건넸다. 그리고는 검에 있는 문파의 상징도 대충 검은 끈을 둘둘 둘러 가렸다.
“따로 가는 건 안돼. 갈거면 같이 가. 이거나 입어.”
유이설은 머뭇거리다가 청명이 준 것을 입어보았다. 급조한 망토인것 치곤 이상하게도 묘하게 잘 맞았다. ‘화산의 도사‘들이 순식간의 수상한 흑의인과 낭인 그 사이의 애매한 것이 되어버린 것만 빼면 말이다.
“...저기, 도사님께는 제, 제 피풍의를 드릴...”
“괜찮아.”
“...예.”
청명은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서안에 믿을 만한 데가 있으니까 거기로 데려다주마. 얌전히 잘 있으면 곧 사람이 와서 화산으로 데려가 줄테니 기다리고 있어. 화산이 너희들을 돌봐줄거다.”
“감사합니다. 저는 화산에 가면 도사님들의 사정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시문령이 순발력 있게 제 역할을 찾아갔다.
“말이 잘 통하네.”
청명이 유이설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착할 때까지 안 쉴거야. 노숙도 각오해야 해. 괜찮지?”
“괜찮아. 근데 위장은 왜?”
“나 또 멀리서 휘젓고 다니다가 주변에 매화검인거 들켜서 막 이상한 소문나고 그러면 사형한테 혼난다.”
“…….”
시문령과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매... 매화... 검...?”
“매와검?”
아이들의 동그래진 눈이 청명을 향하더니, 이젠 그들의 머리 위를 향했다. 누가봐도 지금껏 지켜봤던 청명의 행동들을 되짚어 보는 표정이었다. 천하에서 소림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강성한 명문도관, 대화산파의 제일고수가 일행에게 혼나고, 쌍소리를 하고, 흑도인들에게 거칠게 협박하는 모습을. 청명은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양민 아이들의 표정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에이씨... 화산 밖에서는 앵간하면 말하지 마라.”
한편, 유이설은 문득 어느 늦은 밤 장지 너머로 우연히 들은 대화를 떠올렸다.
- 사형! 대체 뭐가 문제인 건데요! 흑도는 패면 협행이라면서요!
- 말이 협행이지 이 새끼야! 얼마나 사정 없이 고문하고 두들겨 팼으면 매화검이 흑도 출신이라는 소문이 퍼지냐, 앞으로 나 없이 혼자 나갈때는 아무리 남을 도우던 중이라도 그 성질 자제 안 하면 회초리다. 할거면 당분간은 정체 숨기고 해!
유이설이 엿들은 청문의 말은 가감 없는 진심이었다. 청명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을 포기하느니 정체를 숨기고 자신답게 날뛸 것을 택할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되려 정체를 숨기라는 말은 매우 현명한 해결책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청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 유이설에게 입을 삐죽였다.
“...애들은 그렇다 쳐도 유이설 너는 왜 또 날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거야.”
“아무것도.”
유이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협행도 몰래 해야 하는 고달픈 매화검의 처지를 알게 된 두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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