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이설/청명이설] 타생지연他生之緣

[청명이설/검존이설] 他生之緣(타생지연) - 8. 동섬서홀

구화산으로 트립한 유이설

* 급전개 주의, 개연성X, 무협알못 

* 오늘도 처음 나오는 모브의 비중과 속사정들이 많습니다. 초반에 동상이몽 편 내용의 내막이 드러나니 잘 이해가 가지 않으면 4편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 씨피보단 진행을 위한 징검다리 회차

* 동섬서홀(東閃西忽):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빠르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양을 이르는 말.


"... ..."

검은 장삼을 입은 노인이 어느 허름한 지하의 거처에 들어섰다. 이를 보고 달려온 사파인이 그의 앞에 엎드렸다.

"얼마 전 수하들에게 호출 명령을 내렸습니다. 지금쯤이면 연통이 닿아 서안에서 돌아오고 있을테니, 부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리 걸음하게 한 것으로도 모자라 더 기다리라?"

"이번만은 저희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노인의 눈에 분노가 어렸다. 그러나 그는 음산한 살기를 흘리면서도 그저 뒷짐을 지고 돌아섰다.

'교(敎)에서 쫓겨나 이런 놈도 하나 어쩌질 못하고 잠자코 믿고 있어야 하는 처지라니.'

교가 설파한 진언의 해석에 의하면 천마 강림의 시기는 몇 십년 후이다. 그러나 한 교구의 생각은 달랐다. 

여채한(余寨悍)이 속한 십일 교구는 천마 강림의 시기를 십 년 안으로 앞당길 수 있다 주장하는, 교의 입장에선 이단(異端)라 정의되는 자들이었다. 교가 내세우는 예언의 해석에 불응하는 교구의 운명은 단 하나다. 주교를 포함한 교구의 모든 구성원들은 숙청되고 그 잔당들은 끈질긴 추격 끝에 도륙된다.

여채한이 있던 십일 교구는 결국 교의 숙청을 피해 온전치 못한 전력을 이끌며 중원으로 달아나,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하다가 청해에 터를 잡은 곤륜과 섬서에서부터 지원을 하러 온 화산에 의해 허무하게 그 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중원의 불신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청해에서 토벌당한 십일 교구의 몇몇은 사망하지 않고 중원에 숨어들어갔다. 비록 십일 주교는 여즉 심각한 부상에서 회복중이지만, 집법사자 여채한을 비롯한 극소수의 생존자들은 살아남아 어떻게든 재기할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이들이 죽지 않고 이전의 위치를 회복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의 천마재림을 앞당길 수 있다는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교의 진언을 수정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곧 강림할 천마에 관한 정보들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 

예언은 천마가 중원에서 재림할 것이라 했기에 그들은 구파일방에 눌려 숨을 죽이고 있는 중원의 사파세력들에게 은밀하게 접근했다. 이미 예전부터 교가 접근하여 결탁해온 녀석들이 다수였기에 접촉은 쉬웠다. 그러나 별 도움이 되는 이들은 없었다.

십일교구의 교도들은 마교 내에서마저도 이단이라고 낙인 찍힌 바람에 이런 미약한 문파들이라도 줏어다가 써야 하는 실정이라고 서로를 한탄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다르다. '회귀자'로 보이는 시문령이라는 계집이 다름아닌 이 조그마한 적융회(赤戎會)라는 사파인들 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에서 왔다는 이들 중 대부분은 그저 망상에 미친 광인들이었으나, 최근 수 년엔 그중 꽤나 일관적인, 심지어 천마에 대한 예언을 해내는 이들이 중원 곳곳에서 발견되어왔다. 미래에 대한 정보는 다른 문파들보다도 천마신교에게 있어 매우 중요했기에, 중원을 계속 정탐하던 마교는 지난 몇 해간 결탁한 일부 하오문의 정보망을 통해 미래에서 왔다고 주장하거나 그리 칭해지는 이들을 '회귀자'라 이름 붙이고 꾸준히 추적해왔다. 그러나 회귀자로 추정되는 이들 중 한 명인 시문령이라는 소녀의 존재는 마교보다 여채한이 먼저 알게 된 귀한 정보였다.

기실 지금껏 교에 데리고 온 '회귀자'들 중 팔 할은 광인이고, 나머지 이 할은 어느정도 이지(理智)는 유지하고 있으나 신체나 기억이 심하게 온전치 않아 예언자의 구실을 온전하게 하지는 못하는 자들이었기에 '회귀자 추적'은 마교에서도 반쯤 포기한 사업이었다. 따라서 시문령에게 마냥 큰 기대를 걸 순 없었지만, 이미 벼랑 끝에 몰린 여채한은 이 소녀를 추적하는 것에 사활을 걸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 계집이 사등현에 일어날 홍수의 시기를 정확히 예언해냈단 말이지?"

"예, 그 이름값으로 우리가 벌어먹은 돈이 얼마인데요. 저 그런데, 교에서 그 점쟁이 계집은 대체 왜 찾으시는 겁니까? 이리 비밀에 부쳐가며..."

"감히 교의 의지에 의문을 품는 건가?"

"... ...아닙니다."

"삼 일 주겠다. 불신자에게 더 이상의 자비는 없다."

여채한은 제 앞에 엎드린 사파인을 지나쳐 가 다시 지상으로 나가며 차갑게 일갈했다. 그 어조는 단호했으나, 그의 내면에는 불안과 걱정이 가득했다. 교의 추적을 피하며 교의 이름으로 사파세력들과 접촉하는 것은 많은 위험을 수반했다. 꼬리가 길면 잡히기 십상이거늘.

'어떻게든 천마의 재림을 앞당기기만 하면...'

마교, 천마에 대한 맹목적 충성으로 유지되는 집단이다. 비록 지금은 여채한과 십일교구가 변절한 배교자라고 손가락질 받더라도, 천마의 강림을 몇십년 앞당기는 것에 공을 세운다면 그런 사소한 불명예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었다. 그리고 여채한은 그것이 가능하다 믿었다. 만약 시문령이 제대로 된 회귀자라면 그녀의 예언은 강림을 앞당길 방법을 찾을 첫 실마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녀가 어떤 예언을 내뱉든지, 일단은 시문령을 손에 넣는다. 이것이 여채한이 세운 계획이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늙수그레한 여채한의 미간이 더욱 깊어졌다. 천마는 반드시, 그가 아직 살아 있는 때에 강림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내세우는 해석을 뒷받침할 다른 예언들을 모으는 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은 자칭 회귀자 계집의 것일지라도. 그는 때를 기다리기만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교에게 쓴 맛을 보여주리라 그리 다짐했다. 

✿∘°˚∘°❀°∘˚°∘✿

청명과 유이설은 서안에서 그들을 피해 도망친 사파인의 뒤를 밟았다. 사실 어떤 놈인지 찾는 건 그닥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놈을 잡아 호남으로 가는 것도 그리 큰 일은 아니었다. 검존의 경신법이라면 서안은 한 시진, 호남은 뭐 약 세시진이면 충분했기에. 그러나 중간에 이놈들의 꼬리가 잘리면 곤란했기에 두 사람은 놈을 바로 잡는 대신 시간을 두고 천천히 뒤를 밟는 것을 택했다.

"하여간 저 느려 터진 것이..."

꼴에 무인이라고, 경공을 열심히 사용해 이동하기야 했지만 중간중간 역참에 들러 알차게도 쉬는 놈을 설렁설렁 걸으며 쫓아다니느라 속이 터지는 줄 알았다. 서안에서 남양, 남양에서 형주, 형주에서 장사... 

사파놈의 내력이 다하여 역참구탱이에 기어 들어가면, 청명과 유이설의 강호행 일정도 덩달아 늘어졌다. 산행을 할 때엔 중간중간 특이한 복장 때문에 산적들에게 시비가 걸려서 얼결에 산적도 토벌했다. 

어쨌든 우여곡절을 거쳐, 그렇게 그들은 호남의 장사(長沙)에 도착했다. 놈이 바 다음 역참으로 향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이 놈들의 근거지는 이곳인 듯 했다. 간만에 보는 도시 거리의 풍경이었다. 청명과 유이설은 둔감한 녀석의 뒤를 밟았다. 침착한 유이설과는 달리 청명의 인내심은 바닥이 날 지경이었다.

"거의 다 왔는데 그냥 지금 잡아 족칠까?"

"그냥 얌전히 있어."

"참을만큼 참았어 이제!"

"사람들 시선."

"?"

역참이야 많은 외지인들이 오가니 괜찮았다 쳐도 도시 한가운데에 들어오니, 특이한 복장을 한 두 사람에게 꽂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거칠고 시커먼 옷에 허리엔 검이라니,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만도 했다. 이러다간 작은 소란을 일으켜도 협행은 커녕 협행을 당할 대상이 될 판이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사이 유이설이 혀를 찼다. 인파 속을 가르며 바삐 어디론가로 향하고 있던 놈이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이 새끼 어디갔어?"

"놓쳤어."

"그러니까 내가 그때 잡자고 했잖아!"

"... ..."

그때, 그들의 등 뒤에서 무언가 다가오는 기척에 청명과 유이설이 거의 동시에 검을 뽑았다. 목에 서늘한 칼날이 겨눠진 채 주저앉은 사파인이 덜덜 떨며 두 손을 들었다. 유이설과 청명이 쫓던 바로 그 자였다. 

"으아아아! 해치려 한 것이 아닙니다요, 댁들이 누군지 아는데 제가 어찌 감히!"

"?"

"이 새끼 언제부터...!"

"저도 그정도 눈치는 있어야죠. 거처로 조용히 모실테니 어서 따라오십시오."

"...?"

생각보다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녀석인가? 청명과 유이설은 검을 거두지 않은 채로 서로 숙덕거렸다.

"저 사파새끼 무슨 꿍꿍이인거지?"

"함정, 가능성 있어."

"어차피 들킨 거 걍 이대로 족쳐야겠는데."

"소란 일으키면 안 돼. 우리 이미 수상함."

"아 너도 그만 좀 사려!"

둘은 칼을 겨눈 채로 작게 말싸움을 벌였다. 칼날들을 눈 앞에 둔 사내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맺혔다. 눈 앞에서 두 개의 칼날들이 주인들의 실랑이를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며 그의 명줄 앞을 살랑살랑 다가왔다가, 금방이라도 스칠듯 지나쳐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을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지켜보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사파놈의 일이라도 일말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지경이었다.

'이 미친 놈들...'

청명과 유이설은 수 분 동안 거리 행인들의 구경거리가 된 끝에 그들이 쫓던 사내가 절을 하듯 엎드리며 읍소하는 것을 찬찬히 보고 나서야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따라 나섰다. 물론 여전히 검병에 손을 올려놓은 채였다. 세 사람은 어느 산기슭의 바위 틈에 지하토굴로 난 길을 걸어 들어갔다. 일렁이는 횃불의 붉은 빛이 앞을 밝혀왔다. 막다른 길은 아닌 것을 보니 어설픈 함정은 아닌 듯 했다.

"이 쥐새끼 같은 것들 꽁꽁 숨기도 했네. 여하튼 잘 생각했다. 의미없이 저항해봤자지."

"...예, 저희야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요."

"뭐 잘 아네. 허튼 꼼수 부리면 뒤진다."

"... ...옙.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곧 회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누가 사파이고 누가 정파를 칭하는 도관의 검수인지 모르겠는 광경이었으나, 어쨌든 협행은 순조로웠다. 청명을 뒤따르던 유이설은 순순히 따라 걸으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해.'

처음엔 이 자가 자신의 문파를 배신하고 항복하겠다는 의미로 자신들을 거처로 데려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놈의 행동은 그렇다기엔 무언가 이상하다. 이건 마치...

'더 강한 대장을 새로 모시는 것 같은...'

"청명."

"엉?"

"우리 오해받고 있어."

"뭐가?"

"우리, 아무래도 같은 사파인으로-" 

"천마신교의 교도들을 뵙습니다."

"?"

"?"

유이설의 말이 끝나기 전에, 두 사람을 맞으러 사람들이 나왔다. 가운데 선 이는 연배로 보나 인상으로 보나 이 작은 문파의 대장으로 보였다. 

"제가 적융회주입니다. 다른 분께서 아까도 그 점쟁이 계집애의 일로 인해 다녀오셨는데, 또 다른 볼 일이 있으신지요, 하하... 아아아아아악!!!"

"너 뭐라 했냐?"

"끄으으... 처, 천마신교의..."

"마교? 마교오오오??"

"... ..."

"이 새끼가 사람을 뭘로 보고!"

"아아아아아아악!"

격분한 청명이 적융회주를 걷어 찼다. 그와 동시에 주변을 경계하던 유이설이 청명의 곁에서 칼을 뽑았다. 적융회주는 청명의 발에 채인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지만, 청명과 유이설을 데려온 사내를 비롯한 적융회의 수하들은 벌벌 떨며 유이설의 검을 바라보기만 할 뿐, 쇠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각자의 무기를 빼들면서도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대치만 하고 있었다. 심지어 청명이 격분한 기세로 검을 빼들자 모두들 한 발짝씩 더 뒤로 물러섰다. 청명에게서 분노에 겨운 살기가 넘실거렸다.

"우리가 마교로 보여?"

"청명이 준 망토 때문이야."

"아무리 시커몋고 거적떼기 같은 걸 걸쳤다 해도 착각하는 데에 정도가 있지! 차라리 개방거지놈들이라고 해!"

유이설이 뒤에서 한마디 던지는 사이 적융회주가 피를 토하며 몸을 겨우 가누어 일어났다. 당황스럽기는 제 쪽도 마찬가지라는 눈치였다.

"...네놈들은 누구냐, 누구십, 누구..."

"화산."

"화산...? 섬서에 있는 화산이 어찌 이곳까지-"

"내가 화산의 매화검존이라고, 이 개새끼들아아아아!!"

어두운 지하의 기지 안, 붉은 매화 검기가 적융회인들의 시야를 가득 수놓았다. 

✿∘°˚∘°❀°∘˚°∘✿

"검존께서 또 활약을 하셨다구만."

"나도 들었소. 저번에 청해라더니 이번엔 장사라지?"

"장사라면 그... 장강 너머 장사?"

"중원 곳곳을 누비시니, 아주 동섬서홀하시는구나."

화음에 또 다시 매화검존의 협행에 대한 소식이 퍼졌다. 서안에서 핍박 받는 아이들을 구하고, 그 배후를 쫓다가 마교도와 결탁한 장사의 적융회를 깨부수고, 그들에게 핍박받는 양민들을 구했다는 혁혁한 무용담이었다.

"종남이 버티고 있는 서안이나, 구파일방과는 거리가 좀 있는 장사에서 이리 활약을 해대니, 안그래도 높은 화산의 위상이 하늘을 찌르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내 말이, 어디서 저런 제자가 났을지 아주 자랑스럽겠수."

"그런데, 장사의 사정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하더이다. 거리에 마교도로 보이는 이들이 버젓이 돌아다녔다는 소문도 있소."

"정말인가? 사실이라면 이것 참 문제로군."

"그나저나 마교도들이 사파세력과 결탁했다질 않나, 거리를 돌아다녔다질 않나... 흉흉하군. 이 일에 대한 세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으니, 구파일방이 조사에 나서겠지. 잠자코 지켜봅세."

"에이, 우리야 매화검존이 있는 화산의 앞마당에 사니 무슨 걱정인가? 마교들은 얼씬도 못할 곳이 바로 이곳이지. 실은 그제 낙양의 상단에서 협업을 제안하는 연락이 왔소. 화음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지니 이곳에 투자를 늘릴 상단들이 늘어난게요."

"그런데 검존께선 지금 화산에 돌아오신건가?"

"자네 못봤나? 어제 아침에 환영하려 모인 인파가 구름처럼 모였었는데."

"에잉... 내가 오늘 섬서로 돌아왔는데 하루만 더 일찍 올걸 그랬소."

"생각보다 빨리 화음에 도착하신것인지 그들도 검존을 직접 맞이하진 못했었다 하니 상심 말게나. 어쨌든 지금쯤 문파의 환영을 받으며 화산에 자알 계시겠지."

화음의 주민들이 저 멀리 보이는 화산의 험준한 봉우리를 올려다봤다. 하늘을 향해 높이 뻗은 돌산을 안개같은 구름이 도도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들에게 화산의 도사들이란, 산위의 신선 같이 마냥 신비하기만 한 존재였다. 

한편, 많은 이들의 흠모 섞인 눈길을 받으며 화음에 입성한 협행의 당사자는 화산에서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고있었다.

"... ..."

"습, 더 높이 안 들어?"

"끙, 저 좋은 일 많이 하고 왔는데 사형... 전에 사형이 말해준대로 위장도 잘 하고 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안 된 것 뿐이라고요!"

"그게 더 독이 된 것을 아직 모르겠느냐! 그 이상한 흑색 망토를 봤을 땐 나도 칼 뽑을 뻔했다, 이 놈아!소림에서 장사 거리를 돌아다녔다는 두 마교인에 대해서도 알아보겠다는 방이 내려왔는데, 사실 이게 마교놈이 아니라 우리 매화검존입니다, 저희 제자가 위장이 좀 수상했네요, 걱정마십시오, 허허. 이럴까?"

"아 낸들 이리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래도 거리에선 아무도 안 팼단 말예요!"

"네가 스스로 그랬겠냐? 유이설이 막은 거겠지."

"...어, 그러네."

청문이 한숨을 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종남 때문에 서안에만 잠시 풀어놓으려 했는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터지니..."

"아주 유능한 사제를 연못에 벌레 잡으려 미꾸라지 풀어놓듯이 얘기하시네."

"유능하안? 벌 받는 와중에 잘도 빈정거리는구나. 오냐, 종아리 걷어라. 빨리!"

"아 싫어요! 난 이번엔 진짜 잘못 없어! 그리고 제 나이가 몇인데요!"

유이설은 조금은 초조한 기색으로 장지 너머에서 들려오는 호통소리를 들으며 처소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분명 작지 않은 공을 세우고 돌아온 것은 자명하나, 아무래도 청문을 비롯한 화산 어른들의 시선은 청명의 실수(?)에 쏠린 듯 했다. 유이설도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예상치 못했기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또한 신경쓰이는 일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마교가 중원에 들어왔어.'

물론 충분히 있을만한 일이긴 하나, 드러난 이상 이들이 무엇을 꾸미는 지에 대해선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유이설은 장문인에게 보고를 올리고 건의하기에도 애매한 외인의 위치였다. 고민에 잠긴 듯 고개를 살짝 떨구고 있던 유이설의 옷깃을 끌어당기는 이가 있었다. 시문령이 매우 반색하는 얼굴로 유이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사님!"

"유이설이야. 나도 너랑 똑같은 처지."

"이설님, 무사히 돌아오신 걸 보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여전히 군더더기 없는 말씨와 몸가짐이었다. 유이설이 시문령을 가만 살폈다. 잘 보살핌을 받는 듯, 얼굴에 있었던 상처들은 잘 아물고 있었다. 처음의 위축된 모습과는 달리 웃고 있는 것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유이설의 눈에 그녀의 걷어 붙인 팔과 앞치마가 들어왔다.

"...주방 일?"

"아, 네! 화산에 의탁하여 숙수님을 보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 두 분 덕분입니다. 이걸 어찌 보답 할지... 저같이 미약한 이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겠지만요."

"그렇지 않아."

"네?"

유이설이 진중하게 대답했다. 이젠 그녀가 처음 시문령의 천막을 찾아가게 된 이유를 말해야 한다.

"해줘, 미래에서 왔다는 이야기. 이게 내가 원하는 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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