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는 아이돌이 싫어 김이월 주접 모음

qkd by Q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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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 탓인가? 후광이 비치는 듯한 이목구비를 보며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조형이라 순간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설마 큐티 프리티 비주얼리 이청현?’ 지독한 악연이 잠시 머릿속에서 지워질 만큼 대단한 용모였다.

이 얼굴을 보고 나니 UA에서 전신 미니 아크릴 따위를 개당 2만 3천 원에 판 행위조차 용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

세상 살고 볼 일이다. 저 외모가 속세에서도 나오네.

진이 다 빠진 것 같은 주제에 박주우가 어설프게 웃었다. 아직 어려서인지 제법 시골집에 있을 법한 행복한 아기 강아지가 연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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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거리는 얼굴들 사이에서 아침부터 쫄면을 즐기는 나. 제법 강심장이다. 까치집을 한 남자애들이 연습실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분식을 먹는 광경은 나름 학창 시절도 떠오르게 했다. 그저 이런 얼굴을 가진 애들이 없었을 뿐이지.

먼저 천지가 개벽함과 동시에 태어났을 듯한 얼굴을 가진 명실상부 스파크의 비주얼 담당, 이청현. 백두산 천지에서 떠 온 물로만 세수를 시켰다고 해도 믿을 만큼 이청현의 얼굴엔 티 한 점 없었다. 이청현이 가을날의 아침 하늘처럼 서늘한 바람이 깃든 청명한 얼굴을 가졌다면 그의 동갑내기 친구 강기연의 얼굴에선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눈보라가 치는 강풍 속에서 데킬라 한 병은 거뜬히……. 아니다. 다음 달에 고등학교에 들어갈 신입생에게 부적절한 비유였다.

꿀 타지 않은 따끈한 생강차를 한 병이나 원샷할 수 있을 듯한 외모를 가진 강기연은 팀의 막내라곤 믿을 수 없는 비주얼을 자랑했다.

마지막으로 스파크를 대표하는 센터이자 남 부장의 따님을 사로잡은 죄가 큰 최제호. 이놈은…… 태생이 북극에서 태어난 것 같았다. 이목구비에 ‘저는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가 바탕체 13pt로 쓰여 있는, 말 그대로 밖에서 마주치기 싫은 상이었다.

-7

“주우는 노래 하나 받으면 바로 부르던데.”

“그게 바로 주우가 천재라는 증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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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조심해. 피부에 칼바람 닿지 않게 조심하고. 잊지 마, 무엇보다 얼굴을 중요시해야 한다.”

-11

천재는 얼굴이 백옥 같으며 물 흐르듯 랩을 내뱉고 작곡도 쿵짝쿵짝 잘만 하게 될 미래의 너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란다.

-13

이를테면 쉬는 시간마다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는 박주우에게는 ‘무심 댕댕이’라는 이미지를 기본값으로 설정해 주었다.

따님의 사랑을 독점했던 자이자 스파크의 빛나는 센터가 될 최제호는…….

“그러니까 너는…… 쿨한 속성의 무심 눈새 천재캐야.”

-16

“안전 귀가했어? 얼굴은 무사하고?”

이청현이 실없는 소리를 했다. 아무래도 녀석은 본인의 얼굴로 찍어야 할 광고가 몇 개나 될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내게 투자 비용을 들이고 있는 UA에 보은하기 위해서라도 데뷔하기 전에 멤버들 얼굴에 보험을 하나씩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7

눈이 빨리 떠졌으면 누워서 뒹굴기라도 할 것이지. 정말이지 도덕 교과서에 생명을 불어넣어서 만든 것 같은 성실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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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해 빠진 쿨톤 놈들이 뭐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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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덩어리 같은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어쩌려고 산에서 뛰어다녀?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앞으로 네 고화질 사진 한 장에 울고 웃으며 밥 안 먹어도 배불러 할 팬들 생각은 안 해?”

저런 얼굴을 가진 이상 이청현은 제 얼굴의 파급력을 인지할 필요가 있었다.

-33

비주얼은 우리 팀도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다. 백옥 같은 이청현을 필두로 누구 하나 꿀리지 않는 외모를 자랑하는 것 또한 스파크의 강점이었다.

-38

“형! 매니저님이 저희 셔츠 잘 어울린대요! 사진 찍어서 남겨 놔요!”

“어어. 일단 너부터 백 장 찍고 와라.”

“아 왜요! 같이 찍어요!”

“너는 지금 누구랑 같이 찍자고 할 게 아니라 네 얼굴을 보존할 생각을 해야 해.”

이청현의 얼굴은 처음 봤을 때 대단한 충격을 선사했다. 그럼에도 같이 살면 외관이 주는 파급력은 무뎌지고 적응하게 되는 것이 순리였다.나 역시 이제는 이청현의 얼굴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 빼고 광낸 미남은 민낯일 때와 완전히 달랐다. 어째서 팬들이 헤메코 삼박자가 고루 갖춰지기를 그토록 열망했는지 알 것 같은 심정이었다.

“이럴 수가! 저 그렇게 괜찮아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예요?”

“단위 면적 당 85만 원 정도?”

“왜 하필 85만 원이에요?”

“지금 금값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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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저 이렇게 진한 화장 처음 해 봐요! 어때요? 너무 과한가?”

“어차피 조명 쐬면 다 날아가. 그리고 네 얼굴은 먹을 칠해도 괜찮을 테니까 안심해.”

-58

“괜찮아. 얼굴로 권력이 정해진다면 우리 청현이가 대통령이야.”

-68

신인 아이돌의 프로필 사진에는 언제나 갖은 의심이 뒤따른다. 이건 분명 보정일 것이라느니, 피부 톤이 이럴 수는 없다느니. 하지만 그런 말은 이청현의 얼굴 앞에선 전부 무색해질 것이다.

이윽고 다리가 이삿짐센터 사다리차 못지않은 놈들이 줄줄이 내리자 시선이 무서울 정도로 이쪽을 향했다.

-70

나는 ‘미튜브에서 활기찬 어린이들 영상 찾아 줘?’라고 말하려다, 고운 얼굴로 죽을 쑤기 직전인 이청현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비상이다. 저 얼굴 없으면 1위 못 하는데!

-85

“형, 저 지금 꼭 하고싶은 일이 생겼어요!”

그와 동시에 이청현의 백옥 같은 얼굴에서 오이가 후드득 떨어졌다.

-94

“그리고 마침 너희에겐 청춘 서사에 딱 맞는 재료가 있지.”

“그게 뭔데요?”

“얼굴.”

누구도 밟지 않은 설원처럼 티 없는 피부. 숨만 쉬어도 겨울날 빙판 위에서 들이켜는 한 병의 탄산수 같은 미소. 북극의 추운 바다 위에 펼쳐진, 꿋꿋하고 단단한 빙하를 연상케 하는 피지컬까지. 파랗다 못해 시퍼렇게 보일 정도로 청춘스럽다. 여기에 흰 티 하나만 입혀 놓으면 이온 음료 광고가 따로 없을 거다.

“인트로에서 한 번, 엔딩에서 한 번. 충격적일 정도로 얼굴을 자랑해 스파크가 어떤 팀인지를 각인시킨다……. 이게 내 계획이야.”

“아무리 그래도 참가자들 전부 아이돌인데, 이 공격이 먹힐까요?”

“뭐?”

아주 건방진 발언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도 안 나 왔다. 과거, 유한수가 프로듀싱했던 무맥락 무근본 뮤비에서조차……

≫ 뮤비 좀 X같으면 뭐 어때

얼굴에 서사가 있는데

…소리를 들었던 스파크다. 그런데 뭐? 네놈들 얼굴 공격이 먹힐지를 걱정해?

“나 같으면 기연아, 이 기회에 외모 지수를 좀 더 높여서 확실하게 네 얼굴이 얼마나 보물 같은지 알릴 방법을 생각하겠어.”

-112

카메라가 멀리서 잡을 땐 번쩍번쩍 명품 남돌 무리에 잘못 들어온 옆집 백수 청년처럼 보이겠지만. 얼굴까지 방송국 카메라로 클로즈업해서 잡아 준다? 그럼 바로 여름 휴양지 예약 어플 광고 촬영이다. 온갖 욕을 다 먹어도 얼굴은 단 한 번도 까인 적 없는 비주얼을 무시하지 마라.최제호와 이청현이 얼굴 공격으로 마치 대형 선풍기가 바람이라도 일으켜 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강기연이 때때로 삐끗할 때가 있지만 밝은 미소로 나아가는 연습생을 연기하며, 박주우와 정성빈이 바뀐 가사로 라이브 인증까지 톡톡히 하는 사이 2절이 지나갔다.

-113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스파크 최고의 보물인 이청현의 얼굴이 피곤함으로 생기를 잃었던 것이다.

대기실 끝에서 수정 화장을 받고 있던 이청현이 소리를 치며 뛰어왔다. 녀석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빛이.

“너 얼굴 무슨 일이야?”

새하얀 얼굴에 반짝반짝 빛나는 글리터가 보석처럼 뿌려져 있었다. 특별한 인상을 주기 위해 컬러 렌즈까지 꼈더니 애가 아주 탈인간이 됐다. 힘냈구나, 마법의 포도당 캔디. 하여튼 이상한 일이다. 똑같이 반짝이는 컬러 렌즈를 꼈는데 왜 나는 뱀 눈깔 같고 쟤는 캘리포니아의 햇살 같은 건지. 갓 딴 오렌지처럼 상큼해진 이청현이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어 보이며 말했다.

“글리터 대박이지? 오늘 청현이 얼굴 컨셉은 다이아몬드 광산입니다!”

“채굴권 내놔. 다 태워 버리게.”

“그러실 줄 알고 독점 분양권 따로 빼놨습니다, 형님.”

“굿.”

-121

‘형, 우리 갓은 안 써도 돼?’

‘갓을 왜 써! 얼굴에 그림자 지게!’

-128

이청현 얼굴을 봐라. 어지간히 울었으면 ‘눈물 흘리는 조각상–20XX년 作’이 되었을 텐데 지금은 완전히 풀빵이 되어 버렸지 않은가.

-138

다들 고생을 하도 해서인지 부기는커녕 턱선이 살아 있었다. 저 정도 턱선이라면 다들 턱으로 종이 베기 쇼 한번 보여줘 한다고 생각한다.

-144

기연: 이청현은 염색까지 하면 너무 튀지 않을까요?

이월: 무슨 소릴 하는거야? 미남이 염색을 해야 나라가 사는거지.

-150

‘안 힘들어?’

‘전혀요.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손전등이라도 켠 것처럼 놈의 미소에선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저, 형.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요……!‘

’무슨 소리야. 네 목소리가 스파크의 자존심인데. 최제호, 모과차 아직 멀었어?‘

’지금 가.‘

-153

『청춘을 노래하는 미소년의 대변신, 지금 시작합니다.』

“자막 왜 저래?”

최제호가 경악했다. 표현이 올드하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왜? 성빈이 미소년 맞잖아.“

-154

『성빈이 목소리 담보로 대출받으면 한강 뷰 아파트도 살 수 있어.』

『한강 쪽이면 LTV 규제 들어가서 대츨 얼마 안 나오지 않아?』

『주택 담보 대출 말고 정성빈 담보 대출이면 가능하지.』

-155

“어떻게 그렇게 다들 신발도 조그맣지? 신발장에 주르륵 줄 맞춰 놓은 거 봤어?”

그 신발보다 이청현 네놈 앞머리 모근이 더 일렬종대일 텐데.

얼굴도 착하고 머리도 착한 놈.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 너를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 위에 세워 주마. 인공위성에 네 얼굴만은 남도록.

-163

이청현의 얼굴이 표방하고 있는 것은…….

‘아가페지.’

대신 이제 사랑이 향하는 방향이 역방향인. 만물의 모든 애정을 다 받은 저 얼굴을 봐라. 그 시절 우리뿐만 아니라 그 시절 운동장도 이청현을 사랑했을 거다.

“최제호 소매 걷는 게 좋지 않을까요? 팔뚝이 보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이월이 네 생각도 그렇지?”

최제호가 할 말 많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무시했다. 어차피 너 뮤비에서 농구공 튀길 거잖아. 드리블하면서 힘줄을 안 보여 주는 건 대역죄야.

당사자인 박주우는 평화로운데 박주우 주위의 메이크업 담당자분들만 뜨겁게 불타올랐다. 나 또한 ‘스파크 얼굴, 내버려 뒀을 때가 가장 아름다워……’파지만 첫사랑학엔 일가견이 없어 침묵했다.

그때 멀리서 첫사랑의 정석이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형, 준비 끝나셨어요?”

다정한 미소. 단정한 교복. 모두가 스마트 워치를 차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아날로그 시계가 채워진 손목까지. 스파크에서 유일하게 봄에 태어난 남자다운 이미지였다. 역시 정성빈 네가 이 팀의 다정다감함은 다 해먹는구나.

‘청현이 얼굴이 걸어만 둬도 보석 같다는 덴 저도 동의하는데요.’

-170

그중에서도 비눗방울 사이에서 싱그럽게 웃는 강기연을 단연 원픽으로 꼽겠다. 얼굴에 분수대가 주는 시원함과 태양열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공존했다니까? 비눗방울에서도 사람 얼굴에서도 무지갯빛이 났다고. 내가 UA 말고 어디 다른 곳에 제출했으면 분명 강기연의 사진이 올해의 사진상을 받았을 거다. 고맙게 생각해라, UA

-172

“아니 여러분, 아직 섹시는 안 되죠!”

“왜!”

“왜 안 되는데!”

“얘네가 이렇게 생겼어도 아직 다 애기들인데! 민증 나오고 잉크 말라야 생각이라도 해보죠!”

-175

우유를 쭉쭉 빨고 있는 박주우를 보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 쥐방울만 한 놈한테 앞으로도 끝장나는 고음을 맡겨야 한다니,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178

“그래서 OST가 그렇게 빨리 넘어간 거구나. 청현 씨랬나? 진짜 천잰자 봐.”

“객관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180

“뭐야?!”

“생각해 보니까 진짜 이상해.”

“뭐가? 내가 이렇게 서프라이즈로 나타나지 말라고 했지. 특히나 네 얼굴은 갑자기 들이밀면 심장에 무리가 올 수도 있다고 했어, 안 했어?”

-189

박주우가 장맛비에 흠뻑 젖은 삽살개처럼 앞머리를 떨궜다. 보는 내 마음이 다 아팠다.

-207

이청현은 흰 화이셔츠에 남색 넥타이만으로 캐주얼한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머리엔 살짝 컬을 넣어 ‘미모의 사원이 복잡한 업무로 인해 찾아오는 두통을 달래고자 두어 번 정도 쓸어 올린 듯한’ 서사를 담았다. 안무할 때 메이크업이 지워지지 않는 선에서 이마를 잘 쓸어 올려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212

덤벼라, 운동회. 다섯 북부대공과 집사 한 명의 눈을 뗄 수 없는 차력 쇼를 보여 주지.

-215

옆을 돌아보자 이청현 세안을 마쳐 투명함이 폭발하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218

머리 위의 객석에서 녀석을 응원하는 팬분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이청현이 공을 잘 보기 위해 앞머리라도 한번 쓸어올릴라치면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보십시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현장에서 직접 본 이청현 얼굴의 힘입니다. 저 김이월, 이 한 몸 불살라 카메라 너머의 여러분들께도 이 기적을 전달하겠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단위 면적당 85만 원짜리 얼굴이라는 칭호도 뺏기고 말 거야.”

녀석의 눈동자엔 초점이 없었다. 풋살 잘 뛰고 와서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뭐 그런 걸 걱정하고 그래. 누가 뭐래도 넌 우리 그룹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단위 면적당 95만 원짜리 얼굴인데.”

“금값 올랐어?”

“많이 올랐더라”

-222

이어지는 질문엔 정성빈이 잘 대답해 줬다. 예전에는 마이크 잡으면 멤버들한테 신경이 쏠려서 멘트도 힘겹게 치더니. 대견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우리 좀 떨어져 있을까?”

“왜?”

“너무 눈에 띄어서.”

크고 잘난 아이돌들을 다 모아 뒀다지만 최제호만큼 키 크고 어깨가 광활하며 팔근육이 다비드 같은 아이돌은 흔치 않다. 씻고 나면 꼭 로션을 바르라는 내 말을 오늘도 잘 지킨 건지 근육에 윤기가 흘렀다.

-223

어떡하지? 인생이 무기력하고 활동할 에너지가 없는 스파클러분께는 잘생긴 스파크만큼 잘 듣는 게 없댔는데. 나는 급히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체육관의 여러 출입구를 하나씩 쳐다보았다. 반대편 입구에서 당구대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됐다!’

스파클러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곧 지상 최고의 비주얼 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래? 쉽지 않네. 우리 나중에 단체로 퍼스널 컬러 테스트라도 받아야 할까 봐.”

“안 받아도 알아. 죄다 북부 겨울 블리자드 쿨톤일 테니까.”

-224

『다음으로 스파크 대표, 청현이 나옵니다!』

『어머, 세상에……!』

하서명 씨가 말을 잇지 못했다. 멀리, 붉게 칠해진 체육관 바닥 위로 이청현이 포토플랫으로 길게 늘인 듯한 다리 길이를 자랑하며 걸어 나왔다.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신었으면서 비주얼까지 챙긴 구두, 선이 잘 빠진 슬랙스, 공을 치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팔꿈치 위까지 걷은 소매, 셔츠만 입으면 날라리 같이 보일 수도 있으니까 베스트까지. 여느 클래식하고 전통 있는 패션 화보가 부럽지 않았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이청현이 엄청난 미소를 날렸다. 저 녀석은 다 좋은데 너무 세상에 늦게 태어난 게 흠이다. 한 200년 전쯤에 태어났으면 지금쯤 대한민국의 문화재로 등록되어 국가의 비호 아래 세계의 주목을 받았을 텐데. 21세기에 태어나는 바람에 시스템의 카메라 마사지가 아니면 이 본판을 일일이 보여 주러 다녀야 하잖아. 루브르에 모나리자가 있으면 한가람미술관엔 이청현이 있다고 맞받아칠 수 있었다고.

이청현은 내 지시대로 팬석 쪽에 정면이 향하게 선 채 큐 끝에 초크를 묻혔다. 역시 저 자식, 1400년쯤 태어나서 한가람미술관에 『아름다운 남자』 이런 제목 달고 전시됐어야 한다니까.

“너도 마찬가지야.”

“난 시프트 키 누르고 키운 것처럼 컸는데, 쟤는 하체만 세로로 늘린 것 같잖아.”

“너는 그래도 균일하게 컸다, 이거지?”

그래 봤자 내가 보기엔 너희들 다 런웨이에 세워도 될 비율이다. 누가 누구더러 다리 길이를 운운해.

하지만 스파크는 키 크고 잘생긴 냉미남만 엄선해서 만든 UA의 체육인 집합소인걸요. 여긴 제가 오기 전부터 이 모양이었다고요.

-225

배턴은 어느새 이청현에게 넘어가 있었다. 정장을 벗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이청현은 교과서에 나올 듯한 자세로 잘만 달렸다. 쟤는 무슨, 달리기만 하는데도 어디서 브금이 나올 것 같냐.

-226

이청현의 얼굴에서도 피부 속부터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전에는 후광만 있었다면 이제는 전방위에서 빛이 났다.

-227

내 말에 이청현이 활짝 웃었다. 열받으라고 그런 것 같은데, 시스템의 속광 부여 효과가 너무 엄청나서 감탄밖에 안 나왔다.

-228

당연히 이번 ‘빛나는 별, K-장원 급제’에서 지적인 이미지를 챙기려는 아이돌도 많을 것이다. 이청현에게 그런 이미지를 줘서 나쁠 건 없다. 재능도 얼굴도 눈이 부신 놈이니까.

-235

얼굴이 눈에 익은 스파크의 홈마분들 말고도 우리를 찍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이 많은 카메라 중 한 대도 이청현의 실물을 담아내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 몸부림쳤겠지.

이청현이 햇빛을 받은 은박 돗자리처럼 눈부시게 웃으며 내 쪽을 보고 대답했다.

└ 김??: 청현이 실물로 보면 어떻냐고요? 온 우주의 기운이 한데 모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느껴져요. 반대로 제가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도 알게 되죠.

녀석이 여름날 내리쬐는 태양처럼 웃었다. 그런 너의 마인드와 얼굴, 아주 기특하고 훌륭하다.

-236

족보가 없으면 어때. 스파크엔 인간 슈퍼컴퓨터가 있는데. 이쪽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끝난 직후에도 밝은 얼굴로 산낙지를 잡고 그룹의 모든 곡을 만들며 어떤 안무든 1시간이면 따는 효자란 말이지.

한글 제목까지 추가한 뒤 다시 정답 판을 들고 실실 웃는 이청현은 그야말로 한 폭의 밀라노 패션 화보 같았다. ‘빛나는 별, K-장원 급제’는 점차 ‘빛나는 이청현, K-얼굴 장원’으로 변질되어 갔다. 편파 진행을 했다는 건 아니고 현장 분위기가 이랬다는 뜻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 심지어 아이돌을 하느라 학교에 잘 나가지도 않았다는 미모의 학생이 한때 클래식을 전공했고 시사 상식에 통달했으며 공부 잘하고 성격까지 좋다는데 누가 관심을 안 갖겠나. 내가 감독이었으면 이미 쉬는 시간에 이청현 쪽에 개인 카메라를 한 대 붙였을 거다. 다들 감이 없다고 통탄하고 있을 때 MC분께서 큐 카드를 넘기셨다.

-238

실수했다. 표현을 정정하겠다. 이곳은 천사가 강림한 지옥이다. 그리고 나는 광명에 눈이 멀어 일거리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태양으로 뛰어드는 이카루스다. 젠장. 솔직히 이건 이청현이 광고를 맡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저놈의 피부는 우주의 기운과 유전자의 은총, 에스테틱 숍 원장님의 손길, 꾸준한 관리, 다년간의 미모 관리로 만들어진 건데. 이게 화장품 회사의 팩 하나로 될 리가 없잖아. 인데니아는 과장 광고 딱지를 맞아도 할 말이 없다.

우리는 스킨케어 제품 버전 화보와 색조 립스틱 버전 화보를 하나씩 찍게 됐다. 전자는 어렵지 않았다. 장장 2년간 피부에 인생을 양보하며 살아온 스파크는 고화질 카메라로 근접 촬영을 해도 굴욕이 없는 실크로드급 피부를 선보였다.

박주우 얼굴에 스킨이 떨어지는 장면을 슬로 샷 걸어서 찍을 땐 감탄만 나왔다. 괜히 ‘인간 새벽 산안개’란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다. 얼굴에 냉기와 습기가 가득하더라고. 애가 자극적인 걸 안 먹어서인지 피부 때깔이 백자와도 같았다. 일백 번 편의점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숙소 냉장고는 흰 우유로 채워 줘야겠다는 다짐이 드는 얼굴이었다.

-251

박주우는 혈색이 자연스러워 보이게 만드는 립밤 느낌의 립스틱을 맡았다. 내가 테스트했을 땐 평범하더니 박주우가 바르니까 봄날의 벚꽃처럼 색감이 살아났다.

설령 태양이 지더라도 백야처럼 밝을 얼굴. 거대한 빙산이 푸르게 빛나며 뿜어내는 장엄한 냉기. 극지에서 금방이라도 생명을 틔워 낼 듯한 맑은 갈색빛 눈동자와 그 주위에 야생화처럼 피어난 글리터들. 떠오르는 태양보다 붉게 빛나는 입술, 그리고 그 위에서 오로라처럼 아른거리는 홀로그램 조명까지. 나는 바로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최선을 다해 이 현장을 사진으로 남겼다. 사람 얼굴이 어떻게 저렇게 유리알 같을 수가? 같은 인간인데 어째서 나는 갯강구고 저 녀석은 아마존의 미소인지? 광고주도 참 곤란하겠다. 이청현 사진에선 B컷이 없을 테니 말이다. 가판대를 다 이청현으로 채우고 싶을 텐데, 차라리 날 빼고 이청현을 두 명 세우라고 할까?

내가 바닥에 누워 이청현을 11등신 그리스 남신처럼 찍고 있을 때쯤 놈의 개인 촬영이 끝났다.

“형 대체 왜 그러고 있는 거냐고! 웃음 참느라 혼났잖아!”

“역사적인 순간엔 언제나 기록이 필요한 법이지.”

우리가 단체 화보를 찍는 동안 매니저님과 광고주님께선 구석에서 치열한 소통의 장을 여셨다. 혼신의 힘을 다한 이청현의 얼굴을 보셨으니 당연한 일이다. 세상의 무욕의 신이 있다고 한들 지금의 이청현을 보면 바로 ‘빛나는 심장, 마이 레드’를 2+1으로 구매할 거다.

-252

“저는 형처럼 11111 못 맞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너는 보컬이 상위 4%니까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단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응 얼굴 조심하고, 아는 문제 있으면 잘 풀고 와.”

-253

≫ 김??: 청현이 화보 스포해 달라고요? 북극에서도 해바라기가 피는 느낌이에요.

단체 화보에서야 웃긴 했지만 거기서 내 팬이 생겼을 것 같진 않다. 내 옆에서 정성빈이 ‘진짜’ 샛별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짝퉁 호두과자 미소는 눈에 띄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청현이 윙크를 했다. 아무리 봐도 샛별 미소 서비스는 얘한테 갔어야 했다. 금가루가 떨어지는 오로라 내추럴 무지개 샛별 미소 이런 이름 붙여 주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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