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E / NCP에 가까운 하루레이하루

Ailesdor by 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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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에게서 단죄의 지고... 맞나? 암튼 식물을 하사받은 호스트 하루키 IF 시공

* NCP...를 기본으로 하지만 CP로 읽으셔도 상관 없습니다.

1.

 

형제가 있는 삶을 상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형제가 있는 이들이 형제가 없는 삶을 상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것은 퍽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더군다나 사네미츠에게는 아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소이 레이지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표현한 적은 없을지언정 그런 상상에 파묻힌 한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남자는 아니었다. 눈치도 좋게 알아차린 사네미츠가 그것에 대해서 무언가 늘어놓으려다 어물어물 입을 도로 닫아버린 사건은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했다. 그가 어디 어물어물 말을 흐린 것이 한두 번이던가.

 

그런 대화들은 으레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잊혀 어렴풋이 그런 기류가 있었다는 정도로 남거나, 식탁에서 반쯤 장난으로 서로를 헐뜯을 때 사용되는 무딘 무기였다. LDL에 발끝이라도 슬그머니 들이밀었다면, 식사 자리에서 느닷없이 내던져진 말이 정말로 캐묻고자 하는 의도가 아님을 알기 마련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사네미츠가 동행했더라면, 그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게 보이든 그는 제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나가, 정말로 저것이 제 형이 맞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날 어물쩍 감추려고 하던 이야기가 정말로 별 의미 없는 것을 상상하는 소년을 귀엽게 여기는 충고였는지, 아니면 그가 장밋빛으로 그리던 나름의 가족상에 현실이라는 이름의 찬물을 끼얹을 작정이었는지를 캐물었을 것이다.

 

어쩌면, 무너지는 연구소에서 이소이 하루키의 목덜미를 잡고 그를 끌어냈을 때부터, 그가 비협조적으로 굴 것을 알아차렸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손아귀에 쥐고 있던 옷깃이 멀쩡한 것이 기이할 정도로 그 남자는 몸부림쳤었다. 대주교님, 우츠기 님.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잔해 아래에 깔려도 좋다는 듯이 움직이지 않던가. 놓쳤다면 그는 죽었다. 덧붙일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레이지가 무어라 불러도 어색하기만 한 그 남자의 협조를 원하는 것은, 그는 아마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날뛰던 하루키의 목숨을 구했기 때문이리라. 목숨이라는 것은 대체로 그런 가치가 있지 않던가. 무언가를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저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달라 부탁한 것도 아니다. 사네미츠의 부탁이 아니던가. 무언가를 요구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고,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도 하나 없었다. 그러나 빚은 빚이다. 당사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소이 레이지는 이소이 하루키가 하루 더 살아남도록 만들었다. 그러면 그다음 날이 이어지고, 또 그다음 날이 이어진다. 시간을 벌어다 준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는 이다지도 싸늘한 눈빛을 마주하며 무슨 말을 하든 비협조적인, 저보다 머리 두엇은 더 큰 남자를 달래야 하는 것이었다.

 

“일어납시다. 네?”

 

남자는 무어라 말하는 대신 물끄러미 레이지를 올려다보았다. 공항과 공항 내의 카페 구역을 분리해주는 엉성한 화분에 그가 기대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조급한 것은 그뿐이었다. 비행 시각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에 초조해하는 것도 그였고, 저 남자가 어디에 고집을 부려서 다시 주저앉을지 짐작이 가지도 않아 전전긍긍하는 것도 그였다. 그렇다면 되도록 빨리 움직이고 싶은데, 하는 짓이라고는 종일 저 자리에 앉아 컵 안의 시커먼 액체를 들여다보는 것이 전부지 않은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봐주는 정도라면 낫다. 앞선 두어 번의 권유는 전부 무시당했다.

 

“이탈리아로 가기로 했잖아요.”

“이소이 씨,”

“레이지라고 부르면 됩니다.”

 

아하, 고개를 까딱이고서, 이소이 하루키는 다시 컵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런 몸짓이 없어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럴 때면 저 남자는 옆에서 그 어떤 이야기가 오가든 더러운 것은 자신과 완벽히 관계없다는 투로 고상하게 구는 것이다. 저렇게 눈을 내리깔아 뺨 위로 속눈썹의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레이지는 그것이 싫다가도, 좋다가도, 또 가끔은 못 견디도록 싫었다. 이런 때일수록.

 

“가족이라고 했잖습니까. 하루키 씨가 이 모든 걸 별로…….”

“가족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연한 말을 던져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저와는 멀리 있다는 듯이 구는 표정이 싫어서, 그것을 무너뜨려 보려고 긁어내리는 말만 하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서, 온화하던 표정이 조각도 없이 그의 목 아래로 사라지는 것을 레이지는 지켜본다. 결국 발목을 잡는 현실에서는 떠날 수 없지 않은가. 아마 그도 알기에 아픈 곳을 찔린 표정을 하는 것이리라. 그가 가족이 아니라는 말을 들으면 못내 슬퍼하듯이, 하루키는 가족이라는 말로 묶이면 화내는 것이겠지.

 

“공연한 짓이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없어져도 좋을 것 하나를 구했다고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저는 지고천 연구소 소속이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겁니다.”

“없어졌는데도요?”

“결국 몸이 어디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믿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믿음만이…….”

“그만합시다.”

 

이소이 하루키의 시선이 그에게 꽂힌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동그란 시선이 천천히 테이블 위로 내려갔다가 다시 그를 향한다. 형형한 눈빛이었다.

 

“저를 가족이라 부르면서 이해하려고는 하지 않으시는군요.”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서요.”

 

무언가 실망했다는 것 같은 표정으로, 하루키는 웅얼웅얼 말을 늘어놓았다.

 

“괜히 끌어당겨서 이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아차.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 네미츠 씨에게 물어보시던가요.”

“그 남자보다는 당신이 낫습니다.”

 

그거 고마운 말이네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이소이 레이지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토 하루키가 그렇게나 우츠기를 사랑했던가? 그렇게까지 가족으로 여겼던가? 글쎄, 지금 당장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일어납시다. 사네미츠 씨가 싫어도 이탈리아가 더 낫다는 건 알잖아요.”

 

그 말에 이번에야말로 하루키는 순순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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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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