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2.
Fate/Stay Night - 사언
* F/SN - 사언
* 지금 끊임없이 사언 원고를 찾고 있어서... 저도 당황스러움... 아무튼 HF 3장 보고 정말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많이 사랑해주세요(
* 미완 원고~ 그런데 이제 다듬어서 지인 배포 개인지에 넣을 생각인
1.
그 남자를 좋아했던 것이리라.
힘을 실은 그 한 걸음을 내딛기 전에, 에미야 시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떠올리기에 좋은 순간은 아니었다만, 문득 떠오르는 기억을 억누르는 것도 마땅찮았기 때문이다. 늘 이런 국면에 접어들어, 상대에 대한 가장 훌륭한 기억만을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버릇이었다.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적대하는 것은 서투른 탓에, 그것이 그런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겠지.
돌이켜보면, 그 남자의 생각이 그를 통제하던 매 순간이 터무니없었다. 그 남자와 관련 있는 일에 대한 그의 선택은 절반 이상이 비이성적이지 않던가. 이성 대신 자리한 것은 직감이며, 충동이었고, 감정이었다. 기이할 정도로 잘 풀리는 몇몇 일들에 의아함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도피하기 위해서일 것이며, 그것이 그리 큰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는 것을 아마 그때도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러나 눈을 돌리기로 한다.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음에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는 것 없이, 모르는 척하기로 한다. 한때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남자는 그와 정반대의 방향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나아가는 방식이 같다고 하여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으니 일부는 모르는 그대로 남겨둘 것이다.
그러니, 말하지 않는다.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음을 관계의 끝을 눈앞에 둔 이제야 기억해 냈지만, 전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둘은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와 버렸으며, 그것이 의미를 가지기에는 마찬가지로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다.
하지만, 역시 궁금증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코토미네 키레이 역시 그를, 그렇게 생각했을까?
2.
그의 첫인상은 훌륭하다고 말할 것은 되지 못했다. 늘어놓는 모든 이야기가 지극히 개인적이며 동시에 악의적일 정도로 에미야 키리츠구라는, 이미 작고한 사람을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더 옳은 말을 찾을 수 없기에 감히 인용한다. 코토미네 키레이는 에미야 키리츠구를 질투했다. 키리츠구가 그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며,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질투했다. 강건하다는 인상이 가장 먼저 드는 그에게 질투라는 단어가 어울리는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성직자로서 바람직한 행동이 아님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에게 규율은 의미가 없다. 그의 행동은 분명히 그것을 버린 이들 특유의 것이었다. 어딘가 홀가분하다 못해 가슴 한구석을 뜨끔하게 하는 면이 있어, 보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바라보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 이가 아주 드문 것은 아닐 터였다. 분명히, 찾고자 하면 두엇 정도는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그런 종류의 흔한 특징일 텐데.
하지만, 그런 사실을 떠올리기도 전에, 이미 에미야 시로라는 사람은 그의 말이나 행동에서 평생 거역할 수 없을 어떤 종류의 이끌림을 느낀 것이리라. 그것은 일어날 것을 알고 있음에도 피할 수 없는, 사고 직전의 찰나와 같다. 길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소나기처럼, 어쩔 수 없이 젖어버려야만 하는 종류의 필연이다.
그리 특별한 위험은 겪지 않아도 좋다. 위험을 알리는 직감이 찾아와 말을 거는 감각은 누구나 알고 있다. 코토미네 키레이가 소원을 이룰 때가 왔음을 고하는 말을 전할 때 찾아온 것도 아마 그런 종류였으리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손끝이 기억하는 감각은 그런 것이었다. 그는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몸을 돌려 나가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더 물어보아야겠다는 찰나의 고민조차 없었다.
무엇인지는 확신할 수 없어도, 앞으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든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다. 그의 머릿속 어딘가가 전력을 다해 울리는 경종 소리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그렇게. 그의 뒤에 서 있던, 당시로써는 신원 모를 여자의 소원을 위해서. 손끝이 저릿한 이것을 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막연히 느껴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후회할 종류의 일은 아니었다. 어떤 종류의 거대한 운명이 그의 등을 떠밀며, 이제는 걸어가야 한다고 속삭이는 기분에 가깝다면 가까웠을까. 에미야 키리츠구가 자신을 마술사라고 소개했던 순간부터, 그는 그런 날을 고대하지 않았던가.
그는 그가 이제 막 신비의 세계로 편입되었음을, 약간의 희열과 기대 섞인 목소리로 선고하는 신부를 바라보면서 그를 둘러싼 주변의 공기가 마치 마술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 병실을 떠돌던 공기와 같은 냄새를 가진 것처럼 느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이제는 지쳐버리고 무언가에 실망한 마술사가 아니라, 강건하며 알 수 없는 것에의 열망을 품은 신부였음에도.
찰나에 밀려드는 감정이나, 인상에 대한 이유는 굳이 없어도 좋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런 종류의 감정이나 인상일수록 오히려 사람을 가득 채우고 풍부히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도, 그는 굳이 이유를 가져다 붙이고자 했다. 이 인상에는 무언가 붙여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래도록 잊지 않을 수 있도록.
그렇다면, 그에게 기뻐하라고 고한 신부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에게 지금부터 그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선고한 것인가. 그가 말한, 쓰러트려야 마땅한 악은 그 자신이었나?
그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코토미네 키레이가 에미야 시로에게 쓰러질 것을 상정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주도면밀한 남자였다.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 10년, 혹은 그 이상을 웅크리고 있던 남자가 아닌가.
에미야 시로는 기묘할 정도로의 확신으로 감히 키레이의 심리를 추측한다. 그를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닮은 두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둘의 진행 방향은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다. 그들이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 닮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상대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보증하지 않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그러나 시로는 안다. 키레이는 그런 남자다. 그가 순수히 바라던 것을 얻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코토미네 키레이는 늘 정상(頂上)에 가까운 남자였다.
정말이지,
입속으로 잠깐 중얼거린다. 키레이는 아마 그가 악이라는 사실은 잘 인지하고 있었으리라. 그는 신앙심 깊은 신부였으며, 동시에 훌륭한 양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일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지 알고 있으며, 어떤 일이 다른 이에게 고통을 초래하는지 알고 있는 이가 아니던가.
그러나 쓰러트려야만 하는 악으로는…….
그의 내면에서. 그는 정의를 이기는 악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런 면을, 이제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없어진 사람에 대해서 이것저것 혼자 떠드는 것도 꽤 모양 빠지는 일이다만, 그는 아마 그 신부를 이루던 것 중 하나를 죽을 때까지 가져갈 것을 안다.
어느 날에, 그가 후유키를 떠올리게 되는 맑고 서늘한 날에, 그는 가만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거나 낯선 천정을 바라보면서 그 남자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다. 그가 해주었던 말을 다시 곱씹을 것이다.
이를테면, 정의의 사도에게는 늘 무찌를 악이 필요하다거나, 아니라면 태어나지 않은 것에게 죄를 묻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 혹은, 그 신부와 그는 실로 닮아있었다는 것.
어느 것이든, 그는 그것을 곱씹을 것이다. 그것이 정말 어떤 의미였는지 수십 번이고 다시 생각할 것이다.
이전까지 서로 헐떡거리며 끌어안았던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심한 목소리로, 행복이며, 감정, 정의와 같은 추상적인 것들이 정말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의 철학적인 해석을 늘어놓는 그 느른하고도 낮은 목소리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면 어김없이 찾아올 이미 죽어버린 사람으로 인해 들숨에 섞여버린 공허를 폐 가득 느끼면서, 에미야 시로는 고개를 숙일 것이다. 모포 속으로 고개를 파묻거나, 혹은 팔로 눈을 덮어버릴 것이다. 귀를 막아도 좋고, 눈을 질끈 감아도 좋다. 어쨌거나 감각 중 하나를 완전히 덮어 그 사람이 더는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도록 자신을 몰아넣을 것이다.
시로 자신이 기억하는 것보다, 그는 코토미네 키레이라는 남자에게 의지했다. 앞으로 느끼게 될 공허는 그런 것들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동급생이자 동경할만한 아이였던 토오사카에게 기댈 수 있는 부분과 신앙이라는 비논리적이고도 확실한 사람의 마음에 기댈 수 있는 부분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리라. 더군다나, 코토미네 키레이는 이미 그가 거치고 있는 인생의 한 시기를 한참 전에 통과한 남자였다. 가끔은, 그런 쪽이 편할 때도 있는 법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럴 때면 그는 속절없이 밀려드는 깨달음과 마주한다. 그가 코토미네 키레이라는 남자를 생각보다 많이 좋아했음을 깨닫는다. 서로에게 그저 말도 안 되는 일탈에 불과했던 순간에, 그가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면, 생각의 흐름은 늘 같다. 이전의 질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에미야 시로가 그렇게나 코토미네 키레이를 좋아했다면, 코토미네 키레이라는 사람은 에미야 시로라는 남자에게 비슷한 마음을 가졌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공백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시로는 그리 생각한다. 알기에는 너무 늦었으며, 그 답을 해주어야만 하는 사람은 이미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가 유언을 남겼을 리도 만무하며, 그렇다고 그의 이해자를 세상에 남기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코토미네 키레이에 대한 이어지는 서술이나, 그의 심리는 전부 에미야 시로가 만들어 낸 허구이다. 그가 한 말이나, 보여준 행동의 사이사이로 상상력을 최대한 집어넣은 결과이다.
이런 것이 어떤 의미를 얻는지, 어떤 가치를 가지게 되는지 에미야 시로는 잘 알면서도, 굳이 그 기억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러는 편이, 손상 없이 그를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해주겠지.
3.
기억하는 것을 잊지 않으려 그는 남겨진 것들에 집착한다. 처음부터 이런 성향이었던 것은 아니고, 그 겨울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도달했을지도 모르는 미래가 어째서 그런 형태였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그런 공통점이나마 결국은 가졌기 때문이리라.
기억이 처음부터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세심한 발버둥이 결국 의미 없음을 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순간에 누구든 떠올리는 것은 그런 기억이 아니던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 전신의 감각이 외치는 그 순간 말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석양 속 우아한 건축물의 풍경처럼, 의도란 단 하나도 깃들지 않은 자연광마저 완벽하게 느껴지는 그런 순간 말이다.
아침 네 시 경의 후유키 교회가 그러했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지나 먼지 하나까지 빛나도록 만드는, 그런 순간이 그 교회에는 있었다.
그 순간을 목격한 계기가 거창한 것은 아니다.
코토미네 키레이는 그에게 성배 전쟁의 경과를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보통은 전화를 이용했지만, 그 앞을 지나가는 중이라면 들어가서 그 신부를 마주하고 말했던 것 같다.
성경을 손에 쥔 그 신부의 무기질적이면서도 그를 해체하려 드는 그 눈빛이며, 듣는 내내 꼼짝도 하지 않는 자세며…….
그는 옆에 책상이 있으면, 습관처럼 그것을 검지로 두드렸다. 탁, 탁, 탁. 새벽의 고요함과 어울리지 않는 타격음이라 에미야 시로는 그 신부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좋았다. 그것은 잠시나마 새벽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행동이 아무것도 아닌 양 새벽의 탈력감을 날려버리곤 했으니까.
그러나 그가 선명하게, 평생을 잊지 못할 순간의 발단으로 남겨둔 날은 조금 달랐다. 그날 그 신부는 그에게 등만 보였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감히 추측할 수도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늘 그러듯이 떨림 없고, 고저 없이 교회의 벽을 때리며 울렸다.
“코토미네?”
그날, 돌아가도 좋다는 말은 어떠한 질문도, 무뚝뚝한 농담도 동반하지 않았다. 그것이 주는 어색함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던가. 떨어지는 먼지만이 정적 위로 쌓여가는 그 감각이, 얼마나 생경하던가. 그 남자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지 돌아보지도, 대답하지도 않고서 입안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그제야 그를 돌아보았다.
“아직 거기 있었나?”
“아니, 뭐, 물을 것도 없는 거야?”
평소에는 자주 있었던 것 같은데. 어물어물 늘어놓는 그 말이 그렇게 자신 없게 들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 탓인지 돌아오는 시선에 의아함과 웃음이 섞여 있다.
그는 말이 많은 것치고는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말이 많아진 것이리라. 그는 말의 핵심이라 불릴만한 부분을 발음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굴었다. 끊임없는 비유와 은유, 혹은 닮은 상황에 대한 고사. 그런 말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그의 말은 아름다우며 문학적인 구석이 있었다.
“아아, 오늘은.”
그러면서,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어오지만 은근한 흥미는 감출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러지?”
“아니야, 됐어.”
그때는, 그래. 그 남자가 전혀 읽을 수 없는 형태로 그를 압박하는 것이 싫었다. 휘둘리는 그 감각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지식한 편이었고, 그런 종류의 은근한 놀림에는 서툴렀다.
“묻고 싶은 게 있다면, 물어도 좋다.”
“됐어, 어차피 제대로 된 대답도 아닐 텐데.”
“호오? 왜 그렇게 생각했지?”
“늘 그런 식이잖아.”
아, 됐어.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돌아서려다가 다시 한번 쳐다본 그 남자는 이미 등을 돌리고 있었다.
“늘 하는 말이지만, 모르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 물어봐도 좋다. 굳이 마술이나 성배 전쟁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가령, 네 아버지라거나.
여전히 그는 코토미네 키레이의 표정을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코토미네 키레이라는 남자의 사고회로는 그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어져 있어, 감히 예측하거나 앞질러나가기에 좋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웃었을 것이다.
에미야 키리츠구라는 남자에 대해 다루고자 할 때, 그 신부가 일관적으로 지어 보이는 표정이 있지 않은가. 그는, 그런 미소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작고도, 또 찾기 힘든 미소를 그렸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미 죽어 사라진 사람에 대해 에미야 시로는 이해하기 힘든 감상을 다시 떠올렸겠지.
그것은 그때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불쾌한 잔상을 남긴다. 어떠한 형태로든 이미 사라져버린 사람에 대한 과한 집착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그 남자를 떠올리며 이 감각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주는 생리적인 불쾌감은 생각보다 크다.
그러나 그 순간에 자리한 것은, 불쾌감보다는 불만에 가까운 것이었다. 신비와 10년 전 사건의 전말에 어둡다 못해 모른다 치더라도, 확실히 우스운 심리 전개다. 그도 안다. 조금 꼴사나워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다만, 아직도 떠나지 않았느냐며 의아하게 쳐다보는 그 신부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드물게도 비웃거나 비꼬지 않았다. 그저, 에미야 키리츠구를 떠올리는 것 같은 얼굴로 입꼬리를 조금 더 끌어올렸을 뿐이다.
4.
사실, 에미야 시로는 그가 잘 모르는 에미야 키리츠구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렴풋이, 그에게도 그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만, 아버지로 있기 위해 늘 노력했던 그 남자를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꿈을 빌려온 그 남자가 선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꿈을 꾸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니까. 그가 잘 모르는 에미야 키리츠구도 선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기를 원하니까.
그러나, 코토미네 키레이가 전하는 에미야 키리츠구라는 남자는 비정하다 못해 냉정하다. 한 사람이 이런다면, 둘이 적대하는 관계였겠거니 어렴풋이 생각하겠지만, 한때 키리츠구를 마스터로 두고 있었다는 세이버가 내린 평가도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그것을 에미야 키리츠구라는 남자를 이루는 요소로 봐야 하겠지. 기억 속의 그가 병든 사람처럼 지쳐있었고, 정의니 뭐니 하는 관념적 이야기에는 퍽 회의적이었다 하더라도.
에미야 키리츠구와 코토미네 키레이.
그날 돌아오는 길에, 끊임없이 두 이름을 곱씹었다. 성배 전쟁의 마스터라는 간결한 단어로 두 사람의 관계는 정리된다지만, 그것이 코토미네가 키리츠구에 보이는 기묘한 집착까지 정리해 주지는 않았던 탓이다. 코토미네의 단촐하다 못해 부족한 설명은 애초에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것도 아니었거니와, 이성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여전했다.
코토미네가 키리츠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았다.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잘 전해지는 감정이 있는 법이니까. 코토미네가 내비치는 감정은 그런 종류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잘 정제된 악의에 가까운 종류였고, 그는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도 않았다. 없는 키리츠구 대신에 그것을 감내하는 것은 같은 성을 가진 자신이다. 억울하다면 억울하겠다만, 오로지 억울하게만 느끼기에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은 것이다.
아버지를 원망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남자를 싫어해도 좋은가. 그가 어째서 그런 원망을 가지고, 때때로는 망집을 드러내는 것인지 온전히 알지 못하는데도 그를 싫어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로지, 그가 괴롭힘을 당한다는 이유로.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듣고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는 없다. 그러나 코토미네가 키리츠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싫다. 정확히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말로 할 수는 없어도, 그것이 싫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것이 에미야 시로를 끊임없이 망설이도록 만든다.
나는 감히 이런 마음을 가져도 좋은 것인가. 다른 이의 행동의 어느 부분을 도덕적으로 흠잡을 부분이 없음에도, 이런 기분으로 그런 행동을 바라보아도 좋은가. 이것이야말로, 지양해야하는 그런 종류의 마음이 아니던가?
잘 모르겠어.
그는 그가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인정하거나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그가 선택한 길과 어긋남이 있어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지금은 그 답을 알고 있다. 코토미네 키레이가 죽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겠지.
그러나,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도, 그는 후유키에서 그를 도와주는 모든 사람들, 그러니까 토오사카나, 그 신부나, 서번트들에게 좋은 미래가 있을 것 같다는 낙관적인 기분을 버릴 수 없었다. 그때가 되면 잘 될거야. 그때가 되면, 모르던 것들을 알 수 있겠지. 그때가 되면…….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런 때는 오지 않았지만, 에미야 시로는 그 경험을 소중하게 여긴다. 아마, 그런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잊기 힘들어진 것이겠지.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그런 감상을 가지기 힘들어지게 되면서, 더 자주 그날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지친 몸으로 시계를 흘끗 바라보고, 두어 시간밖에 자지 못한다는 계산을 하면서도 웃으면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간 것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낙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을 돌이켜 다시 곱씹으면, 그에 대한 감상도 바뀌는 것이 보편적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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