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부재(不在)

Fate/Stay Night - 사언

Ailesdor by 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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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면 여기서 질문이 하나 있다, 소년.

너는 선(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처음부터 철학자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신앙의 길을 선택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남자만의 특징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단어와 단어, 그리고 소리의 조합만으로 앞에 있는 상대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 법이기에, 에미야 시로는 그것이 굳이 그 남자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러니까, 보편적인 특징일 것이다.

그 남자가 하는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이 그러하듯, 직관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나뉘었다. 그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가 굳이 그의 말에 부연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리라.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에 대한 답을 그 안에서 찾아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다른 이와 공유할 때, 그 단어들은 어딘가 모호한 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의도했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있다. 그 남자는 그런 미심쩍은 구석들을 하나둘 쌓아 올리는 것을 통해서도 무언가 흥미를 느낀다거나,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처음에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비스듬한 시선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남자의 탓이다. 평상시에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이런 간단한 질문마저도 망설이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막상 또 간단히 말하려고 하니 걸리는 것이 평소 행동이다.

나는 어디까지 대답해도 좋고, 어디서부터 대답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지난주 일요일에 호기심으로 교회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생긴 마음이다. 저 남자가 어떤 행동을 하고, 토오사카나 그를 재미있는 스포츠라도 된다는 듯이 속아 넘긴다고 하더라도, 그날의 그 순간에, 신을 조각한 것 앞에 서서 말하는 그 얼굴은 진실한 사람의 것이 아니던가. 다른 것은 몰라도, 그런 것은 볼 수 있다. 믿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의 표정은 거울에도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싶지 않은 것은, 말로는 절대로 저 신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 남자로 말할 것 같으면 평생을 저 혀로 지탱해왔으며, 신이 그에게 혀를 통해 살아갈 것을 명하였고, 그의 모든 행복도 저 혀를 통해 나온다. 뱀의 혀가 있다면 저런 꼴이라 생각했다.

사실은, 그만 놀렸으면 한다. 에미야 시로라고 하는 사람의 삶의 대부분이 영웅이 되고 싶다는 소원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저 남자가 그를 그만 놀렸으면 좋겠다. 아직 어린아이라고 보는 것만 같은 그 태도가 문제다. 키리츠구처럼 냉정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취급은 말이 맞지 않는다. 이쪽도 마스터, 그쪽도 마스터. 지위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할 텐데. 얼마 더 살았다고 말이야…….

 

내일 아침도 같은 시간에 일어나 등교를 하려면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여유시간이라고 해봤자 두어 시간 정도가 아닐까. 교회에서 집으로 가는 시간은 고려하지 않았으니, 아마 밤을 세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에미야 시로는 지금 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 남자에게로 쏟아지는 어슴푸레한 달빛을 바라보며, 자꾸만 왜 저에게 선(善)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지 곱씹어보는 것이다. 그가 에미야 키리츠구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서? 그것이 아니라면, 그가 정의하는 선(善)과 그가 얼마나 가까운지 파악하기 위해서?

원하는 답은 있다. 그 질문이 그 남자가, 에미야 시로라는 그의 인생의 갓 절반을 살아낸 소년에게 철학적인 의견을 묻고 싶을 정도로 동등하게 바라본다는 신호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미야 시로는 그 달빛을 맞으며 슬슬 내려오는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그 남자를 쫓는 내내, 그것이 그만의 상상이 될 것을 다시 자신에게 가르쳤다. 아,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한두 번도 아닌데 어째서.

 

“조는 건가?”

“뭐? 졸아? 아니거든.”

 

사실은 졸았다. 저 남자에게 그런 일로 트집잡히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졸았다는 것을 지적받는 것 자체가 그랬다. 자신이 졸음을 견딜 수 없는 사람처럼 비추어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가볍게 웃고는 그를 지나쳐가는 것이다.

 

“할 말이 없다면 이만 가도록. 4시에 새벽 예배가 있어서 말이지.”

“계속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음?”

 

당신이 한 질문에 대해서 생각했다고. 그 말에 키레이는 잠시 멈추더니,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정리되지 않은 말이 입안에서 티스푼으로 휘저은 것처럼 부웅 날아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이런 정리되지 않은 말로 저 남자에게 비웃음을 살 각오를 하고서 발목을 붙잡아야 하겠는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선(善)에 대해서 말인가?”

 

반대로 질문해 올 줄 몰랐다는 듯이, 그 남자는 눈을 살짝 찡그렸다가 대답했다.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다.”

“뭐?”

 

당신이 아니라는 건 잘 알아들었는데. 비꼬는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저 신부는 묘하게 그런 말은 잘 알아듣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까지 교회에 앉아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것은, 고작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지 않은가.

 

“선(善)이라는 것을 우리는 올바른 가치를 우리의 자유로 선택해서 행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이나 소년, 네가 하는 행동과는 꽤 거리가 있지.”

“나는 왜,”

“너는 네 행동이 오로지 너의 자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에미야 시로는 무언가를 말하는 대신에 고개를 들어 남자를 똑바로 처다본다. 그와 의자 하나 정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그 남자는 그림자로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저것은 웃는 얼굴이 아닌가?

 

“나는 악하다. 무언가를 가져와서 논증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그러나, 소년이여, 만일 악이 단지 선의 부재라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지?”

 

별로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 이어진다. 그는 이제 시로에게 등을 보이고서 천천히, 그가 예배를 볼 때 올라가곤 하는 단상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말에 따르자면 너의 상태도, 나의 상태도 무어라 말할 필요 없이 악의 영역에 들어가는지라. 단지 선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상태가 악이라고 한다면, 너는 그저 무언가가 결핍된 상태로 말한다면, 너는 그것을 받아들일 건가?”

 

난 그것이 묻고 싶었던 거다. 왜냐면, 우리는 닮았으니까.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들리지 않아도 들린다. 그것은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고, 각자가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아, 그렇다면 나는 평생 저 남자의 등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시로는 고개를 젖혔다. 그에게는 자유가 없다. 그가 자꾸만 눈으로 좇게 되는 저 신부에게는 올바른 가치가 없다.

 

“받아들이겠지.”

 

그 대답에 신부는 놀랐다는 듯이 그를 다시 들여다보고, 미미하게 눈썹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천천히 그에게서 돌아섰다. 그것 자체가 단절과도 같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째서인지 그는 저 신부에게 무언가를 더 물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다. 돌아가면 아침 준비부터 해야 할 수도 있겠는걸.

 

“네가 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는 아직 지난 8년에 걸친 순간들을 한 번에 버릴 준비는 되지 않았다. 새삼스럽게 그것을 입에 담아야 하는지 물어보기 위해서, 그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가, 저번 주 일요일 아침에 단상 위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얼굴을 보고서는 순간 굳었다.

 

“아, 더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 와도 좋다.”

“굳이 오겠냐고.”

 

볼멘소리를 굳이 내뱉으면서도, 그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문틈으로 그 얼굴의 파편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탓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닫혀버린 문만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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