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력증진교실

소원

유이없는 나가노조 | 주제는 분명 기일이었어

칸스케가 기억하는 모로후시 형제의 모습은 징글징글했다. 그 사건으로 기억상실에 실성증까지 앓던 동생을 걱정하는 것은 이해했지만, 하는 짓거리를 보면 그냥 나가노에서 같이 살라고 하고 싶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하던 것은, 동생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며 한 달의 한 번으로 줄었다. 대신 우편이 늘어났지만. 냉정하다가도 이상한 데서 정이 많은 녀석이다.

한 2년 전쯤, 타카아키는 동생이 ‘경찰을 그만두었다’고 전했다. 이후 칸스케에게 타카아키의 동생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기억 속에서 히로미츠의 존재는 차츰 잊혀져 가는가 싶었다.

“…칸스케 군.”

타카아키가 볼 일이 있다며 도쿄로 갔다 온 이후의 일이었다. 순직한 도쿄도 경시청의 다테라는 형사의 유품. 정확히는 생전에 보내고자 했던 봉투로, 거의 1년 만에 제 주인을 찾아갔다. 봉투 속 물건은 박살 난 핸드폰. 한참을 보고 나서야 칸스케는 경찰을 그만두고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동생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칸스케는 별다른 위로의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그런 섬세함은 본인에게도, 타카아키에게도 없었다. 대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유이가 알지 못하게 말주변을 돌리는 정도였다.

“공명, 동생 사랑은 여전하구나.”

“….”

타카아키가 히로미츠의 옛 친구에게 일부가 가려진 진실을 전하고 들은 말이었다. 일본 어딘가에서 아직까지 정의의 사도로서 있으리라는, 거짓 없는 진실. 안타깝게도 자신조차 가려진 부분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동생의 사망 경위는커녕, 기일조차 몰랐으니까.

그가 눈물에 번진 메모와 봉투를 받았을 때 든 감정은, 거짓말을 전한 동생에 대한 괘씸함보단 안도가 먼저였다. 급박한 상황이었을 텐데 유품을 빼돌릴 수 있을 만큼 곁에 있어 줄 친구도, 네 죽음에 울어줄 친구도 있구나. 상경한 동생이 걱정보단 잘 지냈던 것 같아 다행이었다. 동시에 든 것은, 연락이 두절된 지 거의 2년이나 흘렀음에도 지금에서야 찾아본 스스로에 대한 분노. 일방적으로 연락이 끊겼다고 하여 사이가 소원(疏遠)해진 것은 본인 탓이었다. 좀 더 일찍 찾아봤다면 무언가 변했을지도 모르지.

“조만간 도쿄로 다시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타카아키는 진실을 알고자 했다. 이제서야 알게 된 동생의 죽음에 대한 속죄, 혹은 스스로에게 주는 벌. 알아봤자 무엇이 바뀌겠느냐마는, 그는 동생을 순직하게 만든 임무에 대해 알고 싶었다. 하다못해 죽은 경위라도.

핸드폰에 새겨져 있던 ‘0’은 분명 ‘제로’라는 별명을 가진 히로미츠의 소꿉친구, 후루야 레이가 분명했다. 정황상 유품을 빼돌린 본인이겠지. 물건을 전해준 다테라는 형사는 이미 죽었으니, 열쇠를 가진 이는 그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미(白眉) 소년을 다시 찾아갈 필요가 있었다.

“동생 일이야?”

“알묘조장(揠苗助長). 아직은 사려가 더 필요하니, 확실해지면 말하도록 하죠.”

사실 짐작 가는 일은 있었다. 근래에 도쿄, 그 중 베이커가에서 신원불명의 외국인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연달아 일어난 우미자루 섬 방화 사건, 근방에서 들렸다는 의문의 총격과 폭음. 그런 식으로 흐지부지된 사건은 도쿄도 경시청보단 경찰청 경비국의 입김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사망자의 신원은 높은 확률로 외국에서 파견된 범죄 수사 조직의 일원. 동생의 죽음은, 어쩌면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큼 커다란 조직과 맞닿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측. 확실한 것은 없다. 성급하다간 일을 그르칠 수 있기에 더 많은 단서가 필요했다.

“어이, 공명. 그러니까…. 아 씨, 아무튼 무리하지 말아라.”

아라노 서로 또 좌천당하지 말고. 물론, 공안의 일이라면 좌천으로 끝날 리가 만무하지만. 그럼에도 칸스케는 타카아키를 말릴 수 없었다. 자신이 눈 병신, 다리 병신이 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저 덕분이었으니까. 원래 얌전한 새끼가 눈이 돌아가면 더 위험한 법이다.

“노력해 보죠.”

타카아키는 늘 그렇듯, 칸스케의 우려를 적당히 흘려 넘겼다. 그런 조직이라면 경찰직을 내려놔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등고자비(登高自卑). 처음부터 하나하나씩 정확하게 밝혀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적어도 제(祭)를 지낼 날짜 정도는 빨리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리 소원(所願)했다.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3


  • 반짝이는 까마귀

    오~ 약간 외국소설읽는느낌인데? 네. 저 한자는 배운 적이 없어서 외국어같이 느껴지네요. 어떻게 보면 외국어겠지 공부하겠습니다.

  • 추워하는 바다표범

    좋은느낌을줌

  • 전설의 날다람쥐

    타카아키 타코야끼 과연우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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