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공안체험학습

어려진 후루야X신이치

기존 포스타입 글과 동일한 글입니다.

 https://posty.pe/tm5vnf


그것은 쿠도 신이치가 기분좋게 점심식사 후 홈즈 책 한 권을 정독할 때의 일이었다. 시간은 약 오후 3시쯤. 은은한 기분과 적당히 부른 배로 책에 푹 빠지며 잔잔히 수면 속에 몸을 맡길 때 쯔음 딩동, 하고 차임벨이 울렸다. 음, 올 사람이 없는데. 신이치는 흐느적대면서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어서 당황했다.

 "…누가 낮부터 장난이람…."

 "이봐, 여기다. 여기."

 사회의 자랑스런 어른이 된지 꽤 되었으니 아이는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래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코난시절 알던 누가 코난이라도 만나러 찾아왔나 싶어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누가 꼭 생각나는 얼굴이 미간에 힘을 잔뜩 주고 저를 올려다보고있었다.

 "……이거…누굴 닮은 것 같은데…."

 

 저 처진 눈매에 팍 쓴 인상. 까무잡잡한 피부에 백금발. 이런 사람이 또 누가 있더라…. 

 남을 앞에 두고서 무례하게 골똘이 생각하는 동안 제 무릎을 조금 넘는 꼬마는 한숨과 함께 짙은 인상을 쓰며 한 손으로 머릴 쓸어넘겼다. 뭐야, 저 잘생김은. 꼬마 주제에 저렇게 분위기 잡지 말라고.

 "이 모습에 대해서 네게 좀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쿠도 신이치 군."

 "……와."

 아무로 씨다. 아니, 분명 이름이….

 "후루야 씨의 동생?"

 "…이런걸 고등학생 명탐정이라고… 하…."

 "이젠 고등학생 졸업한지 한참 지났거든요!"

 장난 좀 쳐본 것 가지고 사람이 재미없게! 

 신이치는 일단 들어오라고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옷은 어디서 구했는지 반팔과 반바지 차림에 작은 운동화가 퍽 잘어울렸다. 후루야는 쫑쫑 걸어 신이치를 지나쳐 현관문 앞에서 고사리같은 손으로 운동화를 벗어 가지런히 놓았다.

 "실례합니다."

 "……어린이의 모습 진짜 귀엽다."

 "너한테서 듣게 될 줄은 몰랐군."

 분명 올망졸망 귀여운 아이의 모습이지만 내뱉는 말이 사무적인것을 보니 후루야 씨가 맞다. 운좋게 조직에서 아포톡신의 해독약을 얻게 된 이후로 포와로에서나 잠깐씩 마주치던 사이였는데 설마 집에 초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이치야 당연히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철저히 사건에 간섭하지 말라고 쳐내는 후루야 때문이었다. 그런 후루야가 제발로 신이치를 찾아오는 일이 생길거라곤….

 "에도가와 코난."

 "…그 아이는 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니까요."

 "지금 내 모습을 보고도 그 말도안되는 논리를 밀고 갈 셈이야?"

 "……으음."

 "내가 그 말을 믿었기 때문에 너를 그냥 내버려 둔 줄 알아? 네가 내게 알리고 싶지 않아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거야."

 

 다시한번 상기시켜주자면 후루야는 여전히 꼬마아이의 모습이었다. 온갖 폼을 다 잡고 딱딱하게 말하는 저 모습이 무릎언저리에 오는 꼬맹이가 내뱉는 말이었다. 작아져도 후루야 씨는 후루야 씨였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나도 그냥 모르쇠로 넘어갈 순 없게 되었어."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약에 대해선 잘 몰라요."

 "약?"

 후루야는 금시초문인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아포톡신으로 작아진 게 아니었어? 신이치도 마주보며 눈을 껌뻑이자 후루야가 목이 아픈지 두리번거리다 소파를 찾았다. 푹신한 소파의 가운데자리를 냅두고 가장자리의 높은 곳에 걸터앉았다.

 "…우선 커피라도 드릴까요?"

 "그럼 아이스로 부탁하지."

 "근데 어린아이가 커피 먹어도 되나?"

 "너 내가 혼자 포아로에 왔을 때 모르는 척 커피 내려준 걸 잊은 건 아니겠지?"

 "그건, 그렇네요. 금방 가져올게요."

 왠지 후루야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게 신선하고 즐거워서 신이치가 키득이며 웃었다. 결론적으론 신이치가 내온 커피가 맛이없다면서 후루야가 투덜대며 부엌으로 들어갔지만. 손이 닿지 않는 후루야를 어떻게든 두 손으로 안아들고서 이리저리 움직여주니 작은 손이 척척 커피를 잘도 내렸다. 같은 커피머신으로 급이 다른 맛과 향을 느끼며 신이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포톡신이라고 조직에서 약이 있어서 그걸 드신 줄 알았는데…."

 "베르무트가 장난을 친 것 같아."

 "무슨 죄를 지은거예요?"

 "그냥 좀… 그런 일이… 있었지. 몰라도 돼."

 후루야는 몸서리를 치며 손을 휘적거렸다. 그저 말싸움을 했다고 대충 둘러대면서 말하는걸 보니 그다지 어른스럽고 떳떳한 일이 아닌 듯 싶었다. 후루야는 결국 내가 왜 그 여자한테! 라고 싫다면서 발광하다가 신이치의 설득으로 버본의 휴대전화를 들어 베르무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작아진 후루야의 목소리를 듣고 어머, 귀엽기도하지. 라며 즐거워하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 신이치에게까지 닿았다. 후루야는 인상을 팍 쓰고서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이렇게보면 모자람없이 완벽해보였던 후루야도 발끈하는 어린애같은 구석이 있구나 싶었다. 하긴, 아카이를 대하는 태도를 봐도 어련할까.

 "뭐래요?"

 "…일주일 정도면 알아서 커진다는군."

 "그동안 조직의 일도 못하겠어요."

 "그건 상관없지만 문제는 다른쪽이야."

 "설마, 그 몸으로 공안의 일을 하겠다는건 아니죠?"

 "내가 일주일이나 업무를 보지 않는 쪽이 더 절망적이니까."

 "말이 돼요!? 저도 코난일땐 잠자코……!"

 "잠자코?"

 죄송합니다.

 유구무언.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네. 신이치는 어린아이의 모습인 후루야에게 바짝 쫄아서 입을 다물었다. 잠자코 있었다기엔 좀… 화려하게 다니긴 했지. 하지만 그래도 대놓고 다니진 않았었는데 후루야는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으로 뭘 할 수 있는걸까. 회사에 출근을 안 할 수는 없잖아.

 "사정을 아는 네가 나와 같이 좀 다녀줘야겠다."

 "저 이런 협력 요청은 전혀 달갑지 않은데요."

 "공안의 협력 포지션으로 내 대리인 위치를 주지. 이 일주일동안의 사건 관련 문서도 볼 수 있을거고."

 "뭐부터 할까요?"

 금세 태도를 싹 바꾸고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며 후루야는 엄습하는 불안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럼 안되는건데 애초에 공안임을 아는 자라곤 같은 공안을 제외하면 신이치가 유일했다. 사실 다른 사리사욕을 채울지도 모르는 녀석들보다 순수하게 사건에 관심을 갖는 추리광이 더 나을것 같다. 

 믿을 수 없어! 내가 후루야 씨의 대리인! 그렇게 외치며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는 신이치에게 후루야는 휴대전화를 두 개 내밀었다.

 "이건 내 대리인 신분으로 임시로 쓰이게 될 휴대전화. 모든 업무는 우선 나에게로 먼저 통하게 되겠지만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에 네가 내 대신 말을 전하거나 결단을 내려.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 독단으로 결단을 내리지는 마."

 "당연하죠, 당연하죠."

 "그리고 남은 하나는… 쓸일이 없길 바라지만 나와 직통으로 연결 할 수 있는 번호. 가급적 이 일주일동안은 계속 나와 붙어있도록해."

 "저 그런거 진짜 잘해요. 걱정마세요."

 

 저거 이미 마음은 딴 데 가있는 것 같은데….

 후루야는 미심쩍은 얼굴을 했지만 어린아이의 얼굴로 지어봤자 깜찍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사실 신이치가 알면 이봐요 하면서 태클을 걸겠지만 후루야는 신이치가 수락하기도 전에 이미 카자미나 다른 공안 사람들에게는 한 동안 자신은 대리인을 내세워서 직접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전달해두었다.

 "일주일간 공안의 업무 체험~ 저 경비기획과에도 한 번 가보면 안되나요?"

 "이게 애들 현장체험학습인줄 알아?"

 "그거 너무 좋은데요. 공안체험학습!"

 "너 역시 그 휴대전화 도로 내 놔."

 "줬다 뺐는게 진짜 나쁜거거든요!"

 휙휙. 신이치가 높게 휴대전화를 들자 소파에서 까치발을 들고 버둥거리는 후루야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에베베 더 놀리고 있었다. 아무리 천하의 후루야 씨라해도 지금은 어린이의 모습이다. 자신이 에도가와 코난 그 쪼그만 모습으로 구르고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생각하면… 물론 박사님의 도움이 있었지만 후루야는 지금 아무것도 없는, 

 켁.

 신이치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대응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저 작은 몸으로 설마 닌자처럼 뛰어다니며 공중에서 신이치의 팔을 꺾고 넘어뜨릴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신이치의 등에 가벼운 몸이 앉아 훈계를 놓고 있었다. 신이치는, 7살짜리 꼬맹이한테 져서 누워있는것이다.

 "너 자꾸 까불거야?"

 "…죄송합니다. 이제 좀 내려와주시면 안될까요."

 

 후루야는 작아져도 후루야였다. 귀염성도 전혀 없었다. 저 얼굴에 귀엽다고 속아넘어간 10분 전의 자신이 억울할 정도로!

 "난 코난을 만만히 여긴적이 없었는데 말이지."

 "그건… 그렇네요. 생각해보니 제가 좀 무례했던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알맹이는 서른살 아저씨인데."

 "너어는 진짜…."

 한 마디도 지지를 않는구나. 후루야가 결국 한숨을 쉬고는 일어섰다. 코난일때도 이겨본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니 이 영악한 녀석의 알맹이는 고대로였다. 이걸 한 대 차버릴까? 어린아이의 근력인데 가렵지도 않지 않을까? 급소? 급소를 차버려? 

 후루야는 어느샌가 나이도 잊고서 유치한 생각들을 하며 신이치를 노려보았다. 장난스레 흘기는 귀여운 모습으로 비춰졌다는게 안타깝다면 안타까울 일이다. 둘이서 그렇게 옥신각신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드디어 첫 전화가 울렸다. 

 "헉, 울려요! 울려요!"

 "당황하지 말고 받아."

 

 신이치는 전화를 받으면서 후루야의 눈치를 살폈다. 소파에 다시 걸터앉아서 통화내용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하던 후루야는 테이블 위를 기다시피해서 잡아챈 펜과 쪽지로 지시사항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신이치는 쪽지를 읽어내려가며 전달했다. 자꾸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꾹 참고 전화를 끊자마자 후루야에게 닥달했다.

 "왜 연쇄살인범을 공안에서 찾아요!?"

 "…너어."

 "아…! 알려줘도 되잖아요!"

 "대만쪽에서 넘어온 국제 테러조직과 연관이 있을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거든."

 "근거는요!? 증거도있어요!? 대만 조직이면… 설마 저번 신문에서 본 무차별 폭발사건과도 이어지는 맥락인가요!?"

 "들이대지마. 상당히 부담스럽거든. 알고싶으면 외출준비해. 사건현장으로 갈거니까."

 "예?"

 "현장에 간다고."

 "……설마 보호자가 저인가요?"

 "그럼 달리 누가 있어?"

 씨익 웃는 어린아이의 잘생긴 얼굴은 신이치에게 불안감을 가져다주기 충분했다. 물론 사건현장에 가본다는것은 너무 두근거리고 기쁜 일이지만 에도가와 코난으로서 수도없이 겪은 일이었다. 얼마나 많이 제지받고 힘들어했던가. 그런데 그런 것들을 뚫고 후루야를 데려간다고. 이건 분명 어마어마하게 피곤한 사건의 시작이 될터였다. 혼자가면 안돼요? 저 대리인 자격으로 사건현장만 쏙 보고 올게요. 아무리 설득해도 후루야는 웃기지 말라며 빨리 준비나 하라고 닦달했다.

 †

 "더 빨리는 못 가나?"

 "저 초보운전자거든요! 운전 면허 딴지 이제 겨우 두 달이요!"

 "내가 보기에 넌 불필요하게 브레이크를 너무 많이 밟아."

 "당신은 불필요하게 엑셀을 너무 많이 밟았고요."

 "이건 내 차니까 사고나도 책임은 안물을게. 그러니 빨리 좀 가지."

 "당신은 당신 차에게 늘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돼요."

 "물론. 난 내 차를 사랑해."

 "이 나라에 이어서 사랑하는게 차인가요?"

 "그 얘긴 좀… 넘어가지…."

 후루야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잊고살던 흑역사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애인 아니에요? 라고 묻자 아 좀! 하면서 얼굴을 홱 돌려버린다. 조수석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지만 몸이 너무 작다. 창 밖을 보는데 몸을 일으키고 목을 빼꼼 들어올리고 양 손은 창틀을 짚는다. 아주 귀여워 죽겠네. 신이치는 키득키득 웃었다.

 "앞에나 봐. 초보운전자가 딴짓하다가 사고난 차에 휘말려 죽게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으니까."

 "그거, 7살 짜리를 조수석에 태운다음 180을 넘게 밟고 전철 위를 횡보하던 서른살 아저씨가 할 말은 좀 아니지 않아요?"

 "왜 넌 한마디를 안지지?"

 "그 말도 그대로 돌려줄래요."

 "한 대만 때려도 돼? 어린애잖아."

 "후루야 씨는 어린애로 안 보기로 했어요."

 "언제?"

 "당신이 닌자같을때요. 아, 여기서 우회전인가."

 닌자? 후루야가 의문을 잔뜩 품고서 심각히 고민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이치는 길찾기에 열심이었다. 곧이어 사건현장에 도달해서 근처에 차를 세우고 야구모자를 후루야 머리에 푹 씌웠다. 

 "이번 피해자는 누구예요?"

 "혼자 사는 30대 남성. 토막 살인이야. 아직도 왼쪽 팔이 발견이 안됐지."

 "신문에 났어요?"

 "내일 쯤 나겠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소근거리며 대화를 이어가야했기에 신이치는 후루야를 안아들고 있었다. 설마 후루야 씨가 제게 안겨서 품안에 속삭거리는 걸 듣게 될 줄은. 사람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리인 자격을 명시하고서 들어갔다. 이상한 눈초리로 아이는 두고가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았지만 신이치는 떳떳하려고 애썼다. 애초에 이 사람이 없으면 자신도 여기 못들어가는걸.

 "흉기는 발견 됐나요? 보니까 두부를 세게 가격당한 것 같은데…. 뇌에 부종이 온 것 같아요."

 "좀 더 시체쪽으로 가까이 붙어봐. 척추가 휘어있나?"

 "솔직히 이리저리 토막나서 좀 헷갈리는데요. 잠시만요."

 "왜 팔다리를 잘랐을까?"

 "……뭔가, 숨기고 싶은게 있었다거나."

 신이치는 주위 경찰이 자신을 보고있지 않음을 확인한 후 조심스럽게 후루야를 내려놓았다. 솔직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꼬마야! 거기 들어가면 안 돼! 하면서 말리고 신이치까지 내쫓아버릴 것만 같았다. 대리인 신분이라고는해도 후루야가 이곳에서 벗어나면 저도 꼼짝없이 물러나야한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루야는 시체 주변에 가까이가고 빙 돌면서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뭐 좀 알아냈어요?"

 "쿠도 탐정님은 어떻지?"

 "대충 알 정보는 안 것 같은데요. 범인은 머리를 가격해서 죽인것도, 칼로 찔러서 죽인것도 아니에요."

 "근거는?"

 "사건 현장 자체가 그래요. 일단 여기서 사건이 발생했도록 보이고 싶었다는 의지가 너무 명확해요. 숨기고 싶었다는 거죠. 다른곳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깔끔하게 살해한 후, 이곳에서 일부러 머리를 깨고 시체를 토막냈어요. 이 장소에서의 알리바이를 크게 신경쓸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흉기도 가져가버렸죠. 아주 현명했고요. 다들 여기서 살해와 뒷처리가 전부 벌어졌다고 생각해서 아슬아슬하게 알리바이를 피해 갈 수 있었을 테니까요."

 "……넌 정말 볼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는군."

 "게다가 한 가지 더요. 잘려진 단면을 보면 매우 깔끔하죠. 실제로 영화처럼 쉽게 베어지고 잘려지지 않으니까요. 대부분은 낑낑거리며 조직을 다 뭉개놓고 여러번 칼이 들어갔어야 정상인데 매우 깔끔하게 잘라냈어요. 이것에 관련있는 종사자거나 전공일지도 몰라요."

 후루야는 신이치의 말을 골똘이 듣더니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두 손을 신이치를 향해 뻗었다. 안아달라는 의미다. 

 "나가게요?"

 "이곳에서 볼 수 있는건 다 봤어. 나머지는 용의자를 추릴 정보를 지금 얻은 것을 토대로 정정해줘서 조사하게 하는 수밖에. 이건 전달이 늦어질 수록 범인을 놓치기도 쉬우니까."

 "지금도 용의선상에 제외되어서 신나게 다른곳으로 가고 있을걸요."

 신이치가 다시 후루야를 안아들었다. 

 "전달은 차에가서 할거예요?"

 "가면서 설명하지."

 "토막을 낸 이유가 뭘까요?"

 "사망원인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감전사일거야. 토막 낸 것도 손발이나 손끝에 생겨버린 도넛모양의 전류환을 감추기 위해서일거고…."

 "설마…. 잠깐만요. 피해자의 신원은 분명…."

 "맞아. 피해자가 주로 만나는 대학교수와 관련이 있겠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서 흘리듯 지나간 정보중에 연구실에 드나들면서 새로운 전자기기를 개발해 투자를 받고있는 녀석이 있었으니까. 자세한 정보도 차에가서 보고."

 "아니 보통 관심이 없는 정보를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기억해두나요?"

 "너도 그렇잖아?"

 "저는 탐정이고요."

 "도토리 키재기군."

 신이치 품에 안긴 후루야가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피해자가 죽어서 그 개발자가 얻게 될 이익이 있다면 심증도 더 두터워질 터였다. 차에가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하루종일 이곳저곳 후루야를 안고 돌아다니면서 신이치는 생각보다 꽤 후루야와 잘 맞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덧붙여 후루야의 삶이 얼마나 바쁜지도. 대학 연구실은 물론이고 회사까지 찾아가서 여러 이야기를 듣고 중간중간 대리인으로서 공안에 전달을 주고받는다. 이것만으로도 벌써 지치는데 아이의 몸을 지닌 후루야는 피곤한 기색조차 없었다. 체력도 마찬가지로 줄어드는 것을 누구보다 신이치가 잘 아는데도.

 "…안 피곤해요?"

 "별로. 이제 집에 돌아가니까 괜찮아."

 "저한테까지 허세 부릴 건 없는데."

 "힘들다고해서 힘든것이 덜어진다면 백 번이라도 그렇게 했을거야."

 "……음…."

 "이렇게 말해도 사실, 내 말을 들어줄 녀석도 이젠 없고 말이지."

 "친구도 없구나 후루야 씨는."

 "그러게. 정신차리고 보니 나 혼자더라고?"

 "그게 다 일에만 매진해서 그런거예요. 사람이 좀 즐기면서도 살아야지."

 

 이쯤이면 다시 한 번 말해보라고 하면서 반박이 있어야하는데 후루야가 조용했다. 신이치는 슬쩍 조수석을 바라보았다. 

 왜, 아이의 얼굴로 그렇게 세상 다 보낸 표정을 짓는걸까.

 "저한테 연락해도 돼요."

 "뭐?"

 "후루야 씨 솔직히 아직도 젊으니까. 새 친구 만들면 돼죠. 친구가 정 없으면 뭐 저한테라도 연락하세요."

 "맞아. 우리 탐정군도 사실 친구가 없지. 매번 사건에만 매진해서 튀어나가니까 말이야."

 "아파요. 말로 뼈때리지 마세요."

 입을 비죽내밀고서 말하니 이번엔 후루야가 키득거렸다. 성격 나쁜것좀 보라, 여기서 이렇게 재미지다는 듯 웃을 일인가? 신이치는 저도모르게 엑셀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RX-7이 미끄럽게 달리는 동안 후루야는 첫날이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신이치의 말마따나 이 공안체험학습은 앞으로 6일이나 더 지속되어야만 했으니까.

 "아, 쿠도 군."

 "네."

 "그러고보니 내일은 포와로 출근이 있어."

 "…설마 오늘…."

 "밤새 커피 내리는 법을 좀 배워줘야겠어. 솔직히 아까 쿠도 군이 내놓은 커피는 도저히 돈 주고 팔만한 상황이 못되어서 말이야."

 "저기요! 안 쉬나요!? 설마 일주일동안 이거 계속 이래요!?"

 "하루 4시간의 수면은 어떻게든 보장해줄게. 음… 아마."

 "전 후루야 씨가 아니거든요!!"

 내일은 꼼짝없이 작아진 후루야를 안고 포와로에 대리 출근하게 생겼다. 그러다 또 공안에 일이 있으면 후루야가 그랬듯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사건현장으로 튀어나가겠지. 아니 이사람 용케도 안잘리잖아.

 "일주일동안은 그냥 휴가내면 안 돼요!?"

 "난 그렇게 어중간한 마음으로 산 적 없어." 

 "아니 휴식을 취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은 깔끔히 포기하는게 대체 어디가 어중간한거예요."

 "다 왔군. 어서 내려. 하루 24시간은 짧다고, 쿠도 군."

 아이의 얼굴로 전형적인 꼰대말을 구사하는 후루야가 괜히 멋지고 잘생겨서 신이치는 억울한 마음에 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얄밉다. 도착하자마자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 내려서 문고리 앞에서 폴짝대는 저 후루야 씨가 괜히 귀엽게 보여서 더 얄밉다. 이 일주일 공안체험학습이 아니라 후루야 체험학습이 아닐까. 신이치는 불안한 기운을 느끼며 오늘 산더미 처럼 쌓인 일에 한숨을 내쉬었다. 공안 체험을 해보고싶었다니, 오늘 그 환상과 꿈을 단단히 깨버리는구나.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아 돌리기가 무섭게 후루야는 제 몸과 비슷한 크기의 노트북을 들고는 테이블에 자리잡았다.

 "커피 내리는거 알려준다면서요……. 아……."

 "그 전에 사건 결재 하나만 하지."

 "당신 그거 일 중독이야…."

 "예전엔 보고싶어서 안달을하더니, 사람은 변한다니까."

 

 누가. 누가 날 이 꿈에서 깨게 해줘라. 

 괜시리 베르무트를 원망도해보며 신이치는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후루야 옆에 앉았다. 그러고보니 후루야 혼자 높은 테이블때문에 서서 노트북을 조작하는게 안쓰러워서 허리를 잡아 들어올린 후 제 무릎에 앉혔다.

 "천천히 좀 부탁 드립니다 후루야 경시님…."

 "아침의 기세는 어디가고 엄청 고분해졌네."

 "전 그냥 탐정이라고요…. 공안 뭐야 대체 무서워. 휴일은 어디있나. 고용노동법은 아세요?"

 "공안에 그런게 어딨어. 자, 빨리 모니터나 봐."

 "네에…."

 우는 소리를 내며 침침한 눈으로 모니터를 향하기 무섭게 후루야의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렇게 세 시간 쯤 지났을까, 대충 급한 일을 끝내고서 후루야는 먼저 욕실로 들어갔다. 어린이의 몸으로 샴푸통조차 잡기 힘들어서 블럭쌓듯 물건들을 쌓아올리고는 힘겹게 내렸다. 그렇게 전투와도 같은 시간을 보내며 목욕을 끝내고 나오자 테이블에 엎드려서 지쳐 잠이든 신이치가 있었다.

 "할일은 아직도 많지만…."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며 낑낑 담요를 끌어와서 신이치 위에 덮어주었다. 솔직히 일반인이 감당하기에 힘든 일이기도 했고 되려 따라온 신이치가 장할 정도였다. 하나를 말해도 열을 알고 척척 움직이는 것이나 잘 모르는걸 알려주면 금세 응용까지 마치는건 공안의 인재로서 당장 데려오고 싶을 정도였다. 커피를 내리는 것도 배워야하긴 하지만 역시 좀 가혹한 일인가 싶어서 후루야는 휴대폰을 들어 점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은 좀 쉬게 두는게 낫겠지."

 내일 못간다는 문자를 보내고서 후루야는 기지개를 켰다. 불편히 엎드려서 자는 신이치를 가뿐히 들어올려 침대에 눕힐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어린아이인 모습이 분할 뿐이었다. 거실에 불을 끄고서 노트북을 다시 쥔채 서재로 향했다. 후루야의 밤은 길었고 아직도 할일이 잔뜩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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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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