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 「Zero」
후루신(+경찰동기조) 특수부대 AU
이전 포스타입 글과 동일한 글입니다.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특수부대, 국가의 안보는 물론이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내던지는 특수조직. 통칭 [Zero]부대.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고 꽤 높은 지위에 속한 사람들조차 소문 한가닥 잡지 못하는 특수 중의 특수부대였다. 이들은 주로 국가 방어와 기밀 임무를 맡아 수행하지만 때로는 타국의 전쟁에 지원을 나가거나 참여하여 국고를 늘리는데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국가가 쏠 수 있는 초대형 미사일. 그것이 제로부대였다. 살인청부부터 전쟁지원, 특수 경호까지 도맡는 실정이지만 조직 특성상 인원수는 많지 않았다. 총 부대원은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고 그들을 이끄는 사령팀 또한 단 다섯. 그것도 꽤나 젊은 나이의 청년들이었다.
"오늘 신입 들어오는 날이었지."
"아, 사령부의 그 소년 말입니까?"
"소년?"
직속 부하와 대화를 나누며 본부 복도를 걷던 후루야가 되물었다. 그럴만도한게, 이 제로부대 중에서도 자신이 속한 사령팀은 정말 나라의 엘리트들만 들어오는 격이었다. 그것은 지금 아이스커피나 물며 한가로이 걷고 있는 듯한 후루야 레이 또한 마찬가지의 입장이었다. 자신이 결재한 서류 하나에 전쟁의 판도가 달라진다. 사령팀은 가장 창창한 나이인 20대, 30대를 주축으로 이루어지지만 '소년'이라니 이건 또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갑작스런 신입 막내가, 진짜로 막내가 되는 순간이었다.
"한 번 봐야겠는데. 그래서 그 녀석은 지금 어디있지?"
"...아마, 통합실에 있을 것 같습니다. 특기가 프로그래밍이라고 적혀있었거든요."
"그럼... 나머지 그 녀석들도 죄다 거기 모여있겠군."
후루야는 부하로부터 막내의 인적사항이 적힌 서류를 건네받고 이제 들어가서 쉬라며 휘휘 손을 내저었다. 제로부대의 특징은 일이 생기면 모든 일상생활을 중단하고 즉시 근무지로 파견되지만, 임무가 없을 때에는 무기한 휴가와도 같았다. 그저 하고 싶은대로 자유롭게 활동하면 된다. 심지어 훈련조차 개인이 진행하고 원할때만 본부의 시설을 빌려 언제든 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훈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임무 파견지는 주로 척박한 전쟁터였고 그들은 죽고싶지 않았다. 애인을 만나고 가족을 만나는 일상생활 중에도 언제 바로 명령이 떨어져 전쟁터로 달려가야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령팀 다섯 중 원하는 상사에게 요청하여 훈련을 한 번씩 봐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후루야는 주로 사격을 맡아 담당했는데 방금 이력서를 넘겨준 부하 역시 그런 그를 동경하고 있었다.
받은 이력서를 천천히 넘기니 정말 앳된 얼굴의 소년이 있었다. 요샌 학생도 받나? 이거 미성년 아니야? 아무리 자기들이 하는 일이 비밀리에 이루어진다지만, 그렇게 많은 위법행위를했다지만! 그래도 이제 어린녀석까지 들이다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쿠도 신이치라는 이름 아래 적힌 나이는 22살로, 물론 어리지만 미성년자는 아니었다.
"동안이네."
제 얼굴은 생각도 않고 후루야가 덤덤히 뱉은 말이었다. 후루야도 갓 스무살 되자마자 동기들과 함께 이 특수조직 말단에 들어왔으니 특별히 이상하진 않았다. 동기들과 함께 후루야가 사령팀으로 올라선건 그로부터 3년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 물론 태초부터 두각을 보인 자들이었다. 촉망받는 엘리트라고, 주위에선 혀를 내두르다못해 심심한 감탄까지 터져나왔더랬다.
중앙통제처리실. 그건 너무 긴 이름이니 대충 통합실이라고 부르는 그곳은 이곳 본부 뿐 아니라 이 일본 전체의 시스템을 관리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컴퓨터가 설치되어있었다. 그곳에서 까딱 잠들어 기계하나 잘못 만지면 도쿄 일대가 정전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농담거리가 아니었다. 그래 이 이야기를 왜 했냐면, 후루야는 문을 열자마자 그런 엄청난 곳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목소리를 들어야했다. 아니 이곳이 무슨 대학 MT현장도 아니고 과자며 음료수며 늘어놓고는 다들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새로온 신입은 제법 넉살도 좋고 말도 잘하는 편인지 어느샌가 제 동기들과 함께 어울리고 놀고 있었다. 아무리 신입이 들어오기 힘든 시스템이고 그래서 보통 나이어린 새 막내가 귀여움을 받는다곤 하지만... 후루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저 작은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 날서린 시선을 느꼈을까 신이치가 크하하 웃다말고 뒤를 빼꼼 돌았다.
"어, 후루야 선배!"
손에 든 레몬파이는 분명 어제 새벽에 자신이 구워뒀던 것이었다. 그걸 한손에 들고, 입가엔 빵가루를 묻힌채 씩 웃어보이는 저 허술한 모습. 후루야는 잠깐 멍하게 바라보다가 출입문과 가장 가깝게 붙어있던 녀석의 손을 잡아 끌고 통합실 밖을 나와 문을 쾅 닫았다. 손이 잡혀 끌려온 불쌍한 피해자는 마츠다였다.
"야야 잠깐. 잠깐 나 좀 보자."
"???"
끌려나온 마츠다는 이게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보고있었지만 후루야의 말을 우선 들어보려는 듯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후루야는 다시 한 번 그 허술하게 웃던 앳된 얼굴을 떠올리며 물었다.
"쟤야? 쟤라고? 이번 신입?? 막내???"
"제로 너 뭐 잘못 먹었냐?"
"아니, 진짜로 쟤라고?? 쟤를 내보낼 수 있어? 현장 투입시킬 수 있겠냐고? 바로 죽을 것 같은데??"
후루야의 말대로 대부분 처음 들어 온 신입은 어딘가 긴장감과 함께 각이 잡혀있었다. 자신이 국가의 막중한 임무를 맡는 그 제로부대에 속해있다는 점과 앞으로 까닥했다간 죽을지도 모른다는점. 그 모든것들이 자신을 짓눌러서 강박증까지 시달리는 녀석도 보았다. 하지만 마츠다는 그런 후루야의 걱정을 짜게 식은 눈으로 답했다. 마치 '뭐래...'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우리는 뭐 긴장하고 들어왔냐. 우리 처음에 말단 입단했을 때 안그래도 총사령 그 영감이 우리 싹 묶어서 골칫덩이라고 혀를 백 번을 찼을걸! 첫 날에 네가 내 턱에 어퍼컷 날린건 기억도 안나나보다."
"나도 맞았거든?"
"기억하는구만."
지금 사령부의 엘리트 동기 다섯명은 전부 한때 골칫덩어리로 유명했었다. 들어간지 첫날만에 마츠다와 후루야는 주먹다짐이나 했고 하기와라는 틈만나면 다른 부대로 놀러가 쉴틈없이 재잘거렸으며, 히로미츠는 종종 어디론가 사라지기 부지일수고 다테는 당시의 리더로써 총사령에게 이들을 커버하기 바빴다. 총사령이 제일 미워하는 것은 단언컨대 다테였을 것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미운 법이라고, 그냥 냅두면 처벌이라도 할텐데 저렇게 봐주십쇼~ 하면서 하하 웃고 자진해서 훈련에 들어가니 뭐라 더 하기도 애매했다. 굳이 더 말하자면, 미워할수도 없어서 미운 녀석.
"네 걱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네 걱정만큼이나 안일한 녀석도 아니더라고."
"무슨뜻이야 그건?"
"쬐끄만한게 생각보다 야무져. 통합실 문을 누가 열어준 줄 알아?"
"뭐... 그건 히로라던가."
"지가 혼자 열었다! 이거 진짜 놀랍지 않냐? 이 나라의 최고 보안시스템으로 무장된 심장부를 저 녀석이 오자마자 바로 뚫어버린거야!"
마츠다는 뭐가 그리도 재미진지 킥킥 웃으며 후루야의 어깨를 마구 때렸다. 아무래도 마츠다에게 이번 신입은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후루야는 얼마나 대단한 신입이길래 그 마츠다의 신임을 대번에 얻어버린건지 호기심이 생겼다. 물론 삐딱한 호기심이었다.
후루야가 신입을 회의적인 눈으로 보든, 불신에 넘친 눈으로 보든 신이치는 싹싹하게 잘 굴었다. 가끔 자신감이 넘칠정도로 잘난척을해서 재수없는 면모도 좀 있었지만 확실히 그게 뒷받침 될 정도로 유능했다. 쿠도 신이치가 한 번 손을 댄 프로그램은 전부 쿠도 신이치의 놀이터로 바뀌었다. 아이스크림 스틱이나 입에 까딱까딱 물며 씩 웃음짓고 '후루야 선배!'하고 부를 때마다 후루야는 기분이 이상했다. 사실 지금껏 이 특수부대에 행동파만 잔뜩 있긴 했지. 현장에 투입은 최소화하고 중앙 통제실에 앉아 능수능란히 지휘하는 막내의 모습은 색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갑작스런 임무 배치 바로 전날이었다.
"많이 피곤했어요? 소파에 누워 한참을 주무시는데 깨우질 못하겠더라고요. 스프 데워왔는데, 제로 선배도 드실래요?"
여전한 웃음을 매달고 냠, 숟가락을 입에 집어넣는 녀석이 부르는 호칭에 후루야는 피곤한 눈을 껌뻑였다. 어제는 간만에 하기와라의 차를 타고 제로부대 소유의 산 깊숙이 들어가 부하들을 잡아죽일 듯이 사격 훈련 시킨 뒤였다. 배우는 녀석보다 가르친 녀석이 피곤한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후루야는 갈라진 목소리 그대로 피곤한 내색을 숨기지 않은채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불러봐."
"제로 선배?"
신이치는 선뜻 대답하며 고갤 기울였다. 소꿉친구인 히로미츠가 부르던 호칭이 어느샌가 사령부 전체에 퍼져서 모두가 제로라고 부르게 되고, 이제 이런 신입도 자신을 그리 부르니 기분이 묘했다. 후루야는 훗날 이 기억이 끝없이 자신을 사로잡을 거라고 예상했다. 혹시라도 임무 중에 누군가를 잃게 되면, 그들이 질리도록 불러준 이 제로라는 이름이 자신을 옥죌거라고.
"물이라도 갖다 드릴게요, 잠시만요."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도 신이치는 어떤 중압감도 받지 않는지 물이나 가져오겠다고 자리를 이탈하려했다. 그 순간 후루야는 저도 모르는 새에 신이치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 뭔가 할말 있으세요?"
"...아. 아냐. 아무것도."
제로부대의 전 인원이 몸을 갈고 닦고 훈련을 할 때 유일하게도 신이치가 하는 훈련이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 뿐이어서 훈련 중 입은 상처는 몇 번이고 신이치가 치료해줬다. 예전엔 동기들끼리 복작이고 장난치며 티격대던 일에 전담이 붙어버린 것이다. 그때마다 후루야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예를들어, 아주 어릴 적의 동경같은....
꼬르륵.
옛 회상에 잠기려던 후루야를 방해하는 소리였다. 후루야는 한숨을 한 번 쉬고 그래도 배가 고프다는 상전 중의 상전인 막내를 바라보았다. 신이치는 숟가락을 우물거리며 아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저녁 안 먹었어? 히로가 잔뜩 해놨을텐데."
"그게 아무래도, 조사반 애들이 또 히로 선배 음식을 탐내고 있으니까 아하하...."
"그래서 네 몫까지 그걸 홀라당 줘버렸다고?"
"...음... 그렇게 됐네요...."
눈도 못마주치고 얼굴을 붉히는 녀석의 모습에 꾸중할 기운도 사라졌다.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손해를 보고 사는 건지. 그리고 자신도 왜 손해를 보는 건지. 후루야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상의를 시원하게 탈의한 채로 담요 한장 덮고 자고 있었으니 신이치가 순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앞을 지나칠 동안에도 한 마디 말이 없다가 부엌으로 걸어가 대충 재료를 꺼내는 그 등짝을 보며 한 마디 감탄사를 흘렸다.
"우와, 잔근육 대박...."
"변태냐?"
"아니 그치만, 방금은 그저 순수한 후배로서의 감탄이랄까 뭐 그런거였어요. 저도 나름 육체 훈련은 하고 있지만... 아직 그 정도까진...."
신이치는 가끔 단신으로 잠입해서 해킹을 도맡아야 할 때가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잠입 기술과 유사시 자신의 몸을 지키고 탈출할 정도의 육체 훈련을 받았다. 자신보다 더 까만 피부를 보고 침을 꼴깍 삼키다가 신이치는 이전부터 궁금한 것을 이 기회에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제로 선배, 혹시 외국인... 아니면 그 혼혈이신가요?"
"빨리도 물어보네. 첫 만남은 이미 훌쩍 지났는데."
"그게, 처음엔 진짜 저 영어 써야되는건가 고민했거든요. 아니 근데 말하고보니 나 이거 너무 실례다 아하하...."
철 없는 저 성격. 저런 녀석을 어쩌다 제 기억속 소중한 사람을 연결시켰지. 그는 사람은 모두 같은 붉은 피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는데. 후루야는 한숨을 쉬며 프라이팬에 계란 두 개를 까서 넣었다.
"별로 상관은 없는데, 다테 앞에서도 그랬다간 꿀밤 정도론 안 끝날거다. 난 물론 안 말려줄거야. 고소하거든."
"아니 그... 정말 죄송합니다 네에...."
그랬다고 또 곧장 사과하면서 웅얼댈 것은 또 뭔지. 후루야는 괜히 픽 웃음을 흘렸다. 냉장고에서 야채를 고르게 썰고 재료들을 볶아서 무난한 볶음밥 하나를 만들었다. 후루야 딴에는 굉장히 무난했는데, 신이치는 눈까지 빛내며 좋아했다. 한입 먹을때마다 과장된 찬사가 흘러나왔다. 싹싹하고, 성격 좋은 녀석. 이러니 제 동기들이 금세 마음에 들어하는거겠지. 가끔 눈치 없고 철없기도 한데 그 나이대에서 더한 녀석도 많이 봤을 뿐더러 애초에 마츠다도 사령부 내에선 꽤 애 취급 받고 있었다. 이 정도야 귀여운 애교수준이지.
"뭐랄까, 제로 부대에 소속 된다고해서 사실 긴장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편안하고 좋네요."
신이치의 말에 후루야는 다시 처음 걱정을 되살렸다. 아직 현장 경험이 없는 꼬맹이. 이 녀석을 정말 현장 투입시킬 수 있을까? 사령부의 리더는 후루야 레이였다. 처음 말단으로 들어와 팀을 꾸릴때까지는 다테가 리더였지만 계급 승진을하고 후루야가 계속 수석을 가져가며 지위가 올라 계급 상 동기들 중 가장 상위에 속한 후루야가 자연스럽게 리더로 변경되었다. 그게 현재의 사령부였다. 후루야는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쿠도 신이치를 작전에 배치해야하는데 자꾸 사적인 걱정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너는 현장 투입 자신있어?"
사령탑으로서 별로 좋지 못한 질문임을 알면서도 후루야는 넌지시 물었다. 허겁지겁 볶음밥을 먹던 신이치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읽어냈는지 후루야와 눈을 마주했다.
"우리 모두 목숨을 내놓고 온거잖아요, 제로 선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자들. 나라를 위해 이 목숨은 뒤꼍에 두고 온 자들. 돈이나 명예보다는 신념과 정의, 헌신과 수호를 목적으로 모인자들. 후루야 레이는 그날 처음으로, 그 대답을 듣고 쿠도 신이치라는 대원을 인정했다. 앳된 얼굴, 막내, 신입, 철없는 녀석. 그 모든 수식어는 잠시 접어두고 이 제로부대 사령부소속 보안처리담당 쿠도 신이치를 인정하기로 했다.
†
신이치로서는 첫 작전이었다. 사실 후루야에게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조금 떨고있었다. 아예 겁먹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도 어떨까 싶으니까. 후루야도 그걸 눈치챈 것 같았지만 딱히 지적하지는 않았다. 신이치가 보기에 후루야는 선배들 중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우선 가장 우수한 이 부대의 총 사령탑이라는 그의 지위가 그러했고, 처음 봤을때부터 불신 가득한 눈빛에 어딘가 냉정함도 갖추고 있어서 더욱 위축되기가 쉬웠다. 너무 어리고 아직 부족해서 그의 성에 차지 않는 걸까. 신이치는 고민했다. 하지만 티내지는 않았다. 사실 그렇게 많이 힘든것도 아니었다. 사령부의 다른 멤버들은 자신을 살갑게 대해주었다. 특히 마츠다는 시간이 나면 신이치의 손을 잡고 기계실로 들어가 각종 폭탄 더미들을 보여주며 어떻게 해체하는 게 좋은지 시범까지 보여주고 알려줬다. 그때마다 뒤에서 '진페이 쨩~'하며 다가온 하기와라는 그렇게 말해서는 신입이 당황한다고 더 쉽게 풀어서 보여주기까지 했다. 신이치는 이들이 좋았다. 외동인 자신에게 그들 모두가 형이자 가족이었다. 쉬는 날은 쉬어야한다며 제 손을 잡고 백화점으로 이끈 하기와라는 체크무늬 셔츠나 걸친 신이치의 복장을 싹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다른 팀과 식사를 하며 화려한 드라이브. 신이치는 부대 조건 중 운전기술도 있었나 잠깐 고민해야했다. 그렇게 녹초가 된 신이치를 걱정하며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것은 히로미츠, 마츠다와 하기와라에게 엄한 소리를 늘어놓는것은 다테였다.
신이치는 정말로 이들이 좋았다. 그만큼 후루야가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너 응급치료에 능숙하구나.'
그래서 그 한마디를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그가 처음 해주는 칭찬이었다. 후루야는 신이치에게 치료를 받다말고 뭔가를 생각하듯 골똘히 한곳을 응시했다. 어쨌든 그에게 처음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서 신이치는 그날 의학서적을 더 들여다보았다. 후루야의 소꿉친구가 히로미츠라는 소식을 접하고 신이치는 이 고민에 대해 털어놓은 적도 있었다. 히로미츠는 그때 그저 미소지으며 '아직 제로가 서툴러서 그래. 한참 어린 네가 저 다 큰 어른을 좀 이해해줄래?'하고는 맛있게 요리한 음식을 내밀었다. 어쨌든, 그가 이 팀의 대장인 만큼 신이치가 싹싹하게 굴어야만 했다. 사실 별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이다.
"다들 작전 숙지 완료했겠지."
"걱정마~ 우리가 한 두번도 아니고. 시뮬레이션은 질리도록 머리에서 돌려놨지."
"신입은?"
"저도 완벽 숙지했어요."
"완벽이라."
후루야가 혀를 찼다. 그 모습에 마츠다가 여하튼 너는 뭐가 그렇게 매사에 마음에 안드냐고 툭툭 쳤지만 후루야는 신이치를 응시하며 말했다.
"네가 완벽하게 숙지했다하더라도 내 작전이 완벽하지는 않아."
갑작스런 대장으로부터의 충격선언에 신이치는 눈을 끔뻑거렸다.
"아무리 검토하고 또 검토해도 임무 현장에서 변수는 나와. 예기치 않은 일, 사고, 모든 것들이 널 괴롭히겠지. 내 작전 하나만을 숙지한 네겐 다소 벅찰지도 몰라."
"...선배?"
"하지만 이걸 기억해 쿠도 신이치. 우리 제로부대는, 모든 만전을 기하고 적의 수를 전부 읽어내는 데에 특화된 부대가 아니야. 그때그때 요원의 판단을 믿고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자세와 평소에 갈고 닦아온 자신의 능력만이 네게 길을 열어줄거다. 개개인의 능력이 특화된 집합체. 그게 바로 우리 제로부대야."
"......."
"상사를 믿지 말고 너를 믿어라. 동료를 믿지 말고 너를 믿어. 하지만 동료가 '자신'이 되겠다고 나선다면 아낌없이 서포트 해."
후루야는 손을 뻗어 신이치의 가슴 위로 올렸다.
"이게 제로인 내가 제로부대 전원에게 내리는-, 제로가 될 명령이다."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모두의 표정은 결의에 차있었다. 지금은 작전지로 향하는 헬기 안이었다. 후루야의 말은 가뜩이나 신이치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첫 작전이 정해졌다는 소식에 신이치는 선배들이 하는대로 일단은 유서를 쓰고 나왔다. 그 누구의 유서도 볼 수 없었으나 백지로 적힌 후루야 사령의 유서는 책상 위에 그대로 올려져있던 터라 본의아니게 보고말았다. 이미 일반 대원들은 작전지에서 한창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신이치가 속한 이 사령팀만이 비행기를타고 이 나라로 건너와 헬기를타고 작전지로 이동 중이었다. 평소엔 소풍 분위기로 장난치고 떠들던 선배들이 하나같이 조용했다. 분위기가 괜히 무거워져서 신이치는 쓰고있던 헬멧을 적당히 매만졌다.
"왜, 크기가 안 맞아?"
그것을 다른 뜻으로 오인했는지 갑작스레 후루야가 다가와 손을 뻗었다. 아까보다는 제법 가벼운 분위기였다. 신이치는 상공에 떠있는 헬기 안에서 그 순간 숨쉬는 것도 잊어먹었다. 후루야가 직접 다시 헬멧을 고쳐 씌워주는데 이렇게 긴장될 수가 없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니 후루야가 씩 웃었다.
"정신차려 인마. 이번 작전은 네가 핵심이야."
"어이 제로, 우리 신입 부담감 주기 금지다."
"부담될게 뭐가 있어? 총질은 내가하고 폭탄처리도 너네 둘이 하고. 입구는 다테가 뚫고 퇴로는 히로가 맡을텐데."
"처음은 뭐든 긴장되는거야. 단신으로 들어가서 어쨌든 핵심 데이터를 빼와야 되잖아."
"나 참...."
사실 신이치는 임무 자체가 크게 긴장되는건 아니었다. 다만 늘 가볍게 생각했던 선배들의 무게감을 느끼고 있었다. 가령, 편안하게 인사를 나누던 옆집 트레이닝복 차림의 형이 갑작스럽게 국회에서 정장입고 대거 등장한 느낌. 혼자서 까불거리고 웃을 수는 없는 느낌에 그냥 고개만 저었다.
"자신있어요. 저번에도 말했잖아요. 이쪽 세상에선 몰라도,"
신이치의 손가락이 아래를 가르켰다가 다시 곧장 위에 둔 배낭을 가르켰다. 노트북을 넣어둔 가방이었다.
"저쪽 세상에서 절 따라잡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다고요."
막내의 포부와 자신감에 후루야를 제외한 네 명은 신명나게 웃었다. 그래, 그래야 우리 막내지! 마츠다는 신이치의 어깨 위로 팔을 올려 목을 휘감으며 마구 흔들었다. 그중에서 후루야만 창밖을 바라보고있었다. 제 입으로도 저렇게 말하는데, 사실 가장 걱정하고 있는 건 너에게 지시를 내린 이 사령탑 본인이라고는 절대 말 할 수 없었다. 무조건 믿어. 네가 선택하고 네가 배치한 부하잖아. 후루야는 눈 좀 붙인다는 명목으로 시끌벅적 떠드는 다섯 명 무리에 끼지 않고 조용히 묻혀갔다.
†
[A조 돌입 준비 완료]
신이치를 지프 조수석에 태운 하기와라가 무전했다. 곧이어 무전기에선 후루야의 [대기]명령과 [B조 작전 개시]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입 군, 정말 안 떨려?"
"솔직히 떨리는 건 모르겠어요. 어릴때부터 사건이란 사건은 다 겪어와서...."
"너도 산전수전 다 겪었구나."
어설프게 웃는 그 얼굴에 하기와라는 무언가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아든 그것은 제법 손에 잘 들어오는 글록 한 자루였다. 갑작스레 기관권총을 받아든 신이치는 입을 열려다가 무전에 가로막혔다.
[B조 작전 완료. A조 돌입.]
간결한 후루야의 지시에 하기와라가 엑셀을 힘껏 밟았다. 그리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신이치는 제 손에 글록을 넘겨준 하기와라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일반 대원들이 밖에서 진을치고 무리를 진압하고 있다고해도 그 사이를 지프차 한대가 가르고 전력질주하니 눈에 띌 수 밖에. 하기와라는 현란하게 운전대를 돌리며 날아오는 총탄과 추적하는 차들을 피하기에도 벅차보였다. 일부러 바위를 밟고 차를 90도 가까이 기울여 질주할때는 신이치도 아찔했다. 뒤에서 박으려던 오토바이는 갑자기 붕 뜬 차체를 박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버렸다. 신이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토바이의 바퀴를 정확히 조준해 따돌릴 수 있었다. 후루야에게 욕을 들어가며 사격을 배워둔 보람이 있었다.
"선배 이걸 위해서 절 태우고 그렇게 드라이브 하셨던 거군요...."
"아아, 현장에서 갑자기 멀미하면 곤란하거든!"
말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반대쪽으로 운전대가 홱 꺾였다. 적의 본거지에 가까워지자 더 삼엄했을 경비는 이미 다테의 사전 진압으로 전부 쓰러져있었다. 멀쩡하다고 생각하고 감탄하려했는데 왼쪽 팔에 큼지막한 칼 하나가 꽂혀있었다. 신이치는 저도 모르게 으, 신음을 흘렸다. 하기와라는 그런 다테와 아무렇지 않게 손바닥 터치를 하고는 안으로 진입했다. 영락없는 바톤터치였다.
"잘 다녀와라, 신입."
다테의 멋들어진 인사였다. 여기까지 신이치를 무사히 데려다 준 하기와라는 다시 후루야와 합류했다. 다테와 함께 가장 위험한 루트를 뚫고 정문을 박살낸 후루야는 그와 다르게 상처하나 없이 멀끔했다. 하기와라에게 짧은 보고를 더 전해들은 뒤 후루야가 신이치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씩 웃음 지은 채였다.
"우리 신입은 말단 때 좀 잘 기었나?"
"...네?"
불길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후루야는 신이치를 천장 위로 올려보냈다. 원래는 하기와라와 후루야 둘이서 이 건물 내부를 휘저으며 주의를 끌고 그동안 신이치가 몰래 통제실로 들어가 국가에서 의뢰한 리스트를 빼오면 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마츠다가 잠입한 보급 건물에서 전체의 건물 배치도와 평면도를 발견한 것이다. 즉 몸집이 작은 신이치가 천장에 좁게 나있는 루트를 통해 기어서 이동하면 더 안전하고 성공률 높게 이동할 수 있으리란 이야기였다. 물론 말단 시절에 많이 굴렀다. 그 후루야 레이조차도 운동장에서 구르고 굴렀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신이치는 울상인 표정을 숨기지 못한채 후루야의 손을 밟고, 어깨를 타고, 천장으로 거뜬히 올라갔다.
"날다람쥐 같군."
"아 제로 선배!"
"그래그래. 듬직하다 내 후배."
어르고 달래는 수준으로 신이치를 천장에 밀어넣고 후루야는 탄창을 정비했다. 이 작전에서 단언컨대 가장 위험한 포지션은 후루야 본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후루야의 등을 맡아야하는 건 하기와라였다. 사실 다테까지 합류할까했지만 부상이 심한 관계로 입구 쪽에 몸을 숨기며 적팀의 지원이 추가로 있는지 없는지 보고하는 눈이 되어주기로 했다.
[C조. 탈출루트 확보.저격태세 돌입.]
히로미츠로부터의 무전이었다. 모든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다. 신이치도 후루야의 실력에 감격했고 선배들이 멋있어보였다. 무전도 이전보다는 좀 더 가벼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천장 아래에서 몇번이고 총격전이 났지만 그렇기에 신이치는 안심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싸움이 벌어진 다는 것은, 적어도 아래의 선배들은 무사하다는 이야기니까. 신이치는 건물의 외관을 생각하며 어두컴컴한 천장 위를 기어다녔다. 눈은 감고 있되 머릿속에선 이 건물의 내부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보통 중앙 통제실은 안쪽에 마련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와같은 군사건물에서는 이 통제실에서 바깥부터 내부까지의 셔터를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아까 확인한 벽면 구조상 중앙 아래층에 위치해있을 것 같았다. 중앙까지 이동했다고 생각한 신이치는 천장을 발로 여러번 내리찍었다. 쿵, 쿵. 몇 번의 소리끝에 천장이 우지끈 부서지고 신이치는 사뿐히 복도에 착지했다. 먼지투성이 옷을 털어내고 주위를 보니 한산했다...가, 건너편 복도에서 후루야가 총격전을 벌이는게 보여 얼른 상체를 숙였다.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곧장 중앙 통제실이 있을 터였다.
"아, 역시...!"
신이치는 발견한 문에 반가워했다. 챙겨온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문에 연결해서 도어락을 해제시켰다. 신이치에게 별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모든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다. 첫 임무지만 별일 없이 잘 풀릴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무전이 울렸다.
[...제로, 이거 일났다.]
마츠다의 목소리였다. 지낸 시간이 오래 되진 않았어도 신이치는 마츠다의 심각한 목소리를 처음들어보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귀신같이 아는 것처럼 후루야가 불만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불안감 조성하지말고 임무 보고는 간략하게 해.]
[이 자식들 처음부터 적군 아군 관계없이 다 날려버릴 생각이었던 거 같아. 겹겹이 쌓인 폭탄들 처리하고 수상쩍은 문도 해체했더니... 내가 지금 지하에 와있는데 여기 전부, 일대가 폭탄밭이야.]
[해결 못 해?]
[......네 상황 좀 묻자 제로. 너 지금,]
뜸을 들이다 겨우 말하는 마츠다의 말을 후루야가 냉정하게 잘랐다.
[나는 네 동기이기이전에 상관이야.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판단은 내가 하니까. 하기가 필요한거지?]
아무튼 간에, 늘 재수없는 녀석이라고 마츠다는 인정했다. 하지만 이런점이 쏙 마음에 들었더랬지.
[...그래. 이 정도 양은 혼자 도저히 무리야. 솔직히 어디까지 작정하고 심어놓은건지 수도 가늠이 안 돼.]
수도 가늠이 안된다. 신이치는 흠칫 놀랐다. 그런거라면 차라리 마츠다 선배도 빨리 대피하고 이곳을 뜨는게 낫지 않냐고, 자기가 그냥 혼자 빨리 데이터를 빼내오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혼자 탈출할 자신은 없었다. 애초에 이곳까지 들어온 것도 선배들의 도움이 있어서 겨우 침입했지 않은가.
[하기, 마츠다에게로 붙어. 다테, 미안하지만....]
[미안은 무슨. 금방 간다.]
변수. 그것이 일어나고 있음을 신이치는 직감했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작전에 의해 무언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전기 속의 대화만 갖고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대화하는 것은 제로부대의 사령부가 아니라, 후루야 레이와 그가 이끄는 동기들이었다. 후루야가 지시하지 않아도 각자 자신이 해야할일을 안다. 맡아야 할일을 안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부터 후루야의 작전,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신이치는 조급해졌다. 통제실 안에 있던 군인들을 기습하여 제압한 후 후루야에게 보고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잘했다.]라는 짧은 칭찬이 들려왔다. 신이치는 자신이 이 일을 빨리 끝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을 끝내면? 제로 부대는 재빨리 이곳을 떠나 살 수 있지만 그럼 그저 전쟁에 동원되었을 뿐인 상대측 사람들은? 물론 서로 총을 겨누고 있지만 그 이전에 모두 사람이었다. 신이치는 해킹을 시도하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제로!!!]
[큭....]
하나하나 보안을 해제할 때마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다. 누군가 다치고 있다, 누군가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 특히 이 시간싸움에서 가장 불리한 것은 후루야와 다테였다. 점점 적들은 상황을 파악해서 몰려들었고 설상가상으로 히로미츠 쪽도 기울어 가기 시작했다.
[탈출구 루트 변경해야겠어. 눈치 챘는지 아까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몰려왔어. 저격 몇 발로는 정리가 안 되네. 이쪽 위치도 들킬 것 같고. 1-2루트에 다시 트랩 설치 후 보고 할게.]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들기는 신이치의 무전에선 온갖 소리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자꾸 풀리지 않았다. 신이치는 자신이 이 상황에서조차 오타를 내고 있음을 알았다. 대문자와 소문자가 뒤바뀌고 철자의 순서가 바뀌었다. 작은 기호 하나도 엉망이고 엉뚱한걸 치고 있었다. 신이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후루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츠다와 하기와라는 끝내주는 폭탄 처리 기술을 가지고 있어. 저 둘이 해결하지 못하는 폭탄이 있다면 그 누가와도 해결 못하지.]
"......?"
신이치는 자판을 멈추고 귀에 꽃은 무전기에 집중했다.
[히로미츠는 잠입의 프로야. 어느 현장이든 자신의 구역으로 만들어서 그곳을 제압하지.]
후루야의 목소리는 많이 지쳐있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살아있으니까, 계속 들려왔다.
[다테와 내가 둘이서 몇 번의 전쟁을 해내고 살아돌아왔다고 생각해. 이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이보다 더 능숙하지 못한 능력으로 여기까지 온거야. 헬기에서 말했지. 이곳은 제로부대고, 개인의 능력으로 동료를 구해. 쿠도 신이치. 지금 이 순간 네가 해내야 할 네 일은 뭐지?]
딱히 울지는 않았으나 신이치는 옷 소매로 눈가를 슥슥 문질렀다. 그냥 정신 한 번 차리자는 의미였다. 심호흡을 한 번하고, 무전기를 고쳐썼다. 손을 한 번 풀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핵심 데이터를 빼내는 일. 그리고 탈출 루트까지의 모든 보안을 확보하는 일. 그게 제가 할일입니다.]
[좋아. 알면 됐어.]
신이치는 더이상 오타를 내지 않았다. 해야하는 일에만 집중하면 평소 가지고 놀던 프로그램보다도 훨씬 쉬운 난이도였다. 이정도쯤은 누워서도 할 수 있었다. 무전기 너머에서 선배들의 웃음소리가 옅게 들려왔다. 개인이 개인의 일을 하지만 결코 혼자는 아닌 것. 그것이 바로 후루야가 정한 제로부대였다.
†
후루야 대장은 이번 신입을 별로 마음에 안들어 하나봐. 그런 소문이 있었다. 후루야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마음에 안든다기보단, 저걸 정말로 현장에 투입시켰다가 그게 마지막이 될까봐 걱정을 했다. 정정당당히 자신의 실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쿠도 신이치에게 대단한 실례임을 알면서도 쉽게 접을 수 없는 생각이었다. 누구나 후루야의 눈에 들면 부족한 면이 드러난다. 후루야는 늘 엘리트 길을 밟아오고 수석을 한 번도 놓친적 없는 인재니까. 그래서 본의아니게 애 취급을 했다. 사격을 좀 봐달라는 말엔 남들보다 세 배는 더 깐깐하게 봐주었다. 이쯤되면 소문이 신빙성이 있어지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불편할까. 한 부대의 대장이라는 녀석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고 느끼면 아마 참을 수 없이 힘들것이다. 후루야는 무언가 변명 정도는 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격장에서 나오는 신이치를 불러 세운 것인데,
'정말 감사합니다. 신경써서 봐주신 덕에 많이 좋아진것 같아요!'
타인의 악의나 사정따윈 전혀 신경도 안쓴다는 듯 해사하게 웃는 그 얼굴에 후루야는 미워한 적도 없는 녀석에게 오해를 심어주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밥 먹을래?
그리 물었더니 신이치는 대장이 직접 해주는 음식이면 더 먹고싶다고 말을 내놓았다. 미워할 수는 없는 녀석인게 확실했다. 식사를 함께하는 시간이 늘고 맨투맨으로 봐주는 시간이 늘며 신입을 마음에 안들어한다는 소문은 쏙 들어갔다. 대신, 신입을 엄청 신경쓰고 아낀다는 소문이 돌았다. 걱정되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런 퉁명스런 후루야의 말은 전설로 남아서 일명 '새침떼기 대장'이라는 별명까지 은은하게 나돌았다. 원래부터 그런 면이 있긴했다며 마츠다가 얼마나 통쾌하게 웃었는지.
그리고 어느날 신이치는 말했다. 그것이 결정타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못했겠지.
'제로 선배가 왜 대장인지 알겠어요.'
'그냥 저녀석들이 귀찮은 일이라며 맡기고 노느라 그렇다니까.'
'지금처럼, 늘 그렇게 친구들을 좋게 말해주잖아요. 요리를 말해도 히로가 더 잘한다, 운전을 말해도 하기가 더 잘한다, 폭탄처리도 진페이가, 대련은 다테가, 하면서 말이에요. 제로 선배는 그 모든 능력을 다 종합적으로 갖고 움직이면서 남을 칭찬하고 좋게 말하는데 바쁘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그 사람을 한없이 좋게 말할 수 있다는게 정말 대장다워요.'
너는 알까. 그 말이 어릴적 놀림받고 이겨내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 얼마나 큰 되돌림이었는지.
후루야는 사심을 버릴 수 없었다. 이제 다른 이유로 이 아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어, 머리를 벽에 부딪히며 찬물을 끼얹었다. 가슴이 쿵쿵 뛰고 이상하다. 국가를 위해 일하자고, 그를 위해 경찰이 되고 군인이 되어 가장 높은 곳에 오르자고. 그것을 다짐하게했던 어릴적 동경의 사람과 지금 이 순간 다시 또다른 의지를 불태우게 만드는 쿠도 신이치가 머리에 스쳐갔다. 너만은, 내 정의가 되는 너만은 내가 반드시 지켜 보이겠다고.
"대체 왜 안나오는거야 신입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다테가 소리쳤다. 후루야는 그런 동료의 뒤로 날아드는 칼을 쳐내고 적군인의 관자놀이를 쳐 기절시켰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했다. 임무가 완료되지 않았으면 그저 대장인 저혼자 책임을 짊어지면 된다. 하지만 동료들은 살려보내야한다. 후루야는 이를 꽉 물었다. 마츠다와 하기와라로부터 폭탄 제거 불가 사실을 통보받은게 20분 전, 그 이유가 원격으로 함께 조작되는 핵폭탄이 있다는 것을 들은것도 15분 전, 그 데이터에 접속해보겠다고 신이치가 말을 남긴 것이 10분 전. 그리고 지금은 무전기 상태도 양호하지 못했다. 이따금씩 끊겨서 송신이 이루어졌다. 말을 알아듣기 힘들 뿐더러 그 끊기는 목소리 중 쿠도 신이치의 것은 없었다.
후루야 레이는 우수한 군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자신이 해야하는 최선의 명령을 잘 알고 있었다. 임무는 실패, 조속히 전대원은 탈출하라는 명령을. 하다못해 후루야 혼자라도 통제실로가서 데이터의 확보 가능 상태를 확인하고 한시빨리 이곳을 떠나야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쿠도 신이치를 버리는 일이 된다. 그 명령을 내리지 못한채 후루야는 계속 버티고 있었다. 상처가 늘고 점점 가진 모든것이 소모되기만 했다.
'조바심 내지마. 조바심은 가장 큰....'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쿠도 신이치에게 할 일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해야할 일을 누구보다 잘 안다. 쿠도 신이치는 왜 스스로 나오지 않는가. 그것은 단지 아직 해야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밤낮없이 맨투맨으로 들러붙어 가르친 부하이던가. 일반 군인들에게 당할 신이치가 아니었다. 후루야가 다짐하며 총을 들었다. 그리고 이 전쟁을 끝내주기 위해 마음먹은 찰나, 귀에 꽂고 있던 무전기에서 엄청난 소음이 들렸다. 기계가 타들어가는 소리를 표현한다면 이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지직거리며 조금이라도 나던 무전은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고 일제히 복도의 불이 꺼지고 전원이 나갔다. 후루야는 재빨리 품에서 GPS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옆에 있는 다테와 서로 눈을 마주한다음 고갤 끄덕였다. 무전이 되지 않아 명령을 하달할 수는 없지만 변수의 정점을 찍은 지금이야말로 제로부대가 활약할 주무대나 마찬가지였다.
"이야 신입이 일을 친 모양인데, 제로!"
"폭탄 처리전문가와 친하게 지내더니 폭탄을 그냥 고철로 만들어버리는 군."
후루야는 괜히 무거운 고철 짐만 된 물건들을 바닥에 전부 버렸다. 한껏 가벼워진 몸을 풀고 씩 웃더니 다테를 향해 눈짓했다. 뭐 별 수 있겠냐는 듯 다테가 고갤 끄덕여주는 걸 보며 창틀을 잡고 창문 아래로 뛰어내렸다. 옆 배관 파이프를 사다리삼아 풀쩍 뛰며 대번에 아래로 내려간 그는 통제실에서 사고를 치고 유유히 걸어나오는 신이치를 발견했다. 이만한 일을 벌인 걸 보며 무사할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긴장감도 상처도 없이 걸어나올 줄이야. 헛웃음이 다 나왔다.
"너...."
"어떡하죠 선배.... 데이터도 무용지물이 된것 같아요. 아하하...."
"너만한 녀석이 전자기 펄스(EMP)피해를 모를리는 없고... 임무와 사람들 목숨으로 저울질을 했겠다... 밖에서 뛰고 있는 선배들을 아주 물로 봤단 말이지."
"그, 그게. 그치만요... 저에게도 변명할 기회를 주실거죠? 네?"
"변명은 나에게 말고 위에다가 해야지, 응?"
윗사람들과 얼굴도장 한 번 진하게 찍도록 자리 알선해줄테니까.
가히 소름끼치는 말이었다. 중앙시스템을 해킹하다못해 EMP쇼크를 일으킨 미친 재능의 장본인은 어설프게 웃어보이면서 후루야의 눈치를 보고있었다. 모든 전자기기를 고철로 만들어버리는 대규모 테러에 본래 했어야 할 임무인 데이터 확보도 그저 고물로 남았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여기까지 얼마나 고생했는데, 겨우 이제 막 들어온 막내가 이룬 업적치고는 화려했다. 제로부대가 임무 실패를 하는 경우는 이제껏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루야는 머리를 쯧 혀를 차고는 이 엄청난 사고뭉치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집에."
그래. 애초에 그 쿠도 신이치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져버리고 데이터 하나를 확보하는 선택을 할리가 없지. 만약 그랬다면 이번엔 후루야 쪽에서 실망했을 것이다. 이 전쟁터 한복판에서 '비살상무기'인 EMP탄은 쿠도 신이치에게 퍽 어울렸다. 후루야가 신이치를 서포트하고 무전하나 없이도 나머지 대원들은 히로미츠가 확보해놓은 탈출루트로 집결했다. 그의 저격 반경 안에만 들어도 귀신같이 서포트가 들어와서 이번 임무에서 벌였던 크고 작은 전투 중에 가장 편안했다. 쿠도 신이치라는 엄청난 신입을 영입하고 맛보는 첫 임무실패지만 만난 녀석들은 뭐가 좋다고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마츠다는 신이치를 보자마자 잘했다면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안전지역까지 빠져나와 헬기 앞에서 모두 허망하게 있을때 후루야만이 안 타고 뭐하냐고 말했다. EMP대비 새장은 헬기에 당연한것 아니냐며. 다섯 인원은 전부 대장! 을 외치며 후루야를 껴안았다. 진짜로 집에 갈 수 있는 것이다.
헬기에 올라서 내려다본 아래는 전쟁이 끝나있었다. 모든 기기가 먹통이되고 전력이 중단되었으니 지속할 수 없음은 당연했다. 그 장면을 멍하게 바라보던 신이치가 중얼거렸다.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 걸까요."
아무도 그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막내의 질문이라면 신나서 대답하던 형들이 오늘만큼은 조용했다. 특수 엘리트 부대 제로의, 첫 임무 실패 날이었다.
†
진짜 대형 신인이다 여러모로.
대사만 들으면 신이치를 책망하는 듯한데 실제로 말하는 표정은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 요놈이거 아주 깜찍하네, 하는 말투였다. 신이치만이 이를 딱딱 부딪히며 저 짤릴까요? 저 이대로 처벌받나요? 저 어떡해요? 하면서 요란법석이었다. 위에서 분명 신이치를 소환하고 난리가 날 줄 알았는데 한동안 잠잠했다. 후루야는 근신하라는 명령만 내려놓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신이치는 선배들과 함께 술잔이나 부딪히며 어떡하냐고 넋두리를 했다. 이럴때 후루야가, 대장이, 좀 나타나서! 듬직하게 뭐 괜찮다뭐다해주면 좋을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신이치는 한숨만 푹푹 쉬었다.
"그자리에서 그걸 해낼 수 있는 것도 너밖에 없고, 그렇게 결정지을 것도 너밖에 없었는데 그걸 했네!"
"아 그만 놀리세요 정말... 저 되게 심란하단 말이에요!"
한참을 투덜투덜하고 있을때 뭐가 그리 심란한데? 라는 말이 뒤통수에서 날아왔다. 이게 얼마만에 보는 후루야인지. 신이치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도 못하고 부리나케 후루야에게로 달려들었다. 복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는 정복이었다. 그것을 확인하자 신이치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어디... 갔다오셨어요."
"지긋지긋한 이 나라 꼭대기에."
"저, 이제 불려가나요...?"
"아니? 다 끝났어."
"네?"
후루야는 모자를 벗어서 대충 소파에 던져두고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아니 세상에 별이 몇개나 달린 장관급 모자가 저렇게 형편없이 소파에 내동댕이.... 신이치는 모자를 물끄러미 보다가 주워서 잘 걸어두었다. 누구는 갖고 싶어도 못가지는 엄청난 물건을 이렇게 막....
"그런데, 끝났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머리도 좋은애가 왜 이리 아둔한 척을 하실까. 대형 신입 씨? 이번 임무 실패 건으로 가서 열심히 설명하고 머리 조아려주고 왔다고."
"아니, 절 보내신다면서요 그냥? 제가 잘못한거잖아요! 저 혼자 잘못한건데?"
"내가 말 안했나? 제로부대는 개인이 개인의 판단으로 일을 하는 만큼 그 모든 책임은 대장인 내가 떠맡는다고."
"...말안했어요...."
"뭐 일부러 안 한것 같기도 하군."
신이치는 순식간에 울상이 되었다. 자신이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꽉 찼을때는 그저 걱정만 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추욱 쳐졌다.
"이게 뭐야... 왜 제 잘못을 제로 선배가 책임을 져요.... 난 내가 책임질 줄 알고 그럴 각오로 한 일이란 말이야. 내 행동이 이렇게 선배에게 영향 갈 줄 알았으면 난...."
"그래도 했겠지. 사람을 구해야 하니까. 대신 무거웠겠지. 그 작은 머리통으로 별 생각 걱정은 다 끌어모으면서 말이지."
"...그래도...."
"그리고 왜 책임을 네가 져? 멀쩡한 상사두고 책임까지도 함부로 지겠다는 거, 그것도 엄연히 하극상이거든?"
"아니 그게 왜 그렇게 돼요?!"
마지막 말은 발끈해서 또 금세 올라온다. 후루야는 바뀌지도 않고 여전한 성격에 웃음을 흘렸다.
"별일 없었어. 어차피 데이터도 말소가 최종 목적이었고 그러기전에 우리쪽에서 가지고 있으면 추후에 이용해먹기 좋겠다 정도의 이득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 네 잘못 없어. 너는 사람을 구한거고, 옳은 선택을 한거야."
"그럼 우리 부대... 해체 안돼요?"
"해체? 누가 그런 말을 해?"
제로부대가 해체 됐다간 아주 난리가 날텐데.... 후루야는 질문을 내던지고도 금세 호오, 답을 얻어 제 자랑스러운 동기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이 없는 동안 신명나게 막내를 놀리고 있었단 말이지? 후루야의 눈초리에 네 명의 선배들은 각자 할일이 생각났다며 자리를 떴다. 사실 그렇게 도망치듯 나왔지만 후루야가 신이치를 보는 마음을 눈치 못채고 있을 녀석들이 아니었다. 아무튼간에, 진짜 웃기는 녀석들. 후루야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혼자 복잡한 마음으로 아직도 입술을 우물거리는 신이치를 보며 말했다.
"뭐 아무튼! 할 말이 더 있고 질문도 많고 그러면... 오늘, 그 뭐냐... 그.... 어디 밖에서 식사라도... 같이... 할래?"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져서 곤란했다. 후루야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런 후루야의 반응을 본 신이치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흔쾌히 넹! 하고 대답했다. 물론 수락은 기뻤다. 후루야는 뛸뜻 기쁘긴 했지만... 오랜만에 같이 밥 먹게 되었다고 흥얼거리는 단순한 녀석을 보며 갈길이 멀다고 생각되어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정말 갈길이 멀구나. 국가 기밀을 유지하는 특수조직 제로부대의 대장과 막내. 그 사이를 재밌어 죽겠다고 지켜보는 네 사람이 오늘도 활기차게 하루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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