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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이런저런 사정 덕분에 셋이 동거하게 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성인 남성 셋이서 함께 사는 것은 꽤나 끔찍한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잘 돌아갔다.

“라이! 방 안에서 담배 피우지 말랬잖습니까!”

“넌 여전히 인성이 더럽군.”

“지금 뭐라고…!”

“자, 잠깐만. 버번, 좋게 타일러도 되잖아요. 그리고 라이, 여기서 실내 흡연은 안된다니까요.”

“…미안하다.”

…정말로.

도대체 어떤 놈의 머리에서 저 셋을 한 집에 가둬둘 생각을 했을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스카치 덕분에 아직까지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못했다는 점이었다.

버번에게 있어서 셋이 함께 사는 것에는 장점이 하나 있었다. 스카치, 그러니까 히로미츠와 이야기할 시간이 있다는 것. 아무래도 조직에서는 잠입한 상태이기에 서로 모르는 척을 해야 했다. 경시청에서는 어찌 됐든 본인이 상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할 상황이 줄어들었다. 솔직히 라이와 함께 지내야 하는 것만 없었다면, 버번 쪽에서 쌍수 들고 환영이었다.

“오랜만에 기숙사 생활 하는 것 같아서, 난 좋아.”

어떠냐는 물음에 스카치는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쭉 같은 학교였기에 알고 있었다. 기숙사 생활은 경찰 학교뿐이다. 이에 버번은 닥치고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래, 너만 행복하면 됐지.

그렇기에 지금은 최고의 시간이었다. 라이가 혼자 외출을 했다. 그러니까 스카치와 버번만 집에 남은 지금, 제로 히로 하며 서로의 옛 별명을 거리낌 없이 불러도 되는 몇 안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런 때에 스카치는 버번에게 무언갈 내밀었다. 일전에 읽은 책에 의하면, 간혹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다른 형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한다. 스카치의 경우엔 공포 영화. 워낙 호불호가 없었던 녀석이다 보니 이렇게라도 좋아하는 게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뭔데?”

“할로윈 특선 공포 영화 DVD. 이번에 아무것도 못 하고 넘어갔잖아.”

…생각했었다. 이번엔 또 어떤 기괴한 영화를 가져온 걸까. 턱수염부터 시작해, 도무지 스카치의 취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요즘엔 바쁘니까. 아무래도 영화관은 무리일 것 같아서 빌려왔어.”

안 보면 해결되는건데도. 그리고 오히려 영화관이 아닌 게 문제다. DVD면 집에서 봐야 하니, 아마 셋이서 같이 보자는 뜻이겠지.

“…라이, 라이는 뭐라고 안 했어?”

“‘OK.’라던데?”

“뭐야, 나 말고 그 녀석한테 먼저 물어본 거야?”

슬쩍 떠본 말에 그대로 넘어간 스카치였다. 버번이 상처받은 눈빛으로 쳐다보자, 스카치는 스리슬쩍 눈빛을 피했다.

“그야 제로라면 라이 핑계 댈 게 분명하니까…. 지금도 술이랑 안주 재료 사러 간 거야.”

“그냥 내 의견은 필요 없었던 거지.”

“하하, 같이 지내는 김에 겸사겸사 좋잖아.”

버번은 가끔, 스카치가 자신과 라이의 관계를 조율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느꼈다. 망할 범죄자 집단의 조직원임에도 원만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스카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일전에 만났던 녀석의 여동생 때문인 걸까.

“대신 네가 좋아하는 햄샌드위치 해줄게.”

“…알았어, 히로.”

그럼에도 버번은 스카치에게 넘어간다. 이렇게 스카치가 무언갈 요구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으니까. 이후 함께 본 영화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나마 기억나는 것은 라이에게 샌드위치를 던졌다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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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댓글 4


  • 추워하는 바다표범

    샌드위치 맞은 사람 불쌍하다

  • 반짝이는 까마귀

    검은조직에서진빼고다자기이름나왓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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