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er

accendio by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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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수많은 세계선들이 존재한다. 이것을 우리는 평행우주라 부른다. 무수히 많은 우주들은 그 명을 다하면 사라지고, 또 순리에 맞춰 다시 태어나는 것을 반복한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사는 우주가 아닌 또 다른 우주를 인지하고 살아갈 일은 없다. S 역시도 그랬다. 어느날 이변이 생기기 전까지.

시작은 3월의 초입.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위치는 결코 진급이 유쾌한 입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새학기는 설렘이 있는 법이었다. 새로운 반의 문을 열고 들어간 S는 앞으로 일 년을 함께 보낼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좋은 예감이 들었다.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예감은 운명의 장난처럼 맞아들었다. 그 후 한 달간 S가 겪은 이변은 결코 열아홉의 학생이 홀로 감당할 수 있을 종류가 아니었다. 반의 아이들에게 하나둘씩 능력이 부여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힘이 강해졌고, 누군가는 맨손으로 타인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변화는 S에게도 마찬가지로 찾아왔다. 천차만별이었으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힘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한 반의 전체에게 일어난,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특수한 일. 이쯤에서 멈췄다면 장르는 단순 이능력물이 될 수 있었겠지만 이야기는 이어졌다. S는 꿈을 꿨다. 시야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았지만 뇌리를 울리는 목소리가 선명했다. 목소리가 말했다.

너희는 선택받았다.

그는 설명했다. 내가 살아가는 우주가 아닌 또 다른 우주들의 존재를, 그리고 그 모든 우주를 위협하는 ‘이단’의 무리들을. 그들이 가장 먼저 파괴하기로 선택한 세계선은 하필 S가 살고 있던 곳이었고, 그리하여 세계는 지정했다. 이 혼란을 구할 영웅들을.

S는 잠에서 깨자마자 급우들을 만나기 위해 학교로 달렸다. 모두와 눈이 마주치자 실감할 수 있었다. 모두 하나의 꿈을 꾸었다는 것을.

그는 신이었을까?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원치 않은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후 괴생명체들이 들이닥쳤다. 대한민국의, 아니, 이 지구의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높이 지어올린 건물이 모조리 무너졌다. 잔해의 밑으로 시신이 즐비했다. 엄마를 잃은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그 소리를 들은 괴이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므로 생존자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입을 막았다. 아비규환 속에서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이들은 S와 그의 급우들이 전부였다.

과연 영웅의 이름에 걸맞는 힘이었다. 그들이 사는 세계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이미 재가 된 터를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으나 더 이상의 희생을 늘리지 않고 싶었다. 실은 원치 않아도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도 어쩔 수 없었으므로.

문제는 막바지에 일어났다. 진압되어가는 괴이들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갈 수록 더 위험한 모습으로 변모하던 괴이들의 최종 형태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괴이들은 통로 자체가 되었다. 이 우주가 아닌, 다른 우주로 통하는.

단일한 운명을 가진 각각의 우주가 모두 하나의 운명을 공유하는 순간이었다.

그날 S는 다시 모두와 같은 꿈을 꿨다. 그들은 우주의 멸절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더 큰 재앙이 몰려올 것이다. 목소리가 덤덤하게 덧붙였다. 세계의 법칙에 의하면 영웅은 여럿이 될 수 없다. 다른 영웅을 제거하고 유일이 되어라.

머리를 오래 맞대지 않아도 그 뜻을 곧 이해할 수 있었다. S 역시도 느꼈다. 그토록 넘쳐나던 힘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는 것을. 그것은 몸 밖으로 흘러나와, 어느 통로를 지나쳐, 그렇게 다른 세계로, 세계로….

우리는 저 통로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우주의 우리를 적대해야 했다.

선택권은 없었다. 세계를 구한다는 거창한 사명감도 존재했으나, 어쩌면 누군가에게 이것은 단지 본인의 생존 욕구. 혹은 관성이었다. 어떤 이유를 안고 있든 S와 급우들은 긴 여행을 출발했다.

약속 하나 하도록 하자. 절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해치진 않는 거야. 그것은 마지막 인간성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붙잡고도 오염되는 영혼을 붙들 수는 없는 법이었다. 열세 번째, 점차 무뎌졌다. 스물다섯 번째, 이젠 간단했다. 마흔네 번째, …….

그리고 최후의 종착지 단 하나만을 남겨두었을 때. 종말을 준비하던 괴이들도 같은 세계선에 도착했다.

이것은 낯선 세계에 이방인으로써 떠돌 수 밖에 없던 S의 이야기이자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과거, 현재, 혹은 미래에 관한 이야기.

S는 힘을 돌려받아야 했다. 그것이 내가, 우리가, 이 우주가 살 수 있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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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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