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츠마요] 여름의 향기

앙상블스타즈 2차/비오는 날 짤막 소소일상물

가공보석함 by 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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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늘 카제하야 타츠미의 일정은 저녁 전 진행되었던 짧은 광고촬영 의뢰 미팅뿐이었다. 이후 시간이 비어 간단한 식사를 하고 성주관으로 돌아가 쉬려고 했건만, 타츠미가 ES 1층 로비로 내려가보니 그 짧은 사이 바깥에는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서 오늘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비가 온다고는 들었었지만, 설마 막 해가 진 지금 비가 쏟아질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타츠미는 로비 안에서 어두워진 바깥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건 하늘이 무너진다, 라고도 표현될 수 있을 만큼 강하게 쏟아지고 있군요.

"……"

타츠미는 로비 밖 ES 건물 앞에서 잠시 양 발에 힘을 주었다가 떼어보았다. 여기서 성주관까지는 도보로 그렇게 멀지 않다. 달리지 않고, 미끄러지거나 삐끗하지 않는다는 가정하라면 괜찮겠지. 평소에 자주 입는 엘보우 패치 니트가 젖겠지만, 바로 세탁하면 문제 없을 겁니다. 타츠미는 로비 앞 출입구 회전문을 통과해 저벅저벅 비가 내리는 길을 걸으려던 참이었다. 무언가에 의해 팔뚝이 빠르게 붙들리기 전까지는. 

"자, 잠시만요오…!!"

"!! ……어라. 마요이 씨군요."

일순간 타츠미는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붙잡은 마요이와 눈이 마주쳤다. 마요이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겁을 먹은 것 같았다. 타츠미가 표정을 풀었지만, 꾸벅꾸벅 죄송하다며 허리를 숙여오는 통에 평소처럼 돌아온 타츠미의 표정을 보진 못했을 것이다. 현재 일본 내 ES 내부만큼 표면적으로 안전한 곳은 없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새겨진 두려움은 어쩔 수 없군요. 타츠미는 마요이의 어깨를 토닥여 그의 허리를 세웠다. 이번에는 어떤 어두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었으니까.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갑자기 부르지도 않고 기척도 없이 나타나서는 통행을 방해해서!"

"괜찮습니다. 마요이 씨라면 뭔가 뜻이 있었을테니까요. 나쁜 뜻이라고는 전혀 없이, 오직 저를 향한 선의로 하여금 손 내밀어준 것에 감사합니다."

"힉."

타츠미는 마요이가 더 이상 스스로 어떤 말도 꺼내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여운 사람. 타츠미는 마요이가 손에 든 우산에 시선이 갔다. 이걸 건네주러 온 것입니까. 마요이의 장갑 낀 손이 우산을 과하게 쥐고 있었다. 우산을 쥐지 않은 마요이의 빈 손을 잡자 그는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타츠미를 바라보았다.

"우산을 건네주러 오신거군요. 급하게 나오신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성주관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으니, 젖은 옷은 그대로 세탁할까 했습니다만."

"그럴수는… 감기에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에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마요이에게서 진심밖엔 느껴지지 않아 타츠미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띄워졌다.

"─그럼, 걱정을 끼칠 수는 없으니 잘 받겠습니다. 이제 ALKALOID와는 한 몸이라고 여겨야 하건만, 저도 아직 제 처지에 미숙한가 봅니다."

"휴우…" 

타츠미가 우산을 받아 가자 마요이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급하게 뛰쳐나온 보람이 있군요. 비상구 쪽 환기구는 잘 닫아뒀지만 다시 열리진 않을까 걱정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타츠미가 마요이의 안색을 살펴왔기에 마요이는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요이 씨는 이후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아, 저도 성주관으로 돌아가려는 참이었습니다아…"

"손에 든 우산은 하나 뿐이었다면, 마요이 씨는?"

"저는… 이것을."

마요이는 어느 품에서 꺼냈을지 모를 네모난 것을 타츠미에게 보여주었다. 사용감이 있는 옅은 보라빛의 우비였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이걸로 되련지? 타츠미가 정말 이걸 쓰고 가려는건가 싶어 말없이 마요이를 바라보자 그는 그대로 또 다시 곤란하단 얼굴을 했다. 분명 그냥 우비로 충분하니 그렇게 입고갈 수 있게 해달라, 당신은 그런 이야기를 하겠지요. 타츠미는 마요이에게서 받은 우산을 펼쳤다. 우산은 잘 관리되었던 물건이었는지 삐걱이는 곳 하나 없이 활짝 펴졌다.

"이 우산을 함께 쓰고 돌아갑시다."

"예? 하지만 우산 하나로는 이렇게 많이 오는 비 앞에서는 다 젖고 말텐데요…"

"자아, 갑시다."

타츠미는 마요이의 등허리를 짚어 가까이 서서 나란히 우산을 씌웠다. 어쩐지 꼭 붙지 않으면 양 어깨가 젖어버릴 크기였기에, 마요이도 타츠미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그 끝을 꼭 쥐고 걸어갔다. 이래도 되는걸까 싶었지만 그러다간 더 젖을 것 같아 이도 저도 피하지 못하고 아무 말 없이 그와 함께 하는 겁쟁이. 그냥 늘상 가는 길을 비를 피해 빠르게 가면 되는 일인데, 마요이는 갑자기 타츠미의 향기가 신경쓰였다. 그는 향수를 뿌리지도 특별히 선호하는 브랜드나 향도 없는, 물욕과는 관계가 먼 사람. 타츠미 씨가 자신의 욕망을 좋지 않은 기운으로 알아차리듯, 마요이는 오늘따라 그에게서 자연스럽게 풍기는 내음이 궁금해졌다. 돌아가면 물어봐야겠다 생각했지만, 마요이는 그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꺼내면 좋을지 말을 고르기 어려웠다. 그 사이 어깨도 다리도 전부 젖어들어서는 성주관에 부랴부랴 들어가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래서 그런 꼴로 다 젖어서 왔다는거야아? 참나, 홀핸즈로 이야기 했다면 마중 나갔을텐데."

"나름의 청춘 재현이라고 할까요. 젊은 때였다면 우산도 없이 그저 달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건 청춘이 아니라 사서 고생이라구 탓층 선배."

"아하하."

젖은 끝머리를 꾹꾹 눌러 말리던 타츠미는 웃다가 멈칫했다. 퍼득, 이 방에서 불길한 기운이 높아진다고 느꼈지만 괜찮을 것이다. 분명 당신이라면 이겨낼 수 있으니까. Amen. 마요이는 그제야 자기 안에서 겨우 정제된 말을 꺼냈다.

"…저어, 좋은 냄새가 나는 타츠미 씨에게 제가 감히 그렇게 닿아도 되었을 지 모르겠어요… 역시 제가 조용히 사라지는 편이 모두를 위해 좋았을텐데."

"이런. 함께 맞부딪히며 지내는 사이에 괜찮겠지요. 사실은 오늘 미팅에서 사쉐 시향을 받았단 것입니다. 항상 모델들의 탄생화를 모티브화하여 콜라보를 진행하는데, 저는 이번에 석류 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이었군요. 평소 타츠미 씨의 경우 거의 포근하지만 특별히 강한 향기가 나지 않는데, 이번에는 어딘가 이끌리는 듯한 향이 나서…… 아아니, 기분 나쁜 말을 함부로 내뱉어 죄송합니다아"

"……♪"

타츠미는 가만히 마요이를 마주 보며 웃었다. 마요이는 보통 타츠미와의 이런 흐름에 불안함이랄까, 치유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느꼈었는데 이상하게도 조금 다른 기분이 느껴졌다. 석류의 꽃말은 원숙한 아름다움. 아아, 어쩌면 아직 젊지만 연장자임을 표방하는 그에게 이끌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요이가 의식을 깊고 어두운 곳으로 던지려는 찰나에 아이라가 흐흥, 하고 말을 이어왔다.

"마요 씨, 그럼 나는? 나한테도 뭔가 나는 향기가 있어?"

"글쎄요. 향이라기 보단, 단내랄까, 끈적한 종류는 아니지만 산뜻하지만 가끔은 무거운 느낌도……"

"에~ 뭐야 그게. 역시 향수 같은 연출이 아니면 자연스럽게는 안되는거려나."

"아마도, 아이라씨가 평소에 드시는 간식의 영향이 아닐까 싶네요오… 초콜릿이라던가, 유행하고 있는 스위츠 종류라던가."

"뭐어?! 내가 초등학생이냐고!"

"……"

그런 둘의 대화를 지켜보며 타츠미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사실은 CF 미팅 때, 사쉐는 잠시 손에 쥐고서 코로 향을 조금 맡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나 저를 의식했음에도 자신의 생각을 털어놔 주셨다니, 마요이 씨와 제가 더 유연한 관계가 되었다는 것에 감사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타츠미는 향이 스쳐 지나갔던 자기 코 끝을 검지로 두드리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평소의 저라면 서슴없이 뜻을 표했을텐데, 어쩐지 혼자만 품고 싶어졌습니다. 자애랄까, 우애랄까 어딘가 이제까지의 삶에서 느껴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군요. 뭘까요 이 긴장되는 두근거림은? 타츠미는 더 깊게 사유하는 대신 눈을 감은 채 잠시 손을 모았다. 어떤 일이든, 감사하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마요이 씨에게서도, 어딘가 포근한 내음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느긋히 추억으로 떠올리며 일삼아볼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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