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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야, 요즘엔 스트레스 안 받지?”

“괜찮아요.”

“저번처럼 악몽 꾸면 거실로 나와, 아빠 있으니까.”

“아, 아빠. 그래서 말인데요.”

-학교 선배랑 같이 자도 돼요? 아버지께 그리 물은 건 충동적이었다. 그저 단순한 이유였다, 선배가 같이 있으면 악몽도 꾸지 않을 것 같고 악몽을 꾼다고 해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은 아버지께서는 역시 흔쾌히 허락하셨다. 학창 시절 한 번씩은 해본다는 친구와 자는 행위를 당신의 아들도 하는 게 좋으셨겠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 교우관계에 관심이 꽤나 많으셨기 때문에 이런 소식은 당연히 좋아하실 터. 그래, 엄마랑 아빠는 나가 있을게. 엄마랑 아빠는 없는 게 편하지? 아버지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네 엄마랑 데이트라도 잔뜩 해야겠구나. 하면서. 요즘 받는 스트레스로 악몽을 꿔 잠을 설친 적이 많다는 것도 아실 테고. 선배라고 소개한 제 애인과 같이 자게 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버지는 모르시겠지, 처음부터 선배라고 소개한 사람이 당신들 아들의 남자친구일 줄은. 동성연애에 대해 반대하시는 분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연애 사실을 알리기 부끄러웠던 탓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거실 소파에 앉아 남자친구와 드라마를 보고 있지.

“저 배우 분 연화랑 닮았다.”

“제 아버지세요.”

영화를 보다 들려오는 남자친구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어머니도 나오실 걸요, 이 드라마 찍으신 후에 결혼하셨거든요. 이내 나오는 금발의 여배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두 분이 연기하시는 모습은 별로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보니 새롭네, 생각하며 제 남자친구의 어깨에 고개 툭 기댄다. 선배랑도 드라마든 영화든 같이 찍어보고 싶어요. 하면서. 진짜 같이 찍으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왕이면 로맨스로. 로맨스라는 장르에 큰 흥미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찍은 영화나 드라마의 장르가 주로 로맨스였을 뿐이다- 진짜 남자친구랑 로맨스를 찍는다면 다른 여배우와 찍는 것과 다를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연화야, 졸려?”

“네, 졸리네요.”

“들어가서 자자.”

텔레비전을 끄고 제 방으로 향했다. 아, 또 악몽 꿀까봐 무서운데.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뉘이면 제 옆에 남자친구가 눕는다. 아, 따뜻하다. 사람의 체온은 안정감을 준다더니…. 남자친구보다 살짝 아래에 누워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고 몇 번 부볐다. 심장 소리가 들렸다, 일정한 속도. 그 소리를 듣다 보면 잠이 밀려온다. 잘 자, 아득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감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아마 새벽이었을 터였다. 오늘도 선배가 죽는 꿈을 꿨어, 꿈 속에서 선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눈을 번쩍 뜨며 깨어났다. 시야가 깜깜한 게, 여전히 남자친구의 품에 고개를 묻고 있었나 보다. 아, 오늘도…. 며칠째 선배가 꿈 속에서 죽어, 오늘도 죽었대. 무슨 드라마에서 배역 죽이는 것도 아니고 몇 번이나 죽는 거야. 생각하며 몸을 살짝 뒤척이면 위에서 졸음이 묻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연화야, 악몽 꿨어? 남자친구의 목소리에는 대답 없이 고개를 더 파묻으며 꼬옥 안을 뿐이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어. 그 질문에는 입을 달싹거리다 입을 다물고. 며칠 째 선배가 제 꿈 속에서 죽었어요? 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나. 제 남자친구라면 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는 싫었다. 그냥…. 괜찮아요. 짧게 대답하며 숨을 느리게 내쉰다. 그래도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서서히 두려움이 사라진다. \ 선배가 곁에 있잖아. 베개를 껴안고 자는 것과는 다른 느낌에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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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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