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연

“아빠, 나 태권도 안 가면 안 돼? 오늘 심사란 말이야!”

“권서연, 저번에도 심사 보는 날 안 갔지? 원래 인현이랑 같은 띠였는데 서연이가 더 늦어져 버리네?”

-그래도 안 갈 거야? 말리지는 않을게, 관장님께 아프다고 핑계 대 줄 테니까. 조곤조곤한 제 목소리에 딸이 볼을 부풀렸다. 심사는 보기 싫고, 인현이한테 띠로 밀리는 건 싫다 이거지. 생긴 건 자신의 남편을 닮아 놓고 성격은 딱 저를 닮았다. 어릴 때부터 어려운 건 하기 싫어하고…. 자신도 어렸을 때는 어려운 촬영을 하기 싫어했었다. 당시의 연기가 귀신 들린 애 연기였나, 아무튼. 태권도를 배운 적이 없어 심사를 본 적은 없지만 어린애 입장에서는 부담이 가는 분위기는 맞을 것이리라. 평소에는 줄넘기도 하고 재밌게 다니면서 승급 심사가 가까워지면 안절부절 못한단 말이야. 품새도 다 외워 뒀으면서, 앞에 서는 게 부담스러운가? 같은 띠인 아이들이 같이 나가서 볼 텐데…. 처음 국기원에 갈 때도 오랜 시간을 어르고 달래 보내지 않았나. 운동을 일찍 시킨 만큼 아홉 살에 품띠면 뭐 평균이긴 한데. 그렇다고 계속 미루게만 하면…. 몇 살 위인 인현이는 그 다음의 띠고, 인현이보다 서연이가 더 심사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안아줘.”

“안아주세요.”

“안아주세요.”

-옳지, 딸아이를 안아 들고 등을 토닥였다. 우리 서연이는 왜 심사가 싫을까. 하면서.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싫어하는 편은 아닌 것 같던데. 역시 무대에 서는 것과는 다르겠지. 그렇다고 태권도를 그만둘래? 라고 한 날은 또 싫다고 난리를 피웠다. …나 닮은 거 맞아? 선배 아니야? 서연이, 태권도 잠깐 쉴까? 줄넘기만 나갈래? 물어보자 또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태권도 재밌어, 심사만 싫어. 아. 이번 심사도 물 건너 간 건가. 일단 태권도에 가기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으니 그 안에 심사를 보는 쪽이든 미루는 쪽이든 결론을 내는 수밖에. 아이를 안은 채 소파에 조용히 앉았다. 작은아빠, 나 어제 태권도에서 줄넘기 백 개나 했어. 웅얼거리며 말하는 걸 보니 대화 주제를 돌리려나 보다. 진짜? 우리 서연이 대단하다, 언제 그렇게 체력이 늘었지? 쿵짝을 맞춰 주면서 또 토닥토닥.

“서연이, 심사 보는 게 무서워? 사람 많잖아.”

“아니야.”

“근데 왜 싫어, 실수할까봐 그래?”

“…나는 실수 안 해!”

이런 부분은 나군, 생각했다. 아. 아이는 어렵네. 노력은 많이 했으나 자기 실력에 신뢰감은 없다는 건가. 나도 어릴 때 자신감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은데. 신뢰가 없어 죽도록 노력해 좋은 결과를 얻긴 하지만 그럼 과정이 지나치게 힘들지 않나. …이런 부분은 나를 닮지 않길 바랐는데. 서연, 실수하는 게 나쁘거나 부끄러운 건 아냐. 제 말을 들은 아이가 품에 파고든다. 아, 이 이유였구나. 노력은 많이 했는데 결과가 그만큼 나오지 않을까 봐 피하는 거지.

“그럼 오늘 심사 보고 집에 와서 큰아빠랑 오빠한테 자랑할까? 서연이 이번에는 심사 봤어요, 하고.”

“…그럴까?”

“응, 그러자. 큰아빠가 맛있는 거 해 주실걸?”

“…응!”

드디어 결론이 났네, 생각하며 얕은 숨을 내쉬었다. 서연이 대단해, 작은아빠는 회피했을 텐데. …회피가 뭔데? 피하는 거야. 짧은 대화가 오가고 아이는 제 목에 팔을 둘러 제 뺨에 입맞춘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나 보다. 꺄르르 웃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자 나아진 게 맞구나, 하며 확인사살까지 성공. 이럴 때 많이 칭찬해줘야지, 심사를 보고 와서도 칭찬해줘야 하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도 보호자의 역할이니. 작은아빠, 심사 통과 못 해도 안 혼낼 거지? 당연하지. 그리 말하며 부드러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래놓고 합격할 거면서, 노력이 쉽게 물거품이 되던가. 주말에도 태권도에 나간 시간이 있는데. 꼭 그 시간 덕분이 아니어도 서연이는 합격하지 못할 것을 전제로 삼고는 했으니까. 언제 이걸 깨 줘야 하는데, 조금은 자신만만해질 필요가 있단 말이지….

“아빠, 나 태권도 두 타임 일찍 갈래.”

“심사 빨리 보려고?”

“응, 빨리 보고 끝낼래!”

그래, 도복 꺼내줄게. 그리 말하면 아이가 무릎에서 내려와 소파에서 다리를 흔들거린다. 흰 도복을 꺼내 아이에게 건네 주면, 아이는 도복을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띠는 아이의 방에 있으니 따로 줄 필요가 없었다. 얼마 안 지나지 않아 아이가 도복을 갈아입고 나와 띠를 건네주면 도복에 주름이 간 곳이 없도록 정리해 준 후 띠를 단단히 묶어준다. 심사를 보러 갈 때마다 해 주는 행동이었다, 서연이 말로는 아빠들이 띠를 묶어주는 그 시간으로 버틴다나 뭐라나. 뭐든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건 좋은 거지.

“차 왔겠다, 잘 다녀와. 우리 딸.”

“응,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가야지.”

“다녀오겠습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한 딸아이가 엘리베이터를 타러 현관을 나섰다. …아, 하나 끝냈다. 큰 일을 하나 끝낸 기분에 마른 세수를 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보내는 문자 한 통.

[여보.]

[오늘 서연이 심사 본대요, 돌아오면 칭찬 많이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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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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