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릴리안 로그
“릴리안 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누구지?”
“노엘이라는 분이….”
“없다고 전해.”
노엘이라면 제 남동생일 터였다. 아니, 그 애는 우리가 안 맞는 걸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잊을 때처럼 찾아오는지 모르겠네. 생각하며 차를 한 모금. 아마빌레, 아빠랑 잠시 놀고 있으렴. 그리 말한 건 제 남동생 노엘이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오라고 전해!’ 한 마디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 귀찮게 하는 걸로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기겠어. 흰 날개를 펼치고 나가 높은 금빛 의자에 올라앉은 후 제 남동생을 내려다보았다. 용건만 말하렴, 노엘. 언질도 없이 찾아온 무례함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테지?
“누나, 지금 집안에서 누나를 뭐라 평가하는지 알아? 악마랑 굴러먹은 놈으로 본다고!”
“상급도 아닌 것들이 감히 나를?”
“아니, 물론 상급은 누나 뿐이지만…. 천사가 악마랑 어울리는 게 이상하잖아!”
“편견 가득한 것.”
인상을 찌푸리며 남동생을 내려다보았다. 뭐, 악마랑 굴러먹은 놈이 헛소문은 아니긴 하지만. 상급 천사니까 이런 것도 가능한 거란다? 그리 말하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남동생은 덤으로 따라왔고. 누나야말로 대체 어느 시대를 사는 거야, 천계가 그렇게 개방적인 줄 알았어? 소리에는 부채를 펼쳐 입을 가린 후 작게 하품했다. ‘듣고 있지 않지만 할 말이 있거든 해 보렴’ 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행동이다. 아, 그러고 보니 네게 말했었나? 최근에 딸아이를 얻었단다. 하늘이 내려 주신 아이지.
“…득녀를 했다고?”
“그래, 네가 아는 그 뜻이란다. 이제 내 곁에 있는 악마를 욕하면 내가 직접 저택에 찾아갈 테니 그리 알라고 전해.”
-관심도 없었던 것들이 왜 이제 와서 난리람, 비아냥거릴 때쯤 누군가 금빛 의자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아마빌레는 아파빌레에게 맡겨 두고 나왔을 터인데. …설마 벌써 나는 법을 익혔나? 작은 날개를 팔랑거리며 제 의자 쪽으로 날아온 아마빌레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색의 머리카락, 자신을 닮은 생김새, 아직은 작은 뿔과 날개.
“아마빌레, 아빠는 어디 두고 왔니?”
“바?”
“그래, 아빠.”
-아니, 심지어 애는 천사도 아냐?! 신이 대체 어떤 생명체를 내린 거야? 아이의 머리에 있는 뿔을 본 건지 남동생이 경악했다. 아, 시끄럽게 정말. 아이 울잖아. 어느새 칭얼거리기 시작한 아마빌레를 어르고 달랬다. 으응, 착하지. 너를 달래는 데에는 내가 아니라 아파빌레가 더 최적화되어 있는데. 아마빌레, 저 사람을 어떻게 해 줄까? 사용인들을 불러 양 팔을 결박시킨 후 저택 밖으로 쫓아내버릴까? 그럼 네가 웃어주려나. 충격과 경악으로 모자라 분노까지 드러내기 시작하는-아무래도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남동생을 바라보고 잠시 아이를 사용인에게 맡겼다. 아파빌레에게 데려다 줘. 하고.
“너, 감히 내 아이를 욕보여?”
“욕보인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금빛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계단을 내려가 남동생을 내려다보았다.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남동생의 고개가 돌아간다. 일부러 약하게 때리기 위해 손도 아니고 부채로 뺨을 때렸건만, 힘 조절은 되지 않은 모양이지.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이 저택에서 너는 먼지보다도 못하단다. 은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가 없다고 했을 때 돌아가지 그랬니, 홧홧한 뺨을 손으로 감싼 남동생을 쳐다보았다. 다른 가족들에게 전해, 부채로 뺨을 맞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허, 아니, 미쳤어? 동생 뺨을 때려?”
“너야말로 미쳤니? 네 누나의 아이를 욕보여?”
“누나 행동이 악마랑 다를 게 뭐야?!”
“그러니까 악마랑 결혼했지.”
-진짜 미쳤어, 누나는…. 남동생의 말엔 관심 없다는 듯 양 팔 교차해 팔짱 끼었다. 돌아가, 네 위신을 생각해서 가족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을 테니까. 한 마디 뱉는다.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아파빌레까지 노엘을 만날 거고, 그렇게 되면 내가 또 노엘의 뺨을 때릴 지도 모르니. 진심으로 하는 말이란다, 돌아가. 한 마디를 더 붙이자 그제야 남동생이 어이없다는 한숨을 내쉬며 저택의 현관 쪽으로 걸어간다. 역시 가족들에게 소문이 나는 쪽은 싫은가 보지.
“누나는 진짜 상급 천사 실격이야.”
“네 눈에만 그렇겠지.”
-상급도 아닌 게 입만 털긴, 어깨 으쓱이며 제 남편이 있는 방으로 걸음 옮겼다. 손님이 나가면 저택 문 잠가, 또 난동부리는 손님이 함부로 들어오면 그땐 나도 어떻게 나올 지 모르니까. 저택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자신은 방 문을 활짝 열어 제 남편과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밖이 소란스럽던데, 아마빌레도 갑자기 나가버리고….”
“어머나, 그래. 아마빌레가 혼자 나오더라.”
“누워있느라 날아가는 걸 못 잡았어.”
“응, 이해할게. 네가 안 나왔으니까 됐어.”
남동생이 찾아왔었거든, 짧게 덧붙였다. 만약 네가 나왔으면 또 쓸데없는 언쟁이 오갔을 테니까. 하면서. 어째 우리 가족들은 나한테 관심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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