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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튤립

스틸리아니 M. 마일스 성인 독백

잡동사니 by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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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심리 불안 묘사, 검은 배경 눈 클로즈업


요약

- 책장의 노트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반복하여 기억하는 것에 차질이 생김. 그 양이 반을 넘어가자 견디지 못하고 영국에서 도망치듯 독립. 동시에 과거를 미련없이 잊는 쪽을 택함. 탓에 현재 사건이 무사히 해결되었을 때 복잡한 감정을 느낄 것을 예상. 이따금 올라오는 자괴감. +그림 마지막 장.

- 볼드체만 훑어봐도 얼추 상황 파악 가능합니다. 결국 또 기억에 배신당하고 힘들어 하고 그런 이야기입니다…

- 서술된 장면이 자책, 자괴감 위주이나 스틸리아니는 잘 살았습니다.


스틸리아니 메리 마일스는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보다 잊고 싶지 않은 것, 기억하고 싶은 것을 더 오래 기억할 수는 있으나 무의미한 발악이다. 결국엔 오래 침체된 기억부터 시작해 사라진다. 지금부터 한 10년… 노력하지 않으면 5년. 얼추 그 정도. 자세한 사항은 본인도 모른다.

어쨌든 세어보자. 하나, 둘. 하나, 둘.

… 기억하고자 했던 추억들이 몇 개였더라. 적어도 저 책장 가득… 가득.


기억은 본래 잊는 것… 이라 말하기엔 현존하는 문제점들이 많으니 모두가 그 무게를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무언가 잊어버린 것 같다는 기시감, 무언가 없다는 위화감. 본래 혼자 겪었을 그 두려움을 현재는 전세계 사람들과 겪는다.

다만 그때 당시엔 아니었다.

고장 난 시계 사건이 얼추 해결된 것처럼 보이고 답을 알지 못하는 문제가 세상의 관심을 덜 받고 있었을 적. 스틸리아니는 학과에서 꼴지를 기록했다.

이유는 모두가 알 듯이 사라진 무언가들. 무언가. 무언가. 무언가!

그 무언가를 잃었다는 사실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또’ 뭘 잊어버린거지? 저곳엔 원래 무엇이 있었는가. 스틸리아니는 전공 지식과 며칠 전 읽었던 소설의 문장을 머릿속에서 지워가며 과거를 되짚어 갔다. 그래서 깨달았냐고? 그럴리가! 결과는 참패였다. 스틸리아니는 책장을 부여잡고 기억나지 않는 머리를 쥐어뜯는 것 밖에 하지못했다.

마일스는 오늘도 안 온대?

많이 아픈가봐. 집에 찾아가도 못 만나. 교수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시더라.

무단 결근 일주일차였다.


결과만 집자면 일주일 후엔 아무렇지 않게 다시 학교 생활을 했다.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서 그 일을 가능케 했는지는 현재까지도 모른다. 어쨌든 스틸리아니는 일어서서 움직였다. 그래, 모두가 말하지 않는가. 망각은 신이 주신 축복이기도 하며 잊는다는 건 죄도, 잘못된 것도 아니라고!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뿐이다. 사라진 기억에 매달려 울지 않고 현재를 다시 살아가는 것. 하하하하! 그래! 이렇게 쉬운 일인데!


책장의 3분의 1이 비었을 적 어느 날. 스틸리아니는 생각했다.

그 망각이 축복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누구였더라.

이후 그 사람들이 누군지 떠올리게 되면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제 소중한 친구들, 담당 교수님. 교수님… 그러니까, 이름이… 오카리나? … 아, 오르카였다.


스틸리아니는 어느 때처럼 달렸다.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내 달렸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축축한 때. 5초만 뛰어도 숨이 차는 몸에 헛웃음을 뱉어내며 고개 한 번 들지 못한다. 지금 숨이 불규칙한 이유는 순전히 달렸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속인다. 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기만 해도 눈치챌 간단한 사실을 속인다.

자신을 속인 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헌데 이상하다. 어째서 제 부모의 얼굴은 괜찮아 보이지 않을까? 안도, 이후엔 경악, 걱정, 슬픔…. 스틸리아니는 타인의 표정으로 자신이 괜찮지 않음을 깨달았다. 괜찮지 않았구나, 스틸리아니. 괜찮지 않았어... 유독 높았던 그날의 습도는 제 몸에 녹아들어 내렸다. 다시 전부 뱉어낼 때쯤부터는… … 기억이 없다.

누가 말했다. 거울을 보라고.

누가 말했다. 결과물은 남아있다고.

이에 스틸리아니는 답한다. 그럴까? 그렇겠지…. 순 거짓말. 그럴리가 없잖아. 아무것도 남아있지가 않아. 정말 남아있다 하여도 자신에게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 스틸리아니는 결국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택했다. 난 못 믿겠어. 네가 기억해줘. 내가 네게 썼던 말투, 내가 학기 내내 했던 머리 모양이라던가, 들었던 과목이라던가, 부반장이었던 사실이라던가, … 너와 나눈 대화라던가. 마지막은 욕심일까. 이전의 것들에 비하면 대화는 변수가 너무나도 많으니까. 그래도 나, 너희가 오래 기억해줬으면 해서 변하지 않으려 노력했어. 변하지 않으려고… …

엄마, 아빠. 저 더 이상 영국에 못 있겠어요.

스틸리아니가 영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노트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을 때였다.


그즈음이 되었으니 스틸리아니는 제 노트가 대체 왜 중요한지, 잃어버렸던 자각도 하지 못한 채 지내게 되었다. 이제 그를 묶을 족쇄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 아무것도. 일순간 연락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다가오는 이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들은 스틸리아니에게 남은 기억, 사람이자 매개체. 한 편으로는 일평생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대상들.

참 이상하다. 노트도 사라져가니 죄책감 또한 없어야 정상인데, 스틸리아니는 여전히 ‘기억’이라는 것에 얽매여 살았다. 모든 것을 잊고 새 삶을 시작한 것 같아 보여도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두려워한다.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과거에도 스틸리아니 메리 마일스를 괴롭히는 것은 기억인 것이다. 이젠 저뿐만의 문제가 아닌 기억. 다수의 사람들이, 너도 그 사건에 휘말린거야? 라고 말할 정도의 기억 문제. 그렇게 생각하면 가벼우나, 스틸리아니는 생각한다. 모든 현상이 잠잠해지고 원위치로 돌아가 다함께 기뻐하며 껴안고, 눈물을 흘릴 타이밍. 그때 자신은 함께 기뻐할 수 있을까.

스틸리아니 메리 마일스는 과연 자신을 빼고 기억을 되찾은 이들을 향해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을까.

제 기억 또한 돌아온다면 자신은 멀쩡할 수 있을까.

유독 별이 어둡고, 달만이 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때에 추잡스럽게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 혼자만 두고 해결됐다는 듯이 기뻐하지 말아줘. 외로워. 찾았다고 기뻐만 하지말아줘. … 나처럼 찾아서 힘든 사람도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이상한게 아니라고 말해줘.


마무리. 이건 ‘괴롭다’는 감정만을 느끼게 해주는 과거의 기억을 버리고서, 앞으로 나가는 척 하는 사람의 ‘나 이렇게 힘들었어요.’ 라는 변명을 위한 이야기.

그렇다. 인간이면서 모든 것을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했던, 그게 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오만한 한 사람의 이야기. 정확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름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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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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