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제

새벽

75제 1일차

스터디용 by FLYJ
2
0
0

새벽은 인간일 때부터 좋아했다.

물론 자다 깬 새벽은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지만, 일이 생겨서가 아닌 하고 싶을 때의 밤샘은 좋아했다. 새벽에 하는 일이 잘되기도 했으니까. 너무 졸릴 때 하면 결과물은 영 꽝이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좋아했다. 아침까지 깨있으면 뭔가 뿌듯한 기분? 그러다 그리 덥거나 춥지 않은 적당한 날엔 산책도 하고 싶어질 정도로 좋아했다. 물론 귀찮아서 결국 나가진 않았지만.

지금은 자다 깨도 그저 좋을 뿐이다. 눈이 떠져서 옆을 볼 때마다 행복해지는 것도 있고. 혼자 깨서 자는 모습들을 구경하면 만족감이 느껴져서 실실 웃다가 들켜서 머쓱한 적도 있지만….

오늘은 나보다 먼저 깬 사람이 있다. 제일 어려서인지 자다가도 잘 깨는 한 명. 눈이 말똥말똥한 걸 보면 깬지 오래된 거 같은데 울지 않고 혼자 잘 놀고 있는 게 대견하달까. 옆에 누워 있는 아버지들은 다 자고 있는데.

‘산책 갈까?’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조심스레 안고 밖으로 향한다. 정적에서 잘 울리는 발소리는 버리고,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자들만. 가는 길에 초대받지 못한 분들의 이불도 제대로 펴서 덮어주고, 문을 열자 새벽의 시원하고 무겁지 않은 바람이 살짝 불어온다. 혹시 모르니 두툼한 담요를 만들어 둘의 몸을 휘감고, 집 근처를 돌아볼까 해서 담벼락도 소리소문 없이 넘어간다.

마냥 좋다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아이의 질문에 답도 하면서, 검푸른 하늘에서 붉은 하늘로 바뀌는 모습을 올려다보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모든 게 꿈인 것 같다.

죽은 게 엊그제 같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이 몸이 되고 나서는 아는 얼굴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음 번 쉬는 날 새벽에 산책가자며 권유할 상대가 생길 줄은. 과거의 나에게 말하면 분명 거짓말이라고 믿지 않을 일들만 일어나니까 현실이 아닌 기분.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걷고 있자니 품 안에서는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잠든 아이의 볼을 살짝 콕 찌르자, 싫었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귀여워….’

돌아갈까 싶어 적당한 곳에서 담을 넘어 들어가니 그가 서있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기쁜 마음에 활짝 웃었다가 유카타 차림에 한소리부터 해버렸다. 이 날씨에 겉옷도 안 걸치고 뭐하고 있냐면서. 눈을 떴더니 누군가씨가 자리에 없길래 무심코 나왔다는 말에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자러 가는 수 밖에. 불만인 얼굴로 지나가니 뭐가 또 재밌는지 웃는 그를 보며, 전날 밤에 새벽 산책 약속을 잡는 게 아니라 자는 그를 깨워서 데리고 가자는 소소한 복수를 꿈꾸며 잠에 들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