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제

노을

75제 2일차

스터디용 by FL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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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기다릴 때마다 보는 노을은 언제나 아름답다.

둘이 같이 보는 게 제일 좋지만 그는 항상 늦으니 혼자 보는 게 일상. 그 또한 기다리는 동안 뭐했냐는 질문에 노을을 구경했다고 하면 일주일 중 반 이상은 보는 노을인데 지겹지도 않냐고 대답한다. 전혀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그것까지 전부 포함해서 행복한 것을 뭐 어쩌겠는가.

물론 좋아하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다. 피와 포탄의 불꽃으로 이루어진 노을은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사람이었던 과거를 부끄럽게 하던 그때 그 전쟁은 처참했으니까. 농담삼아 인간이 죽는 것이 진정한 친환경이라던 말 또한 뱉을 수 없었다. 기록이 아닌 실제 눈으로 본 끔찍한 장면은 한때 미쳐있었던 나조차도 보기 힘들었다. 그런 지옥 속에서 살아남은 그의 말이 그제서야 와닿는 것 같았다.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니까. 그래서 그만큼 행복해졌음 좋겠다. …그들도 그런 기분으로 옆에 있었던 걸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혼자 남은 동료에게 남아있던 그들은.

그 사실을 그에게 알릴 생각은 없다. 흉터 뿐인 상처에서 다시 피가 나는 일 따위 있어선 안되니까. 심지어 난 그저 다른 이의 해석을 읽었을 뿐이지, 실제일지는 모른다. 지금도 자면서 가끔 괴로워하는 그를 토닥여주는 게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 다시 그런 슬픔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 그저 죽지 않고 살고 있는 내가 거기에 매달리고 싶을 뿐일 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삶에 끼여들어도 되는 걸까?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들 중 크게 다치거나 죽게 된다면?’

그러다가 그와 다퉜지만 말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해서 뭐하냐고.

그딴 일로 떠날 생각은 추호도 하지마! 난 절대 안 떨어질 테니까!

…이게 화를 내는 건지, 꼬시는 건지. 죄 많은 남자. 전 세계를 꼬실 남자. 그런 그와 사귄다는데 못 믿을 만하지 않나? 뭐, 뒷말은 흥분해서 횟김에 한 말일 수도 있는데, 오히려 좋았으니 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하늘은 어두워지는데 회사 건물에서 안 나오는 것 보면 야근 확정인 것 같다. 기다리는 거야 익숙하니까 난 상관없는데 요새 야근이 많아져서 걱정이다. 슬슬 몸도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전에 한 것 같다.

모두와 같이 오래 살아야 하는데,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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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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