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 : 1999 드림 작업물 - [63] 완벽의 불완전
연성교환
밤이란 무엇인가?
해가 져 버린 시간. 모든 세계에서 빛을 앗아가는 기간. 이는 수가 만물이요 숫자가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 섬 또한 공통되는 이치. 생물이 활동하는 소리보다 바다가 들려주는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기 바쁠 그 시각, 평온을 깨뜨리는 움직임이 있었으니. 가장 완벽한 숫자, 우리의 지도자. 완벽한 자, 6이 거주처를 벗어나 오매불망 잡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낮과 밤이 일정한 시간대에 규칙적으로 전환되는 것은 균형이라 말하던 그 사내가 잠을 청하기는커녕 섬을 바삐 돌아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는 집집마다 퍼지기 시작한 지 오래. 눈동자의 떨림이 가라앉질 않는다는 목격담.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할 넋 따위 없어 보였다는 증언. 소문은 쌓이고 쌓여 진실이 된다. 그가 제때 잠들지 않았다는 건 필히 완벽하지 않은 일일 터. 무엇이 완벽한 자를 완벽하지 않은 자로 만들었을까. 무엇이, 완벽하지 않은 자를 감히 입에 오르내리게 하였을까.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진리란,
3이 돌아오지 않았다.
밤이 길었다. 당신 없는 밤이 너무도 길었다. 3이 6에게로 돌아오지 않은, 오롯한 혼자라는 고독의 되풀이란. 나의 불안감을 가중한 채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소수를 실감 나게 하더라. 우리의 이름이 재정의되는 과정에서 드리워진 그늘을 깊어지게 만들더라. 3과 6이 서로를 사랑한다는 가정은 가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호 동일한 궤도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가리키고야 말았다. 안다, 당신은 유출에 휩쓸렸으니 현상 세계에서 부여받은 고유 이름 피넬로피는 그야말로 재앙에 휘말린 이재민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허나 당신이 3이라는 숫자, 그것도 정수이자 소수를 명명 받은 순간부터 소위 폭풍우라 불리우는 재난은 개칭된 축복이 될지언대. 당신이 지닌 영혼의 색이 어떠한지 무려 학파가 위임하지 않았던가, 이는 가장 확실하게 증명된 사실이 분명하지 않은가! 어째서 3이라는 명칭에서 벗어나 피넬로피로 돌아가려 하는지를, 스스로 무리수를 자처하기 위한 개념을 세우려 드는지를. 이 모든 것들이 날 무한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걸 모를 수 없는 당신이, 기어코 불안 속에 날 밀어두고 떠나려 한다는 진실마저.
완벽한 적 없던 나의 완벽을 무너뜨리고 만다.
나를 6이라는 완전한 숫자에서 멀어지게 하고 만다.
나를, 내 명칭을.
내 이름을 6에서 다시금 아티커스로 작명하게 만드는 것은 기어이 피넬로피 당신이라는 걸.
나는 지금 무결한 숫자로서 당신을 떠올리고 있지 않음이다. 전혼하지 못한 아티커스라는 성명으로 온전한 당신을 상기하고 있는 저를 돌아볼 시간 따위 없었다.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3이자 피넬로피를 원하는 게 아니므로. 무슨 이름이어도 좋다. 어떠한 명이어도 상관없으니, 당신이. 그저 보고 싶었노라고. 이리도 간절하게 당신 하나만을 원하고 있으매 당신은 어찌하여 날 떠나려 했고, 이렇게 매정히 사라질 수가 있었던 걸까. 감정은 부동하지 못하기에 잔정에 휩쓸리는 자를 한심하다 여길 수 있을지언정, 그리하여 인류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나? 사람을 구성하는 것 중 불확실한 감정이 있어 영혼의 색 역시 모두 다른 것이 아니던가! 진리가 어그러진다. 완벽의 정의가 일그러진다. 저는 한평생 제가 추구하는 완벽에 도달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진정 완벽한 숫자로 자리매김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당신을 또다시 간절히 바라게 되는 이 무한한 굴레는 어찌해야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숫자 8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양성을 지니고 있어 돌고 도는 기분이 드는 것이렷다. 그래, 물레는 돌아가야 하지. 운명을 거스르는 것은 금기에 어긋나던가. 이 섬에 발을 디디고 있는 이상 반드시 기피해야만 하는 금지된 열 가지에 숙명을 거역하지 말라는 문구는 없을 텐데도.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 한들 당신이 그들에게로 돌아가는 것 역시 천명이었나. 이러한 미래 하나 예지하지 못하는 저를 과연 지도자라 일컫을 수는 있을까. 제가 예측한 제 앞길은 진정한 정의였는지, 제 앞날은 완벽한 지도자의 덕목에 필요치 않은 불순물로, 여겨진 것인지를……
아,
참으로.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의문은 의구심의 꼬리를 물고 길어진다. 나의 의문점은 그렇게 차곡히 빛없는 하늘에 수놓인다. 길을 잃은 추종자들이 그 별자리를 올려다보며 나아갈 방향을 찾아간다면, 나는. 6이라는 완벽의 명색으로 감춘 불완전한 아티커스는. 무엇으로 갈피를 찾아야 하지? 어떻게 해야 횃불 없이도 걸을 수 있지. 아니, 처음부터. 여섯째 이름이 수여되기 전의 성명이었을 때부터. 그걸 이제야 깨달았나,
완벽한 숫자이되 완벽하지 못한 사람아…….
그보다도 더 이전, 시간이라는 개념마저 자각하지 못하던 시기. 태어나길 결점 없이 태어나지 못한 까닭에 긴긴밤을 걸어봤자 진정한 진리에는 도달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아티커스에서 6으로 탈바꿈하게 된 거였다면 퍼즐이 들어맞는다. 불변의 진리, 고정의 원리인 숫자가 완비되었다는 진의는 결국 참인 명제가 된다. 늘 스스로를 성찰하고 통찰하고 있다 판단한들 이 얼마나 오만한 자신이었나. 속절없이 무너지는 자존 앞에 개념이 될 수 없는 미천한 존재가 서 있으니 범인으로 귀결되고 마는 사내의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견문과 견식은 실존하지만 실체가 없어 손가락 틈으로 빠져나갈 모습조차 드러나지 않고, 그렇다면 제게 남은 것은. 옅은 미소를 띤 입가에서 허탈한 웃음이 배어 나온다. 뱉은 숨 역시 허무하게도 제 것으로 자리하지 않는다. 흩어지는 바닷바람, 흩날리는 금빛 머리칼. 달빛은 파도에 바스러져 산산조각이 난다. 수면을 장식한 월광의 파편에 스스로를 대입한다. 계산한다, 해답을 찾아 헤매인다. 부서졌음에도 달이 품은 빛이라는 의미는 달라지지 않아서, 이것이 당신과 나의 관계나 다름없지 않다면 과연 무엇에 빗댈 수 있을는지. 신뢰는 언제부터 무너졌나? 광명을 잃은 신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해도. 커다란 파도는 어둠에 휩싸여 드넓은 파랑을 뒤덮고 말았으니, 바다는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수평선 너머로 당신을 데려가 버렸다. 더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나의 가족, 나의 반려. 두 번 다시는 조우할 수 없을 내 사랑아. 나는 이제, 어디서. 어떻게. 어찌해야,
완벽하지 못한 아티커스로 남아도 괜찮을 수 있는 거지?
진리는 이미 흠잡을 곳 있는 부전한 사내를 등지고 말았거늘, 나는 다시는 아티커스가 될 수 없겠구나. 차곡히 씌워진 불안은 심해를 메우려 든다. 공포는 널따란 해수를 닮아 어언간 해일이 되고 말 것을 직감했다. 묵시를 받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경험에서 아우르는 예지를 지우지 못하는 어느 사내를 두고 달은 속수무책으로 넘어간다. 중천을 벗어나, 멀리. 저 멀리,
동이 튼다.
새벽노을은 어림잡아 시간을 나타내는 지칭이기도 했다.
태색이 일화로 돌아가는 때 해오름이 수평선을 비춰오면 고독에서 비롯된 적막이 지평선마저 삼켜버릴 줄 알았거니. 예상과 예측, 예견 그 모든 것을 다시 한번 무너뜨린 건 다름 아닌 뜀박질 소리였다. 모래를 디뎌 앞으로 나아가는 마찰음, 파헤쳐진 사장이 원래 속한 곳으로 돌아가는 달음질. 급하다는 듯한 심정이 훤히 드러난 기억의 가장 첫 열에 서 있는 내 정수, 내 소수가. 아무리 작아져도 존재만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모의 관념이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다. 한 걸음, 내딛는다. 두 걸음, 발을 뻗는다. 어느샌가 뛰고 있는 자신을 돌아볼 틈은 없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반대되는 궤도를 따라 달린다. 당황이 서린 그 얼굴이 가까워질 즈음이면 저도 모르게 벌려진 팔은 이윽고 저보다 낮은 숫자를 끌어안는다. 품에 가둔다, 돌아온 아침을! 그림자는 그리 사라진다. 한순간에 씻겨나가는 불안에 평안이 차오른다. ……3. 입을 연다. 흔들리는 목소리와 혼미한 음역대는 그를 안은 팔에 힘을 실어주기 바빠 뒷말을 잇지 못하였고, 이어진 것은 다른 음색의 문장이었다.
“6, 많이 기다렸어요?”
잇따르는 것은 꼬이고 꼬인 오해를 풀어주는 이야기들. 집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연구소에서 잠들어 버렸어요, 미안해요. 앞으로의 제 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당신이 아직은 운명에 순응하지 않았다는 진실. 제가 떠난 줄 알았다고요? 저도 모르는 새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어 버렸군요, 6. 윤슬은 달빛의 파편이 아닌 햇빛의 편린으로 덮어진다. 이 바다를 채우는 것은 안도가 되어. 제 허리를 마주 감싸는 작은 손길, 온전히 놓쳐버린 줄만 알았던 온기를 만끽한다. 집으로 돌아갑시다, 3. 품에서 놓아주지 않은 채 사내가 중얼이면 그의 대상은 이대로 걸을 수는 없지 않겠냐며 어쩔 수 없다는 마냥 웃어 뵌다. 아무래도 좋다, 오늘의 아침이 아직이라는 부사로 이어붙인 것이어도 괜찮다. 나는 두 번 다시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제 사랑이 어떻게 불리어도 상관없으니,
완벽한 숫자로서 기필코 찰나를 영원으로 바꾸리라.
완벽하지 못한 자는 이번에도 완벽을 향해 걷는다.
탐구는 끝나지 않는다.
사랑 역시 지식이며, 지식에는 끝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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