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선혈 (1)

#리버스1999 #아르고스

*개인해석 개인설정 다수

*수위는 인게임 정도로 맞추려고 했습니다.

1_

“제기랄!”

빗발치는 총성 사이로 욕설이 꽂힌다. 탄환이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아르고스는 탄환상자를 전부 바닥에 쏟아보았지만 새 탄환 하나 건지지 못했다. 주먹으로 상자를 내리찍으며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눈에 들어오는 건 애물단지 애들뿐이다. 제 동생을 힘껏 끌어안은 여자애는 바닥만 노려보고 있었다. 무력감, 그러나 감춰지지 않는 호승심. 이 황야에 발을 딛는 모두가 느끼는 것이었다. 아르고스는 그 시기가 이름을 동정했다. 아니면 한탄했거나. 그리고 억센 모래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로 결정했다.

“꼬마야, 가진 총이랑 탄환 다 꺼내봐라. 일단 여기서 나가자.”

그 결심이 그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을지라도.

*

“블랙잭 한 잔.”

나무문은 여느 때와 같이 불쾌한 소음을 냈다. 한산한 바에선 바텐더가 지폐를 헤아리고 있었고 구석 테이블에서는 몇몇 건달들이 모여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의심 사기 싫으면 위스키 취향부터 바꿔야겠어.”

“그래. 좋은 아침이야, 아담”

아르고스는 무성의하게 대꾸하며 잔을 받고는 구석의 무리를 흘겨보았다.

“처음 보는 것들인데.”

“이봐, 그쪽도 여전히 외지인이거든? 보안관에게 수상한 사람이 있다고 신고하면 당신부터 잡아갈 걸.”

아르고스는 눈을 굴렸다. 누가 뭐랬나. 식사 제안은 거절했다. 이유 없이 속이 타는 게 음식을 밀어 넣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닐 것 같았다. 이런 날은 다른 무엇보다 술 한 잔이 위로가 되어주는 법이라고 그간 사막을 누비며 배워오지 않았나.

불청객은 그 한 잔을 채 비우지도 못하고 찾아왔다.

“당신, 용병 맞지?”

어린 소녀의 목소리였다. 아르고스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바텐더의 말대로 이 곳에서 유독 눈에 띄는 복장이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용병이라는 직업은 어딜 가든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마련이었다. 

“부모 찾는 일은 보안관 쪽이 나을 걸.”

“잃어버린 게 아니야!”

날카로운 외침에 아르고스가 옆을 돌아봤다. 역시 어린 여자아이였다. 깡말라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으며 몸에 맞지 않는 큰 옷도 한 몫을 했다. 버틴, 그보다도 대여섯 살은 어릴 것이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짙은 다갈색 머리를 아래로 땋아 내렸고 얼굴에는 주근깨가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는 피스톨이 빛났다. 

소녀는 아르고스를 노려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환심은 아닌가, 아르고스는 바텐더에게 눈짓을 했지만 영문 모르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고 컵을 닦으며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 아빠에게 문제가 생겼어.”

“네 아빠의 외도에는 더더욱 내가 관여할 일 없어.”

“그런 것도 아냐! 아니라고!”

아이에게 총을 빼드는 건 옳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 아이가 눈앞에서 총을 들이밀어도 마찬가지인가? 아르고스는 이마를 짚으며 술을 마신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무언가를 결심 한 듯 팔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아, 이런.” 그리고 아르고스는 그게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의뢰를 받아주지 않으면 겨-결투를 신청하겠어!”

바텐더가 휘파람을 불었다. 한 방 먹었다. 

*

소녀를 진정시켜서 자리에 앉히는 데만 꽤나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녀는 더블치즈버거를 한가득 입에 넣었고 바텐더는 주문을 받고 치즈버거를 내어주면서도 의외라는 듯 아르고스를 바라보았다.

“이제 말해봐, 꼬마 아가씨. ‘용병’까지 찾아와서 의뢰를 맡길 정도면 심각한 일일 텐데.”

“아버지가 여자를 데려왔었는데요.”

소녀의 이름은 잭이었다. (성의 없기도 해라!) 잭은 실제로 그 여자를 본 적이 없으므로 아버지의 부인인지 애인인지 치료사인지도 알 도리가 없었고 그저 아버지가 하는 말로만 그녀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 여자를 죽인 것 같아요.”

잭이 밤사이 들은 바로는 그렇다. 성이 잔뜩 난 남성. 비명을 지르는 남성. 총성. 무언가 깨지는 소리. 또 다른 총성, 그리고 반복. 침묵이 길어지자 계단을 내려가 본 광경도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점을 잃은 남성의 눈과 피로 흥건한 손과 산산조각난 욕실 거울.

“그러니까 아버지 대신 자수를 하러 왔다고? 이 주변에선 참 여자들을 가만히 두질 못해, 그렇지?”

아르고스는 바텐더가 둘의 대화를 듣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이봐…” 아담이 운을 띄우려는 걸 무시하고 아르고스는 산탄총으로 머리를 긁으며 소녀를 재촉했다. 잭은 남은 치즈버거를 해치우고는 냅킨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정말로 사람을 죽인 것이 맞다면 처벌을 받더라도 받아들일 거예요.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마녀한테 홀린 거라고 믿어요! 그러니까, 아버지도 마녀한테 사술이 걸려서 그랬고, 그 여자는, 죽지 않고 달아났을 거예요.”

“결론은 정당방위고, 여자의 시체는 보지 못했다?

“아, 아버지가 이야기한 게 있는데, 마, 마녀라고… 마녀한테 당한 거라고… 소,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어요. 마녀라고 생각한 게 거울이었고, 거울 안에 여자가…….”

“뭐?”

“당신은 용병이고 마도학자라면서요! 아저씨들한테 들었어요. 마녀의 사술에 대해서도 잘 알거 아니에요!”

아르고스는 반박할 여유조차 없었다. 혈관의 세찬 맥동이 느껴졌다. 총신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거울 속의 여자? 우습지도 않지만 그때 그 모텔에서 본 케일라의 모습이 떠올랐던 탓이다. 

“이봐요!”

잭이 아르고스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 젠장. 남아있던 위스키를 들이키자 머리가 다시금 차갑게 식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면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높다. 어린아이에 입으로 전해진 날것의 정보들이니 신빙성은 더욱 낮아진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아르고스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울 속에 여자라고 했지? 네 아버지한테 물어볼 게 좀 생겼다. 미심쩍은 부분이 없진 않은데… 아주 모르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어이! 잠깐… 그 여자, 아직도 찾고 있었던 거야?” 

아르고스는 지폐를 접어 잔 아래 끼웠다.

“허탕 치는 건 한 번으로 충분하고, 나도 자존심은 있거든. 잔돈은 여물로 쓰던가. 가자, 꼬마야.”

*

결과적으로는, 허탕이었다.

비쩍 마른 몸으로 왔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소녀의 집은 마을의 외곽에 있어서 아르고스는 차를 끌기로 했고, 모래폭풍이라도 맞은 것 같은 꼴을 한 집을 마주하게 되었다. 

내부는 더 엉망이었다. 여러 사람의 발자국이 난잡하게 깔려있었다. 이미 그들이 오기 전 선수를 친 자들이 있는 것이었다. 잭은 아르고스를 끌고 반지하로 내려갔다. 

“허어… 이게 바로 사건현장이라는 거지.”

소녀가 묘사한 모습 그대로였다. 계단을 따라 핏자국이 점점이 흔적을 남겼고, 화장실 앞에서는 핏물의 웅덩이가 반쯤 말라붙어 얼룩이 졌다. 문과 벽에는 구멍과 갈라진 자국이 총탄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거울, 거울이 있었던 것으로 예상되는 자리는 빈 벽만을 보여주고 산산조각난 거울들이 바닥에 산재해 있었다. 

아르고스는 현기증을 느꼈다. 바닥의 거울 조각들을 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았다. 그것은 모텔에서의 경험처럼 결코 유쾌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어떠한 충동이, 강하게 흔들리는 심장이, 붉게 물드는 시야가 거울을 마주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아르고스는 급하게 사탕을 입에 넣고 까득 깨물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큭!”

격렬한 통증과 함께 아르고스는 왼쪽 눈을 부여잡았다. 눈을 감았다 뜨길 반복하니 시야는 명확해졌지만 이상하게도 은근한 둔통이 사라지질 않았다.

‘눈의 상태는 나중에 다시 확인해 보면 돼. 지금 당장은 아니지.’

아르고스는 다시 눈을 부릅뜨고 마도술을 사용했다. 그녀는 하나의 눈으로 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의 세상을 보았다. 그러자 거울 조각에 비친 백 개의 눈이 일제히 아르고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들은 집요하게 아르고스를 쫓았다. 눈, 눈, 눈. 더 많은 빛나는 눈들. 마치 그동안 사용했던 마도술이 그대로 아르고스를 꿰뚫기라도 하는 것 마냥 그녀를 응시했다. 남용한 마도술의 부작용일까? 아니면 그저 거울에 의한 반사작용? 모텔에서의 경험이 일으키는 후유증, 아니면… 정말 마녀의 소행이라도 되는 것일까?

“우욱, 웩.”

정신을 다잡고 보니 아르고스는 복부를 부여잡고 고개를 한껏 숙인 채였다. 불쾌하고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위액을 끌어올린 것에 의한 생리적인 눈물이 왼쪽 눈에 맺혔다가 바닥에 떨궈졌다. 역시 위스키가 잘못되었나. 그 망할 바텐더가 잘못된 술을 건낸 것일지도 몰랐다. 아르고스는 그보다는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을 소녀가 신경 쓰였다. 속으로 욕설을 삼키며 무어라 말을 꺼내보려 했지만 격통을 동반한 기침만 나올 뿐이었다. 정말이지 어린애 앞에서 눈물콧물 다 내보이며 위액이나 쏟을 줄 누가 알았겠냐는 말이다. 잭은 의외로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걱정하지도, 그렇다고 모멸감을 느끼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아르고스는 토사물-그래봤자 위스키와 위액이 다였다. 식사를 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지.-에서 뒷걸음질쳐 멀어졌다.

“괜찮아요. 원래 어른들은 가끔 그런댔어요.”

아르고스는 코웃음 쳤다. 아르고스는 이 집의 어디에도 성인 여성의 흔적 따위는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분명히 방치된 어린아이, 이성을 잃은 듯한 남성에 대한 묘사, 그리고-

“찾았다.”

그녀는 거울 조각들 아래에서 빈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맥이 다 빠질 정도로 유치한 결말이었다.

잭이 여자를 본 적 없는 것은, 역시 여자가 애초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핏자국의 경우에도, 약에 취해 총으로 난동을 부렸다면 충분히 위험요소가 많은 공간이니 이유를 대라 하면 수십 가지도 댈 수 있을 것이다. 

 약쟁이는 대하기가 귀찮은데. 아르고스는 옷을 털면서 잭을 힐끗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죄를 지은 게 맞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담담히 말하는 배포를 보아 보통내기는 아니다. 그러나 진짜로 부모가 사라졌을 때 아이가 혼자서 자립할 수 있는가? 직접적인 학대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단순한 방치라면 일이 조금 더 수월할 테다. 

“그래서, 네 아빠는 어디 있지?” 

소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르고스는 한숨을 쉬고 사탕을 하나 더 삼키고 집 전체를 둘러보았다. 집 안, 마당과 주변을 전부 둘러보고서도 잭의 아버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옷장에 웅크리고 몸을 숨기고 있는 아이를 하나 더 발견했다. 잭은 이마를 짚는 아르고스의 눈치를 보며 동생의 손을 잡았다. 아무래도 아이 둘을 다 내버려두고 이 사건을 보안관이나 주 경찰에 넘겨버리는 것은 위험한 일일 것 같다.

“베이비 시팅은 정말로 적성에 안 맞는데 말이야…….”

*

당장 무엇을 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약에 취했던 잭의 아버지가 현재는 어떤 상태인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자리를 비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잠깐 집에서 목을 축인 후 차를 정비하러 나갈 때였다.

탕- 갑작스러운 총성과 함께 차의 앞 유리가 갈라졌다. 아르고스는 산탄총을 장전하고 총성이 들린 방향으로 빠르게 두어 발 쏘았다. 소리에 놀란 아이들이 집에서 나와 아르고스에게 향했다. 아르고스가 집 안으로 들어가 있으라는 말을 내뱉기 전 그녀는 족히 네댓은 되는 장정들의 발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개자식이 용병을 불렀어!”

무슨 오해를 하는 것인지는 알 것도 같았으나 대화가 통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녀를 향한 거친 욕설을 들으며 아르고스는 다시금 장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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