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ll we
드루비스X버틴
스킨쉽이란, 왜 이리도 부끄러워 움츠리게 되는지. 마음만큼 몸 또한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욕구에 따라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추고, 어쩌면 더 낯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것 전부 드루비스에게는 질릴 정도로 익숙하고 또 모순적으로 무지한 영역이었다. 귀족 여식의 입장에서 모를 턱 없이 라디오처럼 들려오는 주변의 저열한 풍문은, 거침없이 남의 사생활까지도 들쑤시기 쉬웠다. 낄낄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은근히 물어뜯기에 스킨쉽만큼 인기 있는 주제가 있을까. 이제 볼 수도 없는 제 어머니는 유난히 그런 소문에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대체 그 남자랑 얼마나 같이 있었으면, 그런 말이 떠도는 게냐? 잡을 생각도 들지 않는 뜬구름 같은 단어와 추측, 비난이 자주 드루비스의 귓속과 머릿속을 맴돌았다. 거짓말로만 이뤄진 이야기들은 어디선가 끝없이 몸집을 키우고, 뒤틀려져 모습을 바꿨다. 그저 둘만 있는 방에서 대화를 나눈 게 전부 아니었나. 진상은 초라했다. 하지만 소문이 흐지부지해질 때쯤에는 항상 ‘아, 그러셨어요? 몰랐네요.’ 정도의 짧은 변명만이 타고 난 쓰레기처럼 남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드루비스의 기분도 그것과 비슷하게 버려졌다.
드루비스는 타임키퍼, 버틴과 단둘이서 보낼 때면 그 당시를 떠올렸다. 가방 속은 가식이 발에 채는 1920년대의 시카고와는 달랐다. 하지만 그 거짓 속에서만 생생했던 불같은 목격담이나 이야기가 드루비스의 고민을 깊게 더 파고들었다. 키스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격렬히 입을 맞추면 왜 그다음은…. 누가 인류에게 ‘그 행위’를 자연스레 알려줬는지 모를 일이었다. 연회장의 비웃는 소리와 날이 선 어머니의 고함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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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익숙하지 않게 상대방의 입술을 제 입술을 갖다 대면 아주 작은 호흡이나 두근거림을 엿들을 수 있었다. 감았던 눈과 눈이 마주치면, 그 속의 투명한 비취가 일렁거렸다. 찰나의 작은 반짝임을 붙잡고 더 깊게 이어지고 싶었다. 혀까지 동원하고 싶은 이 감당하기 어렵고 뜨거운 충동은 오로지 자신만 신경 쓰고 있는지, 버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드루비스는 알 수 없었다.
물론 그 이상으로 버틴을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대신 드루비스는 살짝 닿은 입맞춤 뒤에는 매번 아쉬움을 감추고 버틴의 볼을 쓸어주었다. 그 순간을 어물쩍 넘겨버릴 때, 드루비스는 버틴 또한 아쉬워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고민은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짧게, 자주 떠오르고 가라앉았다. 알게 모르게 더는 흐르지 못하고 고이기만 하여 넘치기 직전이었음을, 불만은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만큼 가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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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했다. 버틴은 단어의 뜻이 과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생각했다. 아쉬웠다. 여전히 심장이 힘차게 피를 순환시키는 소리가 제 귓가에 걸려 있는데도, 푸르다 못해 자연의 심장인 것만 같은 녹색 눈동자 속에서 애써 거리 두려 하는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이미 머릿속에서는 납득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드루비스의 선택일 뿐이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의문이 들어도 구태여 따라가지 않았다. 버틴은 타임키퍼로서의 책임과 업무로 시선을 돌리며 아쉬움을 달랬다. 무표정을 짓는 건 익숙했다.
그러다 계절이 바뀌면 찾아와 귀찮게 구는 시험처럼 타임키퍼팀의 감사가 시작되었다. 가방 속의 인원이 얼마나 많든 효율을 추구하는 재단의 일 처리에 따라 하루 만에 충분히 끝날 일이었으나, 폭풍우 특별 법안이 통과된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타임키퍼팀의 규모가 커지는 걸 여전히 반기지 않은 사람과 그저 단순히 궁금해하는 사람, ‘타임키퍼’를 통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 등등 온갖 명목으로 버틴을 찾았다.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타임키퍼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겠냐며 보고서 글자 하나하나 들먹이며 쪼아대거나, 호의라는 이름으로 뻔한 질문을 내던지며 치근덕거리기 바빴다. 버틴은 이런 지겨운 ‘대외 활동’에 자신의 가방 속 마도학자들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으므로, 쓴 약을 먹듯 기분 나쁜 관심을 인내로 꾸역꾸역 삼켰다. 1920년대의 드루비스도 이런 기분으로 타인을 견뎠을까. 잔을 들고 있는 손이 떨려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계속 들고 있어야 하는 이 긴장감이 익숙했냐고 물어본다면, 돌아올 이야기와 이 상황이 겹칠지 궁금했다. 사진처럼 맞대어 보면 결국 혼자 있다는 사실 하나는 선명하다.
결국 버틴은 며칠간 재단에 머무르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잡힌 모든 일정을 끝마치고 나서야 가방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피곤함과 그리움, 남아 있던 섭섭함, 또는 숨겨진 욕망이 뒤섞여 구분할 수 없었다. 그 덕에 라플라스 연구소에 고이 모셔진 가방을 향해 차분히 걷던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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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틴은 하루 만에 돌아오지 않았다. 드루비스는 흰색과 체크무늬만 인정하는 차가운 건물 밑에서 벌어지는 압박감이 무엇이고 또 어디까지 원하는 대로 짓누르려 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행히 소식은 끊기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오늘은 어느 지부의 어떤 사람들과 모임이 있었고, 후에는 다른 성향의 무리와 약속이 있는 식이었다. 그 곁에는 가방 속 마도학자는 한 명도 없었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책임은 언제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톱 햇을 쓰고 코트를 걸친 소녀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곁에 없어서 그럴지도 몰랐으나, 드루비스는 버틴이 자신을 좀 더 의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만약 이 부끄러운 욕심을 미리 꺼냈더라면, 혼자서만 고민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더라면 단상 위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시선과 부담은 한 사람의 몫이 아니었을 텐데. 홀로 주어진 무대의 먹잇감으로 정해지는 일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이가 있을까. 기다림은 원래도 쓴맛이었으나 후회는 더더욱 쓰고 텁텁했다. 고작 스킨쉽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 그런 중요한 순간에 힘이 되어야 하지 않았나. 반성하는 침묵을 깬 누군가가 급히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인지, 누구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아마 조금 전까지도 떠올린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문이 쉽게, 빠르게 열렸다.
버틴은 조용히 차오른 숨을 골랐지만 전하고자 하는 급한 마음이 더 먼저였다.
“드루비스, 저……”
급히 눌러썼던 모자가, 시야를 가리는 모자의 챙이 거둬지고 은은히 복도를 채운 불빛이 시야를 한가득 채웠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포옹은 묻어나온 바깥의 찬 공기와 함께 그 안의 작은 체구를 감쌌다. 방의 주인이 말하기도 전에 초대받은 이도 두 팔로 늘씬한 상대방을 감쌌다.
“다녀왔어요.”
“어서 와요.”
보고 싶었던 이의 온기와 그리웠던 향을 폐에 힘껏 채우고 나서야 버틴은 가방 속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여전히 드루비스의 품에 기대어 자신의 심장박동이 점점 느려지는 소리를 감상했으나, 서 있는 곳은 아직 운 좋게 누구 하나 지나가지 않은 복도였을 뿐이었다. 드루비스는 제 가슴팍에 가만히 있는 버틴의 이마에 조심스레 입술을 눌러 그 신호를 주자 자연스레 안쪽으로 두 사람이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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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의 등불은 환하고 차가운 전기 조명 대신 어두울지라도 은은히 주황빛을 내며 두 사람의 어깨 위에 살며시 내려 앉았다. 그림자를 더 짙게 하고, 다른 색깔을 한 꺼풀 가려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불의 원래의 목적과 달리, 공간에 긴장감이 조금씩 감돌았다. 아마 용기내어 버틴을 처음 방으로 초대했을 때보다, 자신이 처음으로 참석했던 1920년대의 연회만큼이나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이었다. 당신을 원하는 만큼 몸에서 내보내는 반동이라고 봐야 할까. 드루비스는 버틴에게 받아 둔 외투와 손에 들고 있던 모자를 옷걸이에 걸어 놓고 나서야 다음은 무엇으로 대화의 시작을 끊어야 하는지 급히 고민하고 입을 뗐다.
“들었어요. 정기 감사만 있던 게 아니었다고…“
왜 혼자서만 상대한 거예요? 능숙히 두 잔의 차를 준비하는 상대방의 등 뒤에 다가가 물었다. 대수롭지 않게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무덤덤한 대답이 돌아올 것 같기에, 드루비스는 제 시선을 찻잎처럼 찻잔에 떨궜다. 만약 마주본 눈길에서 폭풍우에 흠뻑 젖은, 슬프면서도 익숙한,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길 의무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 않을지, 초라할지 모를 이 관계를 밀어낼까 두려웠다.
하지만 아무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물과 마음만 조용히 끓어올랐다. 버틴은 말 대신 드루비스의 가느다란 손을 잡고 주제를 바꿨다. 누군가의 참아왔던 감정이 흘러넘쳐 무표정한 흰 식탁보 같은 얼굴 위에 쏟아졌다.
“보고 싶었어요, 드루비스.”
버틴은 고개를 들어 정확히, 올곧게 바라보며 말했다. 떨려오는 눈망울이 간절했고, 맞잡은 손바닥이 답지 않게 축축했다. 긴장을 잔뜩 한 그 모습이 꼭 자신 같았다. 아니, 말하지 못한 저 자신보다 더 나았다. 당신도 떨고 있어, 나처럼. 이제껏 헤맸던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드루비스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방 안이 이렇게도 더웠나, 서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는 사실은 어두운 조명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드루비스는 터질 것 같은 고동을 겨우 붙들고 버틴에게 물었다.
“…키스할까요, 그러니까, 제대로 말이에요.”
버틴은 몸을 돌려 마주하고 약간 차이 나는 눈높이를 발꿈치를 들어 올려 입을 맞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금은 건조한 입술과 맞대어 두어 번 소리를 내면, 말캉한 혀가 입안을 이리저리 간지럽혔다. 처음을 나누는 게 많아 부끄러우면서도 더 원하게 되는 이 감정을 무엇이라 속삭이지 않아도, 그저 키스 한 번만으로 그 의미가 전달되었다. 당신을 사랑해요. 우린 같은 감정을 맛보고 있나. 달짝지근한 박하사탕을 핥는 것처럼 시작하여 함께 춤을 추는 것처럼 혀끼리 이어지다가, 적당히 끊어야 할 때를 몰라 숨이 차올랐다. 겨우 떨어지자 서로가 불규칙한 호흡을 내뱉느라 바빴다. 저릿할 정도의 자극이라 만족스러울 때까지 몇 번이고 더 할 수는 있겠으나…… 그전에 숨도 제대로 못 쉬어서 지칠 게 분명했다. 이런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새어나왔다. 드루비스는 쿡쿡 웃으며 눈만 깜빡거리는 상대방을 꼭 안아주었다. 제법 괜찮지 않았나요? 평소보다 더 솔직하고 신난 목소리였다. 부끄러움이 뒤늦게 올라왔는지 버틴은 드루비스의 품에 얼굴만 푹 묻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드루비스는 천천히 버틴의 머리칼을 어루만지고, 작은 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다음에 그런 부담스러운 일정이 생기면… 같이 가게 해줘요.”
받았던 ‘내일’보다 더 많은 시간을, 당신에게 내 ‘지금’을 얼마든지 주고 싶어. 일정한 온도에 멈춰 조금씩 식어가는 물을 두고 여전히, 두 사람의 포옹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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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부터 쓰는 저도 정신머리를 잃었기 때문에 어색해도 뭐라 할말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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