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월 5주

아르카나, 버틴 / 포겟미낫 / 버틴X슈나이더 / 드루비스X버틴

2호점 by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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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양 아기 버틴 주워가는 아르카나…

정해진 규격과 법칙으로 세워진 의회는 인간이 아닌 것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올바르게’ 자라나야 할 어린 양들이 있었다. 유별나게 울타리 너머와 가려진 것들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어린 양이 있었으니, 무리와 다른 생각을 하는 것만큼 그의 색은 영락없는 검정이었다. 진실과 호기심은 용납되지 않은 사특한 것이었으므로, 재단은 검고 어린 양을 끌고 가면서도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벌을 주어야 했다. ‘폭풍우’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채로 친애하는 이들이 눈앞에서 지워졌을 때의 충격은, 재단의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그림자 속에서 은밀히 보고 있는 이도 어린 검은 양의 슬픔을 원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재단의 인재가 나타나 ‘타임키퍼’라는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정해진 결말이었다. 하지만 서슴없이 나타난 탈출 계획의 배후는 그 속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재단이 규정한 대로 칠흑처럼 까만 뱀은 이를 기회라 여겼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등장에, 그저 한낱 인간인 Z는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이 떨리는 손으로 우산 손잡이를 꽉 쥐었다.

연주회 미소녀 백합/건조하고 다정한 대화/3인칭 관찰자 시점 압수…

건반을 누르면 말끔히 사라진 1929년의 시카고가 다시 재생되었다. 황금이나 재즈 따위로 시간을 모두 다 써버려 파산한 족속들은 가치가 없었다. 그치들 사이에서 불탄 숲처럼 인생이 다 타버린 이를 나는 알고 있다. 손을 내밀어 쓸쓸하지 않도록 우산을 씌어주고, 진정으로 향해야 할 과거를 보여주자 멍한 눈동자가 나와 같은 곳을 향해 보았다. 우리에게 상처밖에 주지 않는 이 세상을 어떻게 그냥 두겠습니까? 하지만 잿더미를 유유히 두고 걸어 나간 이는, 드루비스는 과거를 등지고 떠났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마디와 음을 집어치우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페달을 밟았다. 부족한 부분을 찾았다. 깨진 손톱 밑에서 흘러나오는 핏방울이 흩뿌려진 기름처럼 악보와 건반을 적시고 끈적하게 굳어갔다.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은 악보일 뿐이다. 더 많은 관객의 비명, 더 커다란 불길로 장식한 무대가 필요했다. 만약 당신이 때가 되어 물망초 꽃밭에서 쓰러져 눈물 흘린다면, 나는 기꺼이 손수건을 건넬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틀렸음을 똑똑히 되짚어주리라.

파도 소리 버틴X슈나이더

타임키퍼의 가방 속 휑한 황무지에는 어린아이의 장난감 블록처럼 짜맞출 수 있는 각기 다른 시대의 땅이 여럿 있었다. 유유히 도개교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영국의 시계탑, 끈적하고 곰팡이로 번진 것만 같은 늪지대 또는 경건한 고대의 신전 등 세계의 일부가 한 공간에 모여 있음을 보고 있자면, 그 주인의 미적 감각이 생각나 퍽 웃음이 났다. 슈나이더는 그중에서 하얀 모래사장과 그 고운 입자들을 끌어안고 놔주고 반복하는 파도, 바다의 단편에 흥미를 느꼈다.

축축한 모래에 맨발의 실루엣 따라 새겨진 틀이 바닷물에 흐려지는 것을 보거나, 밟을 때마다 움푹 파이는 건조하면서도 부드러운 모래의 촉감은 슈나이더에게 낯선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보면 신발과 주머니 속, 혹은 머리카락의 구부정한 끝부분에도 가루처럼 모래가 계속 묻어나오는 경험이 버젓이 해변의 휴양지가 있는 시칠리아에서는 흔했을 것이다. 그러나 채워야 할 입이 너무 많은 오렌지 과수원의 살림은, 모든 가족들의 손을 쓰더라도 턱없이 부족하여 항상 빠듯했다. 남들이 바닷가로 향하여 즐기는 휴가철마저도 사치에 가까워 즐길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슈나이더가 도무지 바다에 가고 싶다고, 놀러 가면 안 되냐며 투덜거리자, 바로 윗언니 마리안은 어디선가 소라고둥을 하나 얻어왔다. 그것만으로 가족들을 곤란하게 할 자신의 욕심을 소라고둥 속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로 덮고서, 슈나이더는 잡지에서만 보이는 상상의 해변 위를 걷는 상상을 했다. 그곳은 이질적으로 하얀 모래와 줍기만 해도 간직하고 싶은 조개껍데기들, 그리고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거품으로 부서져 다시 넘실거리는 파도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스터인 소녀의 손에 의해 완벽히 조립되어 가방 속에 담겨 있었다.

언젠가 바다에 놀러 가면 어떤 수영복을 입을지, 모래로 성을 쌓거나 따가운 햇볕에 몸을 뉘어 가만히 쉴 거라는 그런 시시콜콜한 자신의 옛 소망과 가족들이 떠오를 때면, 슈나이더는 그 인공적인 해변을 홀로 걸었다.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가끔 황무지를 꾸몄던 이가 조용히 그 옆을 지켰다. 평소에 꽉 묶고 다닌 롱부츠를 잠시 그늘 밑에 가지런히 두고, 바짓단을 몇 번 접어 올린 채 멍하니 투명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소녀는 아마도 ‘영원’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자신의 마스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소라고둥이 없어도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예전과 같았다. 슈나이더는 귀를 기울이며 버틴과 말없이 모래사장을 함께 걸었다.

취기 드루비스X버틴

나른했다. 드루비스는 잠들지 않기 위해 여러 번 눈을 깜박거리며 상황을 정리했다. 분명 처음에는 애매하게 남은 켈틱 에일을 시작으로, 각 시대와 나라에서 온 이들의 이야기는 좋은 안주가 되어 누군가 새로운 술을 꺼내오게 했다. 그것이 원인일 것이다. 1929년 시카고의 불타버린 숲의 주인인 와이어하우저의 유일한 생존자였더라면, 맥주 한 모금마저도 꺼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떠돌며 누군가의 가방 속에서 지내는 어느 드루이드는, 그 맛의 매력과 깊이까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즐길 수 있었다.

각자 머물던 곳의 이야기가 하나둘 떨어질 때쯤에는 이터니티가 모처럼 꺼낸 코냑의 절반이 비게 되었다. 그러므로 취기는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의 머리끝까지 무사히 안착하여 모임을 가만히 지켜봤다. 어느 누군가는 피곤하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또 어느 부류는 더 큰 유흥을 위해 카드가 놓인 테이블을 향했다. 드루비스는, 이도 저도 아닌 채 그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숲속에서 바람을 쐬러 가기 전, 잠시 앉아서 숨 좀 돌린다는 것이 흐릿해져 소파 한구석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시끌벅적한 소음 속에서 온전히 잠에 빠지기 직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몽롱해서 꿈결로 착각하기 쉬웠다.

“드루비스 씨?”

옆에서 들려오는 감각은 알콜에 마비되어 와닿지 못했기에, 드루비스는 저를 걱정하는 버틴을 약간의 망상으로 대했다. 다들 당신이 오면 빨리 치워야 한다고 말했죠…. 혼잣말은 당사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또렷했다. 네? 대답이 돌아왔으나 여전히 취한 이의 제정신에 닿기란 쉽지 않았다. 겨우 뜬 눈으로 옅은 색의 머리칼을 가진 소녀가 보이자 행동은 생각을 거쳐 나오지 않고, 바로 튀어나왔다. 드루비스는 자신보다 약간 낮은 어깨에 몸을 수그리고 기대어 몇 마디 더 중얼거렸다. 다들 당신이 성인이 아니라, 아쉬워했는데. 직전의 말보다 뭉개져 알아듣기에 어려웠으나, 조금 더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버틴은 제게 몸을 점점 축 늘어뜨리는 드루비스가 차라리 편히 누워 있을 수 있도록 옆으로 물러났으나, 취기로 따뜻해진 손이 무의식적으로 미지근한 손을 꾹 잡아 다시 가까이 다가갔다. 결국 졸음에 못 버텨 온전히 감긴 눈과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새근거리는 숨소리에, 취하지 않은 누군가 또한 취해버린 누군가처럼 가만히 소파에 앉아 같이 쉬게 되었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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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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