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지타임 드림 작업물 - [JD] 暴雨
종이비행기
“새끼야, 안 꺼져? 우리가 먼저 왔으니까 그냥 곱게 가라…”
“D야, 오랜만에 봤는데 말버릇이 그게 뭐야~”
예쁜 말 해야지, 예쁜 말. 사내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지랄하네. 거기에 당신은 그리 답했다. 웬만한 주변인들이라면 다 알 것이었다. 저 표정이 누구 앞에서만 짓는 표정인지. 그는 함부로 웃음을 꺼내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은 몰랐지. 당신만이 몰랐지. 당신은,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행동하려나.
“야, 말조심해. 네 면상만 봐도 기분 좆같아지는데 지금 참아주고 있잖아, 내가.”
본심과는 달리 날카로운 말을 비집어 꺼낸다. 적어도 이렇게 비수를 꽂지는 않았을 거라, 그리 말해본다. 그러게, 누가 도망치래? 그러게, 누가 떠나래. 그러게 누가, 나를 두고 사라지라고 했어. 내가 널 얼마나…… 닿지 못할 말은 심연 속에서 집어들 가치가 없다. 당신에게 닿아봤자 아스라이 무너져 내릴 테니. 그것을 당신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제가 먼저 사내를 두고 떠났다는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진실은 때로 진의를 숨기기 마련이다. 서로가 서로를 두고 떠났다는, 그런 진의.
왜 내가 너를 버린 것처럼 굴어?
나는 진작 너한테 무시 당했었는데.
나를 두고 떠난 게 그 증거잖아. 아냐? J 이 개새끼.
발목이 시큰거렸다. 눈앞에 사내가 쾌활한 미소를 짓고 있음이라. 그는 제게 잊히지 못할 상흔을 남기고 갔다. J에 의해 입게 된 부상이 아님에도, 마치 J이 남긴 각인처럼. 저 사내가 자신을 무시하고 떠나갔을 때부터 틈만 나면 욱신거리던 발목. 그래, J의 선망에 힘입어 재주를 선보이려던 저의 본심이다. 이것은 지워지지 않을 기억이다. 그것이 비참했다. 오롯한 저만의 감정으로 남아버린 것 같아서. 아니, 처음부터 제게만 주어져 있던 감정이었던 것 같아서. 그것이 서글펐나. 사내의 앞에서 날카롭게 꽂아 넣을 말만 골라 손에 쥐는 한 여성이 있었다.
유들유들하게 웃고 있는 사내가 같잖았다. 오만가지 욕으로 뒤덮어도 시원찮을 자식이었다. 떠나도 하필 씨발 그곳으로 떠난 저 개새끼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어떤 감정을 방패 삼아야 제 진심을 숨길 수 있으련지. 고민의 고민을 거치는 순간 늦는다. 후회보다 늦는 것은 없다지만 후회를 할 자식은 J, 저 개새끼로 정해져 있으니까. 그러니 안도한다. 그리고 짓누르는 것이다. 튀어나오지 말라고. 드러나지 말라고. 저 개자식한테, 우리는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그 마음을……
“하하, D야.”
여기서 보고 싶었다고 말하면 D한테 칼 맞을까? 우와, 그것마저도 D다워서 좋은데 어쩌지~ 그런 시답잖은 말을 꺼내 들며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내의 복부를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은 지경이었다. 나는 원망과 옛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너는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씨발. 장마철 먹구름은 전국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 하늘을 메웠다. 그것은 D, 당신의 머리 위에도 마찬가지였다. J에게 드리워진 먹구름은 결국 D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결국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존재는 태양이었으니까. 둘은 그렇게 이어져 있으니까. 그 나그네가 누구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비가 내렸다.
비 내리는 날에는 유독 아픈 곳이 더욱 시큰거리기 마련이지. 네 생각도 그랬다. J, 너로 새겨진 각인도 마찬가지였다. 장마철, 비가 끊이지 않는 여름. 저는 눈앞의 사내가 잠들기 전 꿈을 가져다주는 삶을 살고 있거늘, 정작 장본인은 그러지 않아 보이는 것이 짜증나서. 이를 악물었다. 장본인의 심정이 어떠한지는 알지 못한 채로. 사내는 웃었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웃어야 했다. 진심을 숨겨야 하는 것은 사내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카로스는 태양에 닿기 위해 점점 위로 향하다 결국 추락한다. 그것은 J에게 걸맞는 이야기에 속했다. 그만의 태양, 그가 올려다보고, 먹구름을 거둬낼 수 있었던 그의 태양. D. 당신은 모를 이야기. 아마도 당신은 영원히 모를 이야기들. 삶의 끝, 끝자락에서도 알 수 없을. 사내가 밝히지 않을 오롯할 진심. 우리는 진심과 진의, 본심을 숨기는 것부터 배우고 자랐잖아. 그치, D야.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할 말들을 조용히 삼키며, J은 웃었다. 유도리 있는 미소는 언제나 D의 앞에서만. 말끝을 늘이는 물결표도 언제나 D에게만. 그가 정한 나름의 규칙이었다. 이 또한 당신은 모르겠지만서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까. 이 개새끼가, 갈 데가 없긴 왜 없어? 넌 진짜 끝까지 나를 개무시하네. 문득 옛 생각이 난 탓에 인상을 마구잡이로 구긴다. 여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다던 사내, J의 말. 그 말이 지독히도 우스웠다. 나를 얼마나 무시했으면. 나를 얼마나, 얼마나. 나랑 약속한 영원을 얼마만큼… 그래, 나를 애틋하게 여기지 않았으니까 나를 두고 떠났겠지. 안 그래? J. 벽에 가로막힌 서로의 감정이 진심 한 움큼을 감싸 쥐고 뒤로 물러선다. 서로는 서로를 몰랐고, 무지는 세상에 구현되어 갈등을 빚어낸다. 마치 지금처럼. 비가 내렸다.
장마철의 습도는 높디높기 마련이었다. 그래서인지 숨을 쉬기가 더욱 어려웠다. 숨을 쉬려면 쉴수록 벅차고, 버겁고, 네 생각은 자꾸만 나고. 널 잃은 내가 다시금 숨을 쉴 수 없어서 이대로 죽어버린다면 조직원들이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볼까. 그깟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제게 중요한 것은, 바로……
비로소 장마철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녀는 알았다. 당신은 알았다. 이 짜증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고 있었기에, 사내의 앞에서 애써 감추려 드는 것이었다.
그깟 사랑놀음이 뭐라고 이딴 지랄을 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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