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 3

일단 "멸망" 하시오 글 커미션

빵글빵글 by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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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장 전 커미션과 같은 테마로 작업한 리퀘스트입니다. 오탈자, 비문 등의 수정만 거쳤습니다.

  • 2인, 자율 작업, 공백 포함 6,353자. 좀비 아포칼립스를 테마로 작성했습니다.

  • 크툴루의 부름, 인세인, 둘이서 수사 등의 TRPG 세션에 활용한 캐릭터들입니다.

  • 가벼운 유혈, 폭력 표현이 있습니다.

  • 신청자의 동의를 받고 전문 공개합니다. 이하 이미지와 텍스트의 내용은 같습니다.

  • 커미션 바로가기: https://kre.pe/TogX

“물렸군.”

“그래요.”

“……”

“… 뭐라고요?”

 

어니스트가 경악한 얼굴로 두 가지 의미에서 답이 없는 고용주를 바라보았다.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이런 종류의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되물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싱클레어는 대답 대신 손을 들어 보였다. 손바닥에 선명하게 난 잇자국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과 한 입 깨물면 바로 보이는 인간의 치열과 똑같이 생겼다. 사과가 아니라 생살에 이만한 잇자국을 내려면 상상 이상의 세기로 물어뜯어야겠지만. 다 썩어가는 시체들 주제에 그럴 치악력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싱클레어는 딴생각과 함께 속으로 숫자를 셌다. 3, 2, 1.

 

“당장 나한테서 10피트 떨어져!!!!”

 

어김없이 조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자기가 이미 20피트는 떨어진 것 같은데. 싱클레어는 왠지 웃고 싶어져서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나오냐는 짜증에 착실하게 뒤로 열 걸음 가는 것도 잊지 않고.

 

 

사람들은 그것을 리빙 데드라고 불렀다. 직관적인 이름이었다. 순리를 거스르고 되살아난 죽은 자들. 저것이 엄밀히 말해 ‘삶’이냐고 물었을 때 어니스트와 싱클레어 중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대충 ‘그거’, ‘걔’, ‘거기’, ‘저것들’ 같은 대명사로만 불렀다. 열심히 고민해서 이름을 붙여 봤자 불러 줄 인류가 사라지면 큰 의미가 없기도 했고.

어쨌든 그것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런던 어디 묘지에서 시체가 땅을 뚫고 올라왔다든가, 병원에서 방금 숨이 끊어진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의사를 물어뜯었다든가. 신의 저주라고도 했고 새로운 전염병이라고도 했다. 사람마다 말이 다른 데다 발원지를 안다고 별 소용도 없었으므로 사태의 시작점에 관한 관심은 곧 사그라들었다. 관심을 줄 사람이 모자라게 된 탓도 있었다. 19세기 말 영국에는 병원체의 개념도 있었고 사자들에게 두 번째 죽음을 선사할 총기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매스미디어가 없었다. 무는 것을 통해 전염되는 일종의 병증이라는 사실이 런던 밖으로 전해질 무렵에는 이미 런던 시민의 절반이 죽어 나간 뒤였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태양은 존나게도 잘 졌다. 치안은 진작에 박살 났다. 계급과 부는 얄팍한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런던 밖을 향했고 감염도 그를 따라 런던 밖으로 퍼졌다. 어니스트와 싱클레어는 그 무렵 의뢰를 위해 런던을 떠나 옥스퍼드에 나와 있었다. 무슨 의뢰 하나 해결하자고 옥스퍼드씩이나 오냐고 투덜대던 어니스트도 이번만큼은 얌전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감염 전선은 남부에서부터 바짝 쫓아 올라오고 있었다. 다른 생존자들이 그랬든 둘은 북쪽으로 향했다. 땅끝까지 가고 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는 누구도 묻지 않았다.

 

둘은 그래도 꽤 잘 지냈다. 한… 사흘 정도는.

도망치는 와중에 먹고 자고 다치면 치료도 하고 신세 한탄도 좀 해야 하는 인간과 달리 사자들은 무조건 신선한 인간을 찾아 전진하기만 하면 됐다. 대체 무슨 재주인지 머리통이 날아가기 전까지는 썩어가는 몸으로도 잘만 움직여 댔다. 수를 불린 그것들이 피난 가는 사람들을 따라잡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니스트와 싱클레어는 생각보다는 침착했다. 그야 폭주하는 열차에서 범인도 쫓고 뭔지 모를 것이 사람 몸을 빼앗아 조종하기도 하고 사람 시체로 포도주… 인간주… 아무튼 술도 담가 먹는 세상인데 죽은 몸 좀 돌아다닌다고 새삼 충격받을 것도 없었다. 이만한 사태가 이 둘을 동요시키기에는 이들이 겪은 풍파가 너무 많았다.

문제는 싱클레어의 고질적인 단점에 있었다. 육체노동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허약한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기본적으로 굉장한 골초였고, 애초에 근력이나 체술이 필요한 일은 어지간하면 어니스트에게 맡겨 온 탓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머리 쓰는 일은 탐정이, 나머지는 전부 조수가 맡는 형국이 됐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 쓸 일이 별로 없는 서바이벌에 던져진 셈이니 도움이 될 턱이 있나. 어니스트가 시체들의 어그로를 끌며 썩은 수박 같은 머리통을 쇠지렛대 따위로 깨부수는 동안 최대한 빨리 잠긴 문을 따고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니스트가 사흘이나 참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이번 일이 싱클레어의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풍파의 7할은 이 똘추… 탐정의 무시무시한 행동력과 그보다 무시무시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돌팔… 탐정이 또 태풍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으면 그걸 꺼내 오는 것이 어니스트의 역할이었다. 일개 사립 탐정이 돈이 어디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매번 이럴 때마다 수당을 올려 주니 내다 버리기도 쉽지 않은 것이 한이었다. 아무리 태풍의 눈 같은 양반이라도 저 멀리 런던에서 시작된 대규모 감염 사태까지 일으키지는 못했을 테니, 어니스트는 어느새 또 저만치 먼저 간 고용주에게 이놈들 처리는 나 혼자 하냐고 짜증만 좀 내기로 했다. 어쨌거나 혼자 있는 것보다는 아는 사람 둘이 다니는 게 낫겠다는 마음으로.

 

그래, 그렇게 한 달 정도는 무난히 투닥대며 지냈건만…

 

 

“대체 언제 물렸어요?!”

“조금 전에.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군. 싸우는 중에 물렸겠지.”

“누가 그걸 몰라서…!”

 

총 30피트쯤 되는 거리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대화하는 것에 지친 어니스트는 곧 곁으로 돌아왔다. 돌아와도 소리를 지르기는 했지만. 싱클레어는 말하는 와중에도 손에 붕대를 돌돌 감고 있었다. 며칠 전에 머무른 은신처에서 찾아낸 물건이었다. 한 손으로도 곧잘 감는 것이, 이런 데서는 또 재주가 좋았다. 자기도 모르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어니스트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게 왜 잘 싸우지도 못하면서 끼어들어요?”

 

그러자 싱클레어가 눈살을 조금 찌푸린 채 고개를 들었다. 기분이 상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니스트는 살짝 움찔했다. 안경은 난리 통에 진작 깨져 버렸다. 시력이 끔찍하게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 보이지는 않는 모양인지, 그 이후 싱클레어는 종종 눈을 가늘게 뜨곤 했다. 싱클레어가 붕대를 마저 감아 고정하고서 말했다.

 

“싸울 때 도움이 안 된다기에.”

 

어니스트는 말문이 막혔다.

 

“아, 그러니까 물린 게 내 탓이라는 거예요?”

“아니, 발전을 좀 해 볼까 했지. 너한테 많이 신세 진 건 사실이잖나.”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말문이 막힌 어니스트가 한숨을 푹 내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평소에는 설명을 안 해도 너무 안 해 주는 주제에 이럴 때는 또 쓸데없이 솔직하다. 짜증나는 양반. 어니스트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애꿎은 바닥만 차고 있는 동안, 싱클레어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저건 또 어디서 났대. 한 달 내내 니코틴이 없어서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더니 한 대 물자마자 눈에 생기가 도는 것이 이 와중에도 웃겼다. 피울 거면 멀리 떨어져서 피우라고 핀잔이나 주려던 찰나 싱클레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 가나?”

 

어니스트는 웃지 못했다.

 

 

탐정의 논리는 그랬다. 물리자마자 변하는 건 아니더라도, 이미 물린 사람을 데리고 다니면 괜히 의심을 산다. 여기는 요크셔. 아직 운행하는 열차에 숨어 타고 버려진 농장의 말을 훔쳐 타고 하는 생난리 끝에 한 달 만에 어찌저찌 도착한 잉글랜드 북단. 워낙 넓은 지역이니 잉글랜드를 완전히 벗어나려면 조금 더 걸리겠지만 그래도 제법 북쪽까지 올라왔다. 위쪽 지방일수록 피난할 여유가 있었던 덕에, 이미 비어 버린 도시들을 지나며 죽은 자들의 진격은 조금 주춤하고 있었다. 안심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잉글랜드를 벗어나면 한숨 돌릴 정도는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 와중에 외지인이 잇자국 난 사람을 데리고 좀 들여보내 달라고 하면 누구라도 죽이려고 들 것이 분명했다.

솔직히 말해서 어니스트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울고불고 애틋할 사이는 절대 아니었지만 면전에 대고 드디어 물렸냐, 꼴 좋다! 할 만큼 험악한 사이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탐정은 온갖 험한 일에 휘말려 다닌 주제에 마지막에는 어떻게든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곤 했다. 한동안 소식이 끊겨도 어떻게든 살아는 있겠지, 그런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손에 이빨 자국 하나 난 정도로, 꼭 죽음이 확정된 사람처럼…

 

“맞으니까 뜸 들이지 말고 출발하는 걸 추천하지.”

 

속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짜증났다. 이제까지 자기 뒤치다꺼리 다 해 준 게 누군데, 일이 꼬이니까 이렇게 쉽게 버린다고? 버리고 가는 쪽이 될 거면서도 어니스트는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운 정이라든가 서운함이라든가, 그런 단어가 떠올랐지만 모르는 척했다.

 

“당신은 어쩔 건데요.”

“뭐… 어디 골방에 문 닫고 들어가 있을까? 경고 표지라도 세워 두면 누가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

 

하도 험한 꼴을 많이 당해서 이제 생긴 게 조금 변하는 정도로는 별생각도 안 드는군. 평소에는 별로 하지도 않던 농담을 하는 꼴이 열받았다. 어니스트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주먹으로 싱클레어의 얼굴을 후려쳤다. 물고 있던 담배가 충격에 나가떨어졌다. 이런, 불은 아직 붙이지도 못했는데. 돗대였던 모양인지 싱클레어는 불평하면서도 새 담배를 꺼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뺨을 문지르며 킥킥대는 게, 평소에는 잘 웃지도 않으면서 왜 일이 이렇게 돼서야 이러는지. 그래서, 고용주는 왜 때렸나? 싱클레어의 푸른 눈이 어니스트를 향했다. 어니스트는 분에 못 이겨 고개를 돌려 버렸다.

 

“… 안경 없을 때 한 번은 때려 보고 싶었어요. 안경 쓴 사람은 때리면 안 된다잖아.”

 

웃기지도 않은 변명을 뒤늦게 덧붙이면서.

 

 

어쨌거나, 결론은 났다. 여기서 갈라서기로.

 

 

싱클레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어니스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방향도 가르쳐 줬고 지도도 나름 멀쩡한 걸 찾아 줬으니, 조금만 더 이동하면 잉글랜드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 아직 도시들이 기능하고 있는 곳까지 가면 그 뒤로는 알아서 잘해 나갈 것이다. 생활력 하나는 야무지다 못해 범죄 수준이니까, 친구나 애인 몇 명─이 표현에 이상함을 느낄 시기는 이미 애저녁에 지났다─만들고 나면 금세 자리를 잡겠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작아진 뒷모습이 언덕을 넘어 보이지도 않게 되고서도 싱클레어는 적당한 건물 잔해에 걸터앉아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골방이 어쩌네 했지만 어쨌든 아직은 산 사람 꼴을 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기 전에만 움직이면 될 것 아닌가. 방에 틀어박혀 있기만 할 기분이 아니었다.

 

곁에 둔 사람을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영영 잃어버리는 것. 그것이 싱클레어 헤이든의 가장 큰 약점이자 과오다. 한 가지에 몰두하면 시야가 좁아져 버리는 주제에 행동력이 좋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끌어들일 줄 알기까지 하면 그 사람은 고스란히 태풍의 눈이 된다. 그 자신은 멀쩡해도 주변의 것은 전부 휩쓸어 버리고 마는.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제가 절박한 탓에 또 손을 내밀고 말았다. 도와주겠다고 포장해서는, 사실은 자기가 도움이 필요했으면서.

그러니까 차라리 이렇게 된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땅에 떨어졌던 담배를 질근질근 씹으며 싱클레어는 생각했다. 어차피 곧 죽을 거 좀 더러운 게 대수냐. 불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전부 어니스트에게 주었다. 어니스트 패처는 정말 질기게도 살아남았다. 두둑하게 챙겨 준 위험수당의 힘이었는지, 타고난 생명력인지는 몰라도. 그러니까 조금 더 질기게 살아도 괜찮을 것이다. 남겨지는 쪽이 아니라 남는 쪽이 되는 건 처음이었다.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피가 배어 나오는 손바닥이 욱신욱신했다. 불평은 많아도 돈 앞에 착실하던 조수는 갖가지 재주가 많았지만, 추리력만큼은 여태껏 그다지 늘지 않았다. 싱클레어가 몸 쓰는 일을 어니스트에게 맡겨 둔 탓에 체력이 조금도 늘지 않은 것처럼 어니스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제 물렸는지 모른다고 했지만, 그렇게 세게 깨무는데 모를 리가 있나. 어니스트의 뒤쪽으로 접근하던 것을 급한 대로 맨손으로 후려치다가 제대로 뜯겼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그 직후부터 평소 쓰던 왼손이 아닌 오른손에 쇠파이프를 들었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어니스트에게 느긋하게 관찰이나 하고 있을 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짐은 얹어 주지 않아도 됐으니 모르는 척하기로 한 것은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누가 또 지나갈지 모르니 움직일 수 있을 때 주변을 대강 정리해 놓고 어디 틀어박혀 있으면 대강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싱클레어는 한참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안경이 없어 흐릿한 시야에 무언가가 걸렸다. 그는 무심코 눈살을 찌푸렸다.

 

저 멀리에서 익숙한 백금색 머리통이 보였다.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데 들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욕이겠거니 했다. 싱클레어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왜 도로 와?!”

“꿈자리 사나울 거 뻔해서 온다, 왜!!”

 

하하하! 싱클레어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이거 진짜 미친놈 아냐! 어니스트가 실성한 것처럼 끅끅대고 웃는 전 고용주에게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미친놈이라니, 아, 누가 할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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