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장기 말과 장기 기사

월드 트리거. 아즈마, 그리고 미즈카미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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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마 하루아키는 아즈마 부대의 대장이며 전투원이기도 하나, 후임 양성을 위해 맡은 부대인 만큼 사실상 멘토로서 부대원들을 지도하고 기술을 전수했다. 여기서 기술이라 함은 언뜻 듣기엔 공격 기술을 말하는 듯하지만, 오쿠데라와 코아라이는 호월을 사용하는 어태커였고 그들과 달리 스나이퍼 포지션인 아즈마가 말하는 기술은 ‘저격’이 아닌 ‘전략’이었다. 세상 많은 것이 그러하듯, 어쩌면 대부분의 것이 그러하듯 전략 또한 가르치면 배울 수 있는 기술 중 하나였다. 물론 누군가는 번뜩이는 감으로 계획을 짜낼 수도 있겠지만, 감에만 의존하며 영감이 오기만을 기다려서는 결코 ‘프로’에 이를 수 없었다. 여기서는 ‘마스터’에 해당하리라. 아즈마는 오래전 그의 부대에 속했던 슈터 니노미야 마사타카의 가치관을 바꿀 만큼 뛰어난 전략가였지만, 오쿠데라와 코아라이에게 처음부터 전략을 지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먼저 스스로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들의 결정에 따르며 그들이 계획한 전략의 결과를 보여준다. 일전 아즈마는 자신을 가리켜 장기 말이라고 칭한 적이 있었다. 기사의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기꺼이 말이 되어 움직이기로 했다. 그런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이 있었다. 갑갑하진 않으세요? 그런 질문이었다. 아즈마는 나이도 나이고, 경력도 경력이고, 보더 대원 대부분은 그보다 까마득하게 어리기도 한지라 그와 직접적인 친분은 없어도 만나면 어른에게 인사하듯 인사하고 그 역시 그 인사를 받아주는 것이 보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따라서 그와 같은 포지션도 아니고 친분도 없는 이가 어쩌다 보니 같은 장소에서 부대 대원들을 기다리게 된 아즈마에게 말을 거는 것도 드물지 아니한 일 중 하나였다.

“뭐가 말이지?”

“장기 말로 움직이는 거요.”

아즈마는 장기를 두기보단 마작을 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판기 옆에 나란히 서서 음료수 캔을 홀짝이는 이가 하는 말을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즈마는, 말하자면 기사로서 장기판을 들여다보던 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전략가’였고, 미숙한 기사의 손에 놓이는 수가 ‘수를 볼 줄 아는 자’의 눈에는 얼마만큼 우스꽝스럽게 보일 줄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이미 많은 이에게서 들은 말이기는 하였다. 고생하시겠어요. 아직 둘 다 어리잖아요. 배울 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요. 그렇지. 그럴 수도 있기 한데.

“나라면 생각하지 않았을 수에 어울리는 것이 제법 재밌어서 말이지. 너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미즈카미. 그에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는 소년, 또는 청년, 그 경계에 선 이가 있다.

“뭐……. 그렇겠네요. 그건.”

사실 아즈마는 그 말대로 장기 말에만 머무른 적은 없었다. 장기 말이라면 허둥지둥하는 기사에게 말을 걸며, 이다음엔 어떻게 할까? 하고 주의를 환기하지 않을 테니까. 그것이 그의 지도 방식이기도 했다. 그리고…… 눈앞의 이 역시, 미즈카미 또한 대체로 지휘관의 역할을 맡고 있긴 하지만 멋대로 튀어 나가기 일쑤인, 그럼에도 합을 맞추는 일에는 모두가 일가견이 있는 이들을 오롯이 제 뜻대로 통솔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려운 데다, 선택지가 있을 때는 제 대장에게 그 선택을 맡기는 편이었다. 진정 기사라면 말에게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건지 말을 거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근데 사람이라는 게 결국 다 그렇지.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기는 하지.

그들 앞에 놓인 것은 장기판이 아니고, 사람 역시 오롯한 장기 말이 될 순 없었다. 사람이기에 그랬다. 살아있기에.

잠시 후 각자의 일행이 부르기에 미즈카미는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한 뒤 돌아섰으며 아즈마 역시 목례로 이를 받으며 몸을 돌렸다. 어느 날에 있었던 짧은 대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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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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