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눈을 가리우는 날개

월드 트리거. 팬아트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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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아트입니다.

눈을 가리우는 날개는 그의 머리털과 같이 까만색이었다. 날개는 까마귀의 날갯죽지를 똑 떼어와 머리 뿌리에 붙여놓은 것만 같았고 그 속에서 간신히, 완전히 가려지지 않은 까만 동공의 눈은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날개 같은 건 실은 모두 환상이었기 때문이다. 눈앞의 그는 날개만 뺀다면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과 같았다. 체내 트리온 수치가 높은 이들 중 사이드 이펙트를 발현한 자는 종종 감각계의 이상을 호소하곤 했으니, 지금까지는 그 외에 해당하는 사람이었어도 높은 트리온 수치로 인해 이제 와 보게 된 환상일 수도 있었다. 물론 그저 피곤해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 어찌 됐든 그는 그를 처음 본 순간 분명 눈을 가리우는 날개를 보았고, 두 번째 만남부터는 정말로 피로 탓이었던 건지 날개는커녕 깃털 하나 그에게서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처음 본 날의 그를 기억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본 날의 그 또한 기억하게 되었다. 암시였을까? 복선이었을까? 만약 그것이 정말로 복선이라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수상한 적들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된 하나뿐인 남동생. 동생을 찾기 위해 힘을 기른 누나는 마침내 동료를 모아 동생이 사라진 곳으로 떠난다. 흔한 영웅담. 영웅담의 도입부이지만 이 이야기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그 속으로 들락거리는 바람에 앞머리가 도리 없이 휩쓸린다. 힘을 기른 누나는 함께한 동료들을 모두 두고 가. 아니, 실은 정체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자의 손을 잡고, 무기를 훔치고, 야반도주를 해. 영웅담의 주인공이라기엔 너무나 가당찮은 행적이지. 너무나 바보 같은 이야기지.

날아가고자 했다면 날개는 어깻죽지에 붙였어야지. 제대로 붙였어야지.

밀랍을 준비한 이만 이 땅에 남아있다. 녹여온 밀랍만 바닥에 뚝뚝 떨어뜨리며 이 땅에 이만 혼자 남았다.

눈을 가리우는 날개는 그의 머리털과 같이 까만색이라 감추기가 편했다. 까마귀의 날갯죽지를 똑 떼어와 머리 뿌리에 붙여놓은 것만 날개는 퍼덕이기보다 꽃꽂이한 꽃처럼 그 눈에 피어 있었고, 그 속에서 간신히, 완전히 가려지지 않은 까만 동공의 눈은 여느 사람과 다른 빛은 저를 감싼 날개 속에 모두 감출 수 있었다. 날개 같은 건 실은 모두 환상이지만, 날개만 뺀다면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이지만, 이상할 건 없었다. 당황할 건 없었다. 본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쉰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이제 와 알게 되었으면 그것으로 되었다. 이제 와 무언가를 더 할 방법도, 이제 와 무언가에 더할 방법도 없으니 그만하면 되었다. 암시도, 복선도, 모두 존재해 봤자 당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니. 상관없어야 할 이야기니…… 라고 생각했다면.

정말로 배려라고 생각했다면 너무나 가당찮은 배려였음을 그는 알까. 가려진 시야 밖에 서 있는 사람을 제대로 보았을 리도 없다. 보았어야지. 제대로 보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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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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