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while (1) 2

월드 트리거. 미즈이코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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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결국 이 자리에. 이코마는 자신을 가로막은 미즈카미를 바라보며 섰다. 미즈카미. 어디 가세요. 진에게. 시기가 이때쯤 오면 미즈카미는 숨기는 게 없어졌다. 끝이 다가오기 때문일까? 그래서 풀어진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절대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이것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이 시기의 미즈카미는 이코마를 다소 버르장머리 없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태도로 대했다. 돌려 말하는 대신 직접 자신의 요구를 말하고 이코마의 요구는 거절했다. 실은 다 듣고 있으면서 들어보지도 않는 척, 지금처럼 말을 끊고 강압적으로 나섰다. 가지 마세요. 돌아가세요. 갈 거다. 돌아가지 않아. 그러나 이코마는 그에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 곧바로 호월의 검집 위로 손을 올린다. 비켜라, 미즈카미. 안 비키면 벨 거예요? 그래. 웃지도 않고 단숨에 대답한다. 자세를 잡는다. 그에 미즈카미는 웃는다. 보면 아시잖아요. 저 지금 트리온체도 아니에요. 이코 씨. 절 죽일 겁니까? 그 말에 이코마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미즈카미.

그 수는 저번에 당해서 안 당한다.

평상복을 입은 차림으로 트리온체를 교체한 후 아스테로이드를 쐈던 지난 회차의 미즈카미를 이코마는 기억하고 있었다. 본래 육신인 줄 안 미즈카미를 부상 없이 제압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움직인 것이 패인이었다. 트리온체 대 본래 육신이라면 트리온체가 이길 수밖에 없고, 그날의 미즈카미는 무리 없이 제압한 이코마를 내려다보며 다음과 같은 말을 떨어뜨렸다. 조금만 기다려요, 이코 씨. 진 씨가 다시 한번 세상을 되돌릴 때까지. 그때까지만 버티고 놓아드릴게요. 그때가 되면 이코마는 다시 베일 아웃용 침상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일어날 것이다. 밖으로 나가면 호소이가, 미나미사와와 오키가, 미즈카미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생존점 2점 추가예요. 그리 말하면서.

수싸움에서 미즈카미를 이길 방도는 많지 않다. 그러나, 상대가 이코마이기에 미즈카미가 쓸 수 있는 수는 한정되어 있다. 아무리 미즈카미가 미즈카미고 이코마가 이코마라 하더라도 지금껏 나온 모든 수를 다 외워버린다면 대응하지 못할 것도 없다. 자세를 잡고 선 이코마를 보며 미즈카미가 처음으로 웃는다. 이래서 어렵다니까요. 오키도, 카이도, 마리오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왜 이코 씨는 항상 중간에 깨닫고 마는지. 이코 씨.

진 씨에게 간다는 게, 가서 이 세상을 무너뜨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세요?

알아. 정말로 알기에 그리 대답했다. 그걸 알아 미즈카미는 세상보다 먼저 무너진다.

다시 물어볼게요. 이코 씨. 이 세상을 벗어난다는 게.

제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세요?

말을 떨어뜨림과 동시에 갈라지는 육신이다. 본디 미즈카미에겐 이코마를 이길 방도가 없었다. 정면으로 맞붙었을 때 그가 속지 않는다면 그를 멈출 방법이 없었다. 그래.

안다.

선공, 호월. 갈라진 육신보다 더 사무치는 건 갈라진 마음일 수밖에 없다. 진짜 너무하시네요. 이코 씨.

더는 버티지 못하고 트리온체가 무너지면 본래 육신도 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무릎을 꿇는다. 이 세상엔 풍인이 없다지만 진 씨와 싸워서 이기실 수 있겠어요? 해 봐야지. 해서 안 되면요.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지. 또 잊어버리실 텐데요. 또 기억해 낼 테니까 괜찮아. 저는.

계속 방해할 거예요. 다음에도.

계속 방해해라. 미즈카미.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그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쳐 봤자 소용없을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에서조차 미즈카미에게 위안이 되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면 그는 절대 자신을 ‘대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장은 그 자신이니까. 그러므로 이 세상엔 미즈카미 부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즈카미는 대장이 아니고, 아니어도 된다.

그럼 어디 이코 씨 뜻대로 해 보세요.

대장이니까.

그 말에, 단 한 번 되돌아본 그와 눈이 마주친다. 한 번도 웃지 않은 그가 그에 말한다. 미즈카미.

다녀올게.

그예 주저앉은 채로 손을 흔들고 만다.

올 때 기념품 사 오세요.

눈을 뜬다.

사위는 깜깜하지만 곧 어둠에 적응한 눈이 모든 것을 바로 본다. 밖으로 나서면 호소이가, 미나미사와와 오키, 미즈카미와 함께 그를 기다리며 서 있다. 미즈카미가 일어난 그를 발견하고 웃는다.

기념품은 생존점이네요.

기념품? 이해할 수 없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지만 그리 중요한 단어는 아닌 듯해 금방 잊는다. 괜찮다. 괜찮을 거다.

어차피 다시 기억해 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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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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