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while (1)

월드 트리거. 아라진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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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너의 눈에도 보일 거야. 아라시야마는 그렇게 말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 말대로 진의 눈에도 보이고 있었다. 아라시야마와, 그와 겹쳐 무너지는, 그보다는 부서지는 세상이 보이고 있었고, 조금 후 미래의 그들에게 그 미래가 닥쳐올 것이, 진의 눈, 시야, 또 다른 ‘스크린’, 다시 말해 미래시의 화면에 선명하게 상연되고 있었다. 이 세상은 참 따스했어. 그렇지? 그러니 쉽게 놓아주지 못하고 있는 걸 이해한다며 아라시야마는 계속 말을 이었다. 타치카와 씨가 블랙 트리거가 되지 않고, 미와가 누나를 잃지 않았으며, 이코마 부대가 미즈카미 부대로 재편되지 않고, 내 동생들이…… 살아있는 세상. 이 세상이 이토록 따뜻한 이유는 네가 그러한 바람을 품었기 때문이겠지. 진은 반박할 수 없었다. 반복되고 있는 이 세상은 그런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불행이 거세된 세상. 가장 행복한 미래만을 골라 실현한 세상. 그러지 못한 미래를 살게 된 미래의 진 유이치가 마더 트리거에 접속하여 만들어낸 가상의 세상. 본디 보더의 마더 트리거로는 이만한 출력을 낼 수 없었다. 마더 트리거로도 이만한 대체 우주를 만들어낼 순 없었다. 자신을, 살아있는 블랙 트리거로 취급하여 모든 트리온을 쏟아붓지 않는 한. 스스로 신이 될 작정으로 마더 트리거에 뛰어들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저지르지 않는 한. 그 끝에서 가까스로 만들어낸 작은 세상이었다. 미카도시 전역을 커버하지도 못한, 보더 본부를 포함하여 둘레의 시내, 그 좁은 영역에서만 반복되는 대체 현실. 보더 본부가 집어삼켜졌기 때문에 본부의 엔지니어들은 이에 대처할 수 없었다. 따라서 각 지부, 특히 엔지니어를 보유하고 있는 타마코마 지부에서 그들의 가족인 진 유이치를 멈추기 위해 벌인 일련의 공작들이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진상이었다. 더 삼켜졌다간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그대로 마더 트리거에 종속되어 산 채로 죽은 채와 다름없이 되는 신이 되리라. 사실 진도 그런 결과를 바라진 아니했다. 그는 단지, 단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면 좋을 세상을 실험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생각 외로, 만들어진 세상이 너무 따뜻해서. 제 기억 속 정보를 조합해 낸 것뿐이라는 걸 알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모가미가 살아 있는 세상을 무너뜨릴 수가 없어서. 그 당시 본부에 있던 카키자키와 유바는 직접적으로 깨닫진 못해도 반복되는 세상에서 몇 번이고 세상의 모순을 지적하고 이상을 언급했다. 안 그래도 평소에도 미묘한 지점에서 감이 날카로웠던 이코마는 무언가를 깨닫고 진을 멈추려 했지만 미즈카미가 번번이 방해한 탓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을 보며 아라시야마는, 조용히 접근하기로 했다. 진에게. 이 모든 것이 진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을 알아 진 자신조차 깨닫지 못하고 꿈을 꾸는 세상의 꿈을 깨뜨리기 위하여 오늘날 이 지점에 이를 때까지 숨을 죽이고 또 죽이며 지척까지 접근해 왔다. 암약은 네 특기지만 나도 제법 나쁘지 않았지? 웃는 친구를 바라보며 진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진. 너의 눈에도 보일 거야. 고개를 흔들며.

진. 그러지 마. 살아야지. 그렇게 말하지 마. 그 말은 제 손을 마지막으로 꽉 잡았던 모가미도 했던 말이다. 살 수 있어. 아직은. 아직은 끝나지 않은 문장의 문단의 흐름을 끊어내고 마더 트리거의 접속을 끊어낼 수 있었다. 아직은 사이드 이펙트가 그러한 탓에 남들보다 배는 더 많은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생각하며 자라야 했음에도 결국 열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의 비행을 여기서 멈출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말이다. 그러면 그가 견뎌야 할 비극도 딱 그만큼만 주었어야지. 열아홉 살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하려면, 열아홉 살이 견딜 수 있는 비극만 주셨어야지. 하지만 열아홉 살이면 견뎌지는 비극이란 또 뭔가? 열아홉 살이면 견딜 수 있게 되는 비극이란 뭔가? 아직은 살 수 있어, 진. 그렇게 말하지 마. 살아야지, 진. 제발 그렇게는 말하지 마, 아라시야마. 난 아직 모르겠단 말야. 아직은 그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단 말야. 실력파 엘리트에게도 시간이 필요해. 난 아직. 아직.

널 구하는 방법을 보지 못했단 말야.

그 말에 쓴웃음을 짓는 아라시야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미래에, 어디에 있는가?

마지막까지 싸울 방법을 찾던 청년은, 모두를 확실하게 구할 방법을 찾았다. 블랙 트리거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블랙 트리거보다 더 확실하게, 분명하게, 모두를 구할 방법을 찾아냈다. 찾아내어…….

유언을 남겼다.

내가 더는 싸울 수 없게 된다면 마지막까지 나를 이용해 주세요.

네가 제일 너무해. 아라시야마.

미안해. 진.

네가 미워. 쥰.

미안해. 유이치.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부서지기 시작했다. 접속이, 연결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한다. 아라시야마가 진을 가로막고 시간을 끄는 동안 타마코마 부대는 본부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이 진을 끌어내고 있다. 마더 트리거에서. 대체 현실이 다시 대체되기 시작한다. 현실로. 진짜 현실로. 세상으로. 진짜 세상으로. 진.

너의 눈에는 꼭 보일 거야.

여기선 보이지 않을 거야. 그건 분명해. 확실해. 그러니까 나가서 봐. 그때까지.

기다릴게.

천장이 무너진다. 그의 머리 위로 언젠가처럼 콘크리트 조각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니, 콘크리트기 아니다. 세상이다. 떨어지는 세상의 조각과 함께 떨어지며 말했다.

기다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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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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