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파르마코스

월드 트리거. 미덴에는 신이 없다

비자림 by 비
2
0
0

밤의 바다를 부유하는 나라의 별―별의 나라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중심부에는 트리거가 핵으로 존재했으니, 마더 트리거 또는 퀸 트리거라 불리는 트리거와 동화하여 수백 년 동안 별을 돌보며 살아가는 인간 제물을 그들은 ‘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렇게 바쳐진 제물이 진정 ‘신’으로서 전능한 권력을 누렸다고는 보기 어렵다. 제물로 ‘내던져진다’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그에겐 희생이 강제되었고, 사실상 그것이 그의 역할 전부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이란 별을 떠받치는 아틀라스와 같은 그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는 이름이며, 새 시대의 막을 여는 새로운 연호라고도 볼 수 있었다. 보더가 파악한 ‘신’에 관한 정보란 이러하다. 트리거와 동화된 인간에게 자의식이 남아 있는지는 불명이다. 자의식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블랙 트리거의 예와 같이 어느 정도 선에서의 선택권과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자세한 사실은 역시 파악되지 않았다. 그들에겐 ‘신’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사실상 극비에 해당할 정보에 접근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행성 국가의 ‘신’에 관한 정보는 보더 내에서도 극비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네이버후드로 납치된 사람 중 트리온 수치가 신에 필적할 만큼 높은 사람이라면 전투원을 넘어서 해당 행성 국가의 신으로 바쳐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내 아이가 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유출된 정보는 사이비 종교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해당 정보를 유출한 사람은 에네도라―드와 접촉한 엔지니어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이 때문에 그를 담당했던 테라시마 라이조는 키누타 개발실장에게 경위서를 제출했다). 실종된 자식의 소식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이들에게 아이가 ‘비유가 아닌 사실로’ 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꽤 달게 들렸을 것이다. ‘신’이란 이름뿐이고 사실은 그저 산 제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정정하려고 해도 절망 끝에 빛을 본 이들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으로든 희망을 품는 것이야 나쁘지 않았지만, 이 희망으로 ‘행동’하려 하는 자가 문제가 되었다. 당신들은 잘못 알고 있다. 그러는 당신들도 확실하게 아는 것은 없지 않으냐. 확실한 것은 단어 하나뿐. 신.

신!

이 땅에는 신이 없었다. 죽은 땅에서 가져온, 신을 피워낼 작은 흙 단지, 화분만이 있을 뿐. 이러한 사태 중에 그것의 존재까지 드러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아리스테라의 마더 트리거의 존재까지 유출되었다면 현재 그것을 작동시키고 있는 시노다 루카와 그의 동생 린도 요타로의 신변이 위험해졌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신이 필요하다!

신이 없기 때문에 지고 만 것이 아니냐!

헛소리에는 무시가 답이었다. 반박할 가치도 없긴 하지만, 반박해 봤자 반박을 가져다 다시금 그들의 논리로 해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더는 그들에 대응하지 않았다. 사이비 종교야 수년 전 제1차 대규모 침공이 있던 시절부터 극성이었고, 그들의 범행이 선을 넘지 않는 이상 교주를 체포하는 식으로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미디어 대책실에선 그들의 세를 제어하고 통제하기 위해 나날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보더의 ‘전력’인 전투원, 대부분 미성년자로 이뤄진 그들에게까지 해가 가지 않도록, 물밑에서, 막 뒤에서 그들의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질 것 같은 싸움은 아니었다.

그 말인즉 추가적인 지원 없이도 지금과 같이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또다시―어느 정도 시간차를 두고―유출이 발생하는 수년 후, 보더에 지원한 한 지원자가 입대 동기를 묻는 면접관에게 다음과 같이 답변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원하고 싶어요.

소문을 들었어요. 보더에도 신이 될 수 있는 단지가 있다고. 그 단지에 묻힌 사람은 신이 될 수 있다고.

신이 되고 싶어요.

그것이 제 동기입니다.

왜 신이 되고 싶습니까?

면접관의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땅에도 신이 필요하니까요. 우리에게도 신이 있어야 공평하니까요.

누군가 그 짐을 짊어져야 한다면 제가 짊어지고 싶어요.

왜 당신이 그 짐을 짊어져야 하죠?

그야…….

그러면 더는 저처럼 가족을 잃은 사람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가족이 없거든요. 면접관님. 서류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요.

그래서 그렇습니다.

…….

면접관 중 한 명이었던 미쿠모 오사무는 그에 서류를 덮었다고 한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만 돌아가셔도 됩니다. 인사하면서.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